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국이 식었다고 다시 차리게 만들었고 그 다음으로는 쫄아 짜졌다고 밥상을 물렸다. 결국 세번째로 삼봉이 아침 식탁을 차렸을 때야 주인은 가타부타 말없이 밥을 먹었고, 와글와글 웅성대는 삼봉의 표정은 그의 고소한 아침 식사에 꿀맛 같은 조미료가 되어 주었다. 한번 기를 왕창 꺾어 주었으니 다시 쉽게 기어오르지는 못할 것이다.
밥상 한 번 뒤집어 주시고 얻은 성과로는 썩 훌륭한 것이 아닌가.
한껏 기분이 좋아진 주인은 삼봉의 입이 댓발은 튀어나와 있거나 말았거나 오늘 복권이나 사러 나갈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오늘 컨디션이 좋아 보입니다? 어제 어르신들 회합에 나가셨다길래 술병 나서 누워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요.”
“내가 처자빠져 자고 있으면 좋을걸 그랬어?”
“그럼 난감하죠. 재판이 낼모렌데 최종 보고 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일어나 있어도 트집이고, 술병 나서 골골대도 트집 잡을 거잖아. 배 변 원래 그렇게 성격이 나빠?”
배 변호사는 ‘어디서 성격 나쁜 걸로 갖고 들이댈 수가 있겠습니까.’ 했다. 우주인 앞에서 성격 나쁜 것으로 유세 떨다가는 제대로 성격 나쁜 것을 절박하게 실감한 뒤에 빈사 상태로 실려 나가는 길밖에 없다. 생긴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사인 양 하는 주제에 하는 짓은 더럽고 치사하고 무식한데다 유치하기까지 한 완전 개초딩이니까 말이다.
한창 인기를 구사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모초딩을 볼 때마다 배 변은 저 상황에 우주인이라면 저것보다 더 상상을 초월하는 복장 터짐을 경험하게 해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까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몇 번 해 봤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오늘 그 우주인의 컨디션이 날아갈 만큼 좋은 것은 오히려 불길한 예감으로 배 변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요즘 애들 얼마씩 받아?”
“예?”
한참 재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듣는지 마는지 멀뚱멀뚱 종이에 뭔가 그려 대던 우주인이 뜬금없이 입을 연다.
“난청 있어? 요즘 젊은 애들 알바 뛰어서 얼마씩 받느냐고.”
“일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 시급이 3700원부터 시작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런 경력이나 특기 없이 패스트푸드 점 알바생이 그 정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요?”
“고용계약서 하나만 만들어.”
“누구 데리시게요?”
“만들라면 만들지 웬 말이 그렇게 많아. 자꾸 두 번 말 시킬래?”
“아. 예!”
하도 기분 좋은 척을 해서 잠시 이 망할 우주인의 심기를 건드렸다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비록 폭력을 쓰거나 소리 지르고 욕을 하는 일은 잘 없지만 저질 독설로 사람 기분을 바닥 치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인간임을 알면서도 방심한 것이다. 배 변은 벌떡 일어서 서재에 딸려 있는 테라스로 빈둥빈둥 걸어 나가는 우주인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일단 재판에 관련된 일은 대충 상의를 한 것 같은데 그놈에 고용 계약서를 어디 쓸 것인지 알아야 그에 걸맞게 서류를 꾸밀 게 아닌가.“지금 쓰실 겁니까?”
“응.”
“누굴 고용하시려는 것인지 말씀해 주셔야 거기에 맞게 서류를 만듭니다. 혹시…….”
이 집에 지금 고용 계약서를 써야 하는 사람이 딱 하나 있기는 하다.
“삼봉이 계약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 집에 계약서 안 쓰고 데리는 사람이 코딱지 말고 또 있는 거야? 혹시 금자한테 계약서 쓰자고 하려는 거야? 배 변 어디 아파? 실성했어? 아니면 무단으로 양 여사 창고에 기거하면서 우리집 식자재들을 축내고 있는 쥐새끼들한테 계약서 쓰자고 들이밀 생각이야? 미안하지만 난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이라서 개나 소나 계약서 들이밀고 사인하라는 지극히 변호사스러운 짓 안 하는데? 내가 배 변호사의 하이퀄리티 조크를 잘 못 알아듣겠어. 알다시피 내가 좀 무식하거든? 진심을 담아 사과할게.”
실성은 누가 실성을 했다는 거냐! 라는 얼굴로 배 변호사가 어이없이 주인을 바라보자 우주인은 연예 잡지에서 금방 튀어나온 지극히 가식적인 얼굴로 방긋 웃으며 바지 속으로 손을 쑥 밀어 넣었다. 북북북북 소리가 날만큼 맨 궁둥짝을 벅벅 긁어 대면서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그야말로 사기다.
