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냐?”
“아자씨.”
“왜.”
“좆 세우지 마유.”
“…….”
적나라한 삼봉의 말에 주인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였지만 그는 여상하게 다시 선글라스를 내려 볕을 가리며 ‘흐응…….’ 하는 묘한 소리를 냈다.
“안적 아프다는 거 순 거짓말이지유? 맞지유? 까지고 쓸려서 아프담서 발딱 서서 건들거리는 건 뭐래유? 이상하잖어유.”
“하나도 안 이상해.”
“아자씨 몰상식에는 안 요상할지 모르겄지만 상식적인 지 눈에는 충분히 요상하구먼유. 시방 이게 뭐 하는 짓이래유!”
“그리고 발딱 서다니. 장난하냐?”
“야?”
우주인은 웃고 있었다. 너무 화사하게 웃는 입매가 아름답게 휘어지고 있었지만 잔뜩 열 받아 누구든 건드리면 물어 버릴 테다라며 날이 곤두선 삼봉에게는 보일 리가 없다.
“아직 덜 섰다. 꾀부리지 말고 열 번만 불고 가라. 30분 후에 점심 먹을 거다.”
“커헉!”
말이 안 통하는 상대 앞에서 상식을 논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삼봉은 자신이 처음 이 남자를 보았을 때 실성한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 딱 정답이라 생각하며 불어야 했다. 슬금슬금 움직이며 일어서는 말좆을 마냥 사랑스럽다는 듯 호- 호- 불어 주며 빨리 나으라고 축원까지 해주어야 했다.
세상이 엿 같았다.
모처럼 사무실에 갔다가 구 비서에게 실컷 잔소리만 얻어먹은 배 변호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얻어먹은 것이 잔소리뿐이라면 그나마 사정이 나았겠지만 선거철만 다가오면 지치지도 않고 들어오는 이곳저곳의 청탁까지 전하라는 심부름에 입이 댓 발은 튀어나와 있을 것이다. 이런 얼굴로 우주인을 만나면 틀림없이 그쪽에서도 꽤나 싫은 소리를 듣게 되겠지만 구 비서의 잔소리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한가로운 잔디밭 정원에 홀랑 벗고 누워 선탠을 하고 있는 우주인을 발견했을 때 그는 꽤 당황해야 했다.
나이는 공으로 먹지 않는다면서 늘상 유들유들하니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는 법이 없었던 사나이 배상중의 얼굴을 굳어지게 만든 것은 생각지도 않았던 광경이었다.
고양이와 개처럼 으르렁거리는 모양새로 배 변호사를 즐겁게 만들어 주던 이 집의 두 남자가 벌건 대낮에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생김새 체격을 가리지 않고 구미만 당기면 잡아먹어 버리는 광폭 취향-실제로 우주인에게 취향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의 우주인만이라면 친절한 금자 씨의 엉덩이에 붙어 있다고 해도 배 변호사를 놀라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우주인의 양껏 민망한 거시기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있는 정삼봉은 경우가 달라도 너무 다른 케이스였다.
저도 모르게 나무 그늘로 몸을 숨긴 꼴이 되어 버린 배 변호사는 자신이 지금 뭘 하는 것인지 한심하기만 했다. 우주인 성질 머리와 누구든 꼴리면 한다는 성욕 지상주의 그리고 지금껏 맘먹고 꼬여내 유혹하지 못한 상대가 없었던 저 예술적인 바디까지 염두에 둔다면 정삼봉이라고 해도 함락의 날이 머지않았음을 미리 예측하여야 했다. 하긴……. 솔직히 말해 우주인과 정삼봉이 붙어먹든 떨어져 먹든 배상중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볼일을 다 봤는지 터덜터덜 집 안으로 가 버리는 삼봉이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면서 그는 천천히 나무 그늘에서 걸어 나왔다.
“숨긴 왜 숨어.”
“알고 있었습니까?”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몰랐는데 우주인은 배 변호사의 등장을 진즉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난감하게 나무 그늘로 숨는 것도 인상을 잔뜩 구긴 채 자신에게로 걸어오다 어깨를 으쓱하는 것도 모두 보고 있었던 것이다.
“…….”
“뭐!”
“원조 하시려구요?”
“원조?”
“아니면 미성년자 성추행? 그것도 아니면 직장 내 성희롱? 그게 아니라면…….”
“그만하지?”
“아! 이것도 있군요. 우주인은 원래 변태였다.”
“훗…….”
성질 돋우려고 비아냥거린 말인데 당사자는 재미난 얼굴로 웃어 버린다. 상중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취향 아니라고 바락바락 소리 지를 때는 언제고 벌써 마수를 뻗은 겁니까?”
