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23/23)

7.

박이정은 센터 1층 카페에 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옆자리에는 새로 각성한 가이드가 앉아 있었는데, 올해 박이정이 담당할 멘티였다.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그의 작년 멘티였던 강연오가 가뿐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당연히 강연오도 혼자가 아니었다. 정태헌이 그 옆에 바짝 붙어 있었으니까.

“어, 강연오 가이드네요.”

연오는 센터에 온 지 얼마 안 된 멘티도 알아볼 정도로 유명 인사였다. 요즘은 다른 가이드들과도 꽤 친밀하게 어울리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도 하는 것 같은데, 가이딩에만 매진하던 위태로운 모습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이 정태헌 에스퍼예요.”

“알아요. 저희 단톡방에서 엄청 유명하거든요.”

“단톡방?”

“네, 올해 각성한 사람들 있는 단체방 있어요.”

요즘 사람들은 그런 것도 만드는구나 싶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박이정 옆에서, 앳된 얼굴의 멘티가 목을 길게 뺐다.

“근데 정태헌 에스퍼 표정이 안 좋아 보여요.”

“그래요?”

연오 옆에 붙어 있을 때마다 세상을 가진 듯 기분 좋아 보이던 사람이 왜.

박이정은 어쩐지 초조해 보이는 정태헌을 물끄러미 관찰했다. 확실히 연오와 얘기하는데 얼굴에 미소도 없고 손도 불안해 보였다. 연오의 얼굴을 보니 그와 싸운 것 같지는 않고. 그럼 저렇게 불안할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오늘 매칭률 측정일인가?’

정태헌의 유난에 비해, 두 사람의 매칭률은 79퍼센트를 넘지 못했다. 그걸 가지고 은근히 정태헌을 깎아내리며 비웃는 에스퍼도 있었다. 성질머리가 얼마나 거지 같으면 각인까지 해놓고 매칭률이 80퍼센트도 안 되느냐고 말이다. 안 그래도 강연오를 공유하지 않고 품에 싸고 있는 게 보기 싫은데 건수 하나 잡았다 싶은 모양이었다. 정태헌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정도로 간덩이가 부은 놈은 없었지만 말이다.

박이정은 태헌을 보고 뭔가 얘기하며 웃는 연오에게 시선을 돌렸다. 기억 잃은 정태헌과 재차 매칭률을 측정했을 때와는 달리, 그는 편안해 보였다. 매칭률이 잘 나와야 한다는 부담에도 시달리지 않는 듯했고. 느슨하게 풀린 입가와 태헌을 다독거리는 몸짓이 연오의 편안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는 정태헌의 마음도 이해는 갔다. 연오를 사랑하는 그에게 있어, 매칭률은 단순히 가이딩 효율 문제가 아닐 테니까. 매칭률이 오르지 않는 이유가 자신의 과거 때문인가 속이 타기도 할 것이다.

그때 연오가 태헌을 향해 정확히 뭐라고 말했다. 박이정은 유리벽 너머로 입 모양을 읽었다.

괜찮아, 태헌아.

연오의 손이 태헌의 머리카락을 톡 건드렸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한마디, 일상적인 스킨십.

고작 그것만으로도 태헌의 분위기가 변했다. 서두르는 듯하던 걸음이 안정되고 그를 감싼 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꼭 그 한마디에 가이딩을 받은 것 같았다.

박이정은 턱을 괸 자세 그대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배 아파…….”

“배 아프세요? 차가운 거 드셔서 그런가?”

“그건 아니에요……. 아이고, 배야…….”

옆에 앉은 가이드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박이정을 바라보았다. 어조는 장난스러운데 멀어지는 강연오와 정태헌을 응시하는 옆얼굴은 어쩐지 쓸쓸했다. 가이드는 섣불리 말을 붙이는 대신 자기 몫의 커피만 한 모금 마셨다. 유난히 다정해 보이는 둘의 뒷모습을, 박이정처럼 주시하면서.

나도 나중에 저렇게 지내고 싶다.

농도와 깊이는 달랐지만, 박이정과 가이드 모두의 입에서 부러움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

매칭률이 오르지 않는 건 분명 나 때문이다.

태헌은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보며 흠칫 떨던 연오를 기억했다. 단둘이 닫힌 공간에 남으면 눈에 띄게 불안해하던 연오도. 자살이라도 시도하듯 약을 만들려 했던 연오나 네게 실망했다고 차갑게 일갈하던 연오도 기억했다.

그는 여전히 거울 속의 자신을 보지 못했다. 연오가 그런 증상까지는 모르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건조한 안내와 동시에 연오와 태헌의 손이 맞닿았다. 태헌의 손은 긴장 때문에 평상시보다 더 차가웠지만, 연오는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한때 그토록 마음을 졸이며 앉아 있었던 이 자리가 무척 편안하고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오늘은 매칭률이 조금이라도 올랐으면 좋겠는데. 이 바람은 자신 때문이 아니라 태헌 때문이었다.

삑, 삑, 삑…….

규칙적인 기계음만이 정적을 채웠다. 태헌은 연오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긴장한 얼굴로 책상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연오가 손을 살짝 흔들어 그의 주의를 가져왔다. 살며시 웃어 주자 경직되었던 태헌의 얼굴도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다 됐습니다.”

연오가 태헌의 손을 한 번 꽉 잡아주었다가 떨어졌다. 태헌은 직원의 손에 들린 결과지를 힐끔거렸다. 보고 싶기도 하고 보기 싫기도 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틈에 연오가 손을 뻗었다.

“저 봐도 돼요?”

“네, 그럼요.”

직원이 선뜻 결과지를 건네주었다. 가장 위에 적힌 숫자를 확인한 연오가 모호한 태도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도 매칭률이 오르지 않은 모양이다……. 태헌은 괜히 땀이 차는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지르며 실망감을 감추었다.

그때 둘의 시선이 부딪혔다. 연오가 헛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었다.

“너 아쉽겠다, 태헌아.”

결과지가 불쑥 내밀어졌다. 설령 그게 폭탄이라 해도 태헌은 받아들었을 것이다. 연오가 주는 걸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아니야, 매칭률이 뭐가 중요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중얼거린 태헌이 겨우 숫자를 확인했다. 곧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99%.

굵은 글씨로 선명하게 적힌, 둘의 매칭률이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감동에 말을 잃은 태헌의 손에서 결과지가 빠져나갔다. 간단히 안을 정리한 직원이 먼저 밖으로 나갈 때까지, 태헌은 99라는 숫자가 적혀 있던 곳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태헌아.”

연오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용서한다고, 또 이해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그에게는 눈에 보이는 증거가 필요했을 것이다. 용서의 증거가.

“모자라는 1퍼센트는 차차 올리자.”

연오의 손을 잡는 태헌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머리를 숙여 연오의 손에 이마를 붙였다. 얼마 전에 맞춘 반지가 빛나는 왼손 약지에 입을 맞추면서도 그는 쉽게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언젠가는 거울도 볼 수 있겠지.

연오와 함께한다면.

“응, 연오야…….”

연오는 말갛게 그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100퍼센트의 연인이라고 여겼던 태헌을 잃고, 50퍼센트의 매칭률에 실망하고, 떨어지기만 하는 숫자를 두려워하고, 결국은 그렇게 시들어 버릴 줄 알았던 우리의 인연.

완벽하지 않아도, 여전히 사랑한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

후천적 가이드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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