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58)

그제서야 발딱 고개를 쳐드는 삼봉을 보면서 우주인은 고개를 기울였다. 삼봉은 우주인의 의도를 모르겠다고 오리발을 내미는데 우주인이야말로 삼봉이 왜 저러는지 납득하기 힘들었다.

고용을 하려면 계약서를 쓰는 거고, 이 집에서 내칠 것이 아니면 쓰는 게 당연한 서류에 왜 저런 얼굴을 하는 것일까.

난감한 마음에 뜻하지 않았던 심술이 먼저 튀어나온다.

“쓰기 싫어? 싫으면 짐 싸서 나가.”

“아니. 내 말이. 지가 이런 걸 왜 쓰냐구유. 지는 서울 할부지 내깃돈 대신 깔머슴 살러 왔지 이 집에 고용된 일꾼이 아니잖나 이 말이구먼유?”

우주인은 작게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제서야 그는 삼봉이 왜 저러는지 약간 이해할 수 있었을 뿐이다.

“장호 노인네가 받을 내깃돈이 깔머슴 일 년인 것은 장호 노인네랑 할 이야기고. 내가 널 데리고 있는 건 너와 내 관계지. 그러니까 계약서를 쓰자는 거잖아. 너 바보냐?”

“아우! 깝깝시러버서 원……. 서울 할부지가 지를 이 집서 깔머슴 살라고 했자녀유! 서울 할부지한테 일 년 깔머슴 사는 것은 울 아부지랑 서울 할부지가 내기해서 결정 난 거구유. 그니까 지가 왜 돈을 받아 가믄서 이 집에 있는 거냔 말여유. 내 말이. 몬 알아 듣겄시유? 지가 한 달에 그 뭐시냐. 백만 원 넘는 돈을 워째서 받아야 하냐구유.”

살살 삼봉의 음성이 높아지자 거기에 맞춰 주인의 인상도 구겨졌다. 워낙 인생이 화보라 인상 쓰고 있어도 심각한 장면으로 설정한 구도가 나오지만 주인의 내심은 진심으로 답답했다. 삼봉의 말을 빌자면 갑갑시러버 환장할 지경으로 말이다.

“야!”

“야?”

“이게 확! ……니가 머슴을 살거나 말았거나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장호 노인네가 널 여기서 머슴 살라고 했으니 좋다 이거야. 내 집에 부리는 사람 보내 준 거에 대한 대가는 내가 알아서 지불할 문제고 일단 내가 사람을 받았어. 그럼 전깃불이 번쩍번쩍 들어오고 미쿡 땅 사람이랑 얼굴 보면서 통화하는 이 시절에 머슴이랍시고 사람 받은 걸로 끝이냐? 코딱지만한 게 사람을 뭘로 보고……. 니가 머슴 사는 건 니 문제고. 내가 데리는 사람 월급 주고 고용 계약 맺는 건 내 문제다 이거야. 못 알아듣겠어? 너한테 일시키고 하루 종일 얼굴 마주 봐야 하는 건 나지 장호 노친네가 아니라고.”

“그니께유! 지는 아부지 내깃돈 대신 머슴 살러 들어온 거라니께유?”

“그 머슴살이는 장호 노친네 한테 가서 따져. 지금 난 너하고 나 사이의 문제를 말하는 거잖아. 장호 노친네하고 너 혹은 네 애비란 작자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멍청이.”

삼봉은 제 가슴을 탕탕 쳤다. 벽하고 이야기를 해도 이만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쪽에서 하는 말은 하나도 안 듣고 제 할 말만 하면서 되려 성질부리는 꼬라지는 어디서 배워먹은 것일까. 학교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으니 본디 생겨 먹은 꼬라지가 그런 게 분명하다.

마음속에서 욱하는 심정이 치미는 것을 그는 용케 눌러 참았다.

