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희의 정원-45화 (44/145)

#45

처음엔 말도 안 되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작성자는 인증 사진은 없지만 정말이라고 억울해하고 있었는데, 그 울부짖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환의 목덜미가 이상한 감으로 섬뜩하게 당겨 왔다.

희서. 회사. 뒤에 사람을 달고 다니는, 웬 덩치 큰 녀석.

“…….”

생각나면 안 되는 녀석이 자꾸 생각이 날 듯 말 듯 했다.

홀로 몇 번이고 곱씹어 보던 끝에, 환은 인터넷 창을 내리고 대신 희서와의 메신저 대화 창을 찾아 들어갔다. 물론 다짜고짜 어디냐고 추궁하면 저 글이 사실이 아닐 경우 자칫 수습이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재주껏 살짝 돌려 물었다.

[나 이제 끝나고 가는 중 어디로 가면 돼? 방에 있어?]

그런데 희서에게서 좀처럼 답이 오질 않았다.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집중하고 있느라 못 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핸드폰을 쥐고 있는 환의 손가락이 그의 초조한 마음을 대변하듯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그 상태로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환은 다시 메신저 대화 창을 켰다. 그러나 이번에 보내는 상대는 희서가 아니라 지금 이 행렬의 후미에서 따라오고 있을 궁인, 성현이었다.

[희서 지금 어디 있는지 좀 알아봐]

이 일을 시키기에 그보다 더한 적격자는 없었다. 워낙 여기저기 쏘다니기 좋아하니 아는 궁인들도 많았다. 아니, 모르는 궁인을 꼽으라고 하는 게 더 적을 터였다. 그러니 그가 연락만 돌리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꼭 저처럼 나사 하나 빠진 듯한 답을 보내 환의 화를 불러일으켰다.

[넹? 희서라면 방에서 얌전히 공부하고 있겠죠.]

지금 ‘넹’은 무슨…!

[확실해? 확인해 봤어?]

[굳이 그럴 필요 있나용? 좀 있으면 도착할 텐데]

‘…한마디로 귀찮다 이거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편 환은 핸드폰 액정을 토독토독 빠르게 내리쳤다.

[성현이형]

[…네?]

[어제 오후 3시경 근무지 이탈하고 어디 계셨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5분컷 보여드리겠습니다]

[5분도 좀 길게 느껴지는데요]

[3분ㅠ]

좋게 좋게 하면 될걸. 꼭 한마디씩을 더 하게 한다며 환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잠시 뒤, 약속한 3분이 넘지 않는 아슬아슬한 시간에 성현의 답장이 도착했다. 빠른 답이 흡족했지만, 그 내용만은 그렇지 못했다.

[오후 12시 36분 외출 확인됩니다]

환의 표정이 굳어졌다.

***

‘…정말로 희서였단 말이야!’

별안간 회사 로비에서 최애를 만나 버린 사정.

그녀는 그 순간 그대로 힘이 빠져 하마터면 들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놓쳐 버릴 뻔도 했었다. 만약 순발력이 조금 모자랐다면 못난 꼴로 최애의 시선을 받는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 분명했다.

‘희서가, 우리 회사에, 대체 왜?’

‘무슨 행사 같은 게 있었나?’

급히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게 떠오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환은 분명 지금 다른 곳에서 황실 식구들과 생방송 인터뷰를 하고 있을 시각이었다. 안 그래도 우리 ‘떡밥 자판기’ 씨가 오늘은 또 어떤 떡밥을 뿌려 놓았을지, 퇴근하고 나서 복습할 생각에 몸이 달아 있었는데.

황실 사람들과 상관없이 희서만 여기 홀로 있다고?

참 이상했다.

그래서 자랑보다도 너무 놀라고 이상해 확인차 ‘환희의 정원’에 올린 글이었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파장이 커지는 듯했다. 한쪽에선 사진 같은 인증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몰래 찍는 사진이라는 게 마음에 걸려 애초에 찍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 탓에 인증을 할 방법이 없으니, 자신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관종이 되어 가는 듯도 했다. 물론 대놓고 그리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관종도, 어그로도 아니야!’

그런 나쁜 마음이었으면 차라리 다른 더 큰 사이트에 가서 분탕을 쳤다.

‘감히 일국의 황자를 상대로 약간 비틀린 덕질을 하고 있는’ 역적들끼리의 의리가 있지, 그런 짓은 안 했다. 그녀는 환희의 정원 초창기부터 있었던 멤버로, 그곳에 굉장히 진심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말이 맞는 것이라며 극구 버티고 있었는데, 댓글이 점점 늘어나며 일이 커지는 듯도 하자 혹여나 제 글 때문에 환과 희서, 또는 이 환희의 정원에 피해가 가기라도 할까 두려워졌다. 재가입도 쉽지 않은데, 분탕으로 몰려 강퇴를 당하는 것도 무서웠다.

