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4화 〉 방송 열 두 달째(2) (134/143)

〈 134화 〉 방송 열 두 달째(2)

* * *

그날부터 바로 시작된 연습.

가람님이매일 내 집에 올 수는 없는 일이었고. 반대로 내가가람님집에 머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시간에 여유가 있는것도 아닌 것이, 1주년까지일주일 정도밖에 안 남았다.

주말에는 직접 만나되, 평소에는 통화와 넘겨받은 자료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소금과 설탕을 헷갈리기도 하고저지방 우유와일반 우유를 구분하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노력한 결과 쿠키 같은 것이 만들어지긴 했다.

게다가가람님말고도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지 않은가.

서예님은카페를 운영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여, 여러 고생 끝에 만들어진쿠키는모양도 이상하고 맛도 없었지만, 바삭하고 부서지는 것이 명백히 쿠키였다.

달달함보단짭짤함이 컸지만, 어쨌든.

처음 만든 쿠키의 맛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간식보다는 반찬에 가까운짭짤함이었지만...

“근데 이거 몇 개만들어야 할까요?”

서예님에게의견을 물어보자서예님은내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다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래도,리에라님시청자 수를 생각하면 1명당 적어도 5개 이상은넣어주고...”

서예님은말끝을 흐리다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500개...?”

적어도 100명은 줘야지 않겠냐는 말.

나는 그 말에 내가 구운 쿠키의 개수를 손가락으로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넷...

아홉 개.

연습인 만큼 대용량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감안하더라도 무시무시한 숫자임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쿠키를 굽는다고 끝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개별포장해서, 100명에게 나눠준다면 100명에게 각각 보내야 하고.

“으으...”

갑자기 머리가 띵 해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손발이 덜덜 떨리지는 않는다는 것일까.

나는 힐끔­서예님의눈치를 봤다.

“사람 좀구해올까요?”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저 여기 계속 써도 되는 건가요?”

지금 내가 연습하고 있는 곳은서예님의한옥 카페.

집에는 오븐이없기 때문에허락을 구하고 이곳에서 연습하고 있었다.

직원들이 오가면서 무언가 먹을 것을 하나씩 주시는데, 솔직히눈치 보인다.

“계속쓰셔도 돼요, 불편하다면 오븐 하나 사드릴게요.”

대신, 오븐을 꾸준히 쓰실수 있으시다면요.

“흐아아...”

계속 사용할 거라면 사주겠다.

별거 아닌 것처럼 툭­ 내뱉은 말에 몸을 잘게 떨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방해가 되는 게 아닌가해서요...”

실제로도 아까부터직원분들이힐끔거리는 것도있고, 괜히 연습한다고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샘솟았다.

차라리 어딘가를대여해서...

나는 내 통장 잔액을 떠올리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 이편이 낫죠?”

“네에...”

서예님의말에 힘없이 긍정했다.

이번 일 끝나면 쓰지도 않을 오븐을 사는 것도 그렇고.

“굳이 마음이 쓰이신다면커피 한 잔씩만돌리면 될걸요?”

“커피...”

나는 내가지닌잔액을 생각해봤고, 주변을 둘러봐 직원들의 숫자를 셌다.

서예님과서예님아버지 포함 총 5명.

정산까지 시간이 조금 더 남아있긴했지만 다행히도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어떤 거좋아하실까요...?”

“리에라님이주는 거라면 200원짜리커피믹스도좋아할걸요?”

“에,에이...”

그 말이 쑥스러워 몸을 배배 꼬자 내 모습을 바라보던서예님이잠시 고민하더니폰을꺼내 사진을 찍었다.

찰칵­

“에...?”

“아니, 그냥 몸을꼬는 게귀여워서요. 간직할게요.”

“네...?”

느닷없이 찍힌 사진.

나 방금 눈을 감지 않았나?

뭐, 사진을 찍는 것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다른 것은 다 그렇다 치고 지금 상황만 봐도, 장소제공, 재료제공에 내가 소금을 넣은 뒤로는 옆에서 조언까지건네주고 계신다.

사진 정도야수천 번도 가능하다.

다만,귀엽다니...

헤실헤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리에라님은우쭐거리는 표정보단바보 같은표정이 더 어울리네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심한말씀을하시네...

나름 중학교1학년까지만해도 상위권의 학생이었다.

“바보아니에요...”

“4 곱하기 4.”

“16!”

“와! 똑똑해!”

“우씨...”

서예님이나를 놀린다.

뭔가, 내가전 재산을기부했을 때부터 나를 놀리는 정도가 심해진 것 같은데 착각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근데 만약 진짜라 하더라도, 내가 했던 짓이 너무나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 반박할 수도 없다.

분해서볼 풍선을잔뜩 불어넣은 채로뚱­하게 쳐다보자서예님이화제를 돌렸다.

“일단 조금 쉴까요? 점심시간이에요.”

서예님의말에 시계를 바라보자 이제 막 3시를 지나고 있었다.

점심시간 때 카페를 가득 채웠던 인파들이 빠져나가고 한적해진 때.

