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6화 〉 방송 열 한달째(3) (126/143)

〈 126화 〉 방송 열 한달째(3)

* * *

결국 갈아입긴 했다.

이게 근본이라니, 도대체 어는 누가토끼 귀달린 후드티를 근본으로 생각한단 말인가­ 라며 따지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나많은 사람이외치고 있었다.

­편­안

­역시 근본은다르지ㅋㅋㅋㅋㅋ

­토끼 후드가가장 잘어울린다ㄹㅇ

“치,칭찬이죠...?”

칭찬이라 하더라도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17살이토끼 귀후드티 입는 걸어울린다고 말하는것이 과연 칭찬일까.

“우으으...”

자괴감이 들었다.

­사실 저번 코스프레도 괜찮긴 했는데 토끼가 너무씹사기라ㅋㅋㅋㅋ

­ㄹㅇㅋㅋ

­토끼후드보다못한 걸 가져오면 당연히미적지근하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해요... 여러분들은토끼 후드가제일좋은 거예요?”

­ㅇㅇ

­ㅇㅇ

­ㅇㅇㅇㅇㅇㅇㅇ

살짝 질렸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도 사실토끼 후드입고 있을 때가 가장 편안했다.

가장 많이 입은 옷이라서 그런 걸까,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는데 이젠 애정 옷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입는 옷에 비중이 있다면 잠옷이 30% 평상복이 20% 토끼 후드티가50% 쯤되지 않을까.

그 정도였다.

일단,방송을 켜면기본 디폴트니까.

“하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건 있을 거아니에요...비키니제외!”

­동물잠옷

­오 그건 어울리겠네

­상어파자마같은거

“여러분들, 그, 뭐라고 해야 하지, 저를 너무 어리게 보는 거아니에요...?”

내가 비록 지금토끼 후드티를입고있다고 한들, 17살이면 성인까지 얼마 남지 않은 나이.

그렇다면 나 또한 성인으로 봐야 타당하지 않은가.

그런데 동물 잠옷이라니, 핸드폰으로 검색해보자 정말로 귀엽고 깜찍한,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해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들은 잔뜩 튀어나왔다.

그래, 최대한 양보해서 내가 중학생 때만 해도입어볼 법한옷들.

하지만,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고 저런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후드티에 달려있던토끼 귀가움직였다.

“안 어울릴 거같은데...”

안 어울릴 것 같은 것이 아니라 분명 안 어울린다.

아니, 안 어울려야만 한다.

나도 이제 어른이었다.

정확히는 어른은 아니되, 곧 어른이 된다.

볼을 부풀리며 툴툴거려봤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귀엽다는 둥,어울릴 거라는둥.

“그러면, 제가 다음에 입고 올 테니까 확실히 봐요! 절대 안 어울릴 거니까!”

조금 욱했을지도 모른다, 지속적인 어린 애 취급에, 조금은 짜증을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조금은 어른 취급을 받고싶은 걸 어쩌겠는가.

방송의 위기도 위기지만, 내가 너무 어린 애 취급을 받는 것 또한 위기였다.

시청자들이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거의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을 대하는 것 같지 않은가.

물론, 비키니를 입어달라며떼를 쓰긴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를 놀리기 위해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내가 진짜로 입는다고 하면 그누구 보다 나서서말릴 사람들이었다.

내시청자들이었으므로잘 알고 있었다.

내 선언에 채팅창이 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며 나를 비웃었지만, 나는 입술을 물어뜯으며 다짐할 뿐이었다.

무슨 동물 잠옷을 원한다고 했었는지 분명히 기억해뒀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상어와토끼 잠옷.

아마 내가 평소처럼 한번툴툴거리고만것으로 생각하는듯한데,한 번쯤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나도 할 때는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진짜, 진짜 두고봐요...”

­네에네에

­기대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시청자들을 정말로 좋아하는데, 가끔 시청자들이 엄청나게 얄미울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상어 잠옷을주문했다.

이틀 후도착 예정, 예정에 없던 소비였지만, 유튜브가 흥하고, 꾸준한 후원도 받는 요즘, 전혀 무리 없는 가격이었다.

“저를 이제부터 월 육백오너라고해주세요.”

물론,이 중에서200은서예님그리고 또 200인예빈이의월급으로지출되고 있으므로, 나에게 남는 것 또한 200이었지만,총 합산금액은 600이 맞았다.

거기서 후원으로 받는 금액은 온전히 내 몫이니까.

정확히 하자면 200+@.

이 정도면많이 버는 것 아닌가.

배를 살짝 내밀고 우쭐­ 거리는 표정을지어 보였다.

­?????????

­이렇게수익금을 깐다고???

­그걸왜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

단순히 나잘살고 있다는것을 말한 건데, 시청자 반응은물음표투성이였다.

“다, 다른 분들도 다 영상에서까던데...?”

딱히 이상한 건 아니지 않은가.

내가 혹시 무언가 잘못한 걸까, 눈치를 보며우물쭈물하고있자 시청자들이 잘못한 것은 아니라며웃어 보였다.

