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2화 〉 방송 열 달째(4) (122/143)

〈 122화 〉 방송 열 달째(4)

* * *

대략적으로2분간의 침묵이 이어졌지만, 이내 우리는 활기를 되찾았다.

선물로 인한 경쟁이벌어졌다 한들, 어차피 나를좋아해 주는마음이라는 것은 하나도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일단, 돈 상자와 그래픽카드 3090은 거절했다.

생일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받기엔 너무 큰 가치를 지닌 것 아닌가.

내가 그보다 가치가 낮은, 형편없는 사람이라곤더는생각하진 않았지만.

아무리그렇다고 한들, 그런 것을 맨입으로 받기에는 분명 목에 걸릴 것 같았다.

아니, 그 이전에 내 입에 들어가긴 할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받아선안 되는것.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웠지만, 천사가 끝내 이겼다.

내 말에 조금은 서운함을 표한서예님이었지만, 그래야리에라님답죠, 라며 웃으며 넘어가셨다.

5만 원권이 뭉텅이로 들어간귤박스를돌려주자그제야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저건 원래 내 것이 아니고 받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아깝지않다고 하면거짓말이겠지만, 어쩌겠는가.

난 그깟 돈보다 이 인연이 더 소중한걸.

어떤 사람이 본인도기억 못 하는생일을 챙겨준단 말인가.

어떤 이가 이렇게 남을 축하해준단 말인가.

몇 번이나 똑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는데, 정말로 행복했다.

“아,맞다...!”

네모미님이드래곤님에게붙어있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내뱉었다.

“에...?”

“엄마가 너자주오라 보고싶다고”

아앗...

네모미님의부모님은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직접 찾아간다면 또음식 폭탄이터질 것이었고, 기어이50kg를찍을지도모른다는생각에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조, 조만간들릴게요...!”

언젠간 갈 것이다, 선물을한 아름싸 들고서.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갔다간 돌이킬 수 없는 몸무게를 마주하게 되리라.

안 그래도 요즘 유튜브 댓글에 살쪘다는 소리가 올라오고 있는데.

여기서 더 찌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가 이쁘거나 귀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관리를해야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결국 나는캠 방송위주 스트리머 아닌가.

캠 방송스트리머가자기관리를 안 한다는것은직무 유기나다름없었다.

내 대답에 아쉽다는 듯 쯧­ 혀를 차는네모미님의모습에 이유 모를 소름이 돋았다.

나를 얼마나 찌우실 생각이신 걸까.

학생 때, 혜진이에게 당했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는 결이 다른 두려움이 느껴졌다.

호의가가득 담겨있는것이 느껴졌기에, 오히려 악질.

나는 내 뱃살을 소중히 감싸며, 엉덩이를 뒤로 살짝 뺐다.

“진짜 더는안 돼요...!”

“에이, 너도 맛있게 먹어놓고는?”

“그,그야... 너, 너무맛있었는걸요...”

내 소심한 반항에 뭐가 그렇게도 즐거운 것인지네모미님은한껏 웃으며내 머리를 두드리셨다.

“장난이야 장난, 서연이 편할 때 와!”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나도 서연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니까!

별것 아닌 듯,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가슴속 깊이 숨겨진 무언가에방금 전의네모미님의말이 닿았다.

좋아요­ 라고 말을 내뱉고 싶었지만, 정신을 똑바로차리라고고개를절레절레 저었다.

네모미님집에가는 건적어도40kg초반으로돌아가고 나서다.

“그, 금방갈게요...”

살 빼는건 생각보단 쉬운 일이었다.

그냥 굶으면 되는 거니까.

먹는 것에 즐거움을 알았다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네모미님네부모님의 손맛으로 인한 것이었을 뿐이다,네모미님네의부모님의 음식이 없는 이상 몸무게는 금방 정상으로 돌아가리라.

“그러고 보니밖에 있던 사람들은 뭐야?”

“네...?”

아람님의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고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빌라 밖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 조폭들 싸움으로결론 난것.

그때 휘말렸던 기자들의 가족이었다.

분명 내가 연관되어있을 것이라며 가끔저렇게 시위하곤했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저 사람들은 이미 사람들의 지지를 잃어버렸다.

그나마 저 사람들을 믿는 건이모 같은광신도들 뿐.

세간에서 저들의 이미지는아직까지정신을못 차리고끔찍한 일을 겪은 여자애를 괴롭히는 쓰레기.

이렇게 이미지가 바닥을 친 것에는 이 이전부터 꾸준히 이상한 짓을 해왔기에, 본래부터 평판이 나빴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 안에 없어질거에요.”

서예님이담담하게 내뱉은 말에또다시침묵.

그 없어진다는 것이 이곳에서 시위를 그만둔다는 뜻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겠다는 뜻으로 들렸다면 너무 과장된 망상일까.

나는 커튼 너머로밖에서 시위하는사람들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신상에이로울 텐데...

직접 말을 해 줄 수 없는 것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업보인 것 같기도 하니 별수 없나 라는 생각도 불쑥 들었다.

