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하다 말고 돌 씹은 표정이 되어 주인이 고개를 돌리자 독이 오른 눈을 한 채 양 여사가 그를 부추겼다.
“왜. 더 해 보지.”
“…….”
“퇴직금 정산해.”
“미안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해?”
“응.”
“내가 갈 데 없어서 너 밥 해주며 돈 받는 거 아니다.”
“알아.”
그제야 주인은 숟가락을 들고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양 여사가 제대로 화를 내면 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몸으로 깨쳐 알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그녀는 아무리 화가 나도 밥 먹는 사람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밥 먹을 때 체할까 무서운 주제로 조곤조곤 따져 주시기는 하신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녀가 식탁의 의자를 끌어다 앉자 주인은 더더욱 열성적으로 밥을 퍼먹었다.
“우주인 사장님.”
“……?”
“우주인 사장님. 할 말이 있어요.”
“왜 그래. 무섭게.”
배 변호사나 차예진 같은 사람들은 고용인이 되어 고용주에게 조카 대하듯 하는 양 여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가 정색을 하고 존댓말을 할 때 거의 공포에 질린 듯 구는 우주인도 이상한 괴물 보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우주인은 단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하대하는 것을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 뿐이었다.
“연말까지 일하고 나 그만둘래.”
“왜 또! 월급 더 올려 줘?”
“언제까지 음식 투정하며 살 거야. 좀 더 젊은 아줌마 써서 해먹고 살아. 나도 쉬어야지. 다 늙어 이게 무슨 고생이야.”
“싫어! 양 여사 말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음식 따위…….”
“까탈 부리지 말고. 나도 늙었어. 그래서 여기저기 삐걱대고 한 군데 두 군데 망가지고 그래. 늙으면 그런 거니까 이제 좀 쉬어야지. 젊어 뼈 빠지게 일했으니 늙어서 편하게 쉴 자격 있어.”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식탁의 유리 상판이 깨질 정도로 난폭하게 수저를 내던지는 주인에게 짐짓 무섭게 인상을 썼지만 양 여사는 그 정도면 양반이라 생각했다. 저 성질 머리에 이 화제를 저만큼 참아 내는 것도 우주인이 나이를 먹어 간다는 증거다.
“내일 당장 그만둔다는 것도 아니고 연말까지는 밥해 준다잖아.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그럼 나보고 굶어 죽으란 소리야?”
“내일모레 나도 환갑이다. 힘에 부쳐 더는 일을 못하겠다는데 어쩌라구. 그리고 굶어 죽기는 왜 굶어 죽어. 사흘만 굶어 봐라 쉰밥도 감지덕지 먹는 게 인간이야.”
“싫어. 안 먹어. 다른 사람이 해주는 음식은 먹기 싫어. 출장 가서 먹는 것도 죽을 맛인데 집에 와서까지 마음에 안 드는 음식을 왜 먹어. 그냥 일해! 월급 더 올려 줄게.”
“내가 돈이 없어서 이 나이 먹도록 삼시 세 끼 네 밥 해다 바치는 줄 아니?”
“씨…….”
양 여사는 지금까지 우주인이 맛있게 잘 먹고 있던 나물과 멸치 볶음 접시를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맛있지?”
“왜!”
“그거 삼봉이가 했어. 애가 음식 요량이 있는 거 같아 시켜 봤더니 제법 잘해. 지금부터 찬찬히 가르쳐 놓을 테니까 애 월급 제대로 주고 집안일 하는 사람으로 부려. 지금까지 들어온 사람들이야 맨 돈 받을 생각만 하지 내 살림이다 하면서 일하는 정신 상태 아니라 쫓아냈지만 삼봉이는 애가 꽤 괜찮아. 야무지고 똑똑하고 솜씨도 있고 앞으로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까지는 여태 그런 사람 없었다 싶게 잘해. 그러니까 내년에 계약 연장하자고 해서 데리고 부려. 시간 많으니까 그 때까지 더 좋은 사람 있나도 알아보고. 난 이제 힘들어서 못한다.”
