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방송 열 달째(3)
* * *
미역국을 떠먹으며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도대체 왜 생일이라는 건지.
잠시머뭇거리다 이내우물우물, 입에 잔뜩 든 불고기를 씹어 삼키고는 조그맣게, 말을 내뱉었다.
“...저 오늘 생일이에요?”
생일파티를 받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었으나.
나조차 모르겠는데 어쩌겠는가.
물어볼 수밖에.
다만, 아까도 그렇고제대로 대답해줄지가걱정이었으나.
걱정 때문에 이 상황을 묻지 않기엔 지금 모습이 너무나 이상했다.
“그야,리에라생일이잖아.”
담담하게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듯 툭 던진 말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도대체 왜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걸까.
내가 다시 의문을 표하기 전에,드래곤님은잡채를 입에 왕창 집어넣고는 핸드폰으로 어떠한 화면을 보여줬다.
“으에...?”
내 유튜브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보여주니 유심히 관찰하자,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올렸던 가장 최초의 영상으로 눈이 갔다.
작년 오늘 올렸던 영상.
딱 이때였다.
서예님이내 편집은 너무 재미없다고 기존 영상을 전부 내려버렸지만, 이것만큼은 내가 지켰었지.
왜 까먹고 있었을까.
저걸 기점으로 인터넷방송을 시작했는데.
“아아...”
“어린이 친구들 안녕!”
“하,하지 마세요...”
마인크래프트로 올린 첫 번째 영상은 아동들을 겨냥했던 것이었다.
흑역사되, 추억이기도 했다.
참고로그 당시첫 영상의 일주일 성적은조회 수81,좋아요 0싫어요 5.
일주일 동안하루에도수십 번씩새로고침을 해서 확인 한 것이라 분명 정확하리라.
그런 반면, 어제 올린 영상의조회 수는8만,좋아요 1.2천,싫어요 219.
감회가 새롭다, 일주일 동안 세자릿수도못 넘겼었는데.
“이제 알겠어?”
“아,네...! 방송인으로서!리에라의첫 번째 생일!”
개인 방송은유튜브 영상을 올리고 난 후, 시간이 지나서 시작했으니,개인 방송으론아직1년이 안 됐지만, 첫 영상을 기점으로 한다면 분명 1년째가 맞았다.
내가 이런 걸 까먹을 줄이야.
이건 확실히기념할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까먹고, 지인분들이 챙겨준다니.
얼마나 고맙고도 미안한 일인가.
“고,고마워요...!”
내감사 인사에, 다들웃어 보였다.
나는 정말 행복한 인간임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단 말인가.
내가 헤실헤실하게 혀를 살짝 내밀고는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리자,네모미님이밥을먹다 말고갑자기 가져온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서연이케이크 못 먹는다고해서, 따로 가져온 게 있거든?”
“네...?”
음식들로도 충분한데, 또 뭘 가져오셨단 말인가.
혹시무리하시는 것은아닐지, 오들오들 떨면서 짐을 뒤적거리는네모미님을바라보았고.
네모미님은짐 속에서무언가를 꺼내셨다.
굉장히, 크고, 부드러운.
인형!
“우와아악...!”
이게 도대체 어떻게 저짐 더미 안에들어가 있을 수 있던 것일까.
거의 마술에 가까웠다.
크기가, 나보다 큰 것 같지 않은가.
“그거 끌어안고 자는 용도의 베개야!”
서연이랑 어울리는 토끼로 샀어, 어때?
의기양양하게엣헴 거리며 나의 호응을이끌어 내려던네모미님은, 내가 말이 없자볼을긁적이셨다.
“별로야?”
“아, 아니에요! 좋아요! 엄청 좋아요! 세상에서 지금 제가 제일행복해요...! 하지만, 생일선물받은 게처음이라...!”
이때까지생일선물이라는이름으로 받은 건, 혜진이가 생일선물이라며 내 급식에 벌레를 올려놓고 먹게 했던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걸 생일선물이라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생일빵이라며방과 후남아서 얻어맞는 것도생일선물이라곤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생일선물은이번이 처음!
태어난 날을 축하받는 기분이 들었다.
생소하면서도, 기쁘고, 가슴속이 간질거리는 듯, 몸을 꼬았다.
“와아아... 평생간직할게요...”
“다들 꺼내라고! 서연이한테 준다고 이것저것 가져왔잖아?”
“네가 그러지 않아도 다들 이미꺼내놨다...”
드래곤님이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네모미님이짓궂게 웃으며드래곤님옆으로 달라붙었다.
“그러고 보니, 오빠는 부모님까지 나서서 뭘 줘야 하는지 밤새 토론했다며?”
“뭐... 특별하니까.”
“오빠 서연이가 17살인걸잊은 건아니지?”
“그냥나가 죽어줬으면좋겠어...”
드래곤님은네모미님을툭 밀치고는 나에게 손을 뻗어보라는 듯 눈짓했다.