“팬티에 풀을 먹였어.”
“예?”
팔베개를 하고 누워 한가롭게 햇빛을 즐기는 우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저 맹랑한 성질 머리에 너 엿 먹어라 하면서 해 놓은 짓이겠지만 말이야. 그거 은근히 마음에 들거든. 알아?”
상중은 미간을 찡그려야 했다. 대체로 우주인은 주어를 빼놓고 말하는 일이 많고 목적어도 동시에 가출하는 일이 허다했다. 뭐가 마음에 드는 것이고 무엇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뭐……. 첫날에는 쓸려 까지고 난리가 아니었지만 말이야. 입어 봤어?”
“예?”
“풀 먹인 팬티.”
“……아. 아뇨.”
“입어 봐. 좋아.”
세탁소에서 배달해 주는 팬티 입는 입장에서 풀 먹인 팬티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호사이다. 놀리는 것은 아닐 테지만 배 변호사는 은근히 부아가 났다.
“그리고 여전히 코딱지는 내 취향 아니야.”
“취향 아닌 사람하고도 잘 수는 있잖습니까.”
“그럴 수는 있지. 그런데 그래서 나한테 남는 거라도 있어?”
“그럼 아까 그건…….”
“아. 그거? 호- 해준 거야.”
“예?”
배상중은 슬그머니 주인의 곁에 앉았다. 기분이 좋은 듯 웃고 있는 주인의 얼굴은 언제나와 같이 혼자 화보를 찍고 있었고, 볕도 바람도 좋은 초여름의 한낮이었다. 곧 점심나절이니 밥을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하는 한가한 생각도 들었다. 늘 생각하는 일이지만 우주인은 밥 인심이 참으로 박하다. 이 집에서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양 여사의 밥은 단지 우주인만의 것이고, 아무리 대단한 손님이 와도 양 여사가 손님 밥을 차리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거의 이 집 식구나 마찬가지인 배 변호사도 구 비서도 따로 지어진 별채에 기거하는 차예진도 양 여사의 밥을 얻어먹을 수는 없었다. 그건 우주인의 기분이 아주 한껏 좋아 은하계를 부유하는 정도가 되어야지 내려지는 특혜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삼봉이 들어온 후에는 삼봉이 끼니때가 되면 밥을 차려 줘서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전에는 부러 밥 때를 피해 이 집을 와야 할 만큼 우주인은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지독한 독점욕을 보여주고 있었다.
누가 있거나 말았거나 밥은 언제나 혼자 먹는다. 먹어보라는 말도 없고, 심지어 식사 했냐며 입에 발린 인사말도 하지 않았다.
그즈음 해서 정삼봉과 우주인이 보여주었던 놀라운 광경에 대한 흥미는 이미 배 변호사의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워져 있었다.
“전에 공원에서 말이야. 애가 넘어지니까 여자가 까진 무르팍에다 ‘호-’ 를 해 주더라고. 그럼 안 아프다고 거짓말까지 하던데? 그래서 나도 시켜 본 거야.”
“예?”
딴생각에 빠져 있던 배 변호사는 잠시 동안 혼란스러워 했다. 그리고 그는 ‘응?’ 하는 얼굴로 우주인을 보았다.
“너 때문에 까졌으니까 니가 호- 해줘야 한다고 시켰어. 그런데 그게 참 신기하게 진짜로 안 아프더라고. 죽상을 하고 찡그리면서도 ‘호-’ 해주는 것도 꽤 재미있고. 더군다나 자기가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잖아. 난 어른이니까. 뭐 사실…….”
“아……. 그러니까 그냥 ‘호--.’를 해준 거라는……?”
“왜 말 안 까.”
“예?”
“말 까라고 했잖아.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왜 안 까.”
배 변호사는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의외의 구석에서 어린애 같은 면이 있는 우주인이었다.
“너는 왜 까.”
“응?”
“나보다 나이도 작은 게 왜 말까.”
라고 말해도 살짝 고민하는 듯 미간을 찡그리기는 하지만 배 변호사의 건방진 태도에 대한 불쾌감이 아니라 뭔가 변명 거리를 찾는 그런 얼굴이었다.
“나는 고용주잖아.”
“고용주한테 말까다 해고당하면 어쩌라고.”
“말 깐다고 해고할 만큼 멍청이로 보여. 내가?”
“아냐?”
“그딴 이유로는 해고 안 해.”
“흠……. 그렇다면야. 계속 까지 뭐.”
“좋아.”
좋단다.
