소설리스트

〈 108화 〉방송 일곱 달째(1) (108/143)



〈 108화 〉방송 일곱 달째(1)

예빈이와 친구가 된지, 일주일째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그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휴대폰을 건드릴 일이 많아졌다.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하고 있는지.
매우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매우 일상적이었지만, 그렇기에 나는 매일같이 두근거릴 수 있었다.

사실,  인간관계가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를 아껴주고, 귀여워 해준다.
혹은 나를 경멸하고, 역겨워한다.

극단적인  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익숙하지 않은 ‘중간’이 생겨난 것이다.

당연히 어색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일평생 모니터 속을 제외하면  친구 아닌가.

하지만, 어색함도 잠시, 우리가 친해지는데는 삼일을 필요로 하지않았다.

예빈이는 나를 과도하게 칭찬해주고, 챙겨주지 않았다, 불쌍해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수 있었다.

단순하고, 투박한, 그 행동과 말이.
그리고 어쩌면 조금 거친 말투가 내 긴장을 녹여냈다.

“응... 그래서?”

침대에 누워 전화를 이어나갔다.
조금 늘어지는 말투로 질문을 건네자, 예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는 무슨, 외국으로 도망치려는거 붙잡았다더라.”

끝끝내 도망치려던 혜진이 붙잡혔다는 소식에, 살짝 심숭해져서 발을 구르자, 뒤편에 몸을 말고 있던, 주인님이 움직이지 말라는 듯이 내 발을 붙잡았다.

발에서 느껴지는 보드라운 주인님의 털과 말랑한 젤리의 촉감에, 잠시 ‘읏-’ 하는 소리를 내었다.

“뭐 그건 그렇고, 나  영상 찾아보고 있거든?”

“아...응...”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분명 리에라가 되어 인터넷 방송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첫 친구가, 내 방송을 본다는 것이, 부끄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무언가 특별히 이상한 짓을  것은 없는데도 말이다.

“너 계속 얼굴을 썸네일로  거야?”

“응...? 아니, 그건 아닌데...”

매번 똑같은 모습, 똑같은 포즈, 비슷하게 울먹이는 표정으로, 썸네일 대충 복붙하는거 아니냐는 비아냥이 있었다.

물론, 서예님이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방송중 짓는 표정은 무언가, 정해져 있었다.
고의는 아니되, 울고, 화내고, 웃고, 수치스러워 하는 표정들이, 무언가.

하나씩 비슷해보였고, 딱딱해 보였다.

그래, 누군가가 댓글로 그런 것을 남긴 적이 있었다.

하나씩 보면 귀여운데, 전체 동영상을 보면 불쾌한 골짜기가 따로 없다고.

그런 것을 보면 확실히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다만, 경제적 여유도 그렇고,마땅히 내 그림을 그려줄 사람도 없어서 잠시 보류인 상태.

“그림 그리는 사람 구했어?”

“구하긴 해야 하는데... 아직 대가도 못 드리니까...”

서예님이 자신이 구해오겠다는 것도 거절하지 않았나.

“야 나 한번 써볼래?”

“응?”

예빈이의 말에 잠시, 눈을 꿈뻑였다.
무엇을? 썸네일을? 그림을?

예빈이가 그림을 잘그리던가?

“어...? 그림 그려?”

“야, 다리 병신되고 손만 움직일 수 있는데, 할게 뭐가 있었겠냐?”

원래 그림을 좋아하기도 했고, 다리가 망가진 후부턴,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예빈이는 분명 친한 친구가맞았다.

하지만, 그림 실력도 모르고 그냥 이 자리에 결정할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그럼 그림 그린거 몇 개 보내줄  있어?”

“어, 보내줘야지 나라고 그냥 시켜 달라는 건 아니야, 그냥 그림보고 가능하다 싶으면  좀 써봐, 병원비 때문에, 밤에 부모님이 이야기 나누는 걸 보고 있으면 속이 썩어 들어가는  같아.”

용돈벌이나 해서  병원비는 내가 내고 싶거든

말을 길게 이어나가는 예빈이의 목소리엔 한숨이 섞여 있었다.

처음이었다, 예빈이가 이런 식으로 스스로의 약점같은 것을 보이는 건 말이다.

도와주고 싶었다.

