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과 어깨를 연방 문지르는가 하면 머리통을 미친 듯이 비벼대기도 한다. 삼봉의 눈에 우주인은 그야말로 실성한 광인처럼 보였다.
“이게 뭐냐고 썅! 코딱지. 이게 대체 뭐야.”
“뭐긴 뭐여유? 침대잖어유.”
“뭐? 침대. 침대에?”
콧방귀를 팽! 껴 댄 주인이 납실하게 깔아 놓은 돌침대 위의 이불을 확 걷어치우자 은은한 회색으로 번들거리는 돌침대의 위용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던 배 변호사와 구 비서는 절로 ‘으윽!’ 하는 신음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잠자리로 뛰어드는 우주인의 습관을 뻔히 알고 있는데 상대가 돌침대라면 박살나는 것은 우주인의 근사한 몸뚱이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어떤 자세로 뛰어든 것인지는 몰라도 머리가 깨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지.
이 사달의 원인을 파악했으니 난리 발광을 해주시는 우주인이 측은하기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삼봉의 입장은 달랐다.
그날 안으로 돌침대를 사다 대령해 놓으라고 소리 지를 때는 언제고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 가관이었던 것이다.
“금 침대 아니면 뭐겄시유. 딱 봐도 침대구먼. 대체 왜 그런대유?”
“오냐. 침대다 이거지. 그래. 그럼 너도 한 번 당해 봐라.”
누가 말리고 할 겨를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우주인은 난폭하게 삼봉의 어깨를 붙잡고는 흉물스러운 돌침대로 그의 작은 몸을 패대기치듯 밀어 버렸다.
비록 그 소리는 요란하지 않았지만 본의 아니게 떠밀려 돌침대에 엉덩방아를 찧은 것으로 모자라 뒤로 넘어가 버린 삼봉의 신체가 감당해야 하는 충격은 예사로운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것은 그 광경에 넋이 나가 버린 배변이나 구 비서로서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모질게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나 와락 밀쳐진 힘을 못 이겨 돌침대에 자빠진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삼봉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으하하하하. 어떠냐. 니 입으로 침대라고 했으니 폭신폭신하지? 따끈따끈하냐? 좋…….”
“…….”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는 갈데없이 미친놈의 모습 그대로 광소하던 우주인은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삼봉을 놀려대다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부딪혀 봐서 아는데 눈물이 쏙 빠지게 아팠다. 하지만 코딱지만한 녀석은 우는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는 새까만 눈이 정면으로 우주인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암팡지게 앙다문 입술에 잔뜩 힘을 주고서 아무런 항변도 불평도 하지 않는다.
원망이 아닌 경멸의 시선이었다. 한심한 너 따위와는 말도 섞기 싫다는 의미의 눈빛이었다.
우주인은 자신이 왜 그런 눈길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연히 잘못은 저 녀석이 저질렀는데 왜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 껄끄러워지는지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생각지도 않았던 배 변호사의 고함소리에 우주인은 자신을 옭아매는 그 불길한 시선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배 변호사는 거칠게 우주인을 밀쳐 낸 뒤 삼봉의 팔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니? 일어나 봐. 일어날 수 있겠어?”
“괜……찮구먼유.”
“그럴 리가 없잖아. 일어나지 마. 어지럽거나 하지 않아? 머리를 세게 부딪친 건 아니야?”
“궁둥짝이 먼저 부딪혀서 대가리는 안 깨졌구먼유. 괜찮아유.”
삼봉의 상태가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다소간의 안심이 찾아들자 그 뒤를 분노가 뒤따랐다. 배 변호사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주인을 노려보며 엄청난 성량으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너 뭐야!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
“이거 엄밀히 말하면 살인 미수야. 내가 암만 너한테 돈 받아먹는 고용인이라고 하지만 이건 정말 못 참는다.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길래 난쟁이 똥자루만한 녀석을 돌침대에 매다 꽂아. 니가 생각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넌 동정심도 없냐? 암만 해 봤자 네놈 반절이나 할까 하는 녀석을 어떻게 돌침대에 냅다 집어 던지냐고!”
“……절반은 더 될 거 같은데?”
난데없는 배 변호사의 폭언에도 불구하고 우주인은 여태 정신을 못 차린 게 분명했다.
“뚫린 입이라고 말은……! 삼봉아. 어쩔 거냐. 고소할 거냐? 고소하겠다면 내가 맡아 주마. 수임료는 필요 없다.”
삼봉은 희미하게 웃었다. 만난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 주는 배 변호사의 호의가 고마웠던 것이다.
“됐구먼유. 고소는 무신 고소여유. 별스럽지도 않어유. 대가리도 멀쩡하고 볼기짝에 멍이나 들까 싶구먼유. 됐시유.”
“흠……. 야. 우주인! 너 꿈 잘 꾼 줄 알아라. 이거 잘 걸고넘어지면 살인미수로 형사 고발감이야. 알아? 생긴 것만 멀쩡하면 뭘 해. 아무 생각이 없는데. 응? 대체 어쩌자고 애를 돌침대에 집어던져. 니가 사람이냐?”
