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인은 꼭지가 돌아 있었지만 삼봉은 이런 상황까지 미리 예측하고 있었으니 전략적으로는 삼봉이 우세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삼봉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우주인이라는 저 외계 생물체가 상식 결여에 체면 결여는 되어 있을지 몰라도 나름대로 사회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매우 성공한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그 어떤 분야에서건 세인들의 인정을 받을 만큼 두각을 나타내고 정상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저력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무식하고 유치하고 비상식적인데다 개초딩이라 평가 받는다고 해도 우주인은 어느 시점 어느 공간에서는 정점에 올라서 있는 남자였다.
“불어.”
“……?”
삼봉이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우주인은 허리춤에 떡 하니 손을 올려붙이고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너 일부러 말 안 했지?”
“뭘유?”
“풀 먹인 팬티 입을 때 문질러서 풀기를 좀 빼고 입어야 하는 거 일부러 말 안 한 거지?”
“……!”
욱하는 성질 머리는 있다고 해도 사회 경험이 일천한 삼봉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뻔뻔스럽기가 하늘을 찌르는 우주인이 자랑스럽게 자신은 풀 먹인 팬티를 입었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닐 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주인의 주변에는 그를 꽤 예뻐하는 노인네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도 미처 알지 못했다.
우주인은 착공식의 손님으로 온 노인네들에게 그의 집에서 머슴 살고 있는 코딱지가 자신을 생각해서 풀 먹인 속옷을 준비해 놓았더라는 말을 자랑처럼 으스댔다. 그리고 부러워하는 노인네들에게 좋은 건 모르겠고 맨살에 스치니 좀 쓰라린 거 같다는 엄살도 늘어놓았다. 그래서 얻게 된 정보가 저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떠보니 역시나인 것이다.
가슴 쓰린 배신감이 뒤통수를 후려치고 지나가지만 삼봉과는 달리 우주인은 닳고 닳은 남자였다. 속내 가지는 생각 따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감출 수 있는 성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불라고.”
“…….”
휘둥그레진 눈을 끔벅거리기만 하는 삼봉을 보면서 우주인은 고소했다. 삼봉이 속으로야 ‘이 인간이 아까부텀 뭘 자꾸 불라는 거여 시방. 죄 알고 왔으면 욕이나 진탕 퍼붓고 들어갈 일이지 현관에 서서 훌렁 벗고 뭐 하는 짓이래?’라고 생각하는 것 따위 알 리가 없었다.
“남자는 말이다 코딱지.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고로 넌 이거 나을 때까지 내가 부르면 재까닥 와서 불어.”
“뭘 불라는 거여유. 시방?”
“너 호 할 줄 몰라? 호 하라고!”
“호……!”
우주인의 옆과 정삼봉의 뒤에서 숨죽인 웃음소리가 튀어 올랐다. 처음부터 이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두 여성의 입에서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튀어나온 웃음소리에 삼봉의 얼굴은 새빨갛게 변했다.
“시방 뭐라는 거여유! 금 지금 질더러 아자씨 말좆에다 언네마냥 호……! 를 하라는 말이여유. 시방?”
“그럼. 니 좆에다 호 할래? 니가 풀 먹인 팬티 입고 하루 종일 본의 아니게 학대당한 건 니 좆이 아니라 내 좆이거든?”
“이 아자씨가 진짜 실성을 했나…….”
너무 기가 막혀 간신히 체면치레만 하던 예의범절도 홀랑 날려 버린 삼봉이 버버거리는 동안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양 여사의 음성이 삼봉의 편을 들어주었다.
“사장님……. 그건 다분히 성희롱적인 발언인 거 같은데?”
“모르면 가만있어. 양 여사! 내가 지금 성희롱을 하는 거면. 이 코딱지만한 놈은 날 오늘 하루 종일 성고문했어!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양 여사도 눈이 있으면 보일 거 아냐! 내가 이러고 놀러 라도 나갈 수 있겠어?”
“……허긴.”