“하루 24시간 중에 대충 여섯 시간 정도는 자는 거 같으니 수면 시간 빼고, 여덟 시간은 장호에 영감탱이하고 계약한 깔머슴짓이라고 생각하고 빼. 하루 열 시간 근무 시급 3700원이면 일당 37,000원이지? 30일까지 있는 달이 1,110,000원 31일까지 있는 달이 1,147,000원.”
계산기를 꺼내 들려는데 바로 답이 나오니 뻘쭘해진 배 변호사가 어색한 웃음을 웃었다.
“초등학교에서는 그런 거 안 가르쳐줘? 그 정도는 그냥 계산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전 국민학교 나왔는데요?”
“달라?”
“다릅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초등학교 다녀! 배울 거 배우겠다는데 쪽팔린 게 대수야? 그런데 초등학교 안 나와도 판검사 시험은 보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배 변호사는 그럴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인에게 배 변호사의 얼토당토 않는 개그는 너무도 하이퀄리티의 것이었나 보다.
“혹시 배 변도 뒷구멍으로 판검사 된 거야?”
“아 그게…….”
입은 있으되 할 말이 없다. 정말이지 뒷구멍으로 사법고시를 패스한 사람이 있다면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 외치고픈 심정이었지만 뭐라고 말하겠는가. 하지만 우주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됐어. 배 변은 능력 있으니까 뒷구멍으로 고시원에 들어갔든 앞구멍으로 들어갔든 상관없어.”
“고시원이요?”
“아무튼 됐고. 뭐……. 뒤든 앞이든 뻑가게만 해 주면 되는 거잖아?”
“뻑! 아. 아하하하하하. 아……. 그렇지요. 뻑가게.”
이게 무슨 조폭 사회도 아니고 무식하고 엉뚱해도 이 정도면 정신병원 행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 변호사의 고용인은 돈이 많기 때문에 정신병원에서 우락부락한 흰 옷 입은 아저씨들이 나오지 않는다. 나오면 배 변호사 같은 사람이 책임지고 그들을 돌려보내거나 철창 안에 갇힌 그를 구해 내야 하는 거니까 귀찮게 배 변호사가 그들을 부르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일 년이면 13,505,000원이야. 원단위 절상해서 1,125,420원 보너스는 다른 사람들처럼 800%. 대신 코딱지는 머슴이니까 휴일은 없어. 대신 월차 하루 정도는 쓰게 해주지. 휴가도 없어. 머슴 휴가 보낸다는 말은 들은 적 없거든.”
“세전입니까. 세후입니까?”
“애들 과자 값에 세금은 무슨…….”
“예.”
일렬로 나열하면 지구를 두 바퀴 반 돌릴 수 있는 우주인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사람 쓰면서 셈은 철저히 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삼봉이에 대해서 적잖게 호감을 갖고 있는 배 변이었지만 지금 우주인이 제시한 고용조건은 크게 삼봉에게 불리하지 않았다. 어차피 삼봉은 깔머슴으로 온 것이니 월급에 관해서는 꿈도 꾸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배 변 역시 우주인이 자청해서 월급 문제를 말할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워낙에 마음에 안 들어 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부려 먹으면서 돈 주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하는 우주인이었다. 그것이 우주인이 갖고 있는 유일한 장점이다.
재주도 능력도 없는 열아홉 살 꼬마 아이로 일 년에 이천 넘는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낼모레 재판이라면서. 서류 작성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무실 나가서 일봐.”
“예. 알겠습니다.”
배 변호사는 제법 부드러운 얼굴이 되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용계약서는 배 변호사나 차예진 그리고 양 여사의 것이 있으니 거기에서 몇 가지만 수정하면 되는 일이다. 삼봉이 봉 잡았다. 그는 이 좋은 소식을 삼봉에게 알려줄까 말까 고민하다 모르고 있다 알게 되면 더 쇼킹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며 장난스럽게 낄낄 웃기 시작했다.
서재를 나가던 우주인의 얼굴이 희한하게 굳어진다. 그는 배 변호사가 과중한 업무로 살짝 돌았다고 생각하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하게 그를 보다 체머리를 흔들었다.
“그래서. 사장님이 밥상을 엎었다고?”
“야.”
잔뜩 풀이 죽은 삼봉을 심란한 눈으로 바라보던 양 여사는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밥상 뒤엎기는 우주인의 특기이다. 물론, 양 여사가 차린 밥상을 엎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그의 특기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가 함부로 주방 살림에 손댄 고용인을 내쫓을 때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이 저 밥상 엎기였기 때문이다. 심술만 덕지덕지 남아 있는 성질 고약한 남자는 간살을 떨며 그의 식사를 차리는 고용인을 그냥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밥상이 다 차려지고 ‘드세요.’하는 말이 떨어지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밥상을 엎어 버리는 것이다. 하도 엎어 대서 쉽게 그러지 못하라고 무거운 대리석 상판의 식탁으로 바꿔도 소용이 없었다.