정말이지 이성을 잃어버린 듯 화를 내는 배 변호사 앞에서 우주인은 심란하게 볼을 긁었다.
“내 방에 돌침대가 왜 있느냐고. 화가 안 나겠어? 그냥 평소처럼 냅다 몸을 던졌는데 고층 빌딩에서 떨어지는 줄 알았단 말이야. 고소는 오히려 내가 해야 돼! 저게 날 암살하려고 한 거잖아!”
심드렁한 표정과는 달리 우주인도 만만찮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가늘게 뜬 눈으로 배 변호사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뭐?”
“왜 나한테 반말해.”
좋은 지적이다. 우주인은 이런 격정적인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무례한 배 변호사의 태도를 짚어 낸 스스로의 지성과 감각을 칭찬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의기양양한 표정이 얼굴로 드러나기도 전에 배 변호사는 먼저 자구책을 마련했다.
“민증 까!”
“뭐라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사한 말이 배 변호사가 준비한 비장의 무기였던 것이다. 역시 그는 변호사였다. 말싸움으로 그를 이길 수 있는 자가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민증 까자고. 내가 적어도 칠 년은 연상이다.”
“…….”
궁지에 몰린 주인이 구 비서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사법고시 통과해서 사법 연수원을 수료하고 판사직에 몇 년 재직하다 변호사로 나온 것이니 그의 생각에도 배 변호사가 우주인보다 칠 년 이상 연상인 것이 분명하다. 워낙에 철딱서니가 없고 사람이 가벼워서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구 비서의 표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지만 우주인은 미간을 찡그린 채 배 변호사를 봤다.
“칠 년이면 밥이 몇 그릇인 줄 알아? 내가 고시 공부하느라 엉덩이에 굳은살 박이도록 법전 읽는 동안 넌 여드름 걱정하면서 몽정한 팬티 엄마 몰래 빨았어. 알아?”
“계속 까.”
“……뭐?”
여드름 걱정을 한 적도 없고, 엄마 몰래 몽정한 팬티를 빤 기억도 없지만 칠 년이나 연상이라면 말을 까는 게 맞다고 생각한 우주인이었다. 배 변호사는 선뜻 우주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
“계속 까라고 말. 나보다 나이 많은데 나한테 왜 존대해. 그럴 필요 없잖아. 계속 까.”
“……?”
“양 여사도 나한테 반말하고 구 비서 저게 나랑 동갑인데 수틀리면 바로 빌어먹을 개초딩 새끼 어쩌고 하면서 막 나가. 세상에 나이만큼 공평한 거 없잖아. 누구나 다 일 년에 한 살씩밖에 못 먹는 거니까. 나보다 일곱 살 많으면 말 까도 돼. 계속 까.”
배 변호사의 표정이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희한하게 변했다.
“그건 그렇고. 저 코딱지만한 놈이 날 암살하려고 내 침실에 저런 돌덩어리를 놓아둔 거잖아! 그건 고소 못 해? 난 단지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라고. 죽는 줄 알았다니까?”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지만 우는 소리를 할 생각은 죽어도 없는지 모질게 입술만 깨물고 있는 삼봉에게로는 얼굴도 돌리지 않은 채 우주인이 먼저 우는소리를 했다. 나름 편을 들어 달라고 한 말이었지만 역성을 들어주는 이는커녕 맹렬하게 뒤통수 후려갈기는 소리만이 구 비서의 입에서 나왔다.
“사장님이 들여 놓으라고 한 겁니다.”
“뭐?”
“LA 가시기 전에 저녁까지 돌침대 사다가 침실에 들여놓으라고 지시했다 들었는데요? 설마 삼봉 씨가 저한테 거짓말한 것일까요? 정말로 그런 말 하신 적 없으십니까?”
“그…….”
가만 생각을 해보면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너무 큰 금액이 결재되었길래 제가 전화를 걸어 확인했습니다.”
구 비서마저도 우주인의 편이 아니었다.
일이 참 고약하게 되어 버렸다고 속으로 혀를 차는 동안 삼봉이 미적거리며 일어나자 우주인은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인자 되았지유? 지는 그만 나가봐야 것시유.”
“…….”
“주무실 꺼지유? 커튼 내려 드려유?”
잠자는 시간이 일정치 않은 우주인은 낮에 잠드는 경우를 대비해 침실에 두꺼운 차광 커튼을 갖고 있었다. 잠깐 일어나서 커튼 내리는 일도 귀찮다며 허구한 날 삼봉을 불러 댔기 때문에 잠옷 차림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자동으로 나온 말이었다.
“돼, 됐어! 나가. 피곤해. 잘 거야.”
“야. 그럼 안녕히 주무셔유.”
배 변호사는 잽싸게 삼봉의 어깨를 잡아 그를 부축해 주었고, 생각지도 않았던 변절자 구 비서 역시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목례를 대신하고는 삼봉과 함께 방을 나섰다.
절뚝거리며 힘겹게 걷고 있는 삼봉의 뒷모습에 왠지 모르지만 우주인은 기분이 나빠졌다.
