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장. 안전한 거리 (1) (9/23)

8장. 안전한 거리 (1)

창틀을 움켜쥔 손이 하얗게 질렸다. 태헌은 정말로 뛰어내릴 작정이었다. 한 가지 물음이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지만 않았다면.

‘연오는?’

알아서 뭐 할 건데, 쓰레기 새끼야. 네 얼굴 보면 연오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닫힌 문 너머에 둘만 남아도 긴장하는 사람을 왜 찾아. 염치가 있으면 연오가 어떻게 됐든 상관하지 말고 뒤지기나 해.

험악한 욕설 뒤로는 좀 더 이성적인 음성이 이어졌다. 안 죽었을 수도 있다고,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죽을 때 죽더라도 그가 무사한지 확인은 해야 한다고…….

태헌은 창문을 닫지도 않고 등을 돌렸다. 핸드폰을 찾아 누구에게라도 연락해 연오의 소식을 물으려 했는데, 핸드폰을 지닌 채로 핵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아마 핸드폰은 핵의 아가리에서 박살 났을 것이다.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태헌은 병실 밖으로 뛰어나가 복도를 가로질렀다. 기억을 잃었을 때는 당황스러운 순간마다 우왕좌왕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곧바로 정신을 수습하고 병원 접수대로 달려갔다.

“강연오 가이드 혹시 입원 중인가요?”

“잠시만요.”

대답을 기다리는 몇 초가 미치도록 길었다. 말아쥔 손에 금세 땀이 찼다. 제발 병실에, 살아만 있어 주었으면. 살아만 있으면…….

“지금 중환자실이네요.”

심장이 닻처럼 곤두박질치며 모든 장기를 다 발치로 끌어내렸다. 태헌은 망가진 듯한 기분을 돌볼 틈도 없이 곧장 중환자실 층으로 달려갔다. 소란스럽게 하면 안 된다는 상식적인 생각이 들기도 전에 입구에서 김현철 본부장과 부딪혔다.

비상구에서 강하게 충돌한 둘은 서로 놀라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침묵도 잠시, 태헌은 반쯤 달려들듯 물었다.

“연오 중환자실에 있죠. 다쳤어요? 아니면 설마 균열 독 때문에?”

‘연오.’ 기억을 잃은 후 정태헌이 연오를 그렇게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약한 위화감을 느낀 김현철이 자기가 막 닫은 문을 힐끔 돌아보았다.

“수술 막 끝났어요. 회복만 되면 일반 병실로 옮길 건데 지금은 상태 봐야 합니다. 난 접수대 가봐야 하고, 아직 의사 있으니까 들어가서 설명 들어요. 면회 시간은 지났는데…… 시끄럽게 하지 말고.”

태헌은 정신 나간 어린애처럼 달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안으로 들어가 연오의 병실 앞으로 안내받았다.

환자의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유리창 너머로 호흡기를 달고 누운 연오의 모습이 보인 순간, 태헌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핵으로 뛰어들기 직전까지 연오와 있었으니 결코 오랜만에 본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형편없이 마른,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환자복 차림의 연인이 무섭도록 낯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때마침 문이 열리고 의사와 간호사가 밖으로 나왔다. 태헌은 울컥 치미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에스퍼임을 밝히고 설명을 요청하자, 피로한 얼굴의 의사가 간호사를 먼저 보냈다. 태헌은 몰랐지만 그 의사는 연오의 가이드 수술을 주도했던 사람이었다.

“일단, 강연오 가이드 각성했습니다.”

“……각성?”

수도 없이 들어온 그 단어가 괴상한 외계어처럼 귀에 서걱거렸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가이딩을 한 가이드만 자연 각성한다는, 전에 들은 말이 떠올랐다. 날카로운 면도칼이 심장을 저미는 듯했다.

“그런데 각성 과정에서 몸에 있던 칩이 타버렸어요. 잔해가 내장에 달라붙어서 그거 수술한 겁니다. 안 그래도 약해진 상태여서 회복이 더딘 것 같고.”

“잠깐만요. 칩이요? 그거 분명히 제거했을 텐데 왜…….”

의사가 얇은 안경알 너머로 태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연오 가이드가 그랬습니까? 칩 없앴다고.”

태헌은 순간 멍해졌다.

칩을 제거하라고, 날 위해 약을 만들 필요도 없다고 말했으니 당연히 다시 수술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오는 센터에 남지도 않았고, 칩을 유지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한국대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칩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다.

제거하지 않았다니, 왜?

마음의 컴컴한 구석에서 또 칼날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왜겠어. 언젠가 네가 죽어가면 와서 가이딩해 주려고 했겠지. 그렇게 겪어 놓고도 연오를 몰라? 칩 빼란다고 정말 뺐겠어? 기억 잃었을 때도, 연오가 너한테 헌신적인 거 보자마자 알아차리고 마음껏 휘둘렀잖아.

그러니까 진작 뛰어내렸어야지. 연오를 완전히 놓아주고 싶으면 그렇게 했어야지. 가이드 결벽증 있어서 다른 사람 에너지 전혀 못 받아들이는 거 아는 연오가 정말 널 잊어버리고 잘 살기를 바랐다면.

아, 또 목숨이 아까우셨어?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연오 빨아먹고 살아났네. 축하한다, 기생충 새끼야.

“언제…….”

태헌은 잔인한 목소리를 떨쳐버리고 싶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언제, 깨어날까요?”

“하아…….”

의사가 한숨을 내쉰 후 안경을 벗었다. 그런 다음 아직 소독약 냄새가 나는 손으로 눈 위를 꾹꾹 눌렀다.

“허약한 상태였던 데다 정신적 충격까지 커서 언제 의식이 돌아올지 모릅니다. 균열 독도 수술 전에 해독은 했는데, 전에도 한 번 중독된 적이 있는지 해독 자체가 오래 걸렸어요. 여러모로 상황이 좋진 않으니까 경과를 좀 기다리세요.”

다시 안경을 쓴 의사가 간단히 묵례하고 태헌을 지나쳤다. 태헌은 유리창 너머에 망연히 홀로 남았다.

연오가 너무나 먼 곳에 있었다. 그의 생명력을 북돋우는 여러 기계와 선이 균열 촉수처럼 보일 정도로 먼 곳에.

단순히 거리만 먼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입장도 마음도 돌이키기 어려운 곳까지 틀어지고 말았다. 앞으로 이렇게 계속, 투명한 유리 너머로 연오를 보게 될 것만 같은 불안이 태헌을 덮쳤다.

많이 아픈 걸까. 아니면 그냥 잠을 잘 때처럼 편안한 걸까. 들어가서 손이라도 잡아 주고 싶은데, 중환자실 면회 시간은 이미 끝났으니 여기서 바라보는 게 최선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연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 초조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전부터 이랬다. 자신의 만성적인 고통보다 연오의 환절기 감기가 더 애달파 마음을 졸이곤 했다. 대학교에서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나, 요즘 밥을 부실하게 해줬던 건 아닐까, 철분제를 못 챙기고 놓친 날이 있지는 않았나 고민하면서.

연오가 겨울에서 봄이 될 무렵에 앓기라도 하면 여기에 새로운 걱정이 추가되었다. 혹시 부모님 기일이 다가와서, 마음이 고달파 몸도 아픈가.

‘엄마아…….’

‘엄마……. 아빠아…….’

공원에 주저앉아 하늘을 향해 울음을 터뜨렸던 연오의 모습이 뇌리로 달려들었다. 태헌은 트럭에 들이받히기라도 한 사람처럼 헉 숨을 멈췄다. 가슴께를 쥐는 손이 밀랍 같았다.

그는 연오가 부모님을 잃고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옆에서 전부 보았다. 상처가 너무 커서 스스로 기억을 잘라낸 것까지 빠짐없이 알았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연오를 그렇게 비참하고 외롭게 만들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또 센터로부터 연오를 지키지도 못했다. 연오가 혼자 앓을 때 옆에 있어 주지도 못했다. 차라리 박이정, 자기 각인 가이드를 죽인 그 한심한 새끼가 연오에게 더 도움이 됐을 것이다.