믿었던 양 여사마저 냉정하게 삼봉을 버리자 삼봉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더니 지금 자신의 꼬락서니가 딱 그짝이 아닌가. 실성한 변태 에일리언인 것은 알았어도 잔대가리까지 비상하게 돌아가는 줄은 몰랐던 삼봉이 제 발등을 제가 찧었다.
“너……. 불어!”
“아자씨…….”
“잔말 말고 불어.”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차예진 씨의 목소리에도 웃음기가 담뿍 묻어 있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픈 삼봉의 심정은 아무도 몰라준다. 친하다 생각했던 양 여사도 웃고 세상 다시없이 참한 누님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샛방 누님도 웃는다.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이라고 생각하는 삼봉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웃음은 다른 의미의 것이었다.
우주인의 정신세계가 독특하기는 해도 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남자였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 그에게 이런 짓을 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들은 그리 생각했다. 성질 머리 고약한 우주인이 정삼봉에게는 몇 수 물러 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삼봉은 절대 알지 못하겠지만 그녀들은 그것이 가엾은 처지에 놓인 정삼봉에 대한 우주인식의 호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왜. 구경하고 가지.”
“그래도 됩니까?”
정색을 하고 차예진이 묻자 우주인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가!”
“안녕히 주무십시오.”
차예진도 군말 없이 돌아섰다. 심정적으로야 조금 더 구경하고 싶기는 하지만 우주인조차도 베푸는 삼봉에 대한 친절을 그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그저 모른 척 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넌. 후딱 불어라.”
삼봉은 금세 눈물이 차오르는 눈으로 우주인을 보았다. 하지만 잘난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얼굴에 인정머리라고는 약에 쓸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돈 안 들이는 방법으로 책임을 질래. 아니면 수억 들여서 신체적 정신적 손해배상을 할래. 참고로 말하자면 배변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재판에서 진 역사가 없다. 그게 민사든……. 형사든.”
돈 있으면 내가 아버지 내깃돈 대신에 깔머슴 생활을 하겠냐 되묻는 눈빛에도 우주인은 꿋꿋하기 그지없었다.
“불어.”
“불어 주기만 하면 되유?”
눈물은 그렁그렁 차오르는데도 암팡지게 다물고 있는 입매는 당돌했다.
우주인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말……. 언네도 아니고 꼭 그래야겠시유?”
“당연하지. 너 때문에 내가 오늘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참말로 요상한 사람이구먼유. 아자씨는 참말로 요상한 사람이어유.”
“그건 남들도 다 아는 사실이고. 언제까지 여기 서 있으라고. 후딱 불어!”
“알았구먼유!”
이제 삼봉도 남은 것은 오기밖에 없었다.
주인의 말대로 쓸리고 까져서 발갛게 되어 버린 부위만 문제 삼지 않는다면 불어 주는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저 괴상한 외계 생물체는 제 맘대로 안 되면 소송이든 재판이든 하고도 남을 위인이니 돈 안 들이는 방식으로 해결 보는 게 가장 현명한 처사였다.
그리고 뭐……. 초토화되어 버린 거길 보면 삼봉 자신도 미약하게나마 죄책감이 느껴지기는 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삼봉은 냉큼 주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빨갛게 쓸려 피멍이 맺힌 거대한 성기를 후-! 하고 불어 주었다.
“야!”
“야?”
“사과도 해야지. 너 때문에 그게 엄청 고생했잖아!”
“아자씨는 거시기 보고도 말 시켜유?”
“응.”
“허…….”
뻔뻔한 우주인 씨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의 삼봉에게 의기양양하게 대답해 주었다.
“넌 말 안 시켜 봤냐?”
“보기 좋겄네유. 시도 때도 없이 자기 꼬추를 내려다보며 말을 걸면 참 보기 좋겄시유.”
“사과나 해.”
삼봉은 이를 득득 갈아붙였다.
“……안 되았구만. 내가 아침나절에는 고만 깜빡했구먼. 하루 종일 고생혔쟈? 호-. 호-.”
“흠…….”