‘…정말로 착각이면 어떡하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희서가 지금 이 시각에 우리 회사에 있을 이유가 당최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니라고, 분명 희서가 맞았다고 반발하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제 착각일 것이라 다독였다. 마우스 커서가 ‘삭제’ 버튼 위를 빙빙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그녀에게 쪽지도 아니고 대화를 거는 상대가 있었다.

[황금사과님]

[회사 어디세요?]

인사도 뭣도 없이 다짜고짜 그리 물었다.

에둘러 표현하는 것도 없는 그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그녀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어쩐지 그게 자신의 말을 믿어서라기보다는, 당장 희서와 관련된 정보를 캐내고자 하는 뉘앙스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심 불쾌해진 그녀는 다급히 상대방의 닉네임을 살폈다.

[내가조선의환이다]

아는 닉네임이긴 했다.

구체적인 교류가 있었다기보다는, 환희의 정원에 진심인 그녀만큼이나 이 사람 역시 올 때마다 보이는 ‘지박령’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직접 연성하는 부류는 아니었지만, 거의 모든 글을 보고 댓글을 남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동안 특별히 문제를 일으켰던 적도 없었다.

그러니 아마 지금도 그리 나쁜 마음에서 그러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애써 생각했다.

‘어쩌면 정말로 궁금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건 자칫 선을 넘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답을 썼다.

[죄송하지만 이게 사실 개인정보이기도 하고 정말로 제가 착각했을 수도 있어서요 알려 드리기 어렵네요 글은 곧 지우겠습니다]

이보다 더 예의를 차릴 수 없는, 정중한 거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착각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급해서요]

[어디세요?]

그 집요함에 그녀는 잠시 기가 막혀 한숨을 토해 냈다.

저렇게 알아듣게 말을 해 줬는데도 못 알아듣는다고? 얼마나 더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줘야 하는데? 이 사람 뭐지? 왜 이렇게 집요하게 굴어? 그렇게 안 봤는데 혹시 환이랑 희서 사생활까지도 따라다니는 스토커 같은 건가?

그렇다면 더더욱 알려 줄 수 없었다.

한번 그런 쪽으로 생각이 나아가니 기분이 몹시 불쾌했다. 그런 건 또 두고 볼 수 없어, 한 소리 해 줄 요량으로 그녀는 키보드를 내리치는 손가락에 잔뜩 힘을 실었다.

[아니 내가조선의환이다님!]

[제가 지금 구구절절 어렵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거 알아서 뭐 어쩌시려고요?]

[설마 애들 따라다니세요?]

그런데 그때였다.

그녀가 보고 있던 대화 창 위로 뜬금없이 사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함께 대화하고 있던 ‘내가조선의환이다’라는 사람이 제게 사진을 첨부해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희서의 사진이었다.

‘뭐, 뇌물이라 이건가? 하, 내가 그런 거에 넘어갈 것 같아?’

그리고 웬만한 사진은 그녀도 전부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던 참이었다.

“…어?”

그런데 머지않아 그녀의 입 밖으로 다소 당혹스러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희서의 사진이 맞긴 맞는데, 그게 심상치 않은 탓이었다. 그녀의 덕질 인생에 맹세코 이건 희귀하다고 표현할 것도 아니고, 결코 어디서도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팔짱 끼고 앉아 졸고 있는 희서.jpg>

<테이블 맞은편에서 포크를 물고 있는 희서.jpg>

<처소 앞마당에서 축구공과 함께 주저앉아 있는 희서.jpg>

‘…이거 뭐지?’

본능적으로 저장 버튼을 찾아 누르고 있는 손과 별개로, 머리는 이 상황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해 삐걱삐걱 돌아가고 있었다. 생각해. 생각해 봐.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머릿속을 채찍질했다.

‘과연 이 사람이 이 사진들을 어떻게 구했을까?’

이건 세상 그 어떤 홈마도, 찍사도 쉽사리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더군다나 이 장소, 이 각도, 이 거리….’

그렇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되나?’

그러나 이미 현실을 직감한 몸은 솔직해서, 키보드 위에 올려진 그녀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옆자리에 있는 회사 동료가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물어 올 정도였다.

‘아니, 하지만…. 하지만 여긴….’

커플 사이트잖아. 여길 어떻게 뚫어?

그러나 마침내 그녀의 ‘말도 안 되는’ 추측에 이보다 더 강한 확신을 줄 수 없는 사진이 나타나자, 그녀는 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만약 있는 곳이 회사가 아니었더라면, 틀림없이 비명을 꽥 내지르고 말았을 것이었다.

지난 국빈 방문 때 아드리안과 환, 희서 셋이서 찍은 사진이었다.

당시 아드리안과 환이 각자의 SNS에 사진을 올렸었고, 그걸 팬들이 두 사람의 셀카라며 잘라내어 씹고 뜯고 물고 핥고 맛보고 즐겼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그날의 사진이지만 어느 곳에도 공개되지 않은, 환이 부끄러워하는 희서의 머리 위에 몰래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인 다소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진짜야, 이건. 진짜라고!’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몇 번이나 주저하다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조선의환이다 님]

[정말로 환이세요…?]

[전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