연오가 죽어가는 사이 자기 목숨만 구하겠다고 버둥거렸던 과거가 우박처럼 쏟아져 태헌을 쳤다.

열린 창도 없는데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아까 병실에서 창문을 열자마자 느낀 바로 그 바람이었다. 당장 뛰어내리라고, 빨리 너를 죽여버리라고 속삭이던 그 바람. 이제 창이 없어도, 마음의 험악한 골짜기에서 사시사철 태어나 불어올 그 바람.

‘차라리…….’

태헌은 마법 같은 단어를 곱씹으며 그 뒤에 문장을 붙여보았다. 차라리 죽는 게 편할 것이다. 차라리 죽어 없어지는 게 연오를 위한 길이다. 차라리 처음 핵에 들어갔을 때 완전히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차라리 나와 만나지 않았다면, 연오는 행복했을 것이다.

호흡이 뚝 끊어졌다. 길고 고요한 복도가 관으로 변했다. 아니, 온 세상이 관이었다. 가볍게 도약해 이능 없이 뛰어내리기만 하면 박살 난 몸 위에 하늘이 관뚜껑처럼 덮일 터였다.

‘그런데 왜 안 죽고 있어?’

심장 가운데가 끓는 듯 달아오르며 자문에 답했다. 피와 열로 새겨진 이름 세 글자, 강연오. 그 이름이 새겨진 자리가 화상 입은 듯 화끈거렸다.

연오의 각성을 실감할 수 없어 잊고 있었다. 병실 창문을 열었을 때 이걸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연오가 살린 목숨을 무슨 담배꽁초나 되는 양 내던지려 했다니 제정신인가. 연오는 각성 때문에 저렇게 시신처럼 누워 있는데.

그러나 죽지 않으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를 용서하고 사랑해 달라고 매달리기라도 하란 말인가. 아니면 영원히 얼굴도 보지 말자고 인연을 끊어야 하나.

‘연오야, 네 결정에 따를게.’ 그렇게 말하면 쉽기야 할 것이다. 양심적으로 보이기도 할 테지. 그러나 연오는 무슨 죄로 일이 이 지경에 이른 지금에도 결정하는 자의 괴로움을 짊어져야 한단 말인가.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진로도 퇴로도 끊어진 허무의 한복판.

마구잡이로 엉킨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침몰하는 배처럼 가라앉았다. 갑작스러운 공허 속에서 태헌이 떨리는 손을 유리창에 대 보았다. 차갑고 단단한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자, 환상에서처럼 주먹질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끓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태헌 앞에서 또 다른 그의 얼굴이 조소했다.

네가 연오를 죽인 거야. 말로든, 행동으로든.

꼴 좋다, 정태헌.

-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잘 수도, 먹을 수도 없어서, 한동안은 중환자실 앞만 서성거리며 마음을 태웠다. 우르르 일어나는 잡념들이 그를 괴롭혔다.

연오가 깨어나면 뭐라고 하지? 아니, 연오가 깨어날 수는 있을까. 설마 지금처럼 누워 있다가 자는 듯 숨을 거두는 건 아니겠지.

기억이 돌아온 건 말해야겠지. 그럼 연오가 뭐라고 할까. 헤어지자고 하면…… 아니, 이미 헤어진 거 아니었느냐고 하면 도대체 뭐라고…….

어떻게 사과하지. 지금까지 했던 말들, 지금까지의 행동들, 그걸 어떻게 없던 것처럼 지워 연오를 낫게 하지.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한 짓이 연오 안에 대못처럼 박혀 뽑히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못 견딜 것 같았다.

문제는 또 있었다. 자신은 연오 앞에서 핵으로 몸을 던졌다. 균열 트라우마 때문에 기억 장애까지 겪은 사람 앞에서 핵으로 뛰어들다니, 희생을 과시해 용서를 구걸하고 싶었거나 대가리가 비었거나 둘 중 하나다. 차라리 연오를 멀리 떨어뜨려 놔서 그가 참극을 목격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이미 연오는 모든 걸 봐 버렸으니 충격이 극심할 텐데,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지?

결국 연오가 의식을 회복해야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들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오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수술 후의 예후가 좋아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태헌아, 너 이러다 쓰러진다. 잠도 자고 밥도 먹고 해야 연오도 기다리지.”

아버지 정한철이 센터까지 찾아와 그렇게 설득했을 때, 태헌은 핏발이 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정한철은 아들의 눈에 살기마저 깃든 것을 보고 주춤했다. 태헌이 기억을 찾았다는 사실조차 듣지 못했던 그는 너무나 달라진 아들의 기세를 이기지 못했다.

“태헌아. 너 왜…….”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어요.”

“……뭐?”

“언젠가는 아버지가 연오 수술대로 끌고 갈 줄 알았다고요, 씨발.”

험악한 욕이 곧장 아버지에게로 날아갔다. 태헌의 태도가 이전과 다름을 알아차린 정한철이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너 설마.”

“각성하고 나서 집에도 잘 안 가고 전화도 안 한 이유가 뭔데요. 아픈 거 티 나면 아버지가 연오한테 수술 얘기 꺼낼까 봐 그런 거예요.”

“……그렇게 말하지 마라. 나도 연오 걱정해. 네 눈엔 내가 이기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수술은 연오 선택이었어.”

“그래요? 그럼 인천까지 쫓아가서 이기적이라고 몰아붙인 건 뭐예요. 염치도 없이.”

통렬한 조롱이었다. 그러나 정한철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분노한 아들과 맞닥뜨려야 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으므로 준비된 말을 할 수 있었다.

“널 그대로 둘 순 없었어. 그리고 연오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 나도 미안한 심정으로 부탁하러 간 거야. 세상 어느 부모가 두 눈 뜨고 자식 죽는 걸 지켜봐!”

“그래요, 사실 나 때문이죠. 내가 처음에 콱 뒈져버렸어야 했는데.”

“정태헌!”

태헌이 날아오는 손을 낚아챘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에게 맞아 주고 싶진 않았다. 태헌은 굳게 닫힌 병실 문을 흘끗 바라본 후 정한철의 손을 던지듯 뿌리쳤다.

“병원이에요. 소리 지르지 마세요.”

“너 어떻게 부모한테 그런 말을 해. 아무리 눈 돌아갔어도 어떻게!”

태헌의 입술이 사납게 비틀렸다.

“아버지야말로 사람이면 어떻게 그래요.”

“…….”

“혼자 남은 애한테. 나보다 어머니 아버지를 더 가족처럼 생각했던 애한테.”

정한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태헌은 자신과 닮은 그 낯을 이를 갈며 노려보았다.

“은퇴하기 전까지 센터 일로 바쁘다고 나랑 시간 보낸 적 없었죠. 균열 예측기 발명 전이라 24시간 대기조였다고, 그거 이해해요. 근데 이해랑은 별개로 아버지 어머니한테 별 정은 없었어요.”

“…….”

“연오가 이상하게 생각해서, 이제 부모님이랑 보낼 시간 많은데 왜 거리 두느냐고 해서,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라고 해서, 연오 속상하게 하기 싫고 이상하게 보이기도 싫어서 가끔 저녁도 같이 먹고 연오도 데리고 가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가 연오를…….”

태헌의 눈빛이 흐려졌다. 정한철은 허물어지고 무너지는 아들의 모습을 막막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긴, 다 내가 한 짓이죠.”

내가 등신처럼 기억을 잃지만 않았다면. 처음에 제대로 죽기라도 했다면. 아니, 기억을 잃은 후라도 연오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었다면.

“다 내가.”

“태헌아. 그거 네 잘못 아니야. 네 잘못이…….”

“당연히 내 잘못이죠.”

태헌은 기가 차서 조소했다. 자기 자신에게 향한 칼은 연오의 이름이 새겨진 심장을 관통했다. 그는 피부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피를, 연오가 다시 덥혀준 피를 느끼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어서 목만 꽉 메어 왔다.

