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방송 열 한달째(8)
* * *
링피트가도착했다.
생각보다 크다.
절대로 내가 작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링피트자체가 컸다.
잠시 내려보다링피트를들어 올려보았다.
마치 자동차의 핸들을 잡은 듯한 모습.
“...이걸로 운동이 되긴하는 걸까?”
순수한 의문이었다.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라고, 방송에서링피트를한사람치고멀쩡한 꼴을 보인 사람이 없었다.
그많은 사람이전부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 엄청나게어려운 거겠지.
몸을 잘게 떨었다.
거창하게 말해서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운동 시간 말이다.
“주인님 내가 잘할 수있을까....?”
애옹 대답하는 주인님을 빤히 바라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자며 주섬주섬 옷장을 뒤적거리곤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무래도토끼 후드는운동용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선택한 복장은 평범한 티셔츠에돌핀 팬츠.
“이정도면그냥팬티...아닌가...?”
허벅지가 다 드러나지 않았나.
하지만,네모미님도아람님도,주변 사람들전부 평소에 입고 있으니 평범한 옷이겠지.
내가 너무 꼰대 같은마인드를지닌걸까,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도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스트레칭...”
스트레칭을 하자, 운동 중에 다치면 안 되니까, 몸풀기가 필요하겠지.
잠시 허리를 비틀자 오독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통보단 시원함이 컸지만, 정상적인 몸에서날 만한소리가 아니었다.
“으아... 심각하긴한가...?”
허리를 두드리며 기지개를 피자 이번에는등 쪽에서들려오는우득 소리.
이 역시 아프진 않았지만 무안해져서 턱을 긁적였다.
생각해보면 제대로운동해 보는게얼마 만일까.
최윤아님과했던 운동은 운동이라 보긴 어려웠다.
그저 단순한 괴롭힘 아니었나.
어깨를 으쓱이고는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어두운 구름이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햇빛을 가렸다.
“요즘 비가엄청 오네...”
갑작스럽지만 과거, 베란다에서 비를 맞으면 잠을 잤던 기억이 떠올라버렸다.
“으,기분 나빠.”
우중충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이제발목을 붙잡지 않았다.
이미 전부 끝난 일 아닌가.
지금 내가 바라고, 원하고, 걱정하는 것은 그따위 과거가 아니라 현재였다.
어떻게 해야 방송을 더 재밌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더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그런 것 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이미 내렸다.
“답이없어...”
내가 재밌기를 한가, 아니면 매력이 있기나 한가.
전부 애매했다.
답이 없다, 그것을 받아들였다.
내가 무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조금은 흐릿했던 시야가 밝아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 무의미한 저항 따윈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이말이 노력하지않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조금, 느긋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뜻.
지금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전무했다,
아무것도 모를 때야 불안하면서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의욕도 두려움도 넘쳤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일주일간 많은 생각을 거듭해서 내린 결론이었고, 이 결론은꽤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그리고 기회가 닿으면 반드시 잡아서 이 상황을 해결해야겠지.
결심이 끝났다.
지금 당장은 포기하기로했으므로 행동할것은 없었다.
다만, 방송에 집중하자.
방송 중에계속 신경이 다른데 쓰인다면 시청자들은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시청자들의 감은 예리했다.
“주인님 일단 밖에 나가있어 줘...”
주인님을 끙끙거리며 들어 거실에 내놓고는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주인님이운동하는 데 방해가될 것 같았다.
애옹 거리면서 방문을 벅벅 긁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애써 모르는척하고방송 시작.
땀을 흘릴 것에 대비해 수건까지 챙겨뒀다.
“리,리하!”
ㄹㅎ
진짜하네
링피트방송on
방제뭐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하
“바,방제...”
결전의 날.
방송 제목이었다.
인생 첫 운동까지는 아니겠지만, 손꼽을 만한 일이었다.
“네...! 결전의날이에요...!”
운동하나 하는데결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름대로파이팅자세까지취해봤지만, 시청자들은 조롱할 뿐이었다.
얼마나 큰,아니...
적당한 각오를 했는데, 이렇게 조롱당하면 기분이 조금 별로였다.
“군말 없이 바로 시작할게요!”
나는링피트를번쩍 들어 올리고 각오를 다졌다.
오늘에 목표가 있다면 첫 번째 보스를 격파하는 것으로 하자.
일주일간 노력하지 않았는가.
이제 팔굽혀펴기는 2개나 가능했고, 윗몸일으키기는 11개나 할 수 있었다.
두려움이 컸지만, 그렇다고 자신감이 낮은 것은 아니었다.
찾아보니까 입문자용은 아이들도 할 수 있을 정도라 하지 않았던가.
첫 번째보스격파할 수없다에5만 원함
띠링 하고미션이하나 걸렸다.