“맛없어! 그냥 양 여사가 해줘. 난 코딱지가 한 음식 같은 거 안 먹어!”
양 여사는 어린아이의 어깃장과 같은 음식 투정을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힘들어서 못한다는 말 어디로 들었어. 난 할 말 다 했고, 인수인계도 충분히 할 테니까 연말에 내 퇴직금이나 정산해 줘.”
“양 여사!”
“장 보러 간다. 다 먹고 나면 삼봉이 불러 치우라고 해. 밖에 나갈 일 없지? 예진 씨 좀 쓸게. 김칫거리 사와야 하는데 혼자 가면 힘들어.”
입맛이 뚝 떨어졌는지 입이 댓 발은 나와 투덜대는 주인이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안 나가.”
“그래. 그럼 나랑 예진 씨는 장 보고 올 테니까 급한 일 있으면 전화해.”
“……저녁때 고기찜 해 줘.”
이런 때 보면 영락없이 초등학교 다니는 애다. 양 여사는 비리게 웃었다.
“돼지고기 삶아서 묵은지에 조려 줘?”
“응.”
“그래. 알았어.”
인정머리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는 양 여사가 나가 버린 후 혼자 식당에 남겨진 주인은 이 암담한 사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삼봉이에게 음식을 가르쳐 놓겠다는 그녀의 말은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당장 내년부터 굶어 죽게 생겼으니 어떻게든 양 여사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문제는 그 방법인데 돈으로는 붙들 수 없으니 뭐든 새로운 타결책이 필요했다.
그는 몹시 고민했고, 그래서 점심을 조금밖에 먹지 못했다.
팩스를 검토하고 밥 먹으러 내려올 때 그러했던 것처럼 밥상을 물리고 주인이 계단참에 갔을 때도 삼봉은 열심히 계단을 닦고 있었다. 아까 내려올 때 발로 슬쩍 밀었더니 대번에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덤비는 것에 ‘씁!’ 한 마디 해주기만 했던 그는 이번에도 삼봉이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대들면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할 생각으로 조그만 궁둥짝을 발로 슬쩍 밀었다.
“아. 자꾸 왜 그래유! 나한테 뭐 할 말 있시유?”
“거치적거리잖아.”
“말로 하면 되잖아유. 왜 사람을 발로 밀어유. 입 뒀다 국 끓여드셨시유?”
“사람 드나드는 계단참에서 뭉개고 앉아 벌써 한 시간째 넌 뭐 하는 건데.”
“보면 몰러유? 청소하잖여유.”
“청소하는 건 네 사정이고 난 이층에 볼일이 있으니까 가겠다는 건데. 뭐!”
“누가 가지 말래유? 말로 비키라 그럼 되잖어유. 내가 지금 내도록 그 말을 하고 있는 건디. 넘의 말을 대체 워디로 들어유?”
“비켜. 됐지?”
주인은 의기양양하게 허리춤으로 손까지 올린 자세로 말했지만 삼봉은 그만큼이나 맹렬한 기세로 콧방귀를 꼈다.
“되긴 뭘 되유. 밀가루 반죽이 되유. 밥이 되유. 여즉 사람을 다 해진 공차 듯이 이리 툭! 저리 툭! 걷어차 놓고 이제 와서 되긴 뭐가 됐다고 그러는 거여유 시방!”
“이게 뭘 잘했다고 지랄이야. 뒈질래?”
짐짓 고약해지는 주인의 기세에도 불구하고 삼봉이 이만큼이나 화를 내는 것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도무지 그로서는 이 안하무인의 집주인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이 있으니 이층에 올라갔겠지만 고작 밥 먹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꽁지에 불붙은 망아지 모냥 마구잡이로 달리는 와중에 삼봉을 걷어차 엉치뼈가 시큰하도록 걷어 채인 것이었다. 그래 놓고서는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 없이 식당으로 쏙 들어가 버리니 처음엔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화낼 당사자가 자리에 없었다.