“이미 세경을 받았는데 하는 일, 장소가 달라졌다고 거기서 더 뭘 받으면 그건 사람 도리가 아니지유. 안 그려유? 지는 아부지 내깃돈으로 이미 세경을 셈해 받았구. 그러니께 아자씨한테는 돈 받을 일이 없구먼유.”

“사람 도리? 웃기고 있네.”

“야?”

우주인은 비록 인상은 구겼을망정 삼봉의 ‘야’를 더 이상 타박하지 않았다. 무식한 대신 눈치 하나는 비상하게 빨라 지금껏 삼봉이 ‘야’를 말했을 때가 자신이 ‘야’라고 말하는 때와 같지 않다는 것을 판단했던 것이다. 양껏 기분은 나쁘지만 참아 주기로 너그럽게 마음먹었다.

“어디서 사람 도리를 따져. 너 전에부터 사람 도리, 사람 도리 하는데 내 귀에 그거 말도 안 되게 웃기거든? 사람 도리 따지는 사람이 자식 걸고 내기를 하냐?”

“그게 무신 말이어유?”

“무신 말이기는. 네 애비라는 작자 말이지. 뭘 했든 결국 자식 걸고 내기한 거잖아. 노름에 미쳐 정신 못 차리는 배변도 자식은 안 걸어. 아……. 걸 자식이 없나? 자식이 있어도 배변은 자기 자식 걸고 바카라 판에 뛰어들지 않는다 이 말이야. 그건 사람 도리냐? 장호 노친네도 마찬가지야. 아까 말했지? 미쿡 사람하고도 얼굴보고 통화하는 게 예사인 게 요즘 세상이다. 고리짝에 굶어 뒈지거나 얼어 뒈졌을 머슴이 웬 말이냐? 그건 말이 되냐? 내가 가장 이해 못 하는 건 코딱지 너야.”

지 애비 욕을 면전에 대놓고 해대니 화를 낼 수 없을 만큼 화가 난 삼봉이었지만 상식적으로 주인의 말에 오류는 없었다. 그것 때문에 생난리 발광을 하면서 한 달 동안 아버지와 말도 섞지 않았던 전적이 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으니 오긴 했지만 그래도 작은형 귀에 이런 사실이 들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약조까지 받았다.

지금 주인이 하는 말 중 대부분은 작은형이 이 사태를 알았을 때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올 살기등등한 독설의 일부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지가 뭘유.”

“아버지가 시킨다고 다 하냐? 어쭈. 그러다 죽으라면 죽는시늉이 아니라 진짜 한강에 뛰어 들겠다? 원래 노름빚은 법적으로도 변제 의무가 없는 거야. 하물며 그 말도 안 되는 깔머슴 운운에 장단 맞춰 덜렁 짐 싸 들고 나오는 너는 제 정신이냐? 웃겨서 정말……. 계약서는 잘 봤어?”

“아…….”

저 인간이 어제 총명탕이라도 지어 먹었나? 하며 삼봉은 냉큼 고개를 숙이고 제 손에 들린 계약서를 읽는 척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삼봉이 뭐라 뭐라 쏘아붙이면 기막힌 얼굴로 콧방귀를 뀌어 댈망정 논리 정연한 반박을 하지 못하던 반 실성 캐릭터가 반론을 펼치지 못할 단단한 논리로 위장한 채 떠들어대자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부모한테 물려받은 유산이 오질 나게 많아 이 호사를 누리고는 있으나 저 무식함으로 단박에 알거지가 될 불쌍한 축생으로 삼봉에게 단단히 찍혀 있던 이 집 주인의 화려한 변신이었다.

“다 읽었어?”

“읽기는 했는디…….”

“그럼 사인하기 전에 먼저 호구조사부터 시작한다. 나이.”

“야?”

“후우…….”

주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라는 것을 이제 인정하지만 저놈에 ‘야’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야’였다.

“몇 살이나 처먹었냐고 이 등신아.”

