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방송 열 한달째(6)
* * *
의사의 말에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불안하다고, 내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확신한듯 한 모양새에무언가 약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몸을 움츠렸다.
그래서, 그 말이틀렸냐하면그런 것 또한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내 상황을 콕 집은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더욱 머뭇거렸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방금 전의의사가 환자에 관심이 없어 약만 쥐여 주고 돌려보냈다면.
이 의사는 환자에 대해 깊은 관심을지니고 있는것 같았다.
믿어도 되는 걸까?
의사란직업 자체에불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것은나에 대한불안감이었다.
입을 열었을 때, 어떤 말이 나올지 잘 모르겠다.
내가 지닌 불안감이, 어떠한 형태를 취할지, 어떤 촉감으로 흘러나올지.
혹여나, 이상한 말이라도 하지 않을까.
의사는 내 눈을 바라봤다, 재촉하지 않았고 차분히 나를 기다려줬다.
머뭇거린다고짜증 내지도않았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주변을 바라봤다.
새하얀 벽, 창문을 가린 블라인드, 그리고 그 너머로 들려오는 투두둑 빗방울이 튕기는 소리.
그리고 겉이 살짝 까진 책상, 옆에 놓인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구동음.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10초? 1분? 3분?
입술을 질겅거렸다.
의사가 작은 냉장고에서 생수를하나 꺼내줬고, 나는 그것을 멀뚱히 바라보다 받아들었다.
차가웠다.
“천천히하셔도 돼요.”
“네...”
천천히라는말이, 왜 이렇게 안심이 될까.
별것도 아닌 말인데.
“그냥 뭐라고말해야 할지모르겠어요.”
첫말을 떼자, 두 번째 말이 쉽게 이어졌다.
그리고 세 번째말은 더 쉬우리라.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되는 건지...”
이미 지났고, 나는 행복해질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단정 지었다한들.
마음속 깊은 곳에선늘상그런 마음이 남아있었다.
잠이 들 때면 간혹, 내가단정 지은말에 ‘정말?’이라며 의문을 띄운다.
그리고 그 의문에 나는 늘 입을 다물었다.
답답할 수도있겠으나,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1년도 안 되는 시간, 많은 사랑을 받으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으음...”
의사는 펜을 들고는 종이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모래알 같아요.”
“모래알이요?”
의사의 물음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래알이라고밖에마땅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지금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한 움큼의 모래를 쥔 모습 같았다.
손을 모아 모래를 소중히 들고 있는 모습 같았다.
손에 틈이 생기면 순식간에 떨어져 내릴 모래.
내가 이 모래를 얼마나 오래도록 들고 있을 수 있을까.
불안감, 초조함, 두려움.
온갖 감정이 뭉쳐서 굳어버렸다.
상처가 난 위에 쌓인 딱지와 같았다.
예전부터 방치한 상처에서, 피와 고름이 흘렀다.
흉측한 모습이었다, 그 위에 덧칠하듯 행복을 펴 발랐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너무 무서웠다.
딱지가 떨어지진 않을까.
피와 고름이 딱지 틈으로 흘러나오지 않을까.
물론, 나는 많은 힘을 받고 있었다.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나를 보듬어주는 사람이 많았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다는 생각이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내 생각, 내가 품고 있던 마음을 꺼내놓았다.
알몸이 된 기분이었다, 부끄럽고, 무서우면서, 조금은 시원했다.
의사는 나를 바라보며, 펜을 내려놓았다.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본 적은 있나요?”
“아무도요.”
저번 내 과거를이야기했던것은 말 그대로 내가 당한 것, 내가 살아온 것에 대해 말했던 것이었지, 한 번도 속마음을 내뱉은 적은 없었다.
“왜모래알 같다고생각하세요?”
질문이었다, 아주 원론적인 질문.
어째서모래알 같냐생각하냐니,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그런 것이 있을까.
보통 무언가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는 이유가 딱히 필요치 않았다.
나에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냐고 하면 막상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생각해보지 않은 것에, 당장 뜻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보단 그저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게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생각하는 의미를 따져보자면 과거로부터 이어진 트라우마 때문 아닐까.
낯선 것이다.
이런 상황이.
이런 행복이.
나는 손에 쥔 다 마신 물병을 찌그러트렸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내가 방송을 하여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고, 착하게 살아 지인들을 만족시키고,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서 이 관계를 최대한 끌어나가야 할까.
나도 알고 있었다.
모든 관계에는 유통기한 같은 것이 있다는 걸.
모든 관계는 결국 끝이 있었다.
짧고, 긴 것의 편차는 있겠으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여, 지금 내 고민과 혼란스러움은 전혀 쓸모없는 생각일 수도 있다.