“이제 평생, 거울 못 볼 것 같아요.”

정한철은 아들에게 더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스스로 목을 매고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아들의 모습이 환상처럼 달려왔다. 그 환상의 말발굽에 짓밟힌 듯 가슴 언저리가 뻐근했다.

태헌은 느리게 아버지를 등졌다. 혼자 병실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몹시 무거웠다.

문밖에서 벌어진 일 따위는 하나도 모른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연오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태헌은 수십 번 섰던 자리에 똑같이 섰다. 의식이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야윈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몸과 마음이 동시에 무너지며 무릎이 꺾였다.

태헌은 싸늘한 바닥에 무릎을 대고 연오의 손을 붙잡았다. 고요한 공기가 그를 심하게 내리눌렀다. 그는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연오의 손을 붙잡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불렀다.

“연오야.”

많이 나았다고 했는데. 균열 독도 전부 빠져나갔다고 했는데. 깨어날 때가 지났다고 했는데. 그런데 연오는 왜 눈을 뜨지 않는 것일까.

“나 미워서, 나 보기 싫어서 안 일어나는 거야?”

기억도 돌아왔는데. 너한테 다시 잘할 수 있는데. 네가 영원히 나 보기 싫다고 하면 그렇게 해줄 수도 있는데.

“아니면 너무 힘들어서 못 일어나겠어?”

이렇게 누워 있는 건 자신이어야 했다. 그러려고 죽은 건데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대답 없는 연오를 붙잡고, 또, 애새끼처럼 투정 부리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제발 일어나 줘.”

제발 살아줘, 연오야.

-

연오는 자신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꿈에 부모님이 나왔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특이할 정도로 사이좋은 가족이었다.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연오는 부모님과 손을 잡고 다녔다. 다녀오셨어요, 하며 안기기도 했다. 사춘기라고 일컬을 만한 질풍노도의 시기도 길지 않았다. 그 시기의 연오가 한 최대의 반항은 자기 방문을 닫아놓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역시 그때까지도 서로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만지작거리고…… 아무튼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잉꼬부부였다. 세상 부부들이 다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 연오가 약간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물론 가족끼리 다툰 적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다. 서로에게 실망하고 섭섭해한 적도 꽤 많았다. 그런데도 기억 속 가족들이 점점 더 완벽하고 아련해지는 것은, 추억에 죽음이 덧씌워진 탓이리라.

“연오야, 애인 소개해 준다며.”

꿈속의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뜨며 물었다. 바람이 서늘한 여름밤, 그들은 공원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연오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알겠다는 듯 머리를 주억거렸다.

“아아, 시현이?”

“시현이는 너 중학교 때 사귄 애잖아. 헤어진 거 아니야?”

“……내가 시현이랑 헤어졌다고 말했나?”

“아니, 그냥 눈치로 알았어. 너 엄마랑 아빠한테 시현이랑 사귄다는 말도 안 했었다?”

“섭섭해, 강연오.”

아빠가 정말 섭섭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연오는 아들의 연애를 눈치채고도 헤어질 때까지 간섭하지 않은 부모님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로 소개할 애인이라니, 누구 말하는 거지. 연애라고 해도 대부분 고백을 받아 사귄 것이고, 학생답게 예의와 상식을 지켜 어울리다가 헤어진 게 전부라 기억에 남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기억이 안 나? 네가 먼저 얘기했잖아, 성인 되면 소개해 줄 사람 있다고.”

“성인 되면? 나 지금 성인인가?”

“너 왜 그래?”

연오의 동문서답에 엄마와 아빠가 마주 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연오는 이 꿈의 설정을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하게 앉아 있기만 했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연오는 고민에 잠긴 채 차갑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떠먹었다. 여름 바람이 앞머리를 살짝 쓸고 지나간 순간.

“아.”

설마 그런 꿈인 건가?

“태헌이?”

“그래, 태헌이랬어. 성이 뭐였지? 김?”

“아니, 정태헌이야.”

꿈 특유의 붕 뜬 느낌 틈으로 의문이 스며들었다. 내가 남자랑 사귄다는 얘기를 부모님한테 했다고? 그런데 부모님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고? 물론 울며불며 반대하는 게 더 안 어울리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쉽게?

의문의 답을 구하기도 전에 공원을 산책하는 한 사람이 시야에 걸렸다. 연오는 생각할 틈도 없이 그를 불러세웠다.

“어, 태헌아.”

테이블 가까운 곳을 지나던 태헌이가 멈칫했다. 가벼운 반소매 티에 청바지 차림으로 산책하듯 걷던 그는 이끌리듯 연오를 돌아보았고, 가족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애인을 발견하자마자 얼굴이 환해졌다.

“연오야!”

태헌은 연오에게 간단히 인사한 후 곧장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연오 동기 정태헌입니다.”

“아유, 예의도 바르네. 운동하고 있었어요?”

“네, 그런데 이제 좀 쉬려고요.”

싹싹하게 말을 붙인 태헌이 연오 옆에 자리를 잡았다. 연오는 말도 안 되는 우연에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냥 어, 뭔가 이상하다, 정도의 느낌이 다였다.

“태헌이 먹을 게 없네. 우리가 다 입 댄 거라……. 연오야, 둘이 아이스크림 좀 사 와. 엄마가 카드 줄게.”

“됐어, 나도 알바비 받았어.”

“대학생이 벌면 얼마나 번다고? 가서 너희 먹고 싶은 거 사.”

엄마는 우격다짐으로 카드를 연오 손에 쥐여 주었다. 연오는 떠밀리듯 태헌과 함께 일어났다. 부모님이 보고 있을 게 뻔한데, 태헌은 슬쩍 연오의 손을 잡았다. 연오는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부모님은 흐뭇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자기들끼리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서로가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장난을 쳤다.

“…….”

우리 엄마랑 아빠는 진짜…….

“뭐 먹을래?”

공원 매점에는 아이스크림 종류가 많지 않았다. 연오와 태헌 둘 다 쭈쭈바를 골랐다. 태헌이 연오의 아이스크림까지 똑 뜯어 주었다.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태헌의 뒷모습을, 연오는 물끄러미 응시했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태헌이가 각성하지 않았나 보다. 움직임도 자연스럽고 아픈 사람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저녁 시간에 편안한 차림으로 산책이라니, 죽도록 아픈 사람이 할 리 없는 일이기도 했다.

매점 밖으로 나가며, 연오가 슬쩍 말을 붙였다.

“내가 부모님한테 너 소개해 준다고 했대.”

“맞아, 저번에 말했잖아. 이렇게 우연히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 반팔 티 입고 있는데.”

태헌은 깔끔하게 입어 놓고도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목덜미를 문질렀다. 서늘하게 식은 밤공기가 둘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연오의 물음이 바람에 실렸다.

“너 뭐 한다고 말씀드릴까?”

“응? 그냥 대학생.”

“아, 대학생. 그렇구나. 한국대?”

“너랑 같은 학교 가려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태헌이 장난스럽게 울상을 지어 보였다. 왜 이런 기본적인 것도 기억을 못 하느냐고 원망하는 표정 같기도 했다.

둘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부모님이 있는 곳까지 천천히 되돌아갔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청색 밤하늘 아래를 천천히 가로지르면서. 둘의 어깨가 가볍게 부딪혔고, 그때마다 태헌은 연오를 보고 세상을 다 가진 양 웃었다.

“너희 부모님이 나 마음에 안 든다고 하시면 어떡해?”

“…….”

“여기서 만날 줄 알았으면 옷 좀 더 신경 써서 입고 왔을 텐데. 근데 어떻게 딱 여기서 마주쳐. 나 엄청 놀란 거 알아?”

“…….”

“연오야?”

태헌이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애교 있게 웃어 보였다. 연오는 정말,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너 진짜 우리 부모님한테 인사하러 갈 거야?”

“당연하지.”

“그러지 마.”

“왜? 싫어?”