­아니 그냥 너무망설임 없이까서그렇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스트리머는 수익 까는 거싫어하니까ㅇㅇ

­근데나같아도내월급까라고하면 좀 그렇긴해...

­얼마 버는데.

­백수야!

­그래...고마워...

“어, 어쨌든 저는 이렇게나 많이 벌어요!”

그러니까걱정하지 마세요!

아까 내가동물 잠옷을사자 대신 사주겠다는 채팅이 올라온 것을 봤다.

아마도 내가 예전처럼가난하다고 생각하셔서한 말인 듯싶어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인데, 아무래도 조금 이상한 상황인 듯했다.

“헤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면 그저 웃는 것이 최고였다.

헤실헤실한 미소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설마 수익을 밝혔다고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렇게 방송이 끝난 후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졌다.

큰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 수익에 놀란 사람들의 반응이 쏟아져나왔을 뿐이니까.

가령 ‘리에라얘 돈ㅈㄴ버네’게시글의 경우 질투로 욕설을 내뱉었지만, 게시글 끝에 ‘시발행복해라...’라며나름대로 나를 응원해주고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시발데레일까.

그런 글이 수십 개, 수백 개가 쏟아져 나왔다.

과거 10만 구독자만 보유해도 월천만 원을번다는 헛소문이 돌았지만, 그런 소문들이 대부분 사라진 시기.

월 600이라는 단어는 분명많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지인들을 만나기 전, 내 통장에 있던 돈이600만 원이라는것을 생각하면 미묘하게들어맞네...

마우스휠을 드르륵 내리자다시 한번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게시글들.

신기하게도 다들 나를 욕하는 듯싶었지만, 전부 게시글 뒤에행복하라며덕담 한마디씩 던져주신다.

욕을 먹으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내가 이상한 걸까.

그땐 내 수명이었던 600이 그저 한 달 수익이 되어버린 지금 상황이 기분이 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기부나 해볼까?”

예전에100만 원을기부했던 것을 떠올렸다.

내 이미지 좋아지자고 불쌍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 같아 꺼려졌지만, 그땐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예전에이용해 먹은것을 사과도 할 겸, 이번엔 익명으로, 조금많이...

“응, 하자.”

스스로에게내뱉은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상황이 이렇게흘러온 건지잘이해는 안 됐지만모든 일은 생각났을 때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어른보단 아이들이불쌍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았던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슬픈지, 가족이 등을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워 서로를 공격하고 상처 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다.

어린이재단이라는 곳에 들어가기부 탭을눌렀다.

그리고 금액을 잠시 생각하다 키를 눌렀다.

탁탁탁­ 한번 누를때마다키보드가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한번 누를때마다심장이 뛴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조금 더 고민해보고, 조금만 금액을 더 낮춰도 되는 거 아닐까?

어차피 알려지지 않을 일이었다.

그저 내 마음편해지자고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거액을 써야 한다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안다면 시청자 중 분명 실망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말자며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내고는 엔터키를 꾹­ 눌렀다.

14,196,463원.

내 통장에 들어있던 전부를 보냈다.

계획을 하고 보낸 것이 아니라 식비고 생활비고 하나도 남지 않았다.

솔직히 아깝기도 했다.

금액이 금액이지 않은가.

만약누군가가 나를본다면 지금 내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남들의 손에 구원받아 행복해졌는데, 그깟돈 쓰는걸 아까워한다면서 말이다.

나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런 생각을 품은 것 자체가 불순했다.

스스로가 한심해지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은어째서일까.

심장이 벌렁거린다, 숨이 가빠진다.

내 수명의 2배를 훌쩍뛰어넘는금액이었다.

손이 떨린다.

그리고 뉴스로 간혹 보이는 기부단체의 만행이 걱정되었다.

과연 내 기부금이 제대로 전달될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생겨났다가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직후 생겨난 감정은 뿌듯함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함.

아깝다­ 라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뿌듯한 감정이 차올랐다.

방송위기에 코스프레를 했다가, 시청자들과 이상한 신경전을 벌이고 방송 종료 후,기부하는지금 꼴이 말도 안 된다.

거의 의식의 흐름이었다.

“그,무지성이라고하던가...?”

지금 나는 완전히무지성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식비와 생활비까지 전부 기부해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참을까.

과거나 같은아이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함을 넘어 충만한 만족감을 전해주는 것을.

벌러덩­ 침대에 드러누워 웃음을 삼켰다.

통장은 허전해졌지만, 그와 반비례로 마음은한가득하였다.

“어차피 살도빼야 하니까...”

그래, 살을 빼야 하니 식비는 따로 필요 없지 않은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주인님을 바라보고 눈웃음을 짓자, 주인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

나는 주인님에게츄르를주기 위해츄르통을잠시 뒤적거렸지만,츄르통이텅 비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통장에 남은 금액, 단 0원.

“주, 주인님 우리 같이살빼자...?”

주인님이하악질을하며 달려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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