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방송 열 한달째(5)
* * *
서예님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퀭하게 쓰러져 있는 것을 연락이 닿지 않아 직접 올라온서예님이발견한 것이다.
“...리에라님.”
“네에...”
서예님은단단히화가 난듯싶었다.
인상까지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변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 정신과한번 가요.”
“네...?”
정신과라는 소리에 몸이 굳었다.
정신과를 간다는 것이나쁘다라는인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그곳의 약물에 많은 의존을 했었고, 사람들의 인식 또한 과거와 달리 많이 유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갑자기 정신과라니.
내가 뻣뻣하게 굳어버리자서예님이내 어깨를 두드렸다.
“솔직히,리에라님정상이 아니에요.”
정상이 아니다. 그, 말이 아프게 다가왔다.
고개를 숙이고, 손을 움켜쥐었다.
그래, 그렇게 보일만 했다, 내가 생각해봐도 나는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래도 조금 울컥한 것은 어째서일까.
나도 알고 있지 않은가.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리에라님, 제가리에라님을정말좋아하는 거알잖아요.”
“네...”
서예님말에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어떻게 모르겠는가.
여러 호의를 전부 거두더라도 당장 내가사는이 집만 해도 그 정도를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래서 더욱 슬픈 것이었다.
나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조차 나를 비정상이라 칭한 것이니까.
물론, 비정상이라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이 말로서 나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제가리에라님을버리진 않아요, 그냥 정신과한 번만.”
“알겠어요...”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비정상이라 칭해진 순간부터.
정신과는다시 한번방문해야 했다.
그리고 또한,서예님이나를 싫어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걱정되어서 하신 말이겠지.
“갈게요... 내일바로...”
서예님은나를 조금 걱정스럽게 쳐다보다가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셨다.
그 손길은 무척이나 따듯했다.
“걱정하시지 마세요.”
무엇을 걱정하지말라는 걸까.
서예님은병원비와 식비로 쓰라며 카드를 하나 건네주고 나가셨다.
현관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실망하게 한것 같았다.
못난 모습을 보인 것 같았다.
다만, 할 일을 찾았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 나는 종합병원에 왔다.
약품 냄새와알코올냄새가 짙게 흘러나왔다.
주사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초조해서 양손을 움켜쥐고 떨리는 것을 참아냈다.
수십 분의대기 시간이 흘렀고.
내 차례가 다가왔다.
“백서연님, 들어오세요.”
간호사의 사무적인 말투에 잠시 움찔거렸지만, 심호흡을 내뱉고는 진료실로 들어섰다.
딱딱하고, 무척이나 사무적인 표정의 의사.
흰색 가운을입었으나, 내 눈에는 무척이나 검게 보였다.
“백서연님?”
“네...”
나는 조심스레 의자에 앉았다.
긴장감이 흘렀다.
의사는 나를 3초간 쳐다봤고,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본래라면 내가 들어서자마자 ‘요즘어때요‘부터들렸어야 정상이리라.
“손목 좀보여주시겠어요?”
“네...?”
멍청하게 되묻는 내 말에 의사는 대놓고 한숨을 쉬곤 이마를 짚었다.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인지 눈치를 보며 손목을 내밀었다.
일자로 그어진 흉터가 짙게 남아있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그렇게 수십 번 반복적으로 그어진 흔적.
내 과거의 고통.
의사는 잠시 내 손목을 바라보다가 컴퓨터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나가셔서 옆쪽으로들어가시면 돼요.”
내가 가만히 쳐다보자 의사는 쯧 혀를 찼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내가 과거,별생각없이 약만받아 가기위해 자해를 자행했던일 때문일까.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행동은납득할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기분 나쁘네요.”
“뭐요?”
“의사님, 행동이요.”
안경 너머로비치는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일까.
의사 또한뭔가 기분이 나쁜 것인지 인상을 찌푸리고는 나를 바라봤다.
“고칠 생각도 없이 약만 받자고들락거리는관심병은 피곤하죠.”
안 그래도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피곤한데 말이죠.
기가 차다, 의사라는 사람이 환자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해도 괜찮은 건가?
저지기 싫다는듯, 나와기 싸움을 하려는듯.
자신의 불편함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게다가, 뭐가 그렇게 피곤하단 말인가.
고작해야 30초도 상대해주지 않고서.
“그 말, 책임질 수 있겠어요?”
“예?”
“제가, 만만해 보였나요?”
한 발짝, 다가서자 의사가한 발짝물러났다.
으르렁거리듯, 올려보자 의사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사람 부를 수 있어요.”
“저는, 아무런 행동도안 했어요.”
코웃음을 쳤다.