베일 같은 슬픔이 연오의 머리를 덮었다. 환상 속 세상이 한 겹 멀어지자, 자신의 욕망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거였구나. 에스퍼도 가이드도 없는 평범한 세상, 반소매 티에 청바지 차림인 애인과 공원에서 마주쳐 부모님에게 소개하게 되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알기에 연오는 아리게 웃었다.

“이런 건 너무 슬프잖아.”

태헌의 얼굴이 굳었다. 연오는 움직이지 않는 태헌을 남겨두고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갔다. 녹음 짙은 풍경이 파도처럼 출렁였다. 연오는 거센 물살에 몸을 맡기고 침몰했다.

그러자 꿈이 깨졌다.

연오는 엄마도 아빠도, 태헌이도 없는 현실로 되돌아왔다.

축축한 풀잎 같은 여름 냄새가 사라지고 병원 냄새가 났다. 균열에서 태헌을 붙들고 울다가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제대로 기억할 수 없지만, 상황을 보니 또 입원한 모양이다.

익숙한 불행이 차라리 편안했다. 연오는 무겁게만 느껴지는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려 현실을 직시했다.

병실 불은 꺼져 있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창문으로 비스듬히 비껴들었다. 방금까지 저녁 별이 빛나는 공원에 있다가 황금빛으로 물든 실내로 오니 순간이동을 한 사람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꿈에서 현실로 건너오는 다리를, 아직도 고단하게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연오야.”

가능할 리 없는 부름이 연오의 생각을 잘라냈다.

연오는 마치 자신의 온 존재를 기울이듯 느릿하게, 또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선이 닿은 곳에 어떤 기적이 있는지 보았다.

“연오야.”

아이처럼 울고 있는, 태헌이였다.

연오는 자신이 아직도 꿈을 꾸는 모양이라고 믿었다. 태헌이 아주 다정하고, 무척 애틋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방금 ‘연오야’라고 했다. 그가 자신을 그렇게 부른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저렇게 따뜻한,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간지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한 게 얼마 만인지.

저 표정, 저 눈빛을 몰라볼 리 없었다.

태헌이 기억을 되찾은 것이다.

“어…….”

대답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뱉은 후, 연오는 제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올려 보았다. 두근, 두근, 심장은 명백히 뛰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살아 있는 게 분명한데, 그토록 그리워했던 태헌이를 보고도 응당 범람해야 할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 무사히 살아났고 기억도 돌아왔구나.’ 정도의 건조한 현실 인식이 지금의 연오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도 한마디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연오는 머리를 굴렸다. 태헌이를 앞에 두고 머리를 굴리다니. 그가 전처럼 돌아오기만 하면 마음에서 말이 홍수처럼 쏟아질 줄 알았는데, 극적이고 눈물 나는 감동의 순간일 줄 알았는데, 현실은 이렇게나 구질구질했다.

“기억, 돌아온 거지?”

심지어 목소리는 왜 이러나. 일 년쯤 말을 안 하고 지낸 사람처럼 목이 갈라지고 목소리가 떨렸다. 연오는 불편감을 꾹 참고 ‘해야 할 말’을 끝맺었다.

“……축하해.”

태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울기 직전인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이상하리만치 덤덤한 연오의 축하 인사가 거울에서 튀어나오는 상스러운 욕설보다 더 아팠다.

“사람 먼저 불러올게.”

당장 이야기하고 싶지만 지금은 연오의 몸이 먼저다. 괴로움을 억누르고 건넨 말에 연오가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오는 그때까지도 자신이 왜 멀쩡히 살아난 태헌이를 보고도 울음을 터뜨리며 감격하지 않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답은 금세 나왔다.

너무 지쳤다.

너무 지쳤어…….

-

의사가 와서 이런저런 검사와 진료를 마칠 때까지 태헌은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자연 각성하면서 칩이 부서지고 탔어요. 잔해가 내장에 붙었는데 잘 제거된 상태입니다. 예후가 좋아서 일반 병실로 옮겼는데 생각보다 오래 누워 있었네요. 불편한 곳은?”

“딱히 없어요.”

이런 식의 대화가 한동안 이어졌다. 태헌은 가이드로 각성했다는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는 연오를, 개복 수술을 했다는 말에도 당황하지 않는 연오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 연오를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저, 혹시.”

연오가 나가려는 의사를 붙들었다.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언제 퇴원할 수 있나요?”

“배를 갈랐던 거라 상처가 아물 때까지 보름 정도 더 입원하면 됩니다.”

“더 빨리는 어렵겠죠?”

“당연히 권장하진 않아요. 보호자 동의 있으면 가능은 한데.”

‘보호자.’ 태헌은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연오의 단조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없어요, 보호자. 제가 결정하면 되죠.”

“너무 서두르진 말자고요. 좀 더 고민해 봐요.”

의사는 모호한 대답으로 연오를 실망시킨 후 자리를 떴다. 태헌은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 연오를 보며 몇 번이나 마른침을 삼켰다.

진정해, 정태헌. 함부로 설치지 말고 조용히, 잠잠히, 착하고 얌전하게 기다려. 나는 연오 보호자가 아니야. 연오는 더 이상, 더 이상 나한테…….

식은땀만 진득하게 흐를 뿐 생각이 더 이어지지 않았다. 나한테, 뭐. 연오는 나한테 감정 없다고? 의지하지 않는다고? 이제 내가 미워졌을 거라고? 기억이 돌아오든 안 돌아오든 똑같다는 걸 알았으니 경멸할 거라고?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태헌은 차라리 영원히 붙박여 있고 싶었던 구석을 벗어나 천천히 연오에게 다가갔다. 움직이는 기척에 연오가 피로한 얼굴을 들었다. ‘아, 맞다, 쟤랑 얘기해야지.’ 그 정도의 무미건조한 깨달음이 순한 얼굴을 덮었다. 적어도 태헌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연오야.”

연오가 올려다보지 않도록, 태헌이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많이 피곤해?”

“…….”

“쉬었다가, 나한테 십 분만…… 아니, 오 분만 시간 내줄 수 있을까?”

“…….”

“연오야.”

겁이 나서 목소리가 다 떨렸다.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연오의 마음을 읽을 수 없어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화를 내도 좋고 때려도 좋으니 울지만 말았으면. 그 바람이 너무 간절해서 태헌은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깍지 껴 강하게 맞잡았다.

연오 역시 태헌의 절박함을 읽었다. 기억 잃은 정태헌이었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그래서일까, 모든 일이 처음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피곤했다.

그러나 대화를 미루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연오에게는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핵으로 뛰어드는 태헌을 보면서 폭발한 물음이.

“균열에서 왜 그랬어?”

“……응?”

“나 운 좋게 각성 안 했으면 칩으로는 너 못 살렸을 거야. 죽을 줄 알면서…… 왜 거기로 들어갔어?”

호된 비난이나 잔인한 폭언이라도 달게 받아들였을 태헌을 멈칫하게 하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태헌은 질문의 의도를 읽지 못해 부단히도 연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연오는 검게 죽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볼 뿐 어떤 단서도 주지 않았다.

결국 태헌은 몇 번이나 마른침을 삼키고 솔직하게 답했다.

“너 살리려고.”

“…….”

“다른 에스퍼들이 늦게 올 것 같았고, 균열 독 때문에 너 눈에 실핏줄까지 다 터지고, 시간이 얼마 없어서.”

“…….”

“그래서 그랬어, 연오야.”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연오를 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번 다 연오를 살렸으니, 사실 그건 태헌이 자부심을 품어도 될 몇 안 되는 행동이었다.

분명 그럴 텐데, 연오가 눈을 몇 차례 깜빡이더니 쓰게 웃었다.

“다음에도 그런 일이 생기면 넌 똑같이 하겠네. 기억 없을 때도 그랬으니까.”

입이 말랐다. 고맙다는 인사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태헌은 바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대신 말을 빙 돌렸다.

“그게 아니라도, 나 정말 너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정태헌.”

