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방송 열 두 달째(7) 완결
* * *
방송 시간이 흘러갔다.
본래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행복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인지.
한 시간이 지나갔다, 금방이었다.
예전엔 이 한 시간이 얼마나 느리게 흘렀을까.
감히 짐작조차 하기도 힘들었다, 한 시간이 아니라, 일 분이.
일 분이아닌 일 초가 얼마나영원 같았던가.
나는헤실거리며 시청자들이 보내준 영상후원을 살펴보았다.
누가 시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유튜브에 올라와 있던 것을 가장 오래된 것부터 최근것까지보내오고 있었다.
이게 몇 번째 영상이더라?
아, 그래.서예님과만난 직후. 유튜브가밀려 나간후.
서예님이직접 편집해서 올리셨던 영상 중 하나였다.
어쩌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가장 큰 사건.
“아, 이때 캠이 진짜로켜진 줄몰랐어요...”
어색하게 웃으며 영상에 대해 입을 열었다.
설탕물을 흥얼거리며 제조하는 꼴이 내가 봐도꽤비참한 모습이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저 때일을 아직도 주작이다 뭐다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마이크를 넘겨주는 시늉을 하는네모미님을잠시 바라보다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워낙 비상식적인 일이라지금까지도조작이니, 뭐니.
말이 많은영상 중하나인 만큼 진실규명이 필요하긴해 보인다.
다만, 이미여러 차례해명을 했음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많았고.
그 사람들은 내 말을안 믿을것을 잘 알기에, 길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있는 사실을 담담하게.
“조작 아니에요.”
“네에에.조작 아니랍니다,조작이라고 한새끼들 다 밴이야!”
아람님이직접 마우스를 조작하여 몇몇을밴 처리시켜버렸고, 나는 멍하니 바라보다 실없는 웃음을 내보였다.
정말로 나를 위한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보니저 때곰 세 마리불렀잖아?”
잠시 헤실 한 얼굴로아람님을쳐다보다가,네모미님의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정신을 차리고는 바로 다음 영상후원으로 넘어갔다.
“다, 다음!”
“에에...”
실망한 듯 울상을지어 보이는네모미님이었지만, 그 흑역사를 다시 꺼내고 싶진 않았다.
죄송해요 네모미님.
다행히도네모미님은그 이상투정 없이넘어가 줬다.
다음에 받은 영상은 역시인상 깊었던일, 그리고그 후로도이어졌다.
내 추억이라 불릴 수 있는 행복했던 기억들.
아마도평생 잊지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영상에 도달해서야 나는시청자 수를재차 확인했고,9000명이라는수치에 딸꾹질이새어 나왔다.
“히끅...”
“자, 여기 물.”
기다렸다는 듯, 물이 든 컵을 건네주는네모미님에게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는 벌컥거리며 물을 마셨다.
그제야멈추는딸꾹질.
아니, 1주년 방송이뜻깊은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9000명이나볼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 어디서 온 거지?
애초에 내 시청자 수가 평균적으로1500인것을 생각하면 6배가 넘는 인원들이 들어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어디선가 유입이 되었다 확신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할 수있는 일은 없었다.
어쨌든 시청자들이고 눈에 띄는 이상한 행위는 없지 않은가.
그저 나를 축하해줄 뿐이었다.
드래곤님이나오휘님,가람님같은 친분 있는 지인분들이 혹시 시청자를 모아 넘겨준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무렵,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리에라와함께하는...!“
어눌한 발음, 떨리는 목소리.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마법 소녀의복장을 하고, 동물의 귀를 하며 억지로 대본을 읽는 듯한.
내가 보였다.
“아 이거...!”
“정말귀여웠지...”
아람님과네모미님이놀리는 히죽거렸고, 나는 손을뻗어영상을스킵하려했으나,아람님이보다 빨랐다.
“에이, 시청자가 보낸후원 영상을그렇게 넘겨서야 쓰나! 우리리에라!”
“아,안되요... 정말안되요...!”
부끄러워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영상 속나는 양손을머리 양옆으로올리고는 손끝을 살짝 굽혔다.
손으로쫑긋쫑긋을표현하고는, 몸을양옆으로흔들면서 애써 귀여워 보이려 하는 것이 정말로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럽다.
“아아아아...”
내 영혼이 빠져나간다.
찍었을 때, 그리고 찍은 후 봤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엉망진창 아닌가.
“지, 지금 바로 플레이하세요!”
광고영상인데 말까지 더듬어 버렸다.
그런데도OK 사인이내려왔었고, 그대로 광고로 송출됐었지.
이 광고에 달린댓글 중하나가 ‘내가 프리미엄을 안 쓰는 이유’였는데.
전혀 기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일까.
“으으... 이거에대해선할 말이없어요... 나도왜 저랬는지 잘모르겠어요... 왜광고주가허락한 건지도모르겠어요... 여러분이왜 좋아하는지도모르겠어요...”
작게투정부리면서도, 기겁하면서도 내 입가엔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뭐라고해야 할지잘 모르겠다.
부끄럽고 죽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운 것은 사실이나, 그런 모습을 시청자들이 좋아하지 않았는가.
물론, 또 하겠냐 하면 차라리 혀를 깨물겠으나,한 번쯤은괜찮으리라.
방송 시간이끝나간다, 어느덧 5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해가 정중앙에떠 있었을때,방송을 켰는데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평소의방송 시간보단1시간 정도짧으나, 오늘 방송은 여기서마무리되었다.
“리바!”
“앞으로도리에라많이 아껴줘요!”
“시청자분들은 모르겠지만리에라실제로 보면 더 귀여움!”