“지 등신 아녀유. 올해로 스물 살 되았시유.”

“말대꾸하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만 해. 대답만.”

“야.”

삼봉은 어째 ‘야’라는 대답에 시비를 걸지 않는다 생각하며 냉큼 제 편한 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 생일 지났어 안 지났어. 19세부터 성인인가? 스무 살인가? 뭐지?”

“만으루다가 열아홉이구먼유. 고등핵교는 올해 졸업했구유.”

“열아홉?”

“야.”

주인은 평이하기 그지없는 삼봉의 대답에 울컥해 버리고 말았다. 저게 그럼 여태 여덟 살씩이나 차이 나는 자신을 따박따박 가르치려 들었단 말인가? 도리 운운하고 상식 어쩌고 하면서 대드는 것에 아무 대거리를 못한 것은 자신이니 이제부터라도 단단히 정신 차려 여덟 살 연상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가르쳐야겠다 다짐하는 주인이었다.

“혈액형.”

“삐형인디유?”

“성질 더럽겠군. 참고로 나도 삐형이다.”

삼봉은 ‘이건 뭐래?’ 하는 표정으로 주인을 보았다. 여태 살면서 혈액형이 B형이라 성질 머리 있겠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어도 저 역시 B형이 주제에 대놓고 B형 혈액형을 욕하는 사람을 처음 봤던 것이다.

“자격증 있어?”

“없는디유?”

“운전은 할 줄 알아?”

“아는디유?”

“자격증 없다며!”

“운전 면허증도 자격증인감유?”

“아니냐? 그거 엄연히 국가고시야.”

“금 운전 면허증 한 개 있구먼유.”

“몇종.”

“1종 보통이유.”

“좋아.”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좋다니 할 말은 없다.

“컴퓨터는 쓸 줄 알아? 켜고 끄는 것 정도 하는 것 말고 활용할 수 있느냐 이 말이야.”

“한글, 엑셀은 엥간히 하구유. 파워포인트는 제우 끄적끄적하는구나 싶을 정도구유.”

“제우 끄적끄적이 뭔 뜻이야.”

“아…….”

제우 끄적끄적 한다는 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삼봉은 난감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제우 끄적끄적 하는 것이 제우 끄적끄적하는 것이지 달리 뭐라 말한단 말인가.

“조금 할 줄 안다구유.”

“시켜 보면 알겠지. ……그런데 파워포인트가 뭐냐.”

“야?”

저도 모르게 ‘허어?’ 해 버린 삼봉의 어이없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우주인은 조금의 동요 없이 제 할 말만 계속했다.

“영어는. 문법, 단어 따위 말고 회화 능력 말이야. 의사소통 가능해?”

“말이 돼유? 지는 영화도 자막 있는 것은 보덜 못하는 구먼유.”

“무식한 놈.”

이라고 말하는 주인은 필생의 한을 푼 사람처럼 즐거워 보였다.

“정규 교육 씩이나 받은 인간이 간단한 의사소통도 못하는 게 말이 되냐? 이 칠푼아.”

“허어……!”

정규 교육 씩이나 받고 영어로 의사소통 못 하는 사람 줄을 세우면 서울서 제주도까지 몇 바퀴는 돌리겠구만 하는 말이 너무 당당했다. 그래서 삼봉은 자신이 뭔가 모자라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이큐.”

“……128이덩가?”

“다시 받아. 그럴 리가 없어.”

“야?”

“너 무식한데다 칠푼이기까지 하면서 그런 지능지수가 나올 리 없잖아. 사기 치지 말고 제대로 검사받아 결과 제출해. 제 2외국어는?”

“……없는디유?”

주인은 지금 삼봉을 면접 보고 있는 중이었다. 데리고 부리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해 두는 것이 편하고 그래야 일을 시켜도 제대로 시킬 수 있다. 지금 그가 하는 질문들은 모두 배 변호사나 차예진도 받은 질문지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삼봉은 이 실성한 양반이 이제 제대로 미쳤나 싶어 난감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집주인인데 정신병원에 전화를 할 수도 없고, 또한 딱히 사회에 문제를 끼칠 만큼 폭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다만 하는 짓이 좀 황당할 뿐.