짧은 부름이 단두대의 칼날처럼 태헌 위로 떨어졌다. 태헌은 연오의 마음을 사고자 다급하게 잇던 말까지 멈추고 얼어붙었다.

자신을 직시하는 연오의 표정에서 불길한 결의가 읽혔다. 연오의 눈가는 단단히 경직되었고 턱에 힘까지 들어갔다. 무언가 결심한 듯 굳게 다물린 입술이 가장 무서웠다. 연오가 더 말하지 못하게 막고 싶은 마음과, 그가 뭐라고 하든 무조건 고개를 끄덕여 순종해야 한다는 마음이 태헌 안에서 마구 뒤섞였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그만하자.”

연오는 그 말을 했다.

“여기까지 하자, 태헌아.”

태헌의 시간이 멈추었다.

일 초 일 초가 영겁처럼 흘렀다. 누가 시간을 고무줄처럼 잡아당긴 듯했다. 실제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아주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연오에게 매달릴 절절한 말을 고안할 수도 있었을 텐데, 태헌의 머릿속은 백지나 다름없었다.

연오가 이별을 고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빌거나 변명할 기회도 없이 이렇게 곧바로 작별의 말부터 찔러 넣을 줄은 몰랐다. 정말 내상을 입기라도 한 듯 턱밑까지 피가 고였다.

“연, 연오야.”

“…….”

“균열에서 그런 것 때문에 놀란 거 알아. 앞으론 그런 일 없을 거야. 내가 너한테 함부로 한 것도, 그것도 다…….”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연오가 무서워서, 태헌은 본능적으로 마른 손을 잡았다. 그런데 그때 연오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더니 손이 쑥 빠져나갔다. 태헌은 눈을 부릅뜨고 아무것도 쥔 것 없는 자신의 손바닥만 내려다보았다.

“미안.”

허벅지로 손을 가져간 연오가 속삭였다. 자기도 자기 행동에 당황한 것 같았다.

“좀 놀라서…….”

정말 미안한 어조에 태헌이 꾹 주먹을 쥐었다. 잡고만 있어도 황홀했던 연오의 손을 잡고 몇 번이나 에너지를 갈취했었나. 휘청거리는 그를 휘두르고 착취했던 기억이 두개골 안쪽에 음각으로 새겨진 양 선명했다. 태헌은 날카로운 끌이 제 머리 안쪽을 박박 긁어내는 듯한 통증과 함께 겨우 눈물을 삼켰다.

“헤어지자고…… 정말,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지?”

그 단어를 입에 담으며, 태헌이 간절하게 연오를 올려다보았다. 헤어져야 할 이유가 차고 넘쳐 차마 왜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는 연오가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 주길 바랐다. 뻔뻔한 마음인 줄 알면서도. 연오가 이별을 말하면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몇 번이나 다짐해 놓고도.

연오는 깜빡임이 거의 없는 태헌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기억을 잃은 태헌이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자신이 받은 충격이 새삼 떠올랐다. 지금 태헌이도 그런 마음일까. 조금 아픈 거야 당연하지만, 그래도 그때의 자신처럼 괴롭진 않았으면 싶었다.

“우리 이미 헤어졌어.”

“…….”

“기억 안 나?”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여 부드럽게 깎아낸, 둥글고 다정한 어조가 태헌의 심장을 갈아 버렸다. 타인을 생각할 기운 따위는 하나도 없다는 표정이면서도 연오는 있는 힘을 다해 태헌을 생각해 주고 있었다. 애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기본적인 예의를 차리는 것 같아서, 태헌은 견디지 못하고 침대에 이마를 묻었다. 둥근 뒤통수로 나직한 설명이 이어졌다.

“내가 그만하자고 한 건 그냥 우리 관계야. 너 죽어가면 나 수술받고, 나 죽을 것 같으면 네가 희생하고, 그런 거…… 서로 너무 힘들잖아.”

“난 안 힘들었어.”

태헌은 연오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한때 그들이 공들여 쌓아 올린 사랑이 해변의 모래알처럼 쓸려나간 연오의 눈을, 도저히 볼 자신이 없었다.

“난 안 힘들었어, 연오야……. 하나도…….”

연오 앞에서 죽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 끔찍한 모습을 연오 앞에서 보였으니 헤어지자는 말을 듣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다시는 널 위해 죽지 않겠다고 빌 수는 없었다. 그건 정태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태헌 앞에서 연오는 오히려 침착했다.

“그럼 내가 널 덜 사랑했나 보다.”

“…….”

“난 힘들었어.”

특별히 태헌을 원망하는 건 아니다. 기억을 잃고 열다섯 살 소년이 되어야 했던, 미성숙한 몸과 정신으로 고문과도 같은 고통을 견뎌야 했던 그를, 오히려 안쓰럽게 생각한다. 자신을 무슨 산소호흡기나 구명선 정도로 취급한 건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지만, 그래도 그는 마지막에 연오를 위해 목숨을 던졌다. 연오를 귀하게 여겼음을, 사랑했음을, 또 한 번의 죽음으로 증명한 셈이다.

그런데 이제 연오는 죽어야만 증명되는 사랑이 너무 무서웠다. 쉽게도 목숨을 버리는 태헌도 무섭긴 마찬가지였다. 마음에 상처를 입히다 못해 생명마저 갉아먹는 이 관계가 짐처럼 무거웠다.

더는 이 짐을 지고 갈 힘이 없다.

연오는 울지도 애원하지도 못한 채, 침대 아래 무릎을 꿇은 태헌을 바라보았다. 난제를 맞닥뜨린 듯 곰곰이 생각해 봐도 이제는 이 관계가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아닐 리 없다고 여겼는데…….

“가이딩은 걱정하지 마.”

태헌이 눈을 깜빡거렸다. 갑자기 왜 가이딩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연오는 어조를 좀 더 분명히 하여 부연했다.

“이제 각성했으니까 전처럼 몸에 부담이 가지도 않을 거야. 본부장님들이랑 상의해 보고 며칠 간격으로 와서 가이딩해 줄게. 너 안 아프게.”

“안 해줘도 돼.”

태헌이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연오를 잡을 수만 있었다면 그는 연오의 손등에 이마를 묻고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태헌은 연오에게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하염없이 그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나 가이딩 걱정하는 거 아니야. 가이딩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그냥 우리가…… 우리가 이렇게…….”

“상관없다고?”

연오가 헛웃음에 가까운 투로 되물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스스로의 고통이나 생명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태헌을 보고 있으니 거의 증오에 가까운 감정이 치솟았다.

태헌은 알까? 차라리 가이딩이라도 해 달라고 매달렸다면, 나 아프기도 죽기도 싫으니 살려달라고 애원했다면, 그냥 웃는 얼굴로 그를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난 상관있어.”

지친 어조로 내뱉은 연오의 입술 사이로 긴 한숨이 샜다. 못 견디게 피곤했고, 기분 탓인지 수술 부위에 가벼운 열감도 있는 것 같았다. 태헌이 부탁한 오 분이나 십 분은 이미 지났을 테니 여기까지 하고 싶었다.

“나중에 가이딩실에서 보자.”

“…….”

“앞으로 따로 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문병도 안 와도 돼. 아마 안 오시겠지만, 너희 부모님도 못 오시게 해줘. 부탁 좀 할게, 정말로 기운이 없어서 그래.”

이렇게 단조롭게 끝난다고?

태헌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쉽게 끝날 수 없는 관계였다. 미성년자일 때부터 끈끈하게 얽혔고 성인이 되어서도 열정적으로 연애했다. 현실의 모든 벽을 하나씩 뛰어넘고 부쉈다. 해결할 수 없는 벽을 만난 후에는 그 벽을 손톱으로 긁어가며 견뎠다. 그렇게 유지한 관계였다. 지독하게 함께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만하자는 짧은 말로, 이렇게?

지나간 한마디가 태헌의 머리를 찔렀다.

‘앞으로 서로 볼 일 없었으면 해요.’