“그, 그런 말을 굳이해야할까요...?”
나를 너무오버스럽게띄어주는 것 아닌가?
게다가, 무언가맥이는 것같았다, 나랑은 다른생물인 양엄청나게 이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다니.
가라앉았던 질투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말았다.
“언니, 서연이표정 봐.”
“와...진짜...”
내 표정이 어떻길래 저런 반응일까.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매만져봤지만알 수없었다.
혹시 되게 무례하고 이상한 표정을 지어버리고만 걸까.
외모에 대해 질투가 있다고 한들, 나는두 분을사랑하도록 좋아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서연아...”
“네,네...!”
네모미님의말에 나는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대답했고,네모미님은침대에 앉아자기 다리를가리켰다.
“여기 앉아!”
“네...?”
앉으라고 하니까 앉긴 하겠는데, 이거 조금 모습이 이상하지 않은가.
네모미님이뒤에서 나를 꼭 끌어안으며 콧소리를 내뿜었다.
“아, 진짜 왜 이렇게 귀여워!”
절대 평생 함께야!
네모미님의돌고래 소리에, 뻣뻣하게 굳어버리면서도아람님에게도움을 청해봤지만,아람님역시 우리 옆에 앉아 우리를 따듯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으에에엥...”
찌부가되어버린다.
이대로 가다간 눌려서형체조차알아볼 수없게 될것이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는 양손으로 바둥거려 꾹 눌러오는네모미님의말랑 지방 덩어리를치워냈다.
“하응...”
“이상한소리 내지마요...”
“하지만 서연이가 이상한 곳을만졌는걸...?”
“안 만졌어요!”
버럭 소리치자네모미님이그마저도 귀엽다는 듯 볼을 꾹 찔러왔고, 나는 땀을 흘리면서도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근데 음, 나도 이름으로 부를게!”
“아, 네!”
아람님의말에 고개를 끄덕이자아람님이말을 이어나갔다.
꽤중요한이야기인 양진지한 표정.
“서연이는이제 뭐 할거야?”
“네?”
“아니, 방송을계속할 거지?”
이걸 왜묻는단 말인가, 나에게 있어서 방송은 삶이나 마찬가지인데.
일이 생겨 힘들고, 괴롭고, 죽고 싶어도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방송을 놓지 못하리라.
“어째서 그런걸물어보시는 거예요...?”
“응? 무슨 특별한 뜻이 있는 건 아니었어,리에라의생각이 어떤지를 듣고 싶었던것뿐이야.”
내 생각?
아람님이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뭘까.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시진 않았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아람님의눈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봤다.
맑고, 순한 눈동자였다, 지금껏 봐온 그 누구보다.
“제 생각을 그냥 말하면되는 거예요?”
“응응, 부담가질 필요 없어, 나는 저 질문 받았을 때 뭔 개소리냐고 답했는데, 이렇게친한걸?”
네모미님이나를 뒤에 끌어안은 채로 낄낄거렸다.
그 모습에아람님이꽤분한 듯 씩씩거린다.
“너어는,조오금연장자에 대한 예의가 없어!”
“뭔 개소리야?”
“우씨... 어쨌든, 서연아, 너는 방송을계속할 거야? 한다면 어떤방송을 할 거야? 어떤 방송을 한다면 어떤 생각을 지니고?”
무언가,두 분사이가 내 생각보다 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쨌든, 내 생각이라.
“저는, 방송을계속할 거예요.”
앞서말했다시피방송이 이제 내 삶,그 자체였다. 나는 조금 더 살고 싶었고, 하여 방송을 이어나갈 것이다.
“저는, 힐링이 되는 행복한 방송을할 거예요.”
아픈 것을 모두 떨쳐내고, 마침내 나는 행복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줘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나는 내 속마음을 드러냈다.
어떤 생각으로방송을 할 거냐는말에,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내뱉었다.
직후, 눈을 떠아람님을바라보며, 또박또박 제 생각을 밝혔다.
“저는,매일마지막 방송이라 생각하고 방송을할 거예요.”
매일내 마지막 삶이라 생각하겠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내뱉은 말들이 합쳐져서 훗날, 나는힐링 방송 스트리머가되고 싶었다.
입술을 질겅이며 앞으로의 각오를다질 때.
“응, 그래서 서연아?”
아람님이진지한 표정을 집어치우고는 헤실헤실.
내가 알고 있던 귀여운아람님으로되돌아와 질문을 건넸다.
“드래곤팸에합류 할래?”
사실크루이름이드래곤크루인건아니지만, 다들드래곤크루,드래곤팸이라고부르니까...
아람님의말에 눈을 가만히꿈뻑이다가, 고개를 들어네모미님과시선을 마주했다.
“응? 저거 그냥 크루원 면접이야.”
“...네?”
“어... 싫어?”
우리 뭔가 회비 내는 것도 없다?
네모미님말에 무언가 허탈해져서 축 늘어지자.
내가 망설이는 것처럼 느껴진 것인지아람님이양손을 파닥이며크루의좋은 점을 설명했지만.
나는 어이없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방금 그게면접이라니...
“뭐... 좋아요!”
방송 생활의 끝이 아닌 시작 점에서, 나는 두 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1년 동안많은 일이있었다.
많은 아픔이 있었고, 많은 행복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할방송 생활에서, 지금 이 1년은시작 점에불과했고.
앞으로는 더욱 많은고통과, 슬픔이.
그리고 더더욱 많은행복과, 기쁨이분명 존재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길고 길었던 프롤로그 끝에서 본편을 시작하려 했고.
나는 마침내 출발점에서 한걸음, 앞으로 발을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