밥상을 엎고 나서 그가 하는 말은 언제나 같았다.
‘나가!’
가타부타 설명도 없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해고의 이유가 뭔지 말해 주지도 않는다. 그저 무작정 ‘나가.’인 것이다. 밥상을 엎고 싸늘하게 외쳐 주시는 그 말을 듣고서도 이 집에서 배겨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처음 고용 계약서를 쓸 때부터 급여가 많은 대신 해고의 이유는 묻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으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것이 정석이고 지금까지 우주인이 밟아 온 행동 패턴이었다. 그런데 아직 요 작은 녀석은 이 집에 남아 있는 것이다. 양 여사는 그것이 신기했다.
더불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여러 번 다시 차리기는 했으되 그의 아침 식사를 차린 것은 이 녀석이지 않은가. 지금껏 집에 있으면서 우주인이 양 여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입에 넣은 것은 이번이 유일했다. 우주인은 그만큼 까탈스러운 남자였던 것이다.
“지가 그렇게 잘못한 건감유? 아줌니. 지가 아줌니를 어찌해 보려고 쥔 양반 아침을 차린 건 아니자녀유. 건 아줌니도 아시지유? 지는 절대로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시유. 그런데도 진탕 아주 속이 뒤집히게 욕만 쳐들어 먹고……. 아 진짜 속이 히떡 뒤집힌다니께유?”
“그래서 아침 식사는 잘하셨고?”
뾰족한 눈빛만큼 삐쭉 튀어나온 입을 한 채 삼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늦은 아침이 되어 컨디션이 좋아진 양 여사가 주방에 나오면서부터 시작된 삼봉의 신세 한탄이다.
“그 난리를 피고 나 같으면 객쩍어서라도 밥 차리라는 말 못 해유. 양심이란 게 있으면 이짝에서 차려 갖다 바친다 해도 마다해야 하는 거 아닌감유? 아주 돼지처럼 꾸역꾸역 잘만 처자시더구먼유. 아우--- 진짜 너무 요상한 사람이라니깐유?”
“우리는 고용인이야. 고용주가 원하는 일만 해주면 돼. 일을 하는데 있어서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왜 그리하면 안 되는지는 따질 필요 없어. 사장님이 원하는 대로 일을 하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거야. 더 생각할 필요 있니?”
“야?”
“좀 심하게 사장님한테 대들더구나? 솔직히 좋아 보이지 않아. 넌 너대로 살아온 방식이 있겠지만 그건 다른 데서 따져라. 여기 일을 하는 동안에는 사장님 취향대로 사장님 바라는 대로 일하면 되는 거야. 다른 건 생각할 필요 없어.”
“하지만 아줌니. 사람 도리라는 게…….”
양 여사는 다소 싸늘해 보이는 표정을 만들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도리는 중요하겠지만 앞으로 그것이 부숴 질 일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 집에서의 시간들이 그런 경험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적어도 우주인이라는 사람은 불법적인 행위를 강요하지는 않을 사람이니까 말이다.
“사람 도리에 맞게 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야. 도리 따지다가 굶어 죽는 게 좋으니 아니면 사회의 룰에 맞게 도리 따위는 살짝 접어 두고 잘 사는 게 좋으니.”
“……?”
천둥벌거숭이처럼 산야를 뛰어다닌 바람에 새까맣게 그은 얼굴에서 예쁜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직 깨끗하고 세상 따위는 조금도 알지 못하는 그 눈에 추잡하고 더러운 사회를 알려주는 역할이라는 것이 못마땅할 법도 하건만 양 여사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사회는 그래. 돈 가진 사람이 최고야. 다른 건 생각할 필요가 없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도리가 아니라 법도 어기는 사람이 널리고 깔렸어.”
“아줌니.”
“어른이 되는 건 그런 거야. 결국 선택을 하게 만들지. 선택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어른이 되지 못해. 넌 계속 산골 깡촌에 꼬마 사내애로 남고 싶은 거니? 아니면 네 몫을 하고 살아가는 남자 정삼봉이 되고 싶은 거니. 선택은 네 몫이야. 누가 대신 해주지는 못하지.”
“아줌니 지는…….”
다소 무거운 주제의 고민을 삼봉에게 던져 주었지만 양 여사는 함께 그 고민을 풀어 나갈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사장님은 네 가족도 아니고, 네 친구도 아니야. 네 노동력에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적인 관계로 네 오너지. 아버지 내깃돈 대신 왔건, 월급을 받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요점은 네가 어떤 것이든 네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받고 있고, 사장님은 너의 노동력을 구매한 사람이라는 거야. 그러니 함부로 대하거나 따질 필요 없어.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으니까.”
