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귀찮아. 너 꼭 여섯 시간은 자라. 알았지?”
“……?”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만 땡그랗게 뜨고 있는 삼봉을 보고 우주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답!”
“뭐 땀시 그러는지는 모르겄지만 여튼 하루 여섯 시간은 자란 말씀이시지유?”
“그래.”
“알겄구먼유.”
“좋아.”
반 실성한 게 아니라 제대로 온전히 실성한 놈이다. 저놈이. 삼봉은 속으로 입을 댓 발은 내민 채 욕을 해댔지만 얼굴만은 그지없이 영악하게 웃고 있었다.
북북 대며 볼기짝을 긁어 대던 그가 욕실로 들어가자 삼봉은 다시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를 온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오늘도 날씨가 좋을 것 같았다.
“야!”
“……?”
들어갈 때는 분명 몇 개 걸치고 있던 미친놈이 이제 또 훌떡 벗고 나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삼봉은 펄떡 뛰어오르며 경기를 했다. 사실 넋을 빼놓고 있다 지레 놀란 것이지만 가슴을 쓸어내릴 만하니 눈앞에 떡 하니 기립해 있는 말좆이 사람을 황당하게 만들었던 거다.
“뭐, 뭐래유?”
“나 일곱 시에 나가야 돼. 양 여사 깨워서 밥 차려 달라고 해.”
“야?”
어느 날은 해가 하늘 똥구멍을 찌르도록 처자빠져 자던 인간이 해도 덜 떠서 싸돌아 댕긴다 싶더니 이런 이유가 싶었구나 했다. 하지만 뭐라고 해도 훌렁 벗고 사람 일 시키는 일은 상식 이하로밖에 볼 수 없지 않은가.
“병 있시유?”
“뭐?”
“아 왜 만날 그리 깨 벗고 돌아다니는가 몰러유. 당최 지는 아자씨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겄구먼유. 지가 암만 부리는 사람이래도 나슨 사람 있을 때는 뭐라도 낑겨 입으면 안 되는감유? 아자씨 말좆인 거 지가 이미 봤으니 새삼 자랑할 일도 아니자너유. 안 그려유?”
“너는 씻으러 들어가면서도 껴입냐? 샤워하려다 생각나서 나왔는데 껴입기는 뭘 껴입어. 부럽냐? 부러워 밸이 꼴려? 꼬우면 너도 출세해라?”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삼봉은 코웃음을 쳤다.
“시상 부러울 게 없어서 말좆이 부럽겄시유? 인자 너무 봐서 말좆도 이뻐 보일라 그러니께 그러는 거구먼유.”
“흥…….”
우주인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삼봉의 눈에는 저런 걸 달고 세상 살기 참 힘들겠다 싶어 하는 말이지만 우주인은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지나친 자만심은 꼭 한 마디를 더해 스스로를 우습도록 만들었다. 본인은 죽었다 깨나도 그것을 알지 못할 테지만.
“왜. 나한테 반했냐? 쳇……. 코딱지 주제에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넌 내 취향 아니거든? 가서 양 여사나 깨워!”
“허…….”
그러고 냉큼 욕실로 들어가 버리는 우주인의 뒤꽁무니를 망연자실 쳐다보면서 삼봉은 소리 없이 절규했다.
‘그짝도 내 취향은 아니구먼유!’
삼봉의 외침에 뭔가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삼봉 자신도 자각하지 못했다.
삽질 한 번 하러 울진까지 내려가야 하는데도 우주인은 기분이 좋았다. 가끔 이렇게 컨디션이 좋은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재수도 좋았다. 뭘 해도 재수 없는 일은 잘 생기지 않는 우주인이지만 스스로 이처럼 머리가 맑고 유쾌한 날은 귀찮은 일도 별로 귀찮게 느껴지지 않고, 싫은 사람 얼굴도 오 분 이상 쳐다볼 수 있을 정도의 인내심이 생기는 것이다.
구 비서가 안다면 땅을 사라고 종용할 테지만 오늘 우주인은 자신의 이런 기분을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껴 둔 사탕처럼 숨겨 두고서 혼자만 야곰야곰 빨아먹고픈 그런 심정이랄까?
한껏 고양된 컨디션은 절로 콧노래가 나오게 하고 있었다.
“응?”
