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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화 〉 방송 열 두 달째(1) (133/143)

 


〈 133화 〉 방송 열 두 달째(1)






* * *






“형님 이 새끼 웃는데요?”


“냅둬, 좋은 꿈이라도 꾸나 보지.”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촉감이 무거웠다.


비가 온 직후, 무거워진 것과 닮아 있었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밤인 걸까, 아니면 어딘가에 갇힌 걸까.


눈을 크게 떠보려 했으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기이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이상하리만큼 침착했다.


만약, 갇힌 거라면 나를 가둔 사람은 누굴까.


그리고 저 목소리의 주인은 누굴까.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다만, 어딘가 낯익은 목소리.


목소리는 재차 울리지 않았다.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 내가 웃는다고.


의미 모를 말을 내던지곤 홀연히 사라진 목소리.


잘 모르겠다, 그보다 나는 왜 움직일 수 없는 거지?


이렇게 의식이 또렷한데, 왜?


무언가 몸을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언가 배 위가 묵직한...


“끄응...”


시야가 밝아진다, 조금씩, 조금씩­


눈을 뜬 곳은 방안이었다, 주인님이 내 배 위에서 색­색­ 거리며 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조금 전 느꼈던 묵직한 감각과 같았다.


그러면 방금 느꼈던 목소리는?


의아함을 품고 옆을 바라보자 가람님이 무언가를 보며 읽고 있었다.


“...뭐하세요?”


“네가 손님 모아놓고 자는 꼴이 마음에 안 들어서 저주...?”


“...어?”


“어는 무슨.”


가람님의 말에 주인님을 아이스크림처럼 푹 떠서 옆에 옮기고는 눈을 비비며 주변을 살폈다.


아람님과 네모미님이 가위바위보를 하며 딱밤 맞기를 하는 진귀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어...죄, 죄송합니다...!”


“아니, 뭐. 그런 말을 듣자고 한 건 아니고.”


가람님은 내가 진지하게 받아들이자 머쓱해 하는 모습이었지만, 이건 정말로 실례되는 행동이었다.


집에 지인들을 초대해두고 본인은 잠이 들다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꾸벅꾸벅 조는 꼴을 보이자 조금만 자고 일어나라고, 깨워준다고 이야기했었지.


“으으으...”


스스로 머리를 쥐어 먹자 깡­ 빈 깡통을 때리는 듯, 텅 빈 소리가 울렸다.


“아, 아니 너무 자책하지 마 우리가 자라고 한 거니까.”


네모미님이 당황하여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아람님은 가람님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무언가 혼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착각일까.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한숨을 내쉬자 네모미님이 아예 내 뒤로 와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자자, 착하지?”


“...강아지 아니에요...”


턱 아래를 살살 긁는 손길이 기분이 좋아 눈이 감기면서도 무언가 애완견 취급 같아 미묘하다.


“그나저나 그래서 일주년 때 뭐 할 만한 거 생각났어?”


네모미님의 말에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번에 지인들을 모은 것에는 이제 개월 수론 12개월, 그러니까 일주년이 되었기 때문이고.


일수로 따져도 며칠 남지 않아 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일단은 네모미님을 제외하면 몇 년씩 방송을 한 사람들 아닌가.


아람님은 3년이고 가람님이 4년이었던가?


네모미님도 이제 2주년 차에 접어들고 있으니까 뭐가 됐던 나보단 이 상황을 타개할 능력이 있음이 입증된 사람들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베테랑 방송인들.


작은 사건 사고는 조금 있었지만, 큰 사건 사고는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가는 사람들.


나도 어제 자로 구독자 20만을 찍긴 했으나, 이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었다.


네모미님 86만, 아람님 81만에 가람님 92만.


참고로 네모미님의 유튜브는 노랑 딱지 천지라 수익이 나오진 않았으나 팬서비스 같은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제가 신었던 스타킹을 추첨으로 보내줄 수도 없고...”


네모미님 1주년 때 이벤트였다.


“그렇다고 노래를 부르기엔 너무 음치라...”


아람님의 2주년 때 이벤트였다.


“시참을 해볼까 했지만, 그건 또 너무 대충인 거 같고...”


가람님의 시선을 피했다.


“아 내가 너무 건성이었다?”


가람님이 내 볼을 꾹꾹 찔러왔다.


아프진 않았으나 찌르는 힘에 조금씩 조금씩 뒤로 밀려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아, 아니 그, 그런 게 아니라...”


“근데 사실 맞아 그때 나도 일주년인 걸 몰랐거든.”


“네...?”


“그냥 평소처럼 방송 시켰는데 1주년 축하한다고 해서 그럼 뭐 준비한 것도 없고 시참이나 할까 했던 거니까, 대충대충 한 건 맞지.”


“와아아...”


“애초에 나는 주년 단위로 기념하는 걸 잘 이해를 못 하겠더라고.,,”


“그래서 100일째도 까먹고 일 주년째도 까먹고, 내 생일도 까먹은 거구나?”


아람님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가람님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으나 아람님이 다가가 가람님의 턱을 붙잡더니, 돌려서 시선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엑...”


“확 씨”


가람님과 아람님의 신경전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려 네모미님과 얼굴을 마주 봤다.


“응? 왜?”


“아니, 네모미님은 남자친구 없나 해서요...”


네모미님 정도면 줄을 서는 게 남자 아닐까?


몸매 좋고, 얼굴 예쁘시고, 돈도 잘 벌고, 심지어는 성격까지 좋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남자였다면 네모미님과 손절 할 각오를 하고서라도 고백 한 번쯤은 해봤을 만큼, 그야말로 완벽이라는 단어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서예님은 규격 외니까 논외로 치고.