어차피 언젠간 끝날 관계니까.
그것을 지키고자, 발악하는 내가추해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중독되었는데 이걸 어떻게 포기한단 말인가.
입술을 질겅거리자 비릿한 맛과 향이 흘렀다.
피가새어 나온것이었다.
“아, 이거 받으세요.”
“고,고마워요...”
건네받은 물티슈로 입술을 닦아내자 붉은 것이번져 나왔다.
살짝 따가웠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면...”
의사의 말이 이어졌다.
듣기 좋은 말을 나불거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결책을 건네준 것 또한 아니었다.
다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20분이 넘는시간 동안나와 이야기를 끝낸 의사는 웃으며종이 하나를건네줬다.
끝날 때가 되어가니 진단서인가 싶어 받아봤지만, 백지였다.
“에...?”
“사인 좀부탁드릴게요, 제 아들이리에라님을정말 좋아하거든요.”
“에엑...”
...
“에엑...!”
조금 뒤늦은 반응이따라 올라왔다.
내가 방송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건가?
아니, 그 전에 아들이라니? 그리고 사인이라니?
종이를 받아들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삐뚤거리는 글씨로 백서연♡를써줬다.
그려줬다고 하는 편이 더 올바를려나?
하트는 사실 안 써줬어도 됐지만, 주변 사람들의 사인은 무언가 그림 같은 것이 포함되어있어 한번따라 해보았다.
일반적사인이라기보단, 팬서비스에 가까운 사인.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상상 이상으로부끄럽네요... 사인이라는 거...”
사인을 끝내고 기죽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자 의사가꽤호탕하게웃어 보였다.
“아들놈이 정말 좋아하겠네요.”
“근데 제가리에라라는걸어떻게 아셨어요?”
“뭐, 뉴스에도 나오기도 했고, 아들이온종일틀어놓고 있는영상이다 보니...”
언제쯤 철이 들려 는 지, 한숨을 푹 내쉬는 의사의 말에 어색하게웃어 보였다.
“리에라님, 아니지, 내 정신 좀 봐.”
“네...?”
“백서연님, 보통 사람은 상황이 급변하면 일반적으로적응을 못 하죠.”
“...그렇더라고요.”
“이게 의사로서 할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방송하는 거행복해 보이더라고요,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많고.”
“네 엄청, 엄청 행복해요.”
헤실거리며웃어 보이자, 의사는 입꼬릴 올린 채 내 사인이 된 종이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의사로서가 아닌, 시청자 아들을 둔 아비로서 하는 말이에요.”
“...고마워요!”
“약은, 따로 필요하진 않을 거 같네요, 혹시 무언가 더이야기하게 남았나요?”
“어...아들...?시청자님...?”
“그냥 걔라고불러도 돼요.”
“아, 아니.그으, 고맙다고전해주세요... 제방송을 봐줘서.”
“하하, 알겠어요, 아 맞다.”
나가려문손잡이를내리던 내 등 뒤로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빼먹은 게 있나?
“상어 잠옷기대할게요.”
“으읏...!”
나는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아들의 방송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저렇게 잘 알 수 있는 건가?!
설마 내 방송을 보는 시청자는 아니겠지.
설마, 설마. 아들의 요청이란 건 거짓말이고 저 사인은 의사가 가지는 건 아니겠지.
“히익...”
끔찍한 상상은 그만두자.
정신과에 와서 정신병만 얻어갈 것 같았다.
나는 열심히 뛰어 집에 도착해 숨을 몰아쉬었다.
다신 그병원 안 갈것이다.
다짐했다, 차라리 죽었으면죽었지 얼굴을볼때마다생각날 것 같았다.
“으으으...!”
침대에 몸을 던지고 발을 동동 구리자, 주인님이 쟨 또뭐 하는거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봐온다.
하지만 그 시선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의사의 말이 귓가에맴돌 뿐.
“으으!잠옷... 상어잠옷...”
베개에 파묻은 얼굴을 들어 힐끗 현관 쪽에 놓인택배박스를바라봤다.
그래, 입긴 해야지.
한숨을 푹 쉬고는 다가가택배 상자를까보았다.
파란색, 보들보들한 촉감의 옷.
이렇게만 보면 감이 잡히지 않아 입어보기로 결정.
나는 옷을 꺼내갈아입어 보았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절대 안 어울려.”
이런 게 어울릴 리가 없지 않은가.
붉어진 얼굴을 손부채질로 식히고는 의자에 앉아 방송을 시작했다.
“리하! 자,봐요 안 어울리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하
개귀엽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ㅋㅋ
그거 입은 채로 아기 상어노래ㄱㄱ
그날, 채팅창은 폭발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