집주인 눈에 들어 깔머슴 생활을 끝내면 꼭 이 집에 붙어 돈 받고 일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은 다지는 것이래도 사람을 거치적거리는 물건 취급하며 이리저리 발로 툭툭 미는 것은 도무지 용서가 되지 않는다. 요 까탈스러운 성질 머리 덕택에 타박도 많이 듣고 고생도 수태했으면서 고치는 일은 요원했다. 한번 수틀리면 악귀같이 물고 늘어지니 고향 마을에서는 이제 정평이 나서 정삼봉 심기를 거스르느니 염라대왕하고 멱살잡이를 하겠다는 말을 하며 슬슬 피하지만 여기서야 그러겠는가.
그리고 지금 정삼봉 만큼 우주인도 기막히고 황당했다. 그들 모두 상대방의 마음을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하기에는 다소 독선적인 면을 갖고 있었다.
으르렁거리듯 이를 갈면서 주먹을 움켜쥐는 주인의 모습을 보자 정삼봉은 턱을 바짝 당겨 세우고는 우주인의 면전으로 얼굴을 갖다 밀기 시작했다.
“왜유. 한 대 칠려구유? 쳐유. 쳐 봐유.”
“이게 진짜!”
보기에도 살벌해 보이는 주먹이 번쩍 올라갔을 때 삼봉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악다구니도 써 볼 만큼 써 봤고, 독종에 표독이라는 소리도 들어봤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은 매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삼봉이 가장 못 하는 일은 남을 때리는 일이다.
맞는 일도 싫지만 때리는 일은 더 싫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어지간히 나이가 들기 전에 삼봉의 얼굴에는 언제나 휘황찬란한 멍과 상처들이 훈장처럼 달려 있었다.
반면 코딱지만한 놈이 무서운 거 모르고 바락바락 대들 때는 정말 한 대 쥐어박을 작정이었지만 정작 그쪽이 질끈 눈을 감은 채 발발 떨기 시작하자 주인은 요걸 어쩌나 하는 심정으로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르르르르…….]
갈등은 아주 잠깐이다.
익숙한 경고음에 주인은 움찔하며 몸을 떨었고, 그런 다음 오랜 시간에 걸쳐 몸에 익은 대로 냅다 삼봉을 밀치며 계단 위로 올라섰다. 등 뒤로 날아오르듯 움직이는 무언가에게 아무런 가책 없이 정삼봉을 재물로 던져 주고는 꽁지가 빠져라 이층으로 올라가 버린 것이다.
그것은 그가 생각하고 판단하기 이전에 몸이 만들어 낸 치사함의 성과였다.
갑자기 휘청하며 몸이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눈을 뜬 삼봉은 가까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는데 곧이어 묵직하게 팔 안에 안겨 오는 생물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까지 핏대를 세우며 싸우자 들던 집주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음마?”
답삭 삼봉의 가슴팍 안으로 뛰어든 주인공은 혀를 길게 내 빼물고 가열차게 꼬리를 흔드는 중이었다. 어찌나 세차게 흔들어 대는지 궁둥짝까지 연방 씰룩씰룩 물결치는 것처럼 움직였다.
“금자 아녀. 너 여기는 우째 들어온 거여?”
개가 대답을 할 리가 있나.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친김에 삼봉은 하나 더 물었다.
“혹시 방금 전까지 여그 있었던 살짝 실성한 거 같은 양반 못 봤냐?”
오렌지색의 짧은 털을 갖고 있는 묵직한 강아지는 대답 대신 뾰족한 제 주둥이를 연방 삼봉의 입에 쿡쿡 처박으면서 달콤한 숨을 내뿜기만 하였다.
