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58)

“으윽……!”

“그래도 돼?”

“안됩니다.”

“쳇!”

이제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 우주인이 투덜대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기 때문에 배 변호사는 몰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잘못하면 귀밑까지 입이 찢어질 뻔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지금 이 순간 배 변호사만이 혼자 말도 안 되는 우주인의 농담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 같지만 우주인의 실체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이들은 모두 배 변호사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우울증 도진 개초딩은 사실 인간이라기보다는 에일리언이라고 봐야 하는 존재였다.

배 변호사와 점심을 나눠 먹은 삼봉은 그가 곧 돌아갈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집에 잘 오지 않는 비서 형님도 그들의 점심 식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으로 찾아왔다. 그래서 구 비서의 점심까지 챙겨야 했던 삼봉이었지만 그는 꽤 기분이 좋았다.

형님 둘에 아버지. 그게 삼봉의 가족 관계였다. 번잡하다면 번잡할 수도 있고, 단출하다면 단출한 구성이었지만 삼봉은 어미가 없는 쓸쓸함을 메우려는 듯 주변에 웅성웅성 사람이 많이 몰려드는 것을 좋아했다.

우주인 밥만 챙겨 주고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자신의 방에 머물러 있는 양 여사도 하루 종일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고, 오후 늦게는 셋방 사는 누님까지 안채로 와서 양 여사의 곁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다.

오늘은 잔칫날인가 싶을 만큼 다양한 구성원에 삼봉은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이렇게 와글와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은 정말로 즐거운 일이었다.

놀라움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저녁 식사를 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양 여사는 언제나와 다를 바 없이 우주인의 우주 식량을 챙겼지만 다른 사람들은 삼봉의 몫이 되었다. 커다란 대리석 상판의 식탁 위에 기묘한 겸상이 차려졌다. 삼봉이 만든 음식 앞에 모여든 사람들과 양 여사의 우주식을 탐욕스러운 눈으로 사수하는 외계인.

오후 늦게부터는 갑작스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해거름에 시작한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그들의 저녁 식사가 마칠 때쯤 되어서는 천둥번개까지 번쩍이며 천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태풍 뭐시긴가가 올라온다더니 거짓말처럼 맑았던 낮의 날씨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놓은 하늘이 우르릉 꽝꽝 퍼붓듯 비를 내리고 있었다.

삼봉은 제가 차린 밥상을 참말 맛있게 먹어 주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소금에 절인 무짠지를 얌전하게 채 썰어 짠기를 빼낸 후에 물기까지 꼭 짜서 오돌오돌하게 만들어 양념한 것은 바닥이 났고, 값이 싸길래 사다 놓은 자반고등어로 묵은지를 넣고 자작하게 졸여 놓은 고등어조림은 비서 형님이 국물까지 싹싹 긁어다 밥을 비벼 먹어 버렸다.

배 변호사도 구 비서도 그리고 셋방 누님도 이것저것 음식 가리는 법 없이 복스럽게 잘 먹는 사람들인지 연방 맛있다 맛있다 아우성을 치며 즐거운 저녁 식사를 했던 것이다.

아쉬운 듯 숟가락을 입에 물고 입맛을 다시는 비서 형님에게서 빈 밥그릇을 뺏느라 살짝 분위기가 나빠지는가 싶을 정도였다. 이미 빈 밥그릇인데도 아까워 죽겠다는 얼굴로 그릇을 내놓은 구 비서를 배 변호사가 구박하고 그 구박에 차예진 씨가 한몫 거들었다.

벌써 예전에 식사를 마친 우주인의 밥그릇까지 깨끗하게 씻어 건조기에 집어넣고서 삼봉은 배가 덜 찼느니 뭔가 더 먹고 싶다느니 해대는 세 사람의 아우성에 인심 넉넉한 시골 아낙처럼 웃어 버렸다. 허우대 멀쩡한 것은 이 집 주인과 마찬가지인 양반들이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나 먹성들이 장난은 아니다.

행주를 삶아 탁탁 털어 널어놓는 것으로 삼봉의 하루 일과는 끝난 셈이었지만 굶주린 축생들을 위해 그는 지하 식품 저장고 시렁에 있는 강정들을 가져 와야 했다. 아예 음식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하실이라 그런지 설에 넉넉하게 만들어 두었다는 강정들은 아직 바삭바삭하고 맛있었다. 차와 함께 대접하면 하이에나 떼들처럼 으릉으릉대는 세 사람도 만족할 것 같았다.

