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방송 일곱 달째(4)
릴레이 소설은 비밀글로 이뤄졌다.
내가 아무리 시청자들을 믿는다 하더라도, 혹시 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막말로 진짜로 야설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내 방송은 그날로 정지가 될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우선적으로, 비밀 글을 확인해 쓸만 한 것을 추려내고자 했다.
그리고, 의외로 비밀 글들에는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비밀 글이 아니라, 그 직후의 일이었다.
“제가 선별한 비밀 글들로 시작할게요...!”
5개로 추려진 것 중, 순서대로 첫 번째 문장을 내가 옮겨 작성했다.
모든 것에는 인과가 있다-
짤은 문장이었으나, 무언가 무거워 보였다.
마치, 명작 소설의 도입부 같다고 해야할까.
그렇게 시작된 소설.
랜덤으로 뽑은 시청자가 글을 이어나갔다.
방송하기 시쪄-
“엑...?”
인과가 있다, 다음에 바로 이어진 것이 방송하기 시쪄- 라니.
방송하기 시쪄- 만 두고 보면 귀엽게 봐줄 수 있었으나, 인과가 있다-라고 시작된 도입부에 어울릴만한 문장은 아니지 않은가!
“어... 다음...!”
뭐, 그래도 릴레이 소설이 제대로 이어질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일단은 넘어갔다.
사실, 700명, 아니, 731명이 제대로 내 통제를 따라주리라 생각하진 않지 않았는가.
다시금, 추첨을 돌려 랜덤한 시청자를 뽑아냈고, 뽑힌 시청자는 망설임도 없이 글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소녀는 자살했다-
“아니 왜죽여요!”
방송하기 싫다고 자살하는 사람이 세상에어디있다고!
아니, 그보다 죽여버리면 소설이 이어지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손톱을 물어 뜯으며 다음 시청자를 추첨했다.
이번에는 조금 제대로 된 사람이길 간절히 기도했고, 시청자는 내 바람을 안 것인지, 조심스레 조금 느린 속도로 글을 적었다.
그 순간 리에라...
리에라? 나?
내가 왜 갑자기 등장한단 말인가.
“이 컨텐츠 망했어...”
문장을 끝까지 보지 않더라도 이 컨텐츠가 더 이상 제 구실을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남은 시작이 4개나 남아 있었지만, 이 컨텐츠 자체는 바로 폐기해야할 것이었다.
일단 이건 시작했으니 끝내야겠지만.
“우우...”
-릴소에 뭘 바란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컨텐츠 날먹하려 했던 못된 심보를 고쳐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조롱, 다만, 아직 내가 슬퍼하긴일렀다.
문장이 천천히 이어졌다.
그 순간 리에라 여신이 나타나 스트리머를 구원해줬다-
“여신 아냐!”
빼액- 큰소리로 비명 비슷한 울부짖음을 내뱉었다.
여신이라니! 그런 거, 이미 끝난 것 아니었나?
이건 너무 나갔다.
시청자들이 싫어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싫어해야만 했다!
난 이런 글 용납 못해!
-리에라 여신 맞지ㅋㅋㅋㅋㅋ
-ㄹㅇㅋㅋ
-솔직히 커여움은 여신 급이지
“그으, 여러분, 이런 말 해서 진짜 죄송한데... 눈에 문제 있어요...?”
내가 내뱉기엔 강한 어조의 말이었지만, 진심으로 궁금했다.
도대체 내가 왜 귀엽단 말인가!
차라리, 예전에 들었던 ‘참피같다’라는 말이면 조금 긍정이라도 하겠지만, 이건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테에엥!”
-오 저거 오랜만에 듣는 거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지마요...! 나심각해!”
과장되게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는 볼을 부풀렸다.
나름대로의 위협이었다.
“클립땀 ㅅㄱ”
“나빠! 진짜 나빠요!”
역시, 이 사람들을 진정시킬려면 그 방법뿐이리라.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고,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챈, 시청자들은 기겁을 하며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트월킹 멈춰!!!!!!!!!!
-아아악!!!!!!!!!!!!!!!!!!!!
“어... 이번엔 트월킹 아니에요!”
-?
-뭔데
나도 매번 트월킹으로 위협하는 것도 꼴이 우습지 않은가.