“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아니, 당장에 사람을 한 대 치기라도 할 모냥으로 씩씩대던 양반이 대체 워디로 간 겨? 어이?”
고작 해야 오 킬로 정도 나갈까 하는 개를 품에 안은 채 삼봉은 제 머리를 긁적였다.
“금자야. 너 혹시 내가 두들겨 맞을까 봐서 역성 들어주러 온 거냐? 그간에 밥을 좀 챙겨 줬다고 너도 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그런 거여?”
헥헥거리는 개의 숨결과 묵직한 체중과 체온은 삼봉의 엿 같은 기분을 금세 풀어 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들어온 겨. 응? 아까 참에 아줌니가 나가는 거 같더만 그 때 문이 제대로 안 닫힌 겨? 어이? 개는 마당에서 살아야지 사람 사는데 들어오면 안 된다. 알았쟈? 여 들어오면 안 되는 거여. 나가자. 내 금방 니 밥을 챙겨 줄 모양이니까 조금만 지둘겨라. 어이?”
삼봉은 어째서 그 순간 금자가 자신의 팔 안으로 뛰어들게 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당장에라도 싸우자 덤비던 쥔 양반이 왜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사라져 버렸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금자와 우주인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다.
삼봉이 자신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큼지막한 김칫독에 아직 한가득 김장김치가 남아 있는데 또 김치를 담근다는 말에 삼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군다나 그의 기억에 따르면 바로 일주일 전에 비록 많지 않은 양이지만 김치를 담갔었다. 그게 남아서 아침엔 맛이 들기 시작한 김치에 밥을 비벼 먹었던 것이다. 냉장고에 있는 김치 통에는 아직 절반가량 그 김치가 남아 있었다.
“봄김치는 맛없는데 왜 또 일을 만들어유? 아줌니 몸도 션찮다면서유.”
“사장님은 새 김치만 먹어. 조금만 맛이 들면 쳐다도 안보니까 조금씩 자주 담가야지.”
“그럼 김장은 왜 일케 많이 했대유? 만만찮은 독에 아직 한가득 김장김치가 있자녀유.”
“김장김치는 김장김치니까. 고등어 조리고, 고기찜 같은 거 하면 잘 먹거든.”
“음마? 거참 주둥이가 말로다 못하게 까탈시러븐 모양이네유.”
무를 박박 씻으며 삼봉이 툴툴대자 양 여사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봄에는 낫지. 여름에는 사흘 걸러 한 번씩 김치를 담가 대야 되는데 아주 죽을 맛이다.”
“아 먹지 말라고 해유! 나이 드신 양반을 오지게 부려 먹네. 음석하는 일이 만만해유? 그게 다 아줌니 빼골 뽑아 먹는 일인 중 참말 모른데유? 해도 해도 넘 한 거 아녀유?”
“대신 월급 받잖아. 부리는 만큼 돈은 줘. 일한 만큼 받는 거고.”
겉절이 할 배추를 숭덩숭덩 썰어 굵은 소금을 뿌려 놓은 양 여사는 삼봉이 씻어 건져 놓은 무를 수돗가 옆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장만하기 시작했다. 봄볕이 따끈따끈하고 싱그러운 초록의 잔디들이 보송보송하게 돋아 있는 날은 김치같이 주변 어지럽히는 일을 바깥으로 끌어내 와 하기 딱 좋았다.
“너 거기 순무 씻어서 절구에 찧고 베보자기에 담을래?”
“나박김치 들어갈 무 물들일려고 그러시는 거지유?”
“알고 있네? 보통 사내애들은 이런 거 도통 모르는데.”
“접때 티비에서 본 적이 있시유. 때깔이 하도 고와서 한 번 해보고 잡았는데 지 사는 데서는 순무 보기가 힘들어서유.”
“마트만 가도 있는데 어지간히 시골에 살은 모양이네.”
“깡촌. 깡촌. 그런 깡촌이 없지유.”
“허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