강정과 함께 내가기 위해 찻물을 끓이는데 뭔가 번쩍하는가 싶더니 세상이 새까맣게 변해 버렸다.

“뭐야. 정전이야?”

“그런가 보네요.”

“배 변호사님. 지금 제 발 밟고 계십니다.”

“뭐가 물컹한다 싶더니 구 비서 발이었어?”

“그만 치워 주시지요.”

“사방이 새까만데 뭐가 어딘지 알아야지.”

“그냥 발만 치우시면 되거든요?”

찻물을 끓이는 가스 불만 새파랗게 빛나는 암흑천지에서 갑작스러운 정전에 일어날 법한 해프닝은 기필코 일어나고 있었다. 피실피실 웃던 삼봉은 머리를 긁적이며 양초나 손전등의 위치를 생각해 내려 했다.

“움직이지 마.”

“에?”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우주인의 음성이었다.

방금 전까지도 휑하니 비워진 식탁을 노려보면서 앉아 있었는데 목소리는 왜 등 뒤쯤에서 들릴까 싶어 삼봉은 고개를 돌리려 했다.

“니 발밑에 금자 있다. 밟으면 디질 줄 알아.”

“……뭐가 보이는 건감유?”

워낙에 특이한 인물이니 눈에서 적외선이 나와 이 깜깜한 데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니 눈은 가죽이 모자라 뚫어 놓은 구멍이냐?”

“…….”

맞는가 보다. 눈에서 적외선 광선이 뿅뿅 쏘아져 나오는 에일리언.

체념할 것은 체념하면서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는데 삼봉의 발밑에서 뭔가를 들어 올리는 기척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친절한 금자 씨가 끄응- 하는 소리를 내는 것도 들었다.

삼봉은 진심으로 저 우주인이 어느 별에서 왔는지 궁금해졌다.

거죽도 멀쩡하고 거시기는 말좆에 좀 무식하고 몰상식하기는 하지만 돈도 많지 않은가. 성질 머리만 개차반이 아니면 저런 외계인으로 친구 삼아 나쁠 것이 하나도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응. 삼봉아. 우리 사장님 밤눈이 좀 밝아서 그래. 뭐……. 거의 짐승이지.”

“큭!”

친절하게도 배 변호사가 연방 입을 다물고 있는 삼봉을 위해 변명까지 해줬는데 돌아오는 것은 아주 대놓고 비웃어 주시는 삼봉의 웃음소리였다. 우울증 걸린 외계인 심기를 거슬러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저 조막만 한 녀석은 분위기 파악도 못 하는지 거리낌이 없었다.

반면 삼봉은 말자지에 괭이 눈이라는 형상이 머릿속에 떠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밤눈 밝은 짐승으로는 바로 괭이가 생각나는데 우주인과 괭이의 접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요즘 들어 부쩍 친근해진 말좆까지 더해지니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웃음이 저절로 터진 것이었다.

염산 침을 뚝뚝 흘리는 에일리언에게 슈렉에 나오는 구라쟁이 괭이눈을 붙이고 거기다 아랫도리에는 말좆까지 첨부한다면 웃음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큭큭 대며 웃고 있는 삼봉과 그런 삼봉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숨죽인 세 사람. 아니, 양 여사까지 더한다면 네 사람이 있었다. 삼봉이야 알 도리가 없겠지만 그들은 조마조마한 가슴을 움켜쥔 채 행여나 우주인이 발작해서 저 조그만 녀석의 목을 부러트리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주인은 새까만 어둠 속에서도 거리낄 것이 없는지 성큼성큼 걸어 현관 신발장에 있던 손전등과 양초 상자를 들고 왔다.

“차예진 씨.”

“예?”

“나 맞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예? 무슨…….”

모두가 옴짝달싹을 하지 못한 채 어둠에 발이 묶여 있는 동안 혼자 아무런 장애 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우주인의 음성에 삼봉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하지만 차예진의 마음은 결코 삼봉의 웃음에 동조할 수가 없었다.

“또 업어치기를 하면 당신도 죽어.”

“……?”

어둠 속에서 손목을 잡혀서야 차예진은 주인의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처음 우주인의 보디가드 겸 기사로 채용되었을 때 그가 사심 없이 차예진의 손목을 잡은 적이 있었다. 자신의 지시를 듣지 못한 차예진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였나 뭔가 일이 있어서였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 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업어치기로 우주인을 바닥에 메다꽂은 것이었다.