뭐, 나에게 무슨 꼴을 따지겠냐만, 그래도 부끄러웠다.
시청자 위협한다고 엉덩이 흔드는 여자 스트리머라니.
이걸 계속했다간 내가 수치로 인해 죽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요즘은 그걸 또 클립을 따는 사람이 존재했다.
아니, 클립을 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나와 연관도 없는 스트리머에게 가서, 내 클립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말해도 그런 사람들을 막을 수 없으니, 내가 조심하는 수 밖에.
“하아...”
나는 한숨을 쉬며 굳게 마음을 먹었다.
시청자들은 내가 몸쓰는 것을 싫어했고, 내가 무언가 섹시한 척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
반대로 시청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내린 답은 이것이었다.
“후흐흐흐흐...”
이젠 당하고만 살진 않을 것이다.
나는 나와 시청자와 지인들을 위해 살 것이다.
후드티를 훌렁 벗어던졌다.
물론 안에 옷은 입고 있었다.
다만, 내가 벗어던진 옷이 문제였다.
시청자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어째서인지 내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은 토끼귀 후드티!
“여신이라는 말 취소 안하면 토끼 후드티 안 입어요...!”
-아...
-왜?
-리에라 여신아니야 그러니까 어서 입자 우쭈쭈
“...?”
내가 원했던 반응은 이게 아닌데...
무언가, 반응이 약했다.
토끼후드티를 좋아 하는 게 아닌 걸까?
설마 내가 잘못 생각 했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청자들이 내가 평범하게 입고 있을 때, 갈아입으라고 몇 만원씩 후원할 리가 없지 않은가.
토끼후드티를 좋아하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 미적지근한 반응은 뭐지?
“어...응...?”
내 예상은 내가 트월킹으로 위협했을 때처럼, 엄청난 거부반응이었는데...?
-우린 리에라의 토끼귀가 좋은게 아니라 리에라가 좋은거라ㅋㅋㅋㅋㅋㅋㅋ
-ㅈㄴ오글거리네ㅋㅋㅋㅋㅋ
-토끼귀가 있으면 더 귀여운거지, 그냥 있어서 귀엽긴 해ㅇㅇ
-오랜만에 클랙식- 리에라네
“...우긋”
부끄럽다.
무슨 저런 낯간지러운 말을 대놓고 한단 말인가.
입술을 살짝, 잘근거리며 표정이 변화하는 것은 막았지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이게 아닌데...”
이런 반응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시청자들을 괴롭히는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되, 이런 반응을 기대한 것 또한 아니었다.
당연히, 나를 좋아한다는 말이, 설레였다.
저 말에 홀릴뻔 했다, 뭐라고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 본래 목적이 있지 않은가!
여신이라는 기괴하고 오글거리는 말을 못하게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미적지근한 반응이라면...
결국 답은 트월킹뿐인걸까...?
“후에에...”
-릴소 계속하자ㅋㅋㅋㅋ
-여신이라곤 안할테니ㄱㄱ
-우쭈쭈
“그으... 너무 애랑 놀아주는거 같은데요...”
-17살이면 애 맞지
-ㄹㅇㅋㅋ
“애 아니거든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시금 추첨을 눌렀다.
그리고 나타난, 시청자는 이미 생각해놓은 문장을 옮기듯, 빠른 속도로 글자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리에라 여신은 그를 구원한 댓가로, 날개를 잃고 지상으로 추락하여, 방황하다 스트리머라는 직업을 지녔다-
“하아-...”
이게 도대체 무슨글이란 말인가.
일단 빠르게 끝내자며 무지성으로 추첨을 돌렸고, 이내 5명이 써놓은 글을 바라보았다.
리에라는 본인의 귀여움을 시청자들에게 전파했다-
세상이 일순간 멈췄다,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5000만 구독자를 달성한 리에라는-
이내 1억구독자를 넘어 세계를 정복했고-
리에라의 귀여움으로세계는 평화를 이룩했다-
나는 그 글들을 얼굴을 붉히면서도 억지로 읽어나갔고.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이 컨텐츠를 기획한 과거의 나를 원망했다.
“......이 컨텐츠 폐기할꺼에요...”
내 시청자들은 나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고, 내 예상보다 더더욱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우우...”
눈가에 눈물이고였다.
시청자에 대한 믿음을 4~6정도를 잃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