기억을 잃은 자신이 직접 한 말이었다. 그때의 이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딱딱했다. 연오는 마지막 인사만 남기고 쫓겨나듯 병실을 나갔다. 기억을 잃은 채로도 유난히 마음에 걸렸던, 그 외로운 뒷모습을 떠올린 순간.

입 안 가득 고였던 애원의 말이 허무하게 녹아 버렸다.

간단할 수밖에. 연오는 이미 이별의 과정을 마쳤으니까.

태헌은 마땅히 해야 할 말만 남은 가슴 밑바닥을 박박 긁어 겨우 입을 열었다.

“부모님은 못 오시게 할게.”

“응.”

“너 싫으면 나도 문병 안 올게. 퇴원하는 날만…… 도와줘도 돼?”

“…….”

“옮길 것도 있고 퇴원 수속도 있고 너 혼자 하기에는 힘들 것 같아서. 살 집도…….”

“태헌아.”

연오가 눈을 내리깔자, 저물어가는 하늘의 마지막 빛이 긴 속눈썹에 빠짐없이 내려앉았다.

“그만하자고 했잖아.”

“…….”

“그런 거 다 그만하자는 뜻이었어. 안 도와줘도 돼. 아니, 도와주지 마. 필요 없으니까.”

애매하게 이어지는 관계는 또 희생을 낳을 뿐이다. 연오는 태헌이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과 행복하든 혼자 즐겁게 살든, 아무튼 자신의 인생을 꾸려가길 바랐다. 연오 스스로도 그러고 싶었으니까. ‘서로를 위해’라는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한 이기심은 둘 다 버릴 때가 되지 않았나.

연오의 단호한 결정을 읽은 태헌은 치받는 울음을 삼키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몹시 차갑고 아팠지만 그마저도 꼭 남의 일 같았다. 태헌은 다시 누울 준비를 하는 연오를 보며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등을 돌려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그럼…… 갈게, 연오야.”

나 기숙사에 있어. 필요한 일 있으면, 바로 올 수 있으니까 아무 때나 전화해 줘. 그냥 심심하거나 지루해도 연락 줘. 지나간 일이 떠올라서 괴롭거나 외로워도 혼자 앉아서 울지 말고 나 불러 줘.

언어는 후회의 댐에 가로막혀 범람하지 못했다. 연오는 인사를 마치고도 떠나지 않는 태헌을 한 차례 바라본 후, 분명한 어조로 인사를 돌려주었다.

“잘 가.”

꼭 최후 같았다.

아니, 명백한 최후였다. 용서를 비는 말조차 허락받지 못한, 간략하고 분명한 마지막.

문이 열리고 닫힌 후 그들은 각자의 공간에 남았다. 물리적으로는 고작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데, 연오와 별과 별 사이만큼 멀어진 듯했다. 사람의 속도로는 백 년을 달려도 다다를 수 없다는, 오직 아득한 광속으로만 돌파 가능한 거리가 그와 연오 사이에 가로놓여 막막했다.

다리가 풀려 문가에 주저앉았다. 태헌은 사색으로 질린 얼굴을 감쌌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연오에게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지 않았다면 끝내 병실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숨이 가빴다. 연오가 어떤 결정을 내린다 해도 다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는데, 분명 그랬었는데.

다 기만이었다.

도저히 헤어지지 못할 것 같았다.

-

연오와 ‘헤어진’ 뒤 시간은 정말로 느리게 흘렀다. 이제 오후겠지 하고 시계를 보면 열 시였고, 저녁인가 싶을 때도 밖이 환했다. 몸이 나아진 덕에 전처럼 고통에 몸부림칠 필요는 없었지만, 시간을 빨리 감기 할 수 있다면 아픔도 달가울 듯했다.

지난 며칠, 균열은 잠잠했다. 한 지역에 다수의 균열이 폭발하듯 발생한 이후 흔히 나타나는 일시적 소강상태였다. 공공의 안전을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태헌이 시간을 보낼 일이 또 한 가지 사라진 셈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시간을 연오와 함께 보냈다. 사소한 연락을 주고받고, 데이트 계획을 짜고, 연오에게 해 줄 새로운 요리를 검색하고, 연오와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그래, 사진.

태헌은 기숙사에 대충 쌓아 둔 짐을 뒤져 노트북을 찾아냈다. 만성 가이딩 부족 상태에 빠진 후에는 한가롭게 노트북을 붙잡고 있을 정신이 없어서 방치하다시피 했고, 기억을 잃은 다음에도 아팠던 건 마찬가지라 손댄 적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고장 난 것 같진 않았다.

반짝 밝아진 화면을 바라보며 태헌은 핏기 없는 얼굴을 문질렀다. 날이 저문 줄 모르고 불을 켜지 않아서 노트북 불빛이 눈가와 뺨에 하얗게 얼룩졌다.

온라인 드라이브에 접속해 그동안 정리했던 사진을 확인했다. 월별로, 또 해별로 사진을 나눠 두었기에 꽤 많은 숫자의 폴더가 가지런히 늘어서 태헌을 맞이했다.

아무 폴더나 클릭했는데 연오 사진보다 자기 사진이 더 많았다. 연오는 사진 예술에 관심 없었지만 태헌의 사진을 찍는 건 좋아했다. 방심했을 때 찍어도 못생긴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고 어찌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자기 사진은 대충 휙휙 넘기며 연오의 얼굴을 찾았다. 같이 해수욕장에 갔을 때, 제주도에서 수제버거를 먹었을 때, 연오가 한국대에 입학했을 때…….

연오는 늘 웃고 있진 않았다. 표지판 앞에서 뭔가에 골몰한 듯 미간을 좁히기도 했고, 강원도 관광지에서 나무 울타리를 짚은 채 생각에 잠긴 얼굴로 멀리까지 펼쳐진 산 풍경을 응시하기도 했다. 가파른 산의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물을 마시면서 숨을 고르는 사진도 있었다.

연오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아프지 않을 때까지만 해도 사진 정리에 공을 들였다. 기억을 잃었을 때 이 사진들을 한 번만 훑어봤다면 어땠을까. 부질없는 가정이 머리를 스쳤다.

연오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바싹 메마른 가슴은 버석거리며 더 심하게 갈라질 뿐이었다.

태헌은 계속해서 사진을 넘겼다. 과거로, 과거로 돌아가다가 보니 뜬금없는 음식 사진이 나왔다.

종이 포장도 뜯지 않은 햄버거 두 개, 감자튀김, 콜라, 그리고 쟁반 옆에 살며시 놓인 손 하나. 눈을 감고도 선명히 그려 볼 수 있는 익숙한 손이었다. 거스러미 하나 없는 깔끔한 손을 보고 있으니, 날카로운 발톱에 긁히기라도 한 듯 마음이 화끈거렸다.

저 손을 참 좋아하면서도 잡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

열일곱 살의 연오와 태헌이 처음부터 친했던 것은 아니다.

짙푸른 우울을 후드처럼 뒤집어쓰고서도 하얀 얼굴과 차분한 말씨 덕에 ‘음침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는 모범생 연오. 특별한 문제아는 아니지만 누가 봐도 교과서보다는 축구공이나 농구공과 가까울 것 같은 태헌.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았다.

어른이 된 연오는 학생 시절의 태헌을 어른스럽고 누구에게나 적당히 친절한, 자기만의 색깔과 여유가 있는 친구였다고 평했지만 사실 그건 좀 미화된 기억이었다. 의지할 ‘어른’이 절실했던 연오가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환상에 가까웠다. 태헌은 그냥 태헌이었고, 따라서 연오는 처음에 태헌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다.

태헌이 연오와 친해지려고 거울 앞에서 인사 연습이라는 부끄러운 일까지 해댈 때도 연오는 그에게 약간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태헌이 최선을 다해 부드럽고 착하고 친절한 척을 해 보였는데도 그랬다. 연오 입장에서, 태헌은 이유 없이 결이 잘 안 맞는 친구였다.