아직도 자신의 집에는 죽어 나자빠진 짐승의 사체가 있었다. 그것이 사람으로 보이냐며 싸늘하게 비웃던 주인의 얼굴이 지금 그녀의 곁에서 피에 굶주린 입김을 내뿜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잠시간의 온화함으로 까맣게 잊고 있던 공포가 불현듯 들고 일어나 차예진의 몸을 옭아매고 있었다.

“가서 발전기 켜.”

“예……. 예?”

“왜. 할 줄 몰라?”

“아니…….”

“여기 나 빼고 죄 내 고용인들인데 사람 넷에 코딱지 하나 두고 고용주인 내가 가서 발전기 돌려?”

낄낄대던 삼봉의 웃음소리가 뚝 그쳐졌고 차예진은 손전등을 켰다.

그제서야 새까만 어둠을 뚫고 내뿜어지듯 펼친 손전등의 빛에 사람들의 얼굴이 드러난다.

양 여사는 침착한 얼굴로 정전되기 전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이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고, 삼봉은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입이 댓 발은 나온 얼굴로 우주인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우주인이 식탁에 양초 상자를 내려놓자 배 변호사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양초에 불을 붙였다. 노란색 촛불이 흔들리는 주방에 사람들을 남겨 놓은 채 차예진은 혼자 설비실로 가야 했다.

벼락으로 인근 지역의 전기가 모두 나가 버린 상태였다.

거실에 다과상이 차려졌다. 촛불을 켜고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정원의 나뭇가지를 후려갈기는 바람 소리를 배경 삼아 소박하지만 참신한 파티가 열린 것이다.

발전기를 돌리러 간 차예진은 아직 소식이 없었고, 삼봉은 그녀가 발전기 가동하는 일을 좀 더 지체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안온하고 따뜻한 촛불 아래 좋은 사람들이 모여 차를 마시는 풍경이 그럴싸하게 삼봉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비가 와서 땅은 잘 파지겠네.”

다들 앉아 있는데 혼자만 뭐 잘났다고 정원으로 나가는 유리문 앞에 서 있던 우주인이 뜬금없이 내뱉은 말에 구 비서와 배 변호사의 어깨가 흠칫! 하고 굳어 버렸다. 하지만 삼봉은 은은하게 잘 내린 차를 각자의 앞으로 돌리느라 그 모양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

“향이 좋네. 차가 어디서 난 거야?”

“찬장 안쪽에 처박혀 있던 거 지가 접때 저 묵어도 되는가 여쭤봤잖어유?”

“그런 적이 있었어?”

부엌살림은 죄 꿰고 있을 거 같지만 양 여사는 삼봉이 싱크대 어느 구석에서 이 차를 꺼내 온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삼봉이 하는 말도 영 기억에 없었다.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아줌니가 버리려던 거라고 지 묵어도 된다 그러셨시유. 꾸석쟁이 처박혀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더라구유. 커피니 홍차니 하는 것만 드시는 양반들이라 차 맛은 잘 모르시지유?”

“난 녹차는 풀 내 나서 싫더라.”

양 여사는 홍차를 좋아하고 우주인은 오직 커피만 마신다. 그러니 손님이 와도 내 오는 음료라는 것은 홍차 아니면 커피가 전부였는데 삼봉은 그런 것들보다는 은근하고 편안한 녹차를 좋아했다. 집 뒷산에 있는 작은 암자의 스님한테 배워 정식으로 다도를 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우습기 짝이 없는 터프함으로 차를 내리지만 그 맛은 동네 어른들을 홀려 버릴 만큼 제대로란 평을 받고 있었다. 처박아 놓은 것에 비한다면 보관이 잘되어 있는데다 원래 좋은 차였는지 맛이 일품이라 삼봉은 시간이 나면 홀짝홀짝 차를 타 마시곤 했는데 강정에는 커피나 홍차보다 차가 어울린다 생각해서 오늘의 다과상을 차린 것이었다.

“드셔 보셔유. 풀 내는 안 날 꺼구먼유.”

양 여사와 배 변호사 그리고 구 비서까지 삼봉의 권유에 따라 작은 찻잔에 담긴 차를 홀짝이며 들이키기 시작했다. 삼봉의 장담대로 차는 달고 시원한 맛이 차를 즐기지 않는 그들의 입에도 흡족하게 감돌았다.