“나는 남자친구,.. 사귀어 본 적 없어.”


“에...?”


덜떨어진 소리를 내버렸다.


사람이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 조금 이상하긴 한데, 내 시청자들만 해도 통계 게임을 했을 때 보면 절반 이상이 연애 경험이 없는 분들이었다.


“혹시 연애에 아예 관심이 없으신 건...?”


“아니, 아람 언니를 보면 해보고 싶긴 한데, 뭐라고 해야 할까...”


네모미님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적합한 말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내 이상형에 부합하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아, 네모미님 이상형은 어떤 사람이에요?”


“나?”


네모미님은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열심히 끄덕였다.


과연 네모미님의 이상형은 어떤 사람일까.


아람님이나 가람님은 서로 맨날 물고 빠니까, 서로가 서로의 이상형인 것이 확실하니 넘어가고.


네모미님의 이상형은 정말로 궁금했다.


네모미님은 내 초롱초롱한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볼을 긁적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3대 600쯤 치는 사람...?”


“어... 생김새나 성격은...?”


“생긴 건 눈코입 제대로 달려만 있으면 좋고, 성격은 착했으면 좋겠어.”


“그, 그건 당연한 거 아닐까요...?”


내가 생각했던 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네모미님은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돈이나 내가 잘 벌고 있고, 생긴 거야 어떻게든 고칠 수 있지만 3대 600은 어떻게 고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거 같거든.”


“네모미님은 지켜주는 남자가 이상형인가요?”


“으음... 그런 거 같아.”


무언가 일이 일어났을 때, 듬직한 애인을 원한다며 네모미님은 내 말에 긍정했다.


근데, 3대 600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내가 운동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다만, 네모미님이 저렇게 말하니 대단한 거구나­ 싶은 정도.


“서연이 이상형은 어떤 사람이야?”


“저, 저요?”


“응, 나는 말해 줬잖아? 서연이 차례지.”


네모미님이 뒤에서 나를 꼭 끌어안아 부둥부둥하며 내 대답을 재촉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솔직히 이상형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연애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최초로 돌아가서 나는 연애에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남들이 연애하는 것에는 재밌고, 응원하게 되지만, 내가 연애를 한다면?


감옥에 살았을 적, 이모부에게 몸을 팔아 돈 벌어오라는 소리를 듣고.


이모에게 목사에게 성 상납하라는 이상한 명령을 듣고, 이모부가 국제결혼이라는 것으로 진지하게 나를 팔아버리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물론, 이게 정상적인 연애와 관련 없다는 것은 알지만.


여러모로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음...”


“이상형 없어?”


네모미님이 대답을 재촉하는 만큼 머리는 조금 더 복잡해졌다.


내 이상형이라...


내 이상형...


고민 끝에 내놓은 답변은 결국 상식적인 것이었다.


“차, 착한 사람...?”


“에이, 그게 뭐야 생긴 거나 그런 건?”


아까 내가 했던 질문 그대로 되돌아왔다.


잠시 망설이고 입술을 조금 깨물다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눈코입 정상적으로 달려 있고... 탈모 아닌 사람으로...”


“...탈모는 조금 그렇긴 해.”


네모미님은 내 대답에 공감한다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우리 1주년 이벤트 뭐할지 모인 거 아니었어?”


안 본 사이에 목에 키스 마크가 새겨진 가람님이 우릴 보곤 퉁명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 목부터 감추는 게 어때...?”


“크흠...”


헛기침을 내뱉으며 손으로 옷을 올려 목을 가린 가람님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발그레­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안 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알아선 안 될 것 같으면서도 알고 싶은 복잡한 심정.


내가 발그레 달아오른 얼굴로 헤실헤실 웃고 있자, 내 정수리에 턱을 얹은 네모미님이 무언가 생각났는지 나에게 말을 건네었다.


“서연아 손 편지 낭독 같은 건 어때?”


“네...?”


“학예회 같은 느낌으로!”


감사함을 담아서 진심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


“학예회라니...”


나는 조금 멍해졌지만, 네모미님은 꽤 괜찮은 생각이라는 듯 웃음소리를 흘렸다.


“우리 순수한 서연이와 컨셉도 잘 맞고, 그것만으로는 아쉬우니까 직접 만든 쿠키 같은 것도 추첨으로 보내주고, 어때?”


“저... 쿠키 못 만드는데요...”


내가 만들 수 있는 거라곤 계란 후라이나 라면 같은 간단한 종류뿐이었다.


“배우면 되지!”


“네에...?”


너무 막무가내 아닌가.


무엇보다 과연 시청자들이 내가 만든 이상한 쿠키를 받고 싶어 할까...?


만들어서 보낸다고 하더라도 바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진 않을까.


예전에 내가 만들었던 카네이션 같이 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마음이 잘게 부서질 것만 같았다.


“으으...”


“옆에 훌륭한 선생님도 있잖아!”


“네...?”


훌륭한 선생님이라니?


무언가 매치가 되지 않는 두 단어가 섞인 것은 그렇다 치고, 우리 중 베이킹에 능숙한 사람이 있던가?


네모미님은 당연히 아니겠고, 나는 아람님을 바라봤다.


“응? 나 아니야!”


“에...?”


나는 시선을 옮겨 가람님을 바라봤다.


“가람이 제과, 제빵 기능사 있어!”


“와아...”


아람님의 말에 나는 조그맣게 감탄했다.


“뭐야, 나보고 가르치라고?”


갑작스레 든든한 지원군이 생겨났다.


정작 가람님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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