상담원의 말투는 어이없음 그 자체였지만 우주인의 귀에 심각하게 들릴 리 없다.
“말이 돼? 침대는 폭신폭신해야지. 사람 잡을 일 있냐고. 대체 침대가 왜 이렇게 딱딱한 거야. 물건을 이따위로 만들어 놓고서 그래도 잘했다는 거야?”
세상에 돌침대가 딱딱하지 말랑말랑한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주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저 멀리 안드로메다 성운에 개념이란 것을 잘 포장해 보내 버린 듯 보이는 이 안하무인의 개초딩께서는 단지 자신은 물론이고 코딱지의 안위까지 위험한 돌침대에 상당히 불만이 많았고, 그런 심사를 돌침대 회사 AS 상담 직원에게 풀고 있었던 것이다.
상담원이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지만 우주인이 알 바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 엄청나게 황당하다는 것을 알아도 외눈 하나 끔뻑할 위인이 아니었다.
“물건을 이따위로 만들고도 돈을 받고 판다 이 말이지?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아? 당장 사장 바꿔!”
뚝-!
세상 사람들이 황당함에 대처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 중에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상종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돌침대 회사 상담원 역시 그 방법을 택했다.
전화가 끊어진 것을 확인한 우주인은 가는 눈을 뜬 채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웃음을 웃었다.
으헤헤헤헤. 하는 소리까지 내면서 그리 웃자 그는 갈데없이 실성한 인간처럼 보이지만 그런 모습을 양껏 비웃어 줄 사람은 방안에 없었다.
“오냐. 이렇게 나온다 이 말이지. 니들 사람 잘못 봤어.”
피곤하다느니. 곧 잘 거라느니. 하는 말을 했던 우주인은 거기에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정열적인 남자로 분한 우주인은 수화기를 든 채 맹렬하게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지금 그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이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딱딱하지 않은.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돌침대가 진짜 존재하고 돌침대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명제가 진리인 것처럼 뻔뻔하게 외치고 있는 우주인의 머릿속에 개념과 상식은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누가 그를 개초딩이라고 했던가.
“누가 맘대로 전화를 끊으래. 난 아직 할 말이 엄청 많거든?”
[고객님…….]
상담원은 가벼운 한숨을 내쉰 뒤 비교적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팀장님을 바꿔 드리겠습니다.]
“흐응? 흐음……. 좋아! 바꿔.”
일개 상담원이 아니라 팀장을 바꾼다는 말에 우주인은 그제서야 그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단지 우주인의 착각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전화를 받은 팀장은 남자였다. 그는 비교적 신중한 단어를 선택하여 이 막무가내 고객을 응대하기 시작했다.
[고객님. 먼저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죄송해야지. 아주 많이 죄송해야지. 내가 당신들 회사 물건 때문에 죽을 뻔했어. 알아? 나뿐만 아니라 우리 집 머슴도 죽을 뻔했다고. 이거 어떡할 거야. 어떻게 책임 질 거냐구!”
[하지만 고객님. 저희 회사 제품은 돌로 만들어진 침대로써…….]
“아. 몰라. 몰라.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상식적으로 침대는 폭신폭신해야 하는 거잖아. 침대가 콘크리트보다 더 딱딱한 게 말이 돼?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안하무인.
[고객님. 고객님이 구매하신 옥돌 침대는 최상급의 옥돌을 상판으로 해서…….]
“아. 됐다니까! 그딴 거 내가 들을 필요 없고.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돌이든 금이든 침대는 폭신폭신해야 돼. 내 말이 틀려?”
적반하장.
[하지만 돌침대는 원래…….]
“돌침대건 금침대건 침대는 폭신폭신해야 하는 거잖아. 그만한 기술력도 없어? 그러면서 무슨 특허고 나발이야. 침대는 과학이라잖아. 돌멩이가 딱딱한 거 누가 몰라? 돌멩이로 만들었어도 침대니까 폭신폭신해야 하잖아. 그 정도 돼야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냐? 그것도 아니면서 특허 어쩌고 하는 말이 왜 있어. 이거 과장 허위 광고 아냐? 응? 나뿐만 아니라 우리 집 머슴까지 뒈질 뻔했다니까? 당신. 우리 집 머슴애가 뒈졌으면 어쩔 뻔했어. 앙? 책임 질 거야?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집 머슴애가 죽어 버렸으면 어쩔 뻔했냐고!”
아마도 별표 돌침대의 고객 상담실 팀장이란 사람은 그 순간 벽에 대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갑갑한 일인지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어떤 고객이라도 친절하고 만족스럽게 이해시킬 수 있다 자부했던 자신의 상담실 인생 십 년이 몽땅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그 순간 그는 뚝! 하고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것 또한 느꼈을 것이다.
[아이고. 여기 계실 분이 아니시로군요.]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돌침대가 딱딱하다며 클레임을 걸어 온 인간이 제정신이겠는가. 더군다나 요즘 같은 세상에 머슴은 또 웬 머슴인가. 한 마디로 이 인간은 실성한 인간임에 틀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