그래서 평소라면 대번에 소리부터 지르고 볼 일도 일단 미간을 찡그린 채 생각에 잠긴 것이었다.
“이게 뭐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속옷장을 연 그가 발견한 것은 꽁꽁 얼어붙은 팬티들이었다.
“방이 춥나?”
그럴 리가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주택과 조금의 차이가 없지만 얼마나 공을 들여 만든 집인지 실내 온도는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항상 일정하고, 먼지나 냄새에까지 민감하게 자동 환기 시스템이 가동되는 그런 최첨단 주거 환경이 관리되는 주택이었던 것이다.
그런 집 안에서 팬티가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가 형성되는 일은 대한민국에 모든 전력이 사라져 버린 핵전쟁 이후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그는 팬티를 들고 코딱지를 찾아 나서려다 말았다. 한참이나 말좆 타령을 하고 나갔는데 또 훌렁 벗고 밖에 나가면 틀림없이 고약한 눈을 네모지게 뜨고서 바락바락 대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방문을 열어젖히고 큰 소리로 삼봉을 불렀다.
“야 코딱지. 이리 와 봐.”
멀리 주방에서 대답이 들리는 것을 봐서는 양 여사를 깨워 그 일손을 돕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냉큼 쪼르르 달려오는 코딱지를 확인하고 그는 방안으로 들어서서 삼봉이 들어올 수 있을 만큼만 문을 열어 주었다.
삼봉은 그만치 잔소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벗고 있는 실성 외계인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이상해.”
“뭐가유?”
들고 있는 것은 빠닥빠닥 쌀풀을 먹여 볕에 잘 말린 팬티였다. 바스러질 것처럼 사각사각 소리가 나서 그 섬뜩한 위력이 눈에 보일 듯이 뻔한 삼봉의 소심한 복수.
“팬티가 얼었어.”
“야?”
“얼었다고. 꽝꽝 얼었잖아. 이거 왜 이래.”
“허!”
입은 있으되 할 말이 없었다.
“이거 왜 이런 거야. 못 입는 거야? 못쓰게 됐어? 버려?”
“아자씨…….”
저건 무식한 것도 아니고 상식의 부재 수준도 아니다. 삼봉의 눈에 우주인은 백치에 유사했다. 어느 동네에 가도 한 사람쯤은 꼭 있는 정신 줄 놓은 사람. 딱 그 수준이었다.
“왜 팬티가 얼었냐구.”
“아녀유.”
“아냐?”
긴 한숨 끝에 삼봉이 맥없이 대답했다.
“풀을 먹였시유. 그려서 그려유.”
“풀을 왜 먹여. 팬티가 소야? 아니면 말이야? 내가 말좆이라도 내 팬티는 그냥 팬티야. 풀을 왜 먹여. 너 바보냐?”
아이고. 복장 터져라.
복수도 상대가 뭘 알아야 진가를 발휘한다는 사실에 대해 삼봉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여기 이 요상한 집에 와서 삼봉은 평생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던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또 알게 되었다.
“그 풀이 아니고 왜 도배할 때 종이 바르는 풀 있지유? 뭐 붙일 때 쓰는 풀이유. 그런 것처럼 여름옷에는 풀을 먹여유. 인자 낮에는 한창 땀이 날 정도로 후끈후끈하니까 속옷이 몸에 감기고 그럼 못쓰잖어유. 지 고향에서는 더운 여름에 그렇게 옷에 풀을 먹여서 입는 구먼유.”
“이걸 어떻게 입어.”
“왜 몬 입어유.”
“이렇게 꽝꽝 언 걸 어떻게 입어.”
오늘 몹시 기분이 좋은 관계로 우주인의 인내심은 사상 초유의 고점을 찍고 있었지만 삼봉의 인내심은 그와 반대로 바닥으로 치달았다.
“언 게 아니구유. 가슬가슬해진 거여유. 몸에 들러붙지도 않고. 션하니 입을 만 혀유. 우리 고향에서는 여름철에 다 그리 입는다니께유?”
“그래?”
굉장히 미심쩍은 얼굴이기는 하지만 주인은 슬그머니 다리를 들어 팬티를 껴입기 시작했다.
“그럼유. 우리 성들이랑 아부지는 지가 빤쓰에 풀을 먹여 주면 월매나 환장을 하는디유.”
