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외전 - 자취
그 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내 손에는 천만 원이라는 돈과 함께, 어느 순간부터 쓰레기 장 같은 방에 쳐 박혀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난 걸까.
얼마 안 지났을 수도 있었다.
내 시간 개념은 진즉에 사라졌다.
시계도 보이지 않는 베란다 생활이 몇 개월이었다.
눈을 맞아서, 눈을 제대로 못 뜬 적이 많았다.
하여, 눈을 못 떠, 낮인지, 밤인지 헷갈린적이 많았다.
지금이 몇 시지?
지금이 며칠이지?
지금이 몇 월이지?
지금이 몇 년이지?
잘 모르겠다.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벌레처럼 바닥을 기었다.
먼지 따위가, 묻었지만 관심없었다.
귀찮았다.
내가 죄인인 것은 알았다.
하지만, 이젠 모든 것이 귀찮았다.
이정도면 많은 벌을 받았다.
이정도면 많은 것을 희생했다.
나는 인간이 아니되, 더 이상 고통 받고 싶지 않았다.
이기적이고 역겨울 수 있겠으나, 이정도면 됐잖아?
라는 마음이, 그리고 편히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정신을 좀먹었다.
나는 바닥에 고개를 쳐박은 채로, 손끝을 더듬었다.
어디에 뒀더라?
손을 움직여, 둔하게 느껴지는 촉감으로, 차가운 것을 잡아들었다.
길쭉하고, 차가운 것. 엄지손가락으로, 쭉 올리자 드르륵- 소리가 나며 소름끼치는 날카로운 것이 고개를내밀었다.
커터칼을 품으로 살짝 옮겼다.
오른손으로 움켜잡고, 왼쪽 손목을 바라보았다.
흉하게 그어진 흉터 따위가, 셀 수도 없이 많이 그어져있었다.
나는, 몸을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자세를 잡았다.
손이 부들부들거렸다.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곧이어 올 통증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그저, 손에 힘이 없을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다.
편의점 도시락 따위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음식물이, 시간이 지나, 쓰레기가 되어, 악취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평범했다.
늘상 맡았던 냄새아닌가.
벽을 보았다, 곰팡이 따위가, 잠식되어 흉했다.
하지만, 나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가.
천장을 보았다.
두 개달린, 형광등이, 하나는 수명이 다하여 켜지지 않았고, 남은 하나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점멸하고 있었다.
“아...”
그래, 맞아.
뭐가 그래고, 뭐가 맞아 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금, 손목을 바라보았다.
오른손으로 쥔, 커터 칼의 날을 손목에 가져다 대었다.
이런 것으로 안 죽는다는 것은 안다.
이미 몇 번이고 시도해본 적 있지 않은가.
동맥은 생각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다.
하여, 내가 진정 죽고싶다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어야 했다.
아니, 죽을 방법은 많았다.
목을 찔러도 됐다.
아니면 식칼을 쥐고, 쑤셔박아도 되었다.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수많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굳이 커터칼로 손목을 눌렀다.
날카로운 것이, 손목을 눌렀다.
베이진 않았다.
그어야 했다.
그래야 피가 난다.
일자로 누르면, 베어지지 않는다.
사선으로, 그어야 베어진다.
커터칼의 날은 약했다.
휘어진다.
하여, 잘못 긋는다면, 커터칼이 휘어지며, 손목을 헤집는다.
그래,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는다.
그럼으로, 내가 하는 행휘는 자살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럼으로, 내가 하는 행위는 그저, 헛된 것이었다.
사선으로, 든, 커터 칼의, 날이, 그어지며, 살이 갈라, 졌고, 피가, 세어, 나, 왔다.
쓰라린, 통증과, 뜨거운, 고통이.
액체가 되어 흘러내린다.
투두둑-
점성있는 액체가, 손목 끝에, 맺혀, 빗물처럼 투둑-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히히...”
정신과 선생님이 분명 뭐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의사선생님이 뭐라고 말하였던가.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했다, 기분전환을 하라했다.
그리고 나는 그 것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기분전환이었다.
내 손목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통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깊게 베인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잠시 바닥에 떨어진,더러운 액체를, 휴지따위로 닦아냈다.
비릿한 향이, 악취와 뒤섞였다.
“이걸로... 약 더 받을 수 있겠지...?”
내 손목에, 상처가 늘어나면, 약의 양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약을 먹으면, 온몸에 기력이 빠진다.
모든 생각을 그만둘수 있었다.
그저, 숨만 쉬었다.
그게 좋았다.
생각하기 싫었다.
그저 숨만 쉬고 싶었다.
죽기는, 무서워서, 병신같이, 이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바닥을 닦고, 손목을 휴지 따위로 대충 싸매었다.
피가, 세어나와 휴지를적셨고, 손목에, 뜨끈하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더 이상 흐르지는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로 다가가, 약을 꺼내먹었다.
이걸로약이 다 떨어졌다.
그렇다면.
내일은 병원에 가야했다.
이번에는 3달치를 달라고 해볼까?
이 주일씩? 맞나?
받아오는 약이었지만, 너무 적은 것 같았다.
“...하아...”
침으로, 억지로 넘긴, 8개의 약이, 그리고 반으로 부서진 2개의 약이,목구멍을 쓸어내며 내려갔다.
“좋아...”
곧 편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밤이.
밤이? 밤이었나? 밤이겠지?
밤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