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3화 〉 방송 열 달째(5) (123/143)

〈 123화 〉 방송 열 달째(5)

* * *

모두가 돌아가고서예님이마저 돌아가려는 찰나.

나는서예님의소매를 잡고, 창밖을 가리키며 조그맣게 말했다.

“주,죽이면 안 돼요...”

“...네?”

서예님은어이없다는 듯­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나는할 말이있었다.

과거 이웃 때, 이웃이공구리쳐진 전적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스토커 때도.

서예님이아무리 유능하고, 멋진 사람이더라도 이런 식이 반복된다면 잡힐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하기보단, 나에게 소중한서예님이조금 더 내 곁에머물러줬으면 해서, 걱정스러워서 내뱉은 말.

“그,이웃 때랑스토커 때랑...”

“아...아하하...하하하하!”

서예님이진심으로웃긴다는듯웃어 보이셨다.

얼마나 웃겼으면 입이 아닌 배를 잡고 웃으실까.

그래, 나한테걱정 같은걸 받을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솔직히, 과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서예님은전지전능하다 표현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하하... 저아무도안 죽였어요...”

숨을 헐떡이며 내뱉은서예님의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공구리를치시진 않았겠지,대신해줄사람을 찾는것쯤은서예님에겐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아니, 정말로 아무도 안 죽였어요,이웃 같은경우엔 사람들을 시켜서 위협하고 한 번만 더 그러면 진짜로공구리를친다고 하니 그대로 도망쳐버렸고, 스토커도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했어요.”

제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진 않아요, 여긴 법이 살아있는 현대니까요.

평화적으로­ 라며 손을 내젓는서예님.

서예님이저렇게 말하니까 위화감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 그러면 그 사람들이 막,신고를 하면...?”

“음,리에라님.”

“네...?”

내가 양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대답하자서예님은내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에...?”

“물론,거품 물고대들면꽤피곤하겠지만, 딱거기까지예요.”

어깨를 으쓱인서예님은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몇 번 가다듬어주더니 살포시 안아줬다.

따뜻한 체온이 기분 좋게 와 닿았다.

“걱정 마세요, 적어도 잡혀가진 않을 테니까요.”

서예님의말이 어째서 이렇게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는 걸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랬다.

나에게 보여주는이유 모를호의와 사랑.

도대체 내 어딜 보고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걸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잘모르겠다라고해서 그 고마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동정심이라고 생각했고,서예님의본모습을알게 된이후엔 심심풀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건 금방싫증 나버릴 거야­ 라고 생각했었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서예님이나에게 농담을 꺼냈을 땐, 얼마나 당황스럽고도 좋았던가.

“그럼 가볼게요, 선물들은 방송에서 보여줘도좋을 거같네요, 기왕이면 그 메모들도.”

“저건 당장 땔거에요...”

벽면을가득 채운메모장들을 가리키는 말에, 나는 재차 얼굴을 붉혔지만,서예님은그런 날 보고는 그저 귀엽다는 듯 넘어갈 뿐이었다.

문밖을 나선서예님의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커튼 너머의사람들을 바라봤다.

죽진 않는다니안심해야 할까.

아니면아쉬워해야 할까.

내가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깜짝 놀랐다.

내가 이런 생각을 품었다고?

사람이 죽지 못해서 아쉽다니.

저 사람들이 분명 나에게피해를 끼친것은 맞았다.

넓게 보면 나 말고도 이 빌라사람들, 더 넓게 보면 내 지인들에게까지피해를 끼친것이었다.

나쁜 사람들이다, 저사람들의 입장에선어떻게 보일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나쁜 사람들이었다.

다만, 나쁜 사람들이라고 죽지 못해 아쉽다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생각이란 말인가.

무언가 문제가생겼다라고말할 정도로 거창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본래 내가 품었어야 할 생각과는 거리감이 있었다.

만약,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다면, 분명 앞으로도 툭툭­ 그런 생각이튀어나올것이 확실했다.

생각이란 것을 스스로 어떻게 할 수는 없었지만.

인지하는 것과인지를 못 하는것은 달랐다.

“후아...”

심호흡을 몇 번 내뱉고는 충격을 완화했다.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생각부터 시작이었다.

생각 다음, 말, 말 다음행동이었다... 라고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물론, 나에게피해를 끼친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알 바는없었으나, 나 자신에게 변화가 오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지금의리에라로서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이 가장 좋았다.

조금 더 사랑을, 호의를 받고 싶었기에 하나도 변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가 가장 좋았다.

그것에 대해 의심할 여지는 없으리라.

“조금만더... 아주조금만.”

사실, 조금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

과거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기 싫다.

욕심이라는 것은 안다, 짧든 길든 언젠간 행복은 끝난다.