삼봉의 등 뒤에서 숨이 넘어가는 신음 소리가 났다. 벽을 붙들고 서 있던 양 여사가 끅끅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쓰러지는데 우주인도 삼봉도 거기까지는 미처 마음 쓸 여력이 없었다.
“댔지유?”
“뭐……. 일단 오늘은.”
“야?”
“나을 때까지 부지런히 불어 줘야지. 안 그래?”
“허! 이 아자씨가 증말!”
엉거주춤 바지를 끌어올린 우주인이 근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삼봉의 눈에는 눈이 셋 달린 상어 이빨의 괴물이 군침을 뚝뚝 흘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세상이 그리 쉬운 게 아냐. 알아? 코딱지만한 게 사람을 뭘로 보고……. 음홧홧홧홧홧. 너도 이제 인생의 쓴맛을 좀 알았을 거다. 내일 보자.”
어기적거리며 걸어도 화보인 뒷모습을 보면서 삼봉은 저게 월급 주는 사장만 아니면 확 들이받아 버렸다고 생각했다.
무식하고 유치하고 개념 없는데다 상식도 없는 외계인이 이제 변태인 것까지 알아 버렸다.
세상은 절망적이지만 삼봉은 그 절망을 꺾어 버릴 방도가 없었다.
“인쟈. 나슬 때도 되잖았시유!”
삼봉의 목소리는 질문이 아니라 절규였다.
허나 개운하게 벗고 나와 볕바라기를 하는 우주인에게 그것은 100% 유기농 냉압착으로 짜낸 참기름보다 고소한 즐거움이다.
“아직 아프거든?”
“발써 일주일이나 지났시유. 안적도 아프다는 것이 그게 말이나 돼유?”
“안되면 어쩔 건데.”
“봐유. 야도 멀쩡하잖어유!”
전염이 되었는지 이제는 삼봉도 우주인의 말좆(?)을 인격화 시켜 말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일주일 내내 주인은 대문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채 시도 때도 없이 코딱지! 코딱지. 해가면서 삼봉을 불러 대령시켰던 것이다.
단순한 사과가 원망이 되고 그것이 푸념으로 그리고 넋두리로 변화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멀쩡하기는 어디가 멀쩡해. 빨갛잖아! 너 때문이잖아!”
“워디가 빨개유. 워디가. 시커멓구먼 워디가 빨갛냐구유! 색맹이어유?”
‘어쭈. 그러다 한 대 치겠다?’ 하며 주인이 히번뜩 눈살을 찌푸리자 삼봉은 조그만 주먹으로 제 가슴을 탕탕 치며 한숨인지 신음인지 헛갈리는 소리를 냈다.
“허이구…….”
“잔말 말고 불기나 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서지기라도 할 듯한 햇살 아래 그린 듯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가 하는 행동이 아무리 개초딩 변태 짓이라고 해도 누구 모르는 사람이 보면 행위 예술 작품이라도 제작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멋진 풍경 속에서 삼봉 혼자만 가슴을 치고 발등을 찧으며 고통스러워한다.
초록색 잔디밭. 부서지는 햇살. 눈부신 나신. 그리고 아프기는커녕 너무 멀쩡해 보여서 화딱지 나는 저놈에 말좆.
“호-. 아프냐?”
풀숲같이 구불거리는 음모 위에 얌전히 몸을 뉘고 있던 것이 삼봉의 입김에 귀찮은 듯 몸을 뒤챘다.
“……나도 아프다. 어헝헝헝헝----. 아자씨. 아자씨는 민망허지도 않어유? 이게 지금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여유?”
“나 상식 같은 거 모른다. 계속 불어.”
“어우!---. 호-. 호-. 빨리 나서라. 후딱 나서라……. 음마?”
“……?”
빛을 받아 갈색으로도 보이고 금색으로도 보이는 음모 속에서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삼봉이 호 호 입김을 불어 주며 빨리 나으라고 말해 주는 그 주체가 삼봉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삼봉의 심란함에 우주인은 선글라스를 슬쩍 들어 올리며 묘한 눈으로 삼봉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