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방송 열 두 달째(4)
* * *
우리는둘러앉아서로를 바라보았다.
네모미님과아람님이온 이유.
1주년 방송에 대해 상담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두 분은 베테랑 방송임과 동시에 나와 같은 성별 아닌가.
드래곤님이나,가람님,오휘님이훌륭한 스트리머라는 것을 부정할 생각이 없으며.
오히려 존경하지만,그렇다고 한들.
성별이 다름에서 오는 감성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게다가 내가 게임방송인이라면 그런 것에서 제약이 조금은 덜했겠으나.
이젠 엄연한여캠방송인아닌가.
아무래도 괴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근데, 우리가 와도 딱히 도와줄 건없는데...?”
“맞아, 솔직히 되는대로 방송하는 거라.”
콘텐츠를짜긴 하지만,리에라가생각하는 것처럼 엄청 특별한 건 없어.
머쓱하게 머리를 벅벅긁어 보인아람님이나에게 손을 뻗어 볼을 꼬집었다.
“앗...”
쭉 당겨지는볼살에몸도 함께 끌려가 이내아람님에게안기는 꼴이 되었다.
“자자, 그래서 우리 부른 이유가 정말콘텐츠때문이야?”
리에라라고모를 리가 없잖아?
아람님의말에 나는아람님품에서부비적거리면서도고개를 들어 올려아람님을바라봤다.
“그,콘텐츠도콘텐츠인데...”
1주년이 다가오면서 심장이 엄청나게말썽이라...
나는 웅얼거리듯 말을 이어나갔다.
“그, 1주년 방송때... 어땠어요?”
감정이라던지, 생각이라던지, 그런 것 말이다.
불안하고 매일 밤 심장이 쿵쾅거린다.
어떤 모습으로 캠을봐야 할지, 채팅방을 읽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평소처럼 이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일까.
오히려 그 평소처럼도 요즘은제대로 안 된다.
심지어 당장 어제만 하더라도 왜 이렇게 딱딱하냐한 소리 듣지않았던가.
1년이라는 상징성이 가져다주는 중압감은 상당했다.
“우리 1년때...?”
내가 무얼말하는지 짐작했다는듯 둘은꽤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다가 먼저아람님이입을 열었다.
“1주년 때, 생각해보면 나도 많이 떨리긴했네...”
벌써 몇 년 전 일이긴 하지만, 그때 기억은 나름 생생해.
아람님은고개를 기울이며 회상에 빠져들었다.
“그때 내가 아마 시청자 300명 정도였을걸?”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보다 지금의리에라가인기가 많네?
아람님은짓궂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고,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우,운이에요...”
그런 내 대답에아람님은별말을 안 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내 대답이 마음에 안들어서라기보단, 과거 일을 떠올리려 집중해서그런 듯싶었다.
“1주년 때 떨리고,설레고... 뭐라고말해야할까...”
아람님은적절한 단어를 선별하는 듯 한참을끙끙거리더니그 답을 찾은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내뱉었다.
“생일 같았어.”
모두가 나를 응원해주고 축하해주고, 사랑해줬어.
그리고 돈도 많이 줬지.
내가 지금껏 방송을 몇 년 해왔지만,그때보다많이 번 적은없을걸?
흠흠 뿌듯함이 드러난아람님의얼굴을 멀뚱히 바라봤다.
“...생일이요...?”
“음, 아.”
아람님은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응, 생일, 가족끼리 하는 생일 말고, 친한 애들이 모두 와서 생일파티를 하는느낌... 나어휘력 왜 이러지?”
스스로를자책하듯아람님이스스로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생일이라...
저번에, 지인들이 모여서 만들어줬던 유튜브 첫 영상, 1주년 기념 파티와 비슷한 걸까?
생일파티라는 것을 그때 처음 치러봤으니, 그것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때처럼요?”
“어... 그거랑은조금다른데...”
아람님은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흘깃,네모미님을쳐다봤다.
“응? 내 차례야?”
바닥에서 뒹굴고 있던 주인님과 놀아주던네모미님이스스로를가리키며 질문을 던졌고, 나와아람님은동시에 끄덕였다.
“나는 뭐라고 해야하지...?”
네모미님은내 눈치를 보며우물쭈물거렸다.
그네모미님이이렇게 눈치를 볼 일이 뭐가 있을까.
신던 스타킹을 추첨으로 보내준것보다 더한게 있는 걸까?
“그때 되게 뭐라고 해야할까...”
네모미님은손가락을 매만지며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뭐 때문에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궁금증이 증폭되는 와중에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응? 우리 말고 또 누가와?”
“아니요?”
“서예 아니야?”
“그런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갔고, 문밖에 서있는 사람을확인할수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퀭한 눈동자, 짙은다크서클까지.
“하얀님...?”
눈을 열어주자하얀님이꾸벅꾸벅 졸면서도나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아,안녕하세요...”
