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아닌 밤중에 그게 무슨 봉창 아니 홍두깨 뭐야 뭔 소리야]
[거짓말하지 마]
[아니야 왜 그래 무섭게]
[헐 여기 사진 올라온 거 뭐야? 희서 진짜 이 시간에 밖에 있는데? (링크)]
[휴가 같은 거 아냐? 그럴 수도 있잖아]
애써 부정하려는 사람들의 댓글이 이어지던 중에, 아무래도 사정을 아는 듯한 의미심장한 댓글이 나타났다.
[나간 거 맞음 다 말하긴 어려운데 궁에 비상 걸림]
[??????]
[왜? 아니 왜? 희서가 뭐 잘못했어?]
[우리 애가 궁 나가야 할 정도로 잘못한 게 뭔데]
[희서 잘못은 아님 근데 문제가 좀 생겨서]
[희서 잘못 아니면 환이 잘못이네]
[설마]
[근데 썰쟁이 왜 환이 잘못이라는 말엔 반박 안 해 진짜인 거 아니지]
[이환 이 자식 또 무슨 사고 쳤어]
[아악 안 돼ㅠ 내가 이 녀석 한번 대차게 구를 줄 알았다ㅠㅠㅠㅠㅠ]
앞서 눈치챌 만한 다른 징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기가 막힌 소식이 들리니 당황한 환희의 정원 사람들의 글과 댓글엔 눈물이 강을 이루고 있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소식을 듣고 급하게 접속해서 그 광경을 본 주영도 가슴이 벌렁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난번 누명 사건이 수습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게 산 하나 넘으니까 또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궁에서 나간다고 두 사람의 사이가 영영 끊기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았다. 따지고 보자면 그동안 두 사람이 그렇게 궁에서 함께 지냈던 것이 이례적인 경우였다.
그래, 침착하게 생각해 보니 호들갑 떨 일이 아니었다. 희서가 정말 궁을 나갔더라도 궁에서 먹고 자는 것만 하지 않는 것이지, 앞으로 궁에 전혀 발걸음을 안 한다는 뜻도 아닐 터였다. 실제로 궁인 숙소가 있음에도 출퇴근하는 궁인들도 여럿 있으니 말이다.
또, 그래, 학교.
곧 학년은 올라갈 테지만 두 사람은 변함없이 같은 반 옆자리일 것이었다. 그래,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알아. 아는데….’
그래도 어려서부터 워낙 함께 붙어 있던 아이들이라 그런지, 이제 와 각자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괜히 제 마음이 다 씁쓸하고 울렁거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막연히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라고 나름대로 각오도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사실 주영이 좀처럼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전 소동에서는 그 난리가 난 와중에도 꼬박꼬박 환희의 정원에 들어왔던 환이 이번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혀 접속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아는 환은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괜찮은 게 아닌가 봐.’
환의 부재중이 길어질수록 주영은 그러한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 무슨 일이니 얘들아.”
아무래도 사달이 나도 제대로 난 모양이라며 주영은 깊은 한숨과 함께 자신의 손에 얼굴을 묻었다.
***
지난밤 환의 핸드폰에 들어왔던 그 메시지는 예상대로 희서가 보낸 것이었다.
뭐라고 보내왔을지가 무서워서 그때 바로 확인하지 못했던 환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난 새벽녘에야 겨우 용기를 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뒤이어 확인한 메시지는, 환이 보낸 그 혼란과 갈등의 시간이 무색하도록 간결한 세 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저 가요]
그 담백한 문자를 보며 환은 눈을 꾹 감았다.
매정하기도 하지.
가면서 하고 싶은 말이 고작 저것뿐이었던가. 아무 말도 없이 그냥 휙 가 버리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또 막상 한다는 말이 저게 다라니 못내 서운하기도 했다. 물론 영영 이별하는 것도 아니니 그리 거창한 인사가 필요 없는 것도 맞긴 하지만….
‘…좀 너무하잖아.’
무서워서 확인도 바로 못 한 겁쟁이가 이제 와 뒤늦게 말은 엄청 많았다.
‘아니야, 됐어. 괜찮아. 말 그대로 정말로 영영 이별하는 것도 아닌데 뭐.’
다음 날 자리를 털고 일어선 환은 애써 그렇게 좌절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했다. 희서가 홧김에 궁을 나가 버렸지만, 그거야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환은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다.
또한 주영도 곧장 떠올렸듯이, 그에겐 아직 학교가 남아 있었다.
그래, 학교.
