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희의 정원-103화 (102/145)

#103

권력이라는 것이 원래 그러한 것일까.

뭘 빼앗겠다는 것도 아닌데 지레 아무것도 나누고 싶지 않다며 몸서리를 치고 있는 모양새였다. 아니, 그들은 명백히 화를 내고 있었다. 그간 한없이 약하고 보잘것없게만 보아 왔던 황실이 이제 와 새삼, 감히 고개를 들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끝내 밟히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과거였다면 그와 같은 불똥을 맞기 전에 적당히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 여러모로 상책이라고 판단했을 터였다. 일종의 체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환은 도저히 전처럼 그리 생각할 수가 없어졌다.

‘싫은데?’

설령 밟히게 되더라도 그 전에 스스로 고개를 처박고 설설 기고 싶지는 않다는 소리였다. 더는 그런 맥없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상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고민이었다.

‘이 상황을, 이 치졸한 압박을 이겨 내려면 어찌해야 할까?’

황실이 관심받는 게 싫어?

‘그럼 더 끌어와야지, 그 관심.’

환이 찾은 답은 바로 그러했다. 그의 청개구리 심보가, 그것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엿이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그는 성격이 못되어 먹어서 싫다고 하면 더 싫은 짓을 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상대를 치를 떨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이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제 황실 사람 중에서 관심 끄는 거 잘하는 사람, 즐기는 사람이 달리 누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뿐이야.’

물론 대부분 희서에 한정된 것이었지만, ‘관종’이란 소리까지 듣는 환을 따를 자가 없었다.

사실 그 외에도 환은 희서가 전면에 노출된 이상 그를 향해 괜한 시선이 가지 않도록 자신이 소위 ‘어그로’를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거 자신 있지 또.’

환의 입가에 순간 사악한 웃음이 스쳤다.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방송 활동을 다 끊어 버렸다고 해도 기죽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사실 요즘 시대에 TV 프로그램에만 목을 매고 있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인터넷 방송, SNS,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는 소통 창구가 얼마나 많은가?

SNS 라이브 방송 같은 경우엔 연예인들도 곧잘 손쉽게 하는 것을 보았다.

환도 그것이 꽤 괜찮은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그도 상당한 팔로워를 보유한 SNS 계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 SNS를 통해서 재미 삼아 희서의 사진을 자랑하듯 몇 장 올리는 것이 다였지만, 그럼에도 올리는 사진들이 종종 기사화까지 될 정도였다.

그러니 그걸 잘 이용하면 어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듯했다.

엄청난 장비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 황실의 사정상 큰 부담이 없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영향력을 키워야 해.’

그래야 자신의 말을, 황실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테니 말이다. 앞으로 전략적으로 꾸준히 관리하면 분명 필요한 때에 긴요하게 쓰일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환은 과연 지금은 어느 정도일지가 궁금해졌다.

그걸 먼저 파악해 두어야 앞으로 어떻게, 어느 정도로 키울지가 감이 올 듯했다.

“…흠. 이렇게 하는 게 맞나.”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 켠 라이브였다.

사실 그러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시간상 다들 공부하고, 일도 하고, 아직 일상에 정신없이 쫓길 때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번엔 그저 어찌하는지를 익히며 라이브를 보러 들어온 몇몇 사람들에게 간단히 안부나 묻고 끌 요량이었다.

그런데 곧이어 미친 듯이 올라가는 채팅창 화면에 환은 잠시 당황한 낯을 숨기지 못했다.

간신히 읽은 두 글자 ‘미친’을 저도 함께 읊을 정도였다.

***

[환이 라이브 킨 거 실화임?]

길게는 십수 년의 덕질 중 처음으로 있는 일에, 환희의 정원 사람들을 비롯해 환을 아끼는 이들은 모두 고조되다 못해 혼비백산해선 머리를 풀고 달려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 라이브? 우리 애가?]

여러모로 감격할 만한 일이었다.

[잠깐만 욕설 허용해주자 착한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데 ㅈㄴ 잘생겼는데 미친아!]

[왜이래 나 아직 어제꺼 복습도 다 못 했는데 요새 떡밥 진짜 미쳤나]

[지금 못 봐서 개빡치는데 퇴사해도 되냐]

[잠시만 다들 진정해봐 환이 당황해서 버벅거려ㅋㅋㅋㅋ]

[중계) 어제 재미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켰다고 함]

[당연하지ㅠㅠ 내새끼 본업존잘에 떡밥 자판기 수준이었는데 노잼일 이유가]

[어제 희서한테 온갖 재롱 떨던 거 안 본 눈 제발 봐줘 다들]

[아닌 것 같아도 환이 황실 행사에 진심임ㅠㅠ 마냥 철없지 않아]

그런데 그처럼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어느 순간 어리둥절하게 바뀌었다.