내가 과거처럼 아무생각 안 하고 사는줄 아는가.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아무 말도안 할줄 알았던가.
“말조심해요, 그러다 정말로큰일 나니까.”
“...”
의사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그런 것 하나하나 봐주면서대해줄 수없었다.
아니, 대해주기 싫었다, 무례한 일을 당했다면, 내가 친절히행동해야 할이유 또한없지 않은가.
뒤도돌아보지않고 진료실을 나서서 옆을 바라보았다.
간호사들이 놀란 표정을지어 보였지만, 굳이 상대해주기 싫었다.
심리검사실, 그렇게쓰여있었다.
들어서자 후줄근한,라면 국물이묻은 것 같은 가운을 입은의사 선생님이앉아 계셨다.
조금 전, 의사와는 정반대.
아까의 의사는 깔끔하고도 깨끗한 가운을 입고 있었으며 누가 봐도, ‘나의사다‘를뽐내고 있었다.
반면 지금 이 의사는 무척이나피곤해 보였고, 눈 밑이 퀭했다.
의사 가운또한 많은 주름이 접혀있었고, 그냥 피곤한아저씨 같았다.
믿음은 가지 않았으나, 이상한 편안함을 지녔다.
“아,서연님맞으시죠?”
“아,네...!”
아저씨, 아니.
의사님의 말에 대답을 건네자 무언가 푸근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많이 밝아지셨네요?”
“...절보신 적있으세요?”
“예? 아,약 기운때문에 잘기억을 못 하시는구나, 이미 한번받아보신 적있으세요.”
“네에...?”
“종합 및 제언,검사 결과환자의 전체지능이 68의 경도지적장애 수준으로나타났다.”
나를 보고 시작한 말에, 나는 의아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경도지적장애라니, 누굴 말하는 걸까.
“환자의 언어 및 지식 자원을 비롯하여 제반 인지기능 상의 효율성이 저하되어 있어 실생활에서직면하는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대처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혹시 그거 제이야기인가요...?”
“아, 예전에 했던 테스트의 결과입니다, 더 말해드릴까요?”
“어...”
내가대답을 못 하자의사가 말을 이어나갔다.
“환자는 과거 기억 대부분이 부정적이고 상처가 되는 기억으로남아있으며, 반복된좌절 경험과관련하여 정서적으로 어려움이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스로에 대한부적절 감과함께 주관적 우울감이 현저하며, 사회적 불편감이 커 다양한 장면에서 적응적으로기능하는 데 어려움이 있겠다.”
“우와... 혹시보고하시는 거예요?”
내 정보가 저장되어 있나?
하지만 모니터를 보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내 의문에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
“심각한 환자님들의 정보는 거의 외우고 있습니다, 도움이 절실하신 분들이니까요,”
저 말이 울컥한 것은 어째서일까.
아까 그 의사와는천지 차이아닌가.
의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끝 맞췄다.
“더불어 주변 지지체계가 빈약하고, 스트레스 대처 능력이 부족하며, 자살사고가 빈번한 것으로여겨지는바, 환자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치료적 개입과 함께 주변에서의 안정된 지지와 세심한 관심이 요구된다, 끝.”
“세상에...”
“그런데, 지금 표정만 봐도 되게 밝네요, 짜증이 드러났지만 그건뭐...”
말끝을 흐렸지만, 그 말이 누굴 뜻하는지는 나도 의사도 잘 알고 있었다.
“원래그런 분인가요.”
“흠흠, 어쨌든,심리 검사하러오신 거죠?”
말을 돌렸지만,절대 좋지 않은감정이 깃들어있는 듯싶었다.
“네에...”
그럼 바로시작해볼게요, 라며 의사는 서랍에서 삼각형블록과, 문제지를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펜과 백지까지.
“하나하나 해보죠.”
“네...!”
“그럼 이거부터 해볼게요.”
의사는 푸근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이야기를 건넸고,나 또한그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심리검사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3일 뒤, 나왔다.
“예전보다 월등히좋아지셨네요, 아이큐는 99.”
“아앗...세자릿수가...”
“하하...”
의사는 푸근한 얼굴로 어색하게 볼을 긁적였다.
그 모습에절로 나오는 한숨.
내가떼를 쓴다고아이큐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니 괴롭히지 말자.
“다만, 불안감은계속 품고계시네요.”
의사의 말에, 몸이 굳었다.
나는 의사를 쳐다봤고, 의사 또한 나와 눈을 마주했다.
“어떤 게그렇게 불안하세요?”
실례가 안 된다면 한번 들려주실래요?
의사의 말에, 머릿속에 맴돌았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