‘환장을 하며 잘못했다고 빌었더랬지유.’라는 말은 과감하게 생략한 삼봉의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진실을 알 턱이 없다.
“왜?”
“그게 사내들 정력에 그렇게 좋다는구먼유? 왜 사내들 불알에 땀 차고 그러잖어유? 그럼 애기씨들이 다 죽어 버린다고 옛날옛날부터 대가댁 어르신들은 죄다 속고쟁이에 풀을 먹여 여름 한 철을 나고 그랬다자너유.”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지만 삼봉의 그 발언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정력에 좋아? 흥! 난 지금도 충분히 좋거든?”
“그려도 유비무환이라자너유. 하초에 좋다면 강구도 잡아 묵는 것이 사내들 맴 아니겄시유? 좋다니께 지가 손 몇 번 더 가더라도 챙겨 드린 거구먼유. 월급도 주시고 그라는디 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양껏 해야지. 그게 사람 도리 아니겄시유?”
‘대신 성들이나 아부지가 풀 먹인 빤스 입기 전에 조몰조몰 해서 거친 기를 누그러트리고 입었다는 말까정 해 줄 의리는 없구먼유.’
해맑게 웃고 있는 삼봉의 얼굴을 보면서 우주인은 뻐덩뻐덩하고 괴상한 느낌이지만 뭐 몸에 좋다고 일껏 신경 써서 챙겨 준 남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 게 좋다 판단했다.
“강구가 뭐냐?”
“강구가 강구지 뭐여유?”
“그러니까 강구가 뭐냐고.”
“아……. 아자씨는 강구가 뭔지 잘 모르겄네유. 바퀴벌레는 알어유?”
“윽!”
우주인의 미간이 일그러졌지만 거칠고 빳빳한 팬티 때문은 아니었다.
“미쳤냐? 암만 몸에 좋대도 바퀴벌레를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
“말이 그렇다는 야그지 뜻이 그렇다는 야그는 아니자너유.”
“기분 나빠. ……아침 메뉴는 뭐야?”
삼봉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온순한 표정을 만들어 보였다.
“아줌니가 무국 끓이고 있구먼유. 옷 입고 나오시면 얼추 다 되었을 거구먼유.”
“나가봐.”
“야. 후딱 나오서유.”
뒤돌아 방을 나오는 삼봉의 얼굴에 매우 사악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두 명의 형과 아버지를 상대로 실험해 본 결과 빠닥빠닥하게 쌀풀을 먹여 말린 팬티는 적어도 사흘의 후유증을 낳는다. 삼봉은 단지 그 속옷을 입기 전에 해야 하는 한 가지 팁을 빼먹고 말해 주지 않은 것뿐이며, 그것도 냉큼 그 팬티를 껴입기부터 한 우주인에게 더 큰 잘못이 있을 것이다.
저 말좆이 시뻘겋게 까져 퉁퉁 부어 있으면 참으로 볼만하겠다는 생각에 삼봉은 십 년 묵은 체증이 훌러덩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쌀풀 먹인 빤쓰는 정삼봉의 체증은 쑥 내려가게 하였으나 우주인의 사타구니를 초토화 시켰다.
어기적거리며 돌아온 우주인은 현관문에 장승처럼 선 채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고, 그것으로 분이 풀리지 않은지 그 길로 바지를 훌렁 벗어 벌겋게 까진 사타구니를 삼봉에게 들이대기까지 했던 것이다. 양 여사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차예진이 슬그머니 콧잔등을 누르며 가재미눈을 하고 훔쳐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수세미로 예민한 부위를 문질러 대는 고통 속에서 그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코딱지도 알아야 한다면서 돼지 멱따는 소리로 꽥꽥 울부짖어 댔던 것이다.
“음마?”
“니가 소야! 음머는 무슨 놈에 음머야! 이거 어떡할 거야. 어쩔 거냐구!”
“지가 소띠는 맞구먼유. 금 아자씨는 말띠겄네유?”
삼봉은 한껏 순진한 얼굴로 주인의 약을 올리면서 느릿느릿 말했다. 사실 같은 사내로서 저 꼬라지가 되어 있는 우주인을 보는 것이 마음 쓰라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간 저 실성한 외계인이 저지른 온갖 만행을 본다면 정삼봉의 성질에 정상참작을 제대로 해준 것이라 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야!”
“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