“오! 맛있다. 야--. 정삼봉이. 제법인데?”

“맘에 드셔유? 히히히히. 이래봬도 지가 차만 평생 마셨다는 노스님한테도 인정을 받은 솜씨라니께유.”

의기양양한 삼봉의 자랑에 구 비서 역시 토를 달지 않았다.

“흠……. 괜찮은데요? 양 여사님 어떠십니까?”

“좋아. 장담한 대로 풀 내는 안 나는데? 그래도 난 녹차보다는 홍차가 좋아.”

“맘에 안 드셔유?”

“그런 건 아니고. 개인적인 기호의 차이지. 지금까지 마셔 본 녹차 중에서는 제일 낫네. 넌 사내애가 손맛이 제법 있구나. 차도 음식이니까.”

“아이고. 부끄럽구먼유.”

온몸을 배배 틀면서 부끄럽다 말하고 있지만 삼봉은 모두가 모여 자신의 차를 칭찬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어서 셋방 누님이 오면 셋방 누님한테도 차 맛을 보여줘야겠다며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대체 뭐냐? 어떻게 끓이면 녹차가 이런 맛이 나는 거냐? 양 여사 말대로 나도 가끔 멋 좀 내느라 세작이며 작설이며 사다 놓고 마시지만 이건 영……. 미역 삶은 맛이 난단 말이야.”

“푸하! 미역 삶은 맛이유?”

“모르냐? 녹차. 그거 난 암만해도 미역이나 다시마 삶은 물맛이 나던데?”

와작와작 강정을 깨물면서 태연하게 말하는 배 변호사 때문에 삼봉은 한참을 웃었다. 달리 웃은 게 아니라 작은 형도 녹차는 다시마 맛이 난다며 질색하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삼봉이 내려 주면 그러지 않지만 자신이 차를 만들면 꼭 다시마 맛이 나서 못 먹겠다고 투덜투덜 대는 것이다.

“일단 온도 때문에 그렇구먼유. 녹차는 여러 번 내려 먹는 차라서 첫 잔은 물을 좀 식혀 내려야 해유. 그리고 두 번째는…….”

“기억해 둬야겠다. 좀 식혀서 첫 잔을 내리고……. 두 번째는?”

미세한 바람에도 촛불이 몸을 흔들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그림자도 벽면을 타고 오르며 기우뚱기우뚱 춤을 추고 있었다.

“물이유. 차 맛을 좌우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물이구먼유.”

“물?”

“야. 좋은 차가 좋은 맛을 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람들이 그걸 잘 몰러유. 맛있는 차는 맛있는 찻물에서 나오는 법이거든유. 여그 뒤꼍에 우물 있지유?”

“……우물?”

“야. 지도 첨에는 잘 몰렀는디. 우물물이 아주 지대로구먼유.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도 찻물로 나쁘지 않다 싶었는데 저번짝에 우물물을 길어다 차를 끓였는데 이거 딱 감이 오더라니께유? 지가 전국 팔도 유명하다는 찻물은 솔직히 다 먹어봤는디유. 당물샘 물맛이나 여그 우물 물맛이나 비둥비등 하구먼유. 참말 좋은 물이어유. 근데 왜 그 우물을 닫아 놓고 안 쓰시는가 몰러유?”

천진난만한 열의에 들떠 있는 삼봉의 말에 차를 즐기던 세 사람의 얼굴이 싸하니 굳어졌다. 손바닥 안에 감겨 따끈따끈한 온기를 전하던 찻잔을 손에 든 채 배 변호사와 구 비서 그리고 양 여사까지 세 사람 모두의 눈이 삼봉을 응시했다.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형편이지만 우울증 도진 우주인께서 그 우물에 사람 하나 던져 놓은 것이 오 년 전이던가 육 년 전이던가. 배 변호사야 말로만 들었으니 실감이 덜하지만 구 비서와 양 여사의 얼굴은 차마 찡그리지도 못한 채 굳어져 있었다.

“우물물로…….”

“차를 끓인 거니?”

“야.”

세 사람은 동시에 찻잔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서는 다시 마시고 싶지 않은 사정을 삼봉이 어찌 알겠는가.

“좋은 찻물로 내려야 좋은 차가 제값을 하는 거구먼유. 아줌니 홍차 끓일 때도 뒷곁에 우물물을 써 보셔유. 아마 차 맛이 한결 나을 꺼구먼유.”

“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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