지금이 지나면 바로 저녁때고 그땐 손님이 더욱 몰려올 것이다.

그렇다고 밤에 먹기엔 시간도 많이 늦었고, 밤 카페엔 손님이 의외로 많았다.

그러니까 지금이식사 시간이었고, 나는 얼떨결에직원들과 식사하게되었다.

메뉴는 중식.

나름 평점이 좋은집에서 배달시켰다.

짬뽕 2그릇 짜장 1그릇, 탕수육 대 자 하나, 볶은 밥 2그릇.

비닐을 뜯자마자중식 특유의자극적인 향이 풍겨졌고, 나는 군침을 소매로 닦아내며 나무젓가락을 집었다.

양쪽 끝을 잡아 부러트린 나무젓가락은 언제나 그렇듯 이상한 모양이 되었지만, 이것 나름대로 느낌이 있지 않은가.

“이거 먹고 다시연습해 봐요 이번에는소금이랑 설탕 착각하지말고...”

“네에...”

짜장면을 먹기 전 하나 남은 쿠키를 입에 넣고 씹자 바삭­ 소리와 함께 짭짤한 소금 맛이 느껴진다.

뭐라고 해야 할까,감자칩의맛이 이것과 비슷한가?

아니, 감자는 하나도 안 들어갔는데.

“...연금술...?”

이 정도면연금술 아닌가.

감자 없는감자칩맛버터 쿠키.

“리에라님탕수육 부먹파였나?”

“네!”

직원분의 말에 나는헤실헤실거렸다.

탕수육은부먹이정답이다.

이건 예전에드래곤님과첫 만남 때도 말했던 것인데.

탕수육과 소스는 같이 먹으라고 주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같이 먹어야지 왜 따로 그것도 번거롭게 찍어서먹어야 한단말인가.

게다가 소스에 부어두면 조금 더 부드럽게 먹을 수도 있다!

“리에라님그렇게안 봤는데...”

“그건좀...”

“와...”

직원들이 하나같이 나를 보고는 한탄 섞인 소리를 내뱉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먹싫어하세요...?”

조심스레 여쭤봤지만 단한 분도망설임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설마 저번에도 그렇고, 세상에서부먹을좋아하는 건 나 혼자일까.

진지한 철학적 고민 끝에 그럴 리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한 번만 부어서 드셔보실래요?”

한 번부먹에빠진다면찍먹으론만족할수 없는 몸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게 다 안 먹어 버릇해서 그런 거다!

내가부먹을설파하려 하자, 기겁하며 탕수육을 본인들 앞 접시에 따로 가져가는 모습에 시무룩해져서 나무젓가락을쯉쯉빨고 있자서예님이한숨을 푹 쉰다.

“리에라님.”

“네?”

서예님의목소리에 대답하자서예님이나름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부먹은이단이에요...”

“...서예님마저...”

“그렇게 배신당했다는듯한 얼굴로쳐다봐도 안 되는 건안 돼요.”

서예님이나에게 이렇게 나단호해질 줄이야.

뭔가, 호감도는 높아진 것 같지만 신뢰도는 많이나락 간거 같은데 이게 정말로 괜찮은 걸까.

이런 비유가 알맞을지는 잘 모르겠으나,서예님은나를 무언가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귀여운 아이 취급하는듯했다.

“아니, 진짜로맛있는데...”

나는 혀를 살짝 내밀고는 탕수육 소스를 적당히 내앞 접시위에 올라온 탕수육에부었다.

끈적한 소스가 탕수육에 스며드는 것은 금방이었고.

이내, 바삭하고 거친 겉모습이 소스를 머금어 흐물흐물해지고 윤기가 흘러 보인다.

한입 물면 강렬한 소스 맛에 기침이 터져 나올 지경이나, 나는 탕수육을 이렇게 먹는 것이라 배웠다.

TV에 나왔던이야기니 신뢰성이높으리라.

물론 TV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고 요즘은잘못된게 더 많은 것 같지만, 아무리 그래도 먹는 것에 있어장난칠것이란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거꿔바로우랑헷갈린 거 아니에요?”

“그게 뭐예요...?”

그게 뭘까,꿔바로우라니. 일단 어감만 들어도 중식이라는 것은 알겠다.

직원의 질문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내 인생에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

“에이, 설마꿔바로우랑탕수육이랑 헷갈리실까, 애초에꿔바로우는볶아 먹는 거 아니야?”

“배달하면 소스를 따로 주긴 하잖아.”

“하긴...”

“어어...?”

직원들의 갑작스러운 토론에 멍해졌다.

내가 무언가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소리였는데.

아니지.

그 전에꿔바로우가뭐란 말인가.

애초에 그걸 알아야 이 대화에끼어들든 말든 할것 아닌가.

“리에라님,리에라님혹시, 보신 게 탕수육보단 납작하지 않았어요?”

“...네에.”

뭐가 잘못된 걸까?

나는 시선을 내려 내앞 접시에놓인 탕수육을 바라봤다.

길쭉하고 두툼했고, 납작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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