병원비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많이 나가는 모양.

내 생존식비를제외하고 다 보내면 그래도 조금은 괜찮아질까?

잠시, 생각하고있자, 귓가에 예빈이 목소리가 싸늘하게 들려왔다.

“너, 나한테 뭐라도 보내면 절교야”

“아, 아니야, 그런 생각 안했어!”

“그런 생각이 뭔데?”

“아...”

떠본 거였구나...
그리고 그것에 걸려 든 거고...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는 혼날 준비를 마쳤다.

“서연아...?”
“네...”

“도대체 너는 너도 불쌍하면서 왜 남을 그렇게 챙기려는 거야?”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화를 내는 것 대신, 질문을 건네주는 예빈이의 말에 나는 웅얼거렸다.

내가 남을 챙겨주려는 이유?
나라도 모든 사람을 챙겨주진 않는다.

나도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이건 단순한 오해였다.

“오해라고 하진 말고, 너 하는 거 보면 진짜 무슨 비운의 여주인공 같다니까?”

“여주인공...”
헤헤...

“칭찬아니야!”

예빈이가 폭발하여, 버럭 소리 질렀고, 애써 넘기려는 내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입술을 삐죽이면, 몸을돌려 천장을바라보았다.

내가 남들에게 잘해주는 이유는 별 것 없었다.

부모님과 살 때는, 관심을 끌기 위해, 칭찬을 받기 위해,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그리고 친척과 살 때는, 맞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욕을 덜먹기 위해.그리고 용서받기 위해.

지극히 단순한 이유들.

“그냥...?”

그래, 그냥이라고 표현  수 밖에 없는 단순한 이유들.

하암- 하품을 하자, 예빈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휴... 어쨌든, 그건 넘어가고 그림은 이메일로 보내면 되나?”

“응? 아니, 폰으로 그냥 주면 돼.”

굳이 이메일까지 보낼 이유는 없었다.
서로 개인 연락처를 아는데, 그냥 문자로 보내면 되는 것 아닌가.

징-

진동소리에 졸음이 살짝 깨졌다.

“으응?”

“지금보냈으니까 한번 봐봐,  영상보고 하나 그려놨던건데.”

“응 잠깐만...?”

뭐야, 이미 그려놓은게 있었구나?

무언가, 살짝 흐믓해지는 감정에 헤실헤실 미소를 지으며, 문자를 확인했고.

그곳에는 썸네일로 사용하기 알맞은 그림이 있었다.

다만...

“어...?”

“왜? 못그렸어?”

“아, 아니! 잘그렸어! 지, 진짜 잘그렸어!”

근데, 이건 너무 잘그려서 문제인 것 같았다.

아니, 나는 평범하게 귀여운 것을 생각했다만, 이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졸음이 싹 사라졌다.
이럴 때 쓰는 말맞은 단어를 나는 알고 있었다.

“하와와...”

몇 개월 전, 썸네일러를 찾는답시고, 픽시브를 뒤적거렸을 때 본, r-18 그림 같은.

나는 경직되어, 말을 잇지 못했다.

물론, 수위는 지극히 낮았다.
그냥, 내가 배 박수 치는 것을 그림으로 귀엽게 그렸을 뿐이니까.

하지만, 나는 설마,그림체 하나로 야시시한 분위기가 날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그으...”

도대체 이걸 뭐라고 말해야한단 말인가.
오묘하고, 야릇한 그림이었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까.

야한  같아서 썸네일로는 부적절하다고?

그렇게 말하기엔 또 지나치게 잘 그리지 않았나.

“왜그래?”

“아, 아니...”

말을 더듬고 싶지 않아도 이것은 더듬을 수 밖에 없었다.

당황스럽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금 그림을 살펴보았다.

검은색 토끼귀 후드티를 입은 귀여운 여자 캐릭터가, 한손으로 후드티를 살짝 들춰서배를 노출 시키고는.

남은 손으로배 박수를 치는것을 표현한 그림.

분명, 귀여운 그림이되, 역설적이게도 야했다.

“...하와와......”

“사람 말을 해주지 않을래?”

“...야해”

내 말에, 예빈이 호탕하게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말을 툭- 내뱉었다.

“근데 그런 게 또 먹힌다니까?”

 말은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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