[엥]

[뭐야]

[?? 뭔데 왜 뭐가 뭐야 나 밖이라 못 보는 중이란 말이야]

[중계) 어제 행사 관련해서 썰 푸는데 원래 예능도 예정되어 있었는데 취소되어서 아쉽대]

[뭐야 왜 취소야 누구 맘대로]

[영상으로 남겨서 길이길이 후대에 전할 생각을 해야지 뭐 하는 거야]

[고얀 방송국놈들 감 없냐 한 박스 사줄까 보다]

[아니 근데 그것도 아닌가 본데]

[뭐야 ㅅㅂ? 얼마 전에 카페 알바 한 거 그것도 방송 안 된다는데???]

[?????]

[뭐야 뭔데 장난치나 거짓말하지 마]

[뭔 소리야 존잘 카페 알바생 못 본다고? 목격담 보고 내가 얼마나 존버 했는데?]

[뭐가 문제인데 싹 다 취소돼? 이미 찍어 놓은 것까지 방송 취소되는 건 좀 이상한데?]

[라이브까지 하는 거 보면 우리 애가 사고 친 건 아닌 것 같은데]

이미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게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래도 뭔가 수상쩍은 상황이었다. 그러한 의심에 쐐기를 박듯이 작은 화면 속 환이 말없이 씁쓸하고 처연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은 사람들에게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리 애가 저리 웃는 애가 아닌데…!’

그러니 어찌 가만히 넘길 수가 있을까. 사람들의 분위기가 점점 심상치 않아졌다.

***

앞서 이야기한 바도 있지만, 환도 실은 오늘 당장 이렇게까지 다 말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뜨거운 열기와 쏟아지는 질문에 하나씩 답을 하다 보니 이리되고 말았다.

“…음. 네. 아쉽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연이은 방송 취소 소식을 환이 담담하게 그리 이야기를 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구구절절 눈물 바람으로 호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건 빼도 박도 못하고 싸우자는 뜻인데, 그렇게까지 몰고 갔다간 여차할 때 발을 빼기도 어렵고 괜히 역풍 맞을 위험이 있었다.

지금은 그러한 기색만 비쳐도 충분했다.

당장 많은 걸 바라지는 않았다. 오늘의 이 대화로 인해서 사람들이 당분간 황실을 둘러싼 움직임을 주시해 주기만 해도 대성공이었다.

“처음 라이브를 켜 봤더니 개인적으로도 연락이 많이 오네요. 음, 뭐라고 왔냐면… 당장 끄세요. 황실이군요. 흥. 싫어요.”

그러한 장난스러운 말투로 환은 지금 이 상황이 황실에 허락을 받지 않은, 자신의 독단적인 행동이라는 사실 역시 은연중에 알렸다. 혹시 이 일로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황실만큼은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자신이야 뭐, 원래 통제 불가능한 좌충우돌 말썽꾸러기 이미지였으니 새삼스럽게 타격이 있을 것도 없었다.

“얼굴? 얼굴 왜요? 지금? 쌩얼이죠. 왜? 못 봐 주겠어요? 죽인다고? 나를?”

그 뒤로는 관련 질문이 수없이 올라와도 못 본 척, 의도적으로 다른 질문에만 답을 했다. 하지만 간혹 말없이 화면을 응시하며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해서 하는 계산된 행동이었지만, 사람들은 차마 상상할 수 없을 터였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 말썽꾸러기가 말도 못 하는 것이냐며 민심이 들끓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던 중 환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 버렸다.

“환아!”

문밖에서 그리 부르는 희서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또렷하게 들려버린 것이었다. 그러니 환이 잠시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화면을 보고 얼어붙었다.

“이환!”

“…어, 왜?”

그러다 한 박자 늦게 답을 하니, 조금 멀리서 들리는 소리로 희서가 물었다.

“아까 충전기 쓰고 어디다 놨어?”

“어? TV 앞… 아니, 식탁 위에! 기다려, 내가 가져다줄게!”

“아니, 됐어. 내가 가져갈게.”

“안 돼! 싫어! 내가 할 거야!”

그 별것 아닌 대화에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나 환희의 정원 사람들은 거의 초 단위로, 환이 보여 준 잠깐 스치는 표정과 그의 뒤에 비친 배경까지도 정밀하게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일단 궁은 아닌 거 확실하지?]

[TV까진 그럴 수 있는데 식탁 얘기하는 거 보면 빼박이지]

[희서랑 같이 있는 거 보니 희서네 집이겠지?]

[전에 썰 풀던 애 어디 갔냐]

[희서 사적으로는 그냥 이름 부르는구나ㅠㅠㅠㅠㅠㅠㅠ]

[그럴 것 같다고 생각은 했는데 오피셜 돌았냐고]

[환아, 라고 불렀다(기절)]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심장이 뛰어]

[알아서 찾아가겠다는데 앙칼짐 뭐야ㅋㅋㅋ 싫엌!]

[떼쟁이 조카가 잠깐 보였다]

[아니지 희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겠다 이거라고]

[황실에서 끄라고 할 땐 단호하게 싫다고 하더니 참나 희서가 부르니까 냅다 끄는 거 봐]

[끌 때 손 너무 대충 흔든 거 아니니ㅋㅋㅋ]

[그래도 먼저 뛰어나간 다리에 비해 그나마 예의 있는 편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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