그 탓에 제안이나 질문은 대체로 태헌의 몫이었다.

“햄버거 먹고 갈래?”

집 방향이 정 반대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연오와 같이 하교하던 날, 태헌은 며칠 동안 다듬은 말을 겨우 꺼내 놓았다. 데이트 신청인 양 거창하게 말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연오는 그때도 지금도 전혀 모른다.

“아니, 저녁 안 먹을 것 같아.”

“점심도 거르더니.”

“좀 먹었어. 애들이 하도 급식실 가자고 해서.”

태헌은 ‘애들’ 이야기에 잠깐 입을 다물었다. 연오와 그럭저럭 친한, 적당히 활달하고 적당히 성실한 모범생 무리가 떠올라서였다.

“태헌이 너도 같이 갔잖아.”

물론 태헌도 그들과 함께 급식실로 가기는 했다. 연오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다른 애들과도 몇 마디 나누긴 했지만, 내내 연오만 쳐다봤다. 그래서 연오가 거의 손대지 않은 음식을 고스란히 퇴식구에 버렸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응. 근데 너 많이 안 먹은 것 같아서.”

“배가 안 고프더라고.”

대화가 어색하게 끊어졌다. 태헌은 마른 입술을 적시며 화젯거리를 찾아 머리를 굴렸다.

“저녁도 안 먹으면 부모님이 걱정 안 하셔?”

“어차피 안 계셔.”

연오가 그 말을 조금만 의미심장하게 뱉어냈다면 태헌도 곧바로 상황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연오는 부모님 출장 가셨어, 라고 말할 때와 똑같은 어조를 택했다. 부모님의 부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시기기도 했고, 괜히 개인사를 구구절절 털어놓기 싫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태헌은 연오의 말을 완전히 오해했다. 겨우 찾은 공통점을 놓칠세라 태헌이 재빨리 대답했다.

“나도 그런데.”

“……그래?”

“응. 이젠 얼굴도 기억 안 난다니까.”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균열 예측기가 없을 때라 대부분의 에스퍼와 가이드가 24시간 전국구 대기조 노릇을 할 때였다. 마지막으로 부모님 얼굴을 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지경이니 얼굴이 대수일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오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태헌을 빤히 바라보았다. 뜬금없는 질문이 날아든 것도 그때였다.

“햄버거 좋아해?”

“……응?”

“먹으러 가자고 했잖아. 좋아하냐고.”

“어어, 좋아해.”

햄버거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뿐인데 고백이라도 한 듯 뺨이 화끈거렸다. 다행히 연오는 태헌의 반응을 유난스럽게 받아들이는 대신 발걸음을 살짝 틀었다.

“그럼 먹으러 가자.”

“진짜?”

“어차피 너도 집에 가면 혼자 먹는 거 아니야?”

“맞아.”

“그러니까.”

‘그러니까’라니? 어쨌든 연오가 햄버거를 먹으러 가자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학교 근처 패스트푸드 식당까지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특유의 기름 냄새가 확 풍겨왔다. 정말 입맛이 없었던 연오는 햄버거 단품을 주문했지만, 태헌은 세트를 주문하며 감자튀김과 콜라까지 라지 사이즈로 바꿨다. 계산은 자연스럽게 태헌이 했는데, 당시의 연오는 그것을 못내 불편해했다.

둘은 조용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연오는 자기 몫의, 소스가 포장지에 잔뜩 묻고 양상추는 시들시들한 불고기 버거를 보며 잠깐 말이 없었다.

“왜 그래?”

벌레라도 들어갔나 싶어 태헌이 연오 쪽으로 몸을 살짝 숙인 순간.

연오가 표정 변화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

태헌은 또래 남자애가 그렇게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눈물을 닦아주는 법도, 따뜻한 말로 달래는 법도 몰랐던 그는 한 입도 씹지 않은 햄버거를 두 손으로 든 채 연오를 멍하게 바라만 보았다.

“미안.”

연오는 진심으로 당황한 듯 급히 뺨을 닦았다. 붉어진 눈가에 놀라움이 번져 있었다.

“나 왜 이러지? 빨리 먹자.”

바보처럼 입만 벌린 태헌을 앞에 두고 연오는 금세 울음을 그쳤다. 그런 다음 어쩔 줄 몰라 하며 가만히 있는 태헌을 두고 혼자 작은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태헌은 어버버 허둥거리며 제 몫의 콜라를 연오 쪽으로 밀어주었다.

안개처럼 연오를 감싼 우울의 민낯을 처음 목격한 게 바로 그때였다. 슬픔을 잊는 마취제라도 맞은 듯 돌연 눈물을 그치고 햄버거를 우걱우걱 씹어먹는, 그 얼굴.

아까 나눈 대화가 머리를 스쳤다.

‘저녁도 안 먹으면 부모님이 걱정 안 하셔?’

‘어차피 안 계셔.’

그냥 어디 가셨다는 의미가 아니었나?

나도 부모님 안 계신다고 섣불리 맞장구를 친 게 갑자기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대뜸 ‘너 혹시 부모님 돌아가셨어?’라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태헌은 속을 태우며 햄버거만 베어 물었다. 좋아하는 음식인데 맛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

상황이 그랬으니, 일주일쯤 후 돈가스를 먹다가 연오와 나눈 대화는 태헌을 당황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연오야, 너 토요일에 뭐 해? 옷 사러 가려고 하거든.”

“나 이번 토요일은 용인 갈 것 같은데.”

“용인은 왜?”

“납골당 가려고.”

납골당? 연오는 태헌의 혼란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돈가스만 잘게 썰고 있었다. 태헌과 함께 먹으면 밥이 좀 들어가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씩 먹을 수가 없어서 요즘은 음식 가지고 장난만 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한동안 못 가서. 엄마 생일도 곧이고.”

“……부모님 납골당?”

“응.”

태헌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애꿎은 돈가스에 시선을 꽂았다.

설마 설마 했는데. 부모님 얘기가 오간 뒤로 약속이나 한 듯 연오와 저녁을 함께 먹고 있어서 더 난감했다. 아무래도 연오는 자신도 부모님을 일찍 잃었다고 생각해 챙겨주는 모양인데, 본의 아니게 속인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낭패감보다 더 큰 감정은 이해였다. 교실에 덩그러니 앉은 연오가 왜 가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는지, 왜 햄버거를 먹다가 울음을 터뜨렸는지, 왜 만사 지친 사람처럼 구는지 알게 되자 이상하게 마음이 욱신거렸다. 태헌이 타인의 고통에 처음으로 감응한 순간이었다.

“그랬구나.”

“너희 부모님은 뭐 하셔?”

연오가 얼음물을 마시며 태연하게 물었다. 태헌은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멈칫했다. 눈에 띄게 허둥대는 태헌을 눈치챈 연오가 컵을 내려놓았다.

“혹시 돌아가셨어? 내가 전에 잘못 이해했던 건가? 집에 잘 안 계신다고 그랬던 것 같아서.”

“어……. 맞아.”

연오가 오해하지 않았다니 다행이긴 했지만 한 가지 의문이 못처럼 태헌의 관자놀이에 박혔다. 부모님을 잃었다는 동질감 때문에 저녁 같이 먹어준 게 아니었나?

막연한 의문만 사탕처럼 머금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태헌은 연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에스퍼고 어머니는 가이드라 센터에서 일하셔. 사실 센터에만 계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잘 몰라.”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러? 신기하다.”

“막 가까운 건 아니어서. 워낙 바쁘시고.”

“그래도 좋은 일 하시네.”

연오는 아주 작게 잘라놓은 돈가스 조각을 입에 쏙 넣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턱에서 식욕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엄마랑 아빠 유해, 일부라도 찾아다 준 것도 에스퍼였어. 뼈 한 조각도 못 찾을 줄 알았는데 너무 감사하더라. 따로 인사하고 싶었는데 원래 균열에 누구 투입됐었는지는 안 알려준대.”

“가끔 문제 되기도 해서 소송 아니면 말 안 해줄 거야.”