그 후로도 오랫동안 삼봉은 주인에게 붙들려 고문을 당해야 했다. 뭐가 알고 싶은 게 그리 많은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필요하면 인신 공격성의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데 삼봉은 그런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화를 낼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고 있었다.

한 달 급여만 백만 원이 넘는다. 그것만으로도 삼봉은 실성한 외계인의 배포에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계약서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그야말로 눈알이 빠질 정도로 내용이 많았다.- 상여금 800%라는 항목이 있었다. 그 800%라는 것이 백만 원이 넘는 그의 월급을 8배한 금액이니 팔백만 원이 넘는 돈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월급과 별개로 지급된단다.

식대는 급여에 포함되지 않지만 삼봉의 근무처는 대체로 집안이니 삼봉이 먹는 음식의 식재료는 양 여사가 포괄적으로 집행하는 식자재 비용에서 청구할 수가 있다는 항목도 있었다. 즉, 먹고 싶은 음식은 직접 해 먹되 재료는 제공해 줄 수 있다는 말이다.

번듯한 제방을 가진 것도 황공해 훌라춤을 추었던 삼봉이었다. 그런데 고용 계약서는 너 먹고 싶은 대로 해먹어! 라고 말했다. 그것뿐인가? 의복비 또한 따로 지급되지 않는 대신 주택 관리비로 책정된 금액에서 청구할 수 있다는 항목까지 있었다. 우주인의 식생활을 책임지는 양 여사가 식자재 구매에 관련된 전권을 갖고 있다면 그 외 소소한 집안 관리에 사용되는 별도의 예산이 책정되어 영수증만 제출한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삼봉의 앞으로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빡빡하게 내용이 쓰인 고용 계약서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당첨 복권 같은 느낌이라 삼봉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기도 힘이 들었다.

반 실성한 주인 양반이 무식한 것도 맞고, 상식 없는 것도 맞았다. 세상에 이런 조건의 고용계약이 어디 있는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오질 나게 많아 지금은 떵떵거리고 살지만 조만간 쫄딱 망해 알거지가 될지 모른다는 삼봉의 저주도 가능성 있는 미래처럼 보였다.

“새끼…….”

“……?”

“코딱지만한 게 보면 뭘 아냐? 쫀쫀하게 그걸 얼마나 뜯어보고 나서 사인할래.”

“아…….”

“바쁘니까 빨랑 사인해. 널 잡아다 새우 잡이 배에 팔아넘긴다는 조항은 없으니까. 왜. 서운하면 만들어 주랴?”

“아녀유. 아녀유.”

삼봉은 사악하게 웃었다. 쫄딱 망해 알거지가 된다 한들 삼봉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알거지가 돼서 끼니를 구걸하고 다니는 것은 삼봉이 아니라 우주인이 될 테니 말이다. 공것으로 일 년 내내 일하는 것도 먹여 주고 재워 주니 별 불만 없다 싶었던 삼봉에게 돈까지 쥐여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혹여라도 우주인이 깜빡깜빡 정신을 차려 이 불평등 계약을 무르자고 할까 봐 삼봉은 냉큼 제 이름을 적어야 하는 항목에 펜을 가져다 대었다.

나중에 가서 다른 소리를 못하게 하려면 지장을 찍는 것이 나을까?

“그냥 이름만 써유?”

“그럼 이름만 쓰지 또 뭘 써.”

“……. 참말로 이 돈을 질 주는 거여유? 낭중에 딴소리 하는 거 아니지유?”

“하! 코딱지만한 게 뭔……. 거기 배변 이름 보이지?”

“야? 아. 여그 배상중이라고 되어 있는 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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