슬그머니 손을 뻗자,드래곤님이손위에 무언가를 올려줬다.
딱딱했다.
상자인가?
그런 것 치고는 작지 않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손에 들린 것을 쳐다봤다.
무언가 고풍스러워 보이는 나무 상자.
액세서리 같은것이 들어가 있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여, 열어봐도 될까요?”
“열어봐”
드래곤님의허락에 나만 보이게 살짝 열어, 틈 사이로비친것을 바라보았다.
향수였다.
다만, 분홍색, 하늘색, 두 종류였는데, 향수가 든 병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향수의 기능보단,장신구의 기능에충실한 그러한 고급 향수.
“향수는 모르겠는데, 그냥 적당히 이쁜 걸로 샀다.”
“비, 비싸지 않았어요?”
“더럽게 비싸더라, 그러니까잃어버리지말고.”
“히익..."
나는 향수가 든 상자를 품에 소중히끌어안았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가람님이앞서 둘을 비웃듯, 무심하게 툭 상자를 툭 던졌다.
“놓치지 말고잘 받아.”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얼떨결에 받아 든 상자를 쳐다보자.
RTX3090.
“...허어어.”
이게 정말로 실존하는 물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오색찬란한박스.
물론, 비유다.
최소몇백은한다던데. 도대체 이걸 어떻게 구했으며, 어째서 나에게 이런 것을 준단 말인가.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멤버중 그나마 나와 덜 친한 사람이 있다면 다름 아닌가람님아니었나.
그런데 도대체이건...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돌려줘야 한다는 천사의 속삭임과 선물이니 받으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 후로도 선물 공세는 이어졌다.
아람님은고급 마이크, 변호사님은 수제 생강차,오휘님은웬리세마라종결계정이라고 게임 아이디를 하나 주셨다.
같이게임하자고...
예빈이와하얀님은책을 줬는데, 다름 아닌하얀님이쓴 내 팬픽을 종이책으로 만든 것에, 예빈이가 직접 삽화를그려 넣은것이었다.
눈물이 맺혔다.
생일날 이렇게 기뻐도 되는 걸까.
매년 생일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맨날 잊어먹고, 애들은생일빵이라고괴롭히기만 했으니까.
생일이 싫었다, 그리고 생일날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생일이 저주와 같았다.
생일이란 내 인생에 있어서 견뎌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건, 진짜 생일이 아님에도, 이렇게 나는 축하를 받고 있었다.
물품적인것보다, 나를 축하해주는 사람이.
내 1년째를 기억해주고,좋아해 주는사람이 이렇게나한가득이었다.
가슴이 쓰렸다.
헐어버린 가슴에, 따뜻하게 와닿는 사람들의 온기가 행복했다.
내가 눈물을 뚝뚝 꼴사납게 흘리자, 지인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 뿐이었다.
“정말행복해요...”
그저그렇게밖에표현할수 없었다.
입술을 질겅이자, 곱게 뻗은 손가락이 내 턱을 잡아들어 올렸다.
“아직 울기엔이른데...”
서예님이이쁘게 웃으며, 작은귤박스를나에게 건네줬다.
얼떨결에 받아든귤박스는무거웠다.
잠시, 휘청거릴 정도로.
눈물이쏙 들어갈정도로 갑작스러운 무게에, 당황해서서예님을쳐다보자 어서 열어보라는 듯, 장난기 섞인 표정에 이상한 위협을 느꼈지만.
열 수밖에 없었다.
몸은 뒤로 쭉 빼고 손만 뻗어귤상자를살그머니 열자, 그 안에 든 것은.
돈다발.
그것도5만 원권.
“히이익!”
귤박스를놓칠뻔했지만, 바로 아래가 미역국과불고기 등의음식들이라놓치면 대참사라온 힘을다해귤박스를움켜잡았다.
“선물은 역시 돈이 최고죠?”
서예님은입가를 가리며 키득거렸고, 나는, 아니.
나와 지인들은서예님을그저 황당하게 쳐다봤다.
“야, 지금까지 계속 궁금했던 건데, 너 돈 얼마나있는 거야...?”
네모미님이툭 내뱉은 말에, 모두가서예님의입을 주목했다.
“으음... 정확한액수는 비밀이지만, 평생 이렇게 살아도 절반에 절반도 못 쓸걸요?”
아닌가? 더 남나? 잘 모르겠네?
서예님의말에 잠시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규격 외를 마주한 기분.
가장 자신 있어 하던가람님이어색하게옷매무시를 가다듬고헛기침을 연신 내뱉었다.
“왜요?”
대답해드린것뿐인데.
서예님은장난기 넘치도록 말을 내뱉었고, 우리는 그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좋은 사람, 예쁜 사람, 멋있는 사람.
새삼스럽게도 모든 것이 완벽했기에, 갑작스러운 거리감이 느껴졌다.
“히끅...”
딸꾹질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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