의외의 귀여운 구석에 배 변호사가 웃고 있는 동안 우주인은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한 번 해 보고 싶었어. ‘호-’ 해주면 정말 안 아픈 건지 궁금했거든.”
“…….”
그리고 그 말은 배 변호사로 하여금 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우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차츰 알아 가면 되는 것이다. 양 여사나 구 비서처럼 태연스럽게 그에게 적응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알아 가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심상하게 내뱉어지는 아무렇지 않은 말 속에 숨겨진 꽤 서러운 감정 같은 것이 그것이었다. 난폭하고 위험하지만 더불어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잔인한 우주인의 입에서 ‘호-.’ 같은 유치한 발상이 나오면 배 변호사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한참 동안 미간을 찡그린 채 주인을 응시하던 배 변호사가 가만히 손을 뻗어 따끈따끈해진 우주인의 어깨를 짚었다. 힘주어 꾹 누른 손으로 매끄럽고 단단한 어깨를 거머쥐자 우주인의 눈썹이 찡긋 올라간다.
“뭐야. 배변도 나한테 반했어?”
“어떻게 살았던 거냐……. 그리고 나야말로 넌 내 취향 아니다.”
“그럴 리가 없어. 나한테 안 반하는 건 사람이 아니야.”
“그럼 오랑우탄이라도 된다는 말?”
“안경원숭이.”
위로고 나발이고 주먹이 쥐어지는 팔에 힘을 뺀 것은 ‘아자씨 밥 먹어유!’ 하고 외치는 삼봉의 음성이었다.
세상에서 밥이 제일 좋고, 그중에서도 양 여사의 밥이라면 환장하는 우주인이 벌떡 일어섰다.
축 늘어져 덜렁대는 성기를 흔들면서 우주인은 그야말로 ‘밥 먹으러’ 뛰어갔다. 씰룩거리는 궁둥짝을 보며 혼자 심각했던 배변은 헛웃음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체 어떻게 살았던 거냐…….”
‘호-.’ 해보고 싶었던 개초딩은 그 목적을 달성했고, 그게 안쓰러웠던 배변은 우주인을 향한 동정심이란 것은 개발에 편자처럼 쓸모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가엾은 것은 어쩌면 가엾은 것으로 충분히 그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른다.
“손맛이 좋구나.”
커다란 독에 담은 양 여사의 양파 장아찌와 작은 독에 담았던 삼봉의 장아찌 맛을 비교한 양 여사의 입에서 너그러운 칭찬의 말이 튀어나왔다. 삼봉은 괜히 겸연쩍어 머리통을 북북 긁었다.
“뭘유. 아줌니 솜씨 따라 갈려면 한참 멀었구먼유.”
“사내애라서 음식 하는 일은 가르치기 힘들겠다 싶었는데 감각이 있어. 한 번만 가르쳐줘도 곧잘 따라 하는 거 보니까 연말에 은퇴해도 되겠다.”
“야?”
양 여사는 큰 독에 있는 장아찌와 작은 독에 있는 장아찌를 사발에 덜어냈는데 정확히 세 개씩 여섯 개를 꺼내 담았다.
“사장님한테 말씀 못 들었니? 연말까지 일하고 그만두려고.”
“아니 왜유?”
“왜긴. 일하는 거 진력나서 그렇지. 나도 좀 쉬고 싶기도 하고 몸도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시작하고…….”
“음마. 금 쥔 아자씨 음석은 누가 맹글어 주구유. 그 까탈스러운 입맛 맞춰 주는 사람을 워디서 구해유.”
“뭣 하러 구하니. 지금부터 널 가르쳐 놓으면 되는 거지. 까탈스럽다고는 하지만 별스럽지도 않아. 그냥 밥 차려 주는 사람 정해 놓고 그 사람 아니면 싫다고 어린애처럼 어깃장 놓는 것뿐이야.”
삼봉은 난감할 따름이었다. 양 여사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입맛이 까다롭지 않다 말하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양 여사가 한 밥 아니면 안 먹어!’ 하면서 하도 시끄럽게 쨍알거리기에 오기로 그녀가 한 음식과 똑같은 음식을 만들어 찬 통에 넣어 둔 적도 있었다. 그랬더니 우주인은 그 반찬에는 딱 한 번 손을 댔을 뿐 두 번 다시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양 여사가 음식을 차려 주었으니 군말하지는 않았지만 삼봉의 음식과 양 여사의 음식을 은연중에 구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 누가 한 음식인지 알아차리는 귀신같은 주둥이는 아니더라도 맛이 있고 없고는 영리하게 눈치 채는 혀를 가진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