그 뒤로 일상적인 대화가 몇 마디 이어졌다. 자기 몫의 돈가스에 거의 손도 대지 못한 태헌이 어색하게 중얼거렸다.

“난 네가 나 부모님 안 계시는 줄 알고 저녁 같이 먹어주는 줄 알았어.”

“그래?”

막 물컵에 입술을 댔던 연오는 정말 의외라는 듯 눈을 올려 떴다.

“그런 오해 안 했고, ‘먹어주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난 네가 나랑 먹어준다고 생각했어.”

얘는 어쩌면 이렇게 말을 차분하고 예쁘게 하지? 거울 앞에서 아무리 연습해도 흉내 낼 수 없을 것 같은 부드러움이었다. 태헌은 막 정신을 차린 열등생처럼 연오의 어투를 허둥지둥 베껴 보았다.

“나도 먹어준 거 아니야. 너랑 먹는 거 좋아.”

“그래?”

“네가 햄버거 먹은 뒤로 항상 저녁 먹자고 해줬잖아. 그래서 다르게 생각한 줄 알았지.”

“저녁마다 부모님 안 계신다며. 너도 쓸쓸할 것 같아서.”

‘쓸쓸할 것 같아서.’ 정답고 말랑한 연오로서도 조금 쑥스러운 표현이었다. 연오는 무딘 포크로 돈가스만 쿡쿡 찌르며 민망함을 달랬다. 태헌을 계속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연오는 자신의 말이 일으킨 파문을 보지 못했다.

“맞아, 쓸쓸하지.”

불이 꺼진 집,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고 온기도 없는 넓은 집에 들어갈 때마다 그는 연오의 말대로 ‘쓸쓸했다.’ 집안일을 해주는 사람이 함께 있어도 공허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분주히 불을 켜면 어둠은 사라지지만 외로움은 밝은 조명 아래 그림자처럼 선명해졌다.

항상 입천장이 까진 채로 사는 느낌이었다. 여린 살이 까진 줄도 모르고 되는대로 지냈는데, 연오가 자기 옆을 쓱 스쳐 지나가면서 ‘너 거기 아프겠다.’라고 짚어 준 것 같았다.

몰랐던 아픔에 이름이 붙여졌다. 놀랍게도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구멍이 조금 채워졌다. 정작 마음 언저리에 이름표를 붙여 준 연오는 돈가스만 찌르고 있는데도.

“연오야, 아침에 같이 등교할래?”

불쑥 물은 건 충동이었다.

균열에 휘말렸던 사람은 길거리를 걷는 일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언제 또 균열이 열릴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만약 연오도 그렇다면 태헌이 함께 걸어주고 싶었다. 전에는 연오를 좋아했다 뿐이지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할 용기는 없었는데.

“왜?”

연오도 갑작스러운 제안이 조금 불편한 것 같았다. 어쩌면 값싼 동정이라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태헌의 말이 좀 더 빨라졌다.

“너랑 나 친한 거 아시고, 선생님이 좀 챙겨주라고 하시더라고. 이유를 몰랐는데 혹시 균열 때문이었나 싶고, 어, 그러네. 가끔 길에 나오는 거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잖아.”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었다. 어떤 교사도 태헌에게 ‘상처 입은 동급생’의 돌봄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을 걸고 거짓말을 하는 일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믿는 연오는 그 말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래? 괜찮다고 했는데 안 좋아 보였나……. 근데 너 멀리 살잖아. 안 와도 돼.”

“별로 안 멀어. 갈게.”

“……너 선생님 말씀 그렇게 잘 들었었어?”

그다지 모범생처럼 보이진 않는다는 소리 같아서 태헌은 살짝 웃었다. 연오가 이렇게 적당히 가볍고 쓸데없는 질문을 건넨 건 처음이었다.

“당연하지. 그럼 다음 주부터 가도 되지?”

“네가 너무 번거로울 것 같은데.”

“그래도 갈게.”

태헌은 선물이라도 받은 표정으로 열심히 돈가스를 썰었다. 연오가 오지 말라고 할까 봐 아예 쐐기를 박으면서.

“매일 갈게, 연오야.”

그날 연오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태헌은 평소처럼 바로 불을 켜지 않고 잠깐 현관에 서 있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고요한 공간에는 시곗바늘 소리조차 없었다. 태헌은 혀로 입천장을 쓸어 보며 ‘쓸쓸하다’를 발음하던 연오의 입술을 생각했다.

입 맞추면 따뜻할 것 같았다.

‘미친!’

태헌은 방금 한 생각을 지우기라도 하려는 듯 급히 신발을 벗고 온 집에 불을 켰다. 연오 덕분이었을까, 그 과정이 평소보다 훨씬 덜 외로웠다. 이렇게 충만한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연오가 너무 좋아!

연오한테 뭘 또 해주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없나?

그날 태헌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생각하며 잠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뼘 자랐고, 어설펐던 풋사랑은 여름 과일처럼 좀 더 달게 여물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기도 전에 태헌은 알게 되었다. 연오는 홀로인 집에서 쓸쓸할 친구를 위해 희생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에 구멍이 난 사람은 공허를 채워 줄 사람이 아닌 같은 구멍을 지닌 사람을 찾아다니기 마련이다. 그리고 찾던 이를 발견하면 꼭 한 번쯤은 결합해보려 든다. 저녁을 함께 먹어 준 연오의 행동은 딱 그 정도 의미였다.

연오는 유별나게 다정하긴 하지만 천사는 아니었다. 외로움이 커 타인의 감정에 민감해졌을 뿐이지 헌신적인 위로자는 아니었다. 연오는 그냥 연오였다. 평범한 고등학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알고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때, 태헌은 진짜 사랑을 했고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제약실을 부수며 느낀 것과 비슷한, 비약적이고 급속한 성장을 겪으며 앓기도 많이 앓았지만 그는 결국 연오와 진짜로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둘이면서 하나인 채로 몇 년을 살았다. 미성숙한 시절에 만나 뿌리부터 얽힌 관계였다.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하나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관계라는 위기감은 솔직히 전혀 없었다. 스물한 살의 봄, 기억을 잃고 연오를 망가뜨리기 전까지는.

태헌은 아무것도 아닌, 그리 맛있어 보이지도 않는 음식 사진을 앞에 두고 상념을 이어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그만하자.’

연오의 뜻대로 하자. 연오 말대로, 이 관계는 서로에게 좋을 게 없다. 특히 연오에게 훨씬 더 해롭다. 정말 연오를 사랑한다면, 정말 연오를 위한다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가이드 수술을 입에 담는 연오를 보며 헤어지자는 말을 야멸차게 내뱉었던 스무 살의 연말처럼. 정말로 연오와 헤어질 각오를 했던 겨울처럼.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별을 고한 이가 자신이 아니라 연오라는 것뿐이니, 마음만 굳게 다지면 이별도 정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였다.

‘이제 그만해, 정태헌.’

태헌은 달콤한 추억으로부터 달아나듯 노트북을 껐다. 탁 소리가 나도록 노트북을 닫고, 그것을 원래 있던 자리에 대충 쑤셔 넣었다.

그런 후에야 얼굴이 눈물로 흥건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태헌은 우는 줄도 모르고 운 자신을 믿을 수 없어서 손등으로 뺨을 훔쳤다. 열이 몰린 눈과 시큰한 코까지 인지하고 나자 헛웃음이 났다. 균열의 핵으로 뛰어들 때도 이렇게 바보처럼 울지는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보고 싶은데 어떻게 헤어지지?

태헌은 어스름이 내린 기숙사에 웅크려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어둠 속에서 이러고 있으니 옛날 같았다. 가이딩 부족으로 인한 아픔을 혼자 삭이며, 혹시 연오가 깨는 건 아닐까 숨죽여 신음하던 옛날. 이제 연오가 없으니 목놓아 울어도 아무 문제 없는데, 그는 통곡하는 법을 잊은 듯 조용히 흐느꼈다.

4권에 이어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