최악 중 최악이었던 과거와 똑같은 모습으로 회귀를 하진 않을지언정, 이 시한부 같은 행복을또다시느낄 수는 없겠지.

그러니, 욕심을 내서라도 이 행복을 조금이나마 더 유지하고 싶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 행복이 끝난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다.

이미 죽었어야 할 시기를 한참이나 넘어섰다.

지금은 덤으로 사는 에필로그 아닌가.

내 통장에,600만 원이라는내 수명은.

진즉에 끝났어야 했다.

아무도 없는 방송에,간간이한두 명만감사하게도 봐주는 방송에.

수명은 빠른 속도로 줄어가며, 주인님도 없이 쓸쓸히, 나는 죽었어야 했다.

다만, 다른 누구도 아닌 과거의 내가 이어낸 인연이 나를 살려냈다.

행복하게 만들었다, 해서 살고 싶게 만들었다.

살아온 모든 날보다 최근 몇 개월이 행복의 총량이 압도적이었다.

이미 죽었어야 할 목숨을 이어놓았으니, 이 삶은 에필로그라 불리기 적당했다.

“너무빠져들었나 봐...”

행복이라는 것에 너무 깊게 중독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쁘진 않지만, 그에비례 되어불안감도 생겼다.

처음 느껴보는 것이기에 어떤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것이기에 어떤 말을 해야 좋은 것인지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혼란스럽다.

하지만 좋았다.

그리고 불안했다.

요즘 내가 품고 있는 감정은 하여, 혼란스러웠다.

행복해서 좋았고, 행복해서 불안했다.

내가 실수하면 날 싫어하실 거야, 호의를 거둬 가실 거야.

불안함은 오늘로 증폭되었다.

내가 잊은생일조차챙겨주는 지인들이었지만,이 정도호의를 받은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이미 잘못했다면, 이미 나에게 실망했다면?

오늘 내가 무슨이야길 했었지? 오늘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지?

오늘의 나는 사람들이 보기에 좋았을까.

만족스러웠을까?

모르겠다.

몰라서 불안하다.

에필로그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나도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지금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중독되어버렸는걸.

행복함이 없이는더는살아갈 수 없고, 살아갈 이유도없는걸.

그리고 그 행복함을 지킬 방법을모르겠다는 걸.

무지는 죄가 아니라곤 하지만, 무지는 사람들 피곤하게 만들었다.

누군가 답을 알려줄 순 없는 걸까.

입술을 씹었다.더는생각하지 말자.

몸이 떨려오고 있지 않은가.

네모미님이주신 인형을 끌어안았다.

보들보들한촉감이 굉장히 기분 좋아 조금이나마 마음은 안정시켰다.

그러고 보니...

나는 시선을 내려 손톱을 바라봤다.

이젠꽤길어져서 손톱이 살 밖으로 나왔다.

동전을 주울 때더는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

예전엔 불안감을 표현할 땐 손톱을 물어뜯곤 했었는데.

“...헤헤”

무언가 달라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무언가 많이 바뀐 것이다.

내가 알아차렸을 땐, 나는 예전과 이미 너무나 바뀐 것이었다.

이미 바뀐 끝에 이런 고민을 하는 꼴이라니.

우습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인형을 조금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푹신하다, 냄새는 완전히새것이라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미 내 모습을받아들여 줬구나.

내가 변하든 변하지 않았든 나를좋아해 주는구나.

내가 생각했던고민이, 두려움이, 조금은 녹아내렸다.

나 혼자만 모르고있었던 것이다.

“깨달았을 땐이미늦은 거라고하더니...”

그말이틀린 것 같지 않았다.

쓸데없이 무거워진 마음이 한결 편해져서 혼자서 바보같이헤실거렸다.

“방송...방송해야지...”

머리를 긁적였다.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 말렸음에도아람님이랑가람님이해주셨다.

남은 음식은 없었다, 그야 맛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치울 것이 없다는 소리였다.

바로방송을 켜면된다.

“...으음.”

컴퓨터 뒤에빼곡히붙어있는 메모장들을 바라봤다.

서예님에겐떼버린다고 말하긴했지만...

천천히 읽어내렸다.

나를좋아해 주는사람들의 이름,닉네임.

많았다, 다 읽는데 숨이찰 정도로.

“조금만 더,냅두자...”

보는 것만으로힘이 되는이름과닉네임들이었다.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과한 것 같았지만,사랑이라고밖에표현할 수 없었다.

고민하던 것이 해결되었다면 더 망설일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나는 거침없이방송을 켰고, 오랜만에 갈아입은토끼 후드티를뽐내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랑해요...!”

­????

­리하!

­돈필요해?

­후원하라는거같은데

­ㄹㅇㅋㅋ

“우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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