첫 번째 보스 격파 시5만 원.
“...돈을 허공에 버리는 짓은하지마요!”
안전자산인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ㅋㅋㅋ
“그러다 돈 잃어도 몰라요?안 돌려줄 거예요?진짜라고요?”
3번이나 경고했지만, 시청자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고, 이내5만 원이던미션금액은점점 살을 불려가기 시작했다.
5만 원에서10만 원으로,10만 원에서30만 원으로.
그리고 마지막,30만 원에서100만 원으로.
“...그으, 막 분위기에 휩쓸려서미션금올리신 분계신가요?”
이건미션을 클리어하고받아도 탈이날 것 같은금액 아닌가.
“지, 지금이라도취소하세요...!”
내가 성공하려면 진짜 어쩌려고 이런 큰 금액을 제시한단 말인가.
솔직히 성공하면좋겠다ㅇㅇ
ㄹㅇ솔직히리에라학교앞에서파는 병아리보다힘없어 보임
요즘은안팜
어쨌든 성공해서돈좀가져가라 진짜
“벼,병아리급은아니에요...정말로...아마도...”
설마 병아리와 비교될 줄은몰랐는데...
어쨌든 시청자들이 단순히 분위기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한 금액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매일같이 놀리지만, 그 누구보다 나를 걱정해주는사람들다웠다.
“그, 그러면시작할게요...”
조금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붉히고는링피트를시작.
양손으로링콘이라는것을잡아당겼다.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갔지만, 못 당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금방이었다.
“히엑...!”
그리고 그것이 지옥의 시작.
입문난이도로 고작해야 10분, 나는 뛰고 있었다, 제자리 뛰기, 아무리나라고 해도‘뛰기’까지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뛰는 것에 운동동작이 추가되고쉬는타이밍을 안 준다면어떻게 될까.
그 결과가 지금의 나였다.
“흐엣...흐에...후엑...!”
신음소리괴상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꼴리지...않아...
저건 진짜숨넘어가는거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을게아닌거같은데, 얼굴 보랏빛임;
죽지마리에라!
“아, 아, 안,안죽,헤엑, 어,요...후엑...!”
말을 이어나가기 어려웠다, 말 이전에 헛구역질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우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운동이라기보단 고문에 가깝지 않은가!
시간을 바라보니 시작하고10분 정도밖에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다고?
링피트를2시간, 3시간씩 방송하는 사람들은 전부 인간이아니었던 건아닐까.
합당한 의문을 품어봤지만, 의문은이제이어지지 못했다.
그야, 힘들었으니까.
“흐에엑...!”
진짜죽는 거아님;;;?
숨셔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괜찮은건가;
시청자들이 걱정해주고 있지 않은가.
보통여캠이링피트를한다면신음과살덩이가 움직이는 걸로 ‘ ㅜㅑ’같은 채팅이 올라왔어야 했지만, 내 채팅방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끄엑...!”
보스에 도달했다, 공격했고, 실패했다.
100만 원이허공에 날아갔지만, 그보단 숨쉬기가 정말로 힘들었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눈물을 글썽이며 침대에 엎어지자, 후원 따위가 터지기 시작했다.
[님프님이 10,000원 후원!]
졌잘싸
“자,허억... 자,잘싸,웠....나요...?”
진짜 졌지만잘싸웠다ㅋㅋㅋㅋ
솔직히 3분정도 부터숨헐떡이는거보고 금방때려칠줄알았는데ㅋㅋㅋㅋㅋ
이정도면리에라치고선방한거지ㅇㅇㅇ
“후에... 잠깐휴식이에요...”
숨을 가다듬었다, 폐를 누군가 걸레 짜듯이 짜버리면 이와 비슷한 고통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말로서는 나오지 않았다.
혀를 빼내서 열을 식히며,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보스전까지 갔는데 이렇게 좌절되는 것은 너무 아쉽지 않은가.
게다가 가능성이 보였다.
분명 조금만 더 했으면 잡을 수 있었다.
가능성이 보이는데, 포기를 하는 것은 미련하지 않은가.
다리가 후들거린다.
하지만 가능성을 본 이상, 이렇게 쓰러질수만은없지 않은가.
링피트를잡고, 스트레칭을 하며 일어나려는 순간.
우득
“에...”
불길한 소리와 함께 그 자리 그대로 엎어졌다.
철퍼덕
허리와 얼굴에서 싸한 통증이 올라와 전신을 휘감았다.
"흐으으으..."
아까부터 흐르는 게, 고통으로 인한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뭐가 됐던 얼굴을 보이고 싶진 않아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뒤, 웅얼거렸다.
“...오늘은 눕방할게요...”
부끄러워서, 아파서 죽을 것만 같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