학교에선 희서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환은 오늘 학교로 가는 차 안에서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자칫 잘못했으면 아침에 간신히 먹은 걸 그대로 다 게워 낼 뻔도 했다. 차를 타도 타지 않아도 마음이 울렁거려서 어제부터 정말로 너무 괴로웠다.
그러면서도 학교가 점점 가까워져 올수록 희서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희서가 저를 보면 가장 먼저 어떤 표정을 할까. 어떤 말을 할까.
‘그럼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실은 어젯밤부터 희서의 우는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러니 마음이 약해진 그는 결국 평소처럼 내가 다 잘못했다, 미안하다 빌고 싶어졌다. 전날 그가 고집을 부리고 버텼던 것은 최유원에게 사과를 못 하겠다는 것이지, 희서에게 못 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 순간 제 편을 들어 주지 않는 희서에게 서운한 마음이 컸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원망스럽고 미운 감정도 다 한순간의 투정일 뿐이었다. 자고 일어나기만 해도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이었다. 희서를 향해서는 늘 그랬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어떻게 너를 미워해.’
그래, 희서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터질 듯 부풀어 올랐던 거친 감정이 사라져 텅 빈 그곳엔 희서를 보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 차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간절해졌다. 들이켜 보니 이젠 정말로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희서가 신신당부하며 절대로 해선 안 된다던 짓을 한 건 맞으니 말이다.
아니, 사실 이런저런 말도 다 필요 없었다.
‘희서 울렸으면 백번 잘못한 거지.’
거기까지 생각이 흐르니 더는 따지고 볼 것도 없었다.
“빌자.”
결국 환은 희서를 보자마자 넙죽 엎드리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래도 저래도 희서가 좋아 죽겠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교실에 앉아 쿵쾅거리는 제 가슴을 부여잡고 희서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막말로, 체면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져서 점점 더 그는 교탁 위에 올라서서도 울며 엎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아무리 기다려도 희서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곧 1교시가 시작될 텐데.’
초조한 환이 목을 쭉 빼고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교실 창문 밖을 두리번거려 봤지만, 희서는커녕 그의 머리칼 한 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뭔가 이상했다.
물론 2학기 기말고사까지 모두 마치고 달리 이렇다 할 일정이 없어 설령 결석을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환은 희서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의 성정으로 땡땡이나 결석 같은 건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그간 어떤 중요한 외부 행사가 있더라도 여건이 되는 한 학교엔 꼭 들렀던 그였다. 몸이 아파도 악착같이 등교는 해야 했고, 쓰러져도 양호실에서 쓰러지겠다 할 녀석이었다.
그런 희서가 전날 저와 싸웠다고 ‘화가 나서’ 학교에 오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맹세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니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혹시 어딘가 아픈 걸까?’
밤중에 그리 울며 나갔으니 그럴 수도 있을 듯해 환은 제 아랫입술을 초조하게 짓이겼다. 하지만 곧 맥이 탁 풀렸다. 그러면 뭘 어쩌겠는가.
이젠 자신이 가 볼 수도 없는데.
희서가 궁을 나갔다는 현실을 또 한 번 이렇게 체감하게 되자, 환은 참담한 심정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
어찌 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희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환과 유원은 교실에 그야말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보란 듯 요란하게 볼에 반창고까지 붙이고 왔던 유원은 자신을 봐 줄 사람이 없자 어쩐지 김이 빠지는 모양이었다. 정작 저에게 손찌검했던 당사자인 환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심드렁하게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초조하게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환도 사실 유원과 어제의 일 모두 그다지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일이야 오늘 아침 강이 일러 준 대로 황실 변호사가 명운 변호사와 어찌 합의를 보며 알아서 해결할 터였다.
실로 뻔뻔한 태도였지만 뭐 어쩌겠는가. 달리 환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사과?
그리하면 합의가 조금쯤은 수월해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마 희서도 그 순간 그러한 생각 때문에 제게 사과하라 몰아세운 것일 터였다. 그러나 환은 여전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일 거라면 애초부터 희서를 그렇게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환은 희서를 약점 잡아 휘두른 이 녀석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것도 그런 비열한 방식으로 감히 희서의 입술까지 훔치려고 했으니 말이다. 환은 그때의 광경을 생각만 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끝까지 가자면 끝까지 가면 되었다.
‘밖에 알릴 테면 알려 보라지.’
그렇게 되면 환도 최유원 저 녀석의 멱살을 붙들고 흙탕물 속에서 뒹굴며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자신에겐 이제 더 남은 것도 없었다.
희서를 만나지 못하니 더욱 그런 자포자기의 심정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