“어, 어쩐일이세요...?”
하얀님과친하긴 하지만,하얀님도나도집 밖으로잘 안 나서기에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생일파티이후 처음이었다.
하얀님은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듯, 졸린 눈을 억지로 부릅떠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제가리에라님팬픽쓰잖아요...?”
“네...”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말끝을길게 늘이시지도않는다.
“출판 제의가들어왔어요...”
“네...?”
“어쩌죠...”
“...네?”
하얀님의말에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는듯했지만,어거지로이성을 붙잡았다.
아니, 성적이 좋기야 했다.
내 공지사항이좋아요 400개정도에서 그칠 때,하얀님이올린 소설은좋아요 2400개를찍어버렸으니, 소설 쪽을 제대로 알진 못하더라도 엄청난 수치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오히려 이제야 제의가 들어온 것이 의아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걸 굳이 나한테 말하는 이유가 뭘까?
“그으... 하얀님이쓰신거니까... 어떻게하든...?”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야설도음지에서 마구잡이로 굴러다니는 마당에 굳이 나에게 허락을 구할필요가...
...
어라.
태어나서유례가 없을정도로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 방송을 보러 오는 분들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하얀님이쓰신 소설은 내가 주인공이다.
공교롭게도 그 소설이 책으로 나온다고 한다.
웹소설 형식으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종이책으로 나오는 것인지 물어보니.
두 개 다 나온다고.
“그, 그러면 종이책 몇 개만 줄 수있나요...?”
그러면 허락해드릴게요!
물론,안 준다하더라도 허락할 생각이긴 한데,하얀님은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몇권이요오...?”
내 허락을 받아서 그런 것일까.
긴장이 풀린 것인지, 졸린 것인지. 말이 다시 늘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말에 손가락을꼼지락거리며적당한 숫자를 생각해냈다.
쿠키가 100명에게 갔으니, 책은 10개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10권...!”
“잘이야기해볼게요오...”
이거라면 충분히 시청자분들도 기뻐하시겠지.
내가 조금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걸로 시청자들이 행복하다면 백번이고천 번이고할 수 있었다.
하얀님은졸린 지몸을못 가누면서도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
정말로 출판관련해서 허락받으러오신것뿐이었을까?
그보다 내 이야기가, 물론 엄청나게 미화되긴 했지만, 소설로 나온다니.
가슴이간질거린다.
“뭔가, 서연이 시청자들은 복 받았네?”
“히히...”
헤실거리는 미소를지어 보였다.
정말로기뻐해 주시면좋겠다.
고작 10명에게만 드리는 선물이었으나, 모든 사람을 챙길 수는 없지 않은가.
조금 전과말이 달라지긴 했는데, 무려 내 소설이었다.
내가 쓴 것은 아니나 내가 주인공인 소설!
이 정도면많은 용기를 냈다고 스스로 말할 수있을 정도로 아닌가.
“이제콘텐츠만남았네요...!”
나는 양손을 머리 위로 쭉 뻗고는 외쳤고, 그런 나에게네모미님과아람님이다가왔다.
“오오 리에라책 나오면소장해야지...”
“...멈춰!”
“뭐, 어쨌든, 우리끼리생각해본 게있는데말이야.”
“네?”
네모미님의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합방 어때?”
“합...방...이요?”
“응, 나랑아람언니, 그리고 서연이!”
내 입으로이런 말 하긴뭐하지만, 우리 요즘엄청나게 잘나가잖아?
네모미님말에 딱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여캠중 인지도와 인기 1위,네모미님.
흔히 말하는듀라한, 캠을켜지 않는여성 스트리머 중 가장 유명하다 할 수 있는아람님.
두 분은 사실상사기캐릭터라불릴 만했다.
이분들과 합방하고싶어 하는사람들을줄 세우면끝이 보이지도 않겠지.
...네모미님경우는노딱으로기피하는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 또한, 스스로 말하긴 뭐하지만, 1년도 안돼서구독자 20만을 찍어냈고, 꾸준히 성장 중인 스트리머.
처음 합방 때가생각 나버린다.
시청자 수0명의하꼬가수십만 구독자를 거느린 방송인과 합방했을 때.
그 모습.
지금 나는 그때의리에라가아닌,리에라가우러러보고있던 수십만 구독자 방송인이 되어있었다.
“근데합방해서 뭐 하죠...?”
엄청난 합방이라 할 수 있겠으나, 내용물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서연이나데나데.”
“리에라나데나데.”
“나데나데...?”
나데나데라니?
고개를 갸웃거리자네모미님과아람님이음흉하게웃어 보였고, 나는의미 모를불안감에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1주년 기념나데나데방송이야!”
“리에라힐링 방송!”
네모미님과아람님.
내가하얀님과이야기하고있을 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길래 이렇게 의욕이 넘칠까.
히끅
딸꾹질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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