“…….”
양 여사는 생각에 잠긴 삼봉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하였다. 오늘로 삼봉이 이 집에 온 지 한 달이 되었다.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든 우주인은 삼봉의 처분에 관해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가 깔머슴이라는 희한한 명목 하에 이 집에 온 삼봉을 내치든 받아들이든 그것은 전적으로 주인이 결정할 몫이다. 양 여사는 그 결정에 관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삼봉이 앞으로 이 집에 머물게 된다면 필요한 정보를 주는 것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아는 우주인은 한번 물린 밥상을 다시 차리게 한 사람을 싸늘하게 내칠 인간이 아니었다.
여간해서는 기죽는 일이 없는 삼봉이었지만 서울은 눈이 돌아가게 이상한 세상이었다.
서울로 머슴 살러 올 때는 서울이라고 별 거 있겠어 하는 호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막상 그가 경험한 서울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갖고 있는 별세상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뻑하면 정원에 홀랑 벗고 자빠져 자는 우주인과 너무 예뻐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모님 같은 양 여사 그리고 셋방 사는 누님과 배 변호사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그것이 그가 아는 서울 사람의 전부였다. 그리고 전부 하나같이 이상했다.
“야. 코딱지.”
“히익!”
넋을 빼고 앉아 걸레질을 하던 삼봉은 화들짝 놀라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그것을 놓칠 우주인이 아니다.
“히익? 푸하하하하하하. 뭐냐? 그 이상한 소리는?”
“우이씨! 놀라 애 떨어질 뻔했구먼. 뭐여유. 왜 기척도 없이 와서는 사람을 놀래키고 그러는 감유? ……까딱 잘못했시믄 물건 깰 뻔 했자녀유!”
성질대로 쏘아붙이다 양 여사의 말이 생각나 삼봉은 비굴하게 덧붙인 것이다. 당신이 놀래킨 것에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물건을 깰 뻔했으니 그런다는 식으로 말이다.
우주인은 그러거나 말았거나 신경도 쓰지 않을 테지만 삼봉은 다분히 풀이 죽어 있었다.
“서재로 와.”
“왜유? 뭐가 잘못 되었남유?”
한 번에 말을 들어먹는 일이 없다. 우주인은 그게 불만이었다.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될 텐데 꼭 토를 다는 것이다.
“어이. 코딱지.”
“……?”
“서재로 와.”
쥐어박거나, 내쫓거나……. 뭘 어떻게 한다고 해도 우주인의 마음이지만 그는 자신이 어째서 고용 계약서로 결론지었는지 모르겠다 생각하며 혀를 찼다.
말도 많고, 그래서 시끄러운 저 코딱지를 그는 아직 내쫓지도 쥐어박지도 않고 있었다.
제 손에 쥐어진 종이만 하염없이 쳐다보면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손에 쥐고는 있으되 읽는 것은 이미 예전에 끝이 났다. 그저 대체 이제 뭘 하자는 수작인지 가늠하지 못해 차마 고개를 들지 않고 있는 것뿐이었다.
양 여사의 말도 있고, 아침에 우주인에게 된통 당한 것을 생각하면 삼봉의 기가 얼추 절반쯤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주인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삼봉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싹싹하고 붙임성 있게 방긋방긋 잘 웃는데다 영리하기까지 하니 그대로만 가면 순박한 시골 동네 어르신들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며 예뻐했을 것이다. 문제는 삼봉의 소위 ‘욱!’ 하는 성질 머리에 있었다. 예의 바르고 명랑하지만 그놈에 ‘욱!’ 하는 성질 머리 때문에 날아오는 곰방대에 대가리를 후려 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니고, 성격 좋다는 큰형님 정일봉까지 복장 터져 기절하게 만드는 문제아가 정삼봉이었던 것이다.
우주인이 그런 내밀한 사정까지 알았다면 전략적 접근법을 변경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아는 코딱지는 발발거리며 대들 줄이나 알지 사악하게 잔머리 굴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반면 삼봉의 머릿속에 또아리 틀고 있는 사악함은 ‘욱!’ 하기에 앞서 노련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인해.”
“이게 뭐여유?”
“보면 모르냐? 글자 못 읽어?”
“글자를 왜 몬 읽어유. 지가 초등핵교도 안 나온 까막눈인감유? 글자는 읽지만 내용이 요상해서 하는 말 아니어유.”
“고용 계약서. 말 그대로잖아.”
“그니께유. 요딴 게 시방 왜 튀어나오는 거냐구유. 지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