나라고 모든 사람을 걱정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게 나와 내 주변에 피해를 준 사람이라면 더 생각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나저나,개인 방송으로1년도 이제 곧 아니야?”

생각에 잠겨있던 나를가람님이깨웠다.

그러고 보니,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개월 수를 셌다.

“어...이번이...어...10개월째니까...”

아니지, 10개월 좀 더 넘었지, 조금만 있으면 11개월째였다.

“그으러네요...?”

생일이라고황홀할 정도의축하를받다 보니잠시 까먹고 있었다.

“보통 1주년 주기로 거의모든 스트리머가이벤트 같은 걸하거든? 당장여기 있는사람들만 해도 그렇고.”

“어...저도뭔가를 해야겠죠?”

“솔직히안 해도되긴 하는데, 특별한 날을 그냥 넘길 순 없잖아?”

“그으, 그으건,그렇네요...”

1년 아닌가.

이건 뒤로 뺄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들이대야 하는일이었다.

당사자가 뒤로 빼면 그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어떤 이벤트를하죠...”

내 질문에 동시에 모두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는, 보통팬미팅을하는 편이지.”

드래곤님의말이었다.

팬미팅이라,한 번쯤생각해볼 만했다, 이미시럽단과도만나보지 않았던가.

“나는 추첨을 통해서스타킹 보내줬어.”

“네...?”

네모미님말은못 들은걸로 하자, 무언가 내가 알 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가람님과아람님을바라보았다.

“나는 보통 축하받는쪽이어서...”

헤실­ 거리며 혀를빼꼼내민아람님.

“나는 그냥 시청자 합방으로 때우는데?”

굳이 어렵게 할 필요는없잖아 라며물을 홀짝이는가람님.

제각기 스타일이 달라서 오히려 더 모르겠다.

무언가 자기만의색채를가지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듯했지만, 나는 입술을내밀 수밖에 없었다.

내색이란 게도대체 뭘까.

코스프레콘텐츠도반응이 별로라서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캠 켜놓고노가리나 하는 방송 아닌가.

나에게 색이란 것이 있다면 무색이요,향이라는 것이 있다면무취였다.

자기 비하가아니라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인간적으로도방송적으로도극적인 성장을 이뤄냈지만 가장 중요한 색을 찾는 것엔 아직이었다.

본래 성장 방향이 색을 찾고그 후에성장하는 것인 것을 생각하면 지금 내 상황은 기이한 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아직한 달도더 남았으니까, 천천히 고민해봐.”

그냥 넘어가도 되고, 아무도 뭐라고 하는사람 없어.

드래곤님의조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고, 지금 당장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니까 게으름 피우진 말고.

한숨을 푹 내쉬자서예님이부드럽게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셨다.

“에...”

미용사가 머리를 감겨주는듯한 손길에몸이노곤노곤해져헤­ 입을 작게 벌렸다.

무의식적으로흘러나온 침을 소매로 닦아내고서예님을올려다보자서예님은별말 없이 내 머리카락을 연신 쓰다듬을 뿐이었다.

“네...?”

왜 이러시는 거지­ 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손 하나가더 뻗어와 내 볼을만지작거렸다.

아람님의손가락사이에찝혀서늘어난 볼살에 미약한 비명을삐약하고내질렀다.

하지만, 내 비명에도둘은­...

아니, 손 하나가 더 다가와 턱을 긁어냈다.

고양이에게 하듯이, 이 손길의 주인은하얀님.

“아, 아니, 왜갑자기...?”

아프다기보단 당황스러웠다.

갑자기왜 이러시는걸까.

혹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걸까 싶었지만, 그런 것은 아닌듯했다.

다들 웃고 계시지 않나.

“으에에에­...”

수많은 손길에뒤덮여서머리가 제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거렸다.

“저거, 우리 보라고써놓은 건아니지?”

“네, 네?”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도대체 뭘 보고?

나는가람님의손가락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방안, 컴퓨터 책상.

그리고 컴퓨터 뒤쪽에 잔뜩 붙어있는 메모장들.

“아.”

내뱉은 탄성. 그리고 얼굴이 붉게 물들기까진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모,못 본걸로해주시면 안 될까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지인들에게 고개를 숙여 부탁했지만,네모미님과예빈이가 양옆으로 와 내 양팔을 끌어안을 뿐이었다.

“우쭈쭈우리 서연이 우리 사랑해?”

“아, 아니, 그게,아니...!”

“뭐야 그러면우리 싫어?”

“으에? 그, 그게 아니라, 사, 사랑하긴 하,하는데...그...!”

한순간 목구멍에서 수십 가지의 말과 변명이나오려 해목구멍이 턱­ 막혔다.

컴퓨터 뒤편, 벽지엔 내가 고마움을, 호의를 느낄때마다써놨던 것들이 한가득 붙어있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를좋아해 주는, 도와준 사람들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써 붙여둔 것이었는데.

그곳엔 온갖 이름과닉네임이있었고 그 뒤엔 당연하다는 듯 ‘사랑해요’라고 써놨었다.

“으에에에에...!”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