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하게 경직된 세 사람의 얼굴을 보며 이 모든 사태의 원흉께서 명백한 비웃음을 웃어 주셨다. 의아하게 그를 돌아보는 것은 삼봉이 하나뿐이었다.
“아자씨. 아자씨도 녹차 한 잔 드시겄시유?”
“……그 우물에 뭐가 들어 있는 줄 알아?”
우주인은 자신에게로 내밀어 지는 찻잔을 선뜻 받아 들면서 물었다.
질문하는 이도 질문을 받는 이도 여상하기 그지없는 태도이지만 청중들은 당혹스러움이 역력한 표정이 되어 주인의 기색을 살핀다.
사실 저 뻔뻔한 개초딩은 우물이나 이 집 마당 이곳저곳에 묻혀 있는 것들에 관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삼봉에게 말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우울증이 도져 폭탄으로 친다면 일촉즉발의 타이머 고장 난 폭탄이 아니던가.
“우물에 뭐가 있겄시유. 물이 있지.”
“내가 오 년 전에 거기 사람 하나 던져 놨거든. 시체 썩은 물이라서 맛있는 거야.”
말리거나 저지할 틈도 없었다. 미련 없이 엄청난 비밀을 털어놓은 우주인이 적당히 식은 차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원래 시체 썩은 물이 모르고 마시면 제일 맛있는 법이거든.”
세 사람의 시선이 이번에는 정삼봉에게로 향하는 것이 즐거운지 우주인은 방긋방긋 웃으며 마치 더 달라는 듯 찻잔을 내밀었다. 그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무마시켜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집으로 와서 차예진의 집 거실에 있는 사체를 확인한 구 비서는 그녀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도 결국 그들에게 포함될 것이라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차예진에 한해 있는 생각이었다. 일 년 기한으로 이 집에 머물다 떠날 정삼봉은 그들과 비밀을 공유하기에 문제가 많지 않은가. 아직 양 여사로부터 어떤 언질도 받지 못한 구 비서와 배 변호사만이 안절부절 삼봉의 눈치를 살핀다. 하지만 양 여사는 입장이 달랐다.
자신은 떠날 사람이고, 삼봉은 남을 사람이다. 그러니 언젠가 삼봉도 정원의 과실나무가 왜 그리 실한 열매를 맺는지 연못에 잉어가 어쩜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지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다만 아직은 시기가 이르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들 뿐이었다.
그러나 세 사람의 우려와는 달리 삼봉의 표정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누굴 언네로 봐유?”
다만 그의 목소리만 가소롭다는 듯 배배 뒤틀려 있을 뿐이었다.
“뭐?”
“말 같은 소릴 해야 상대를 해 주지유. 워디 가서 그런 소리 하덜 말어유. 사람 바보 되는 거 순식간이니깐.”
“너 지금 내가 바보 같다는 거냐?”
“그럼 똑똑해 뵈는 중 아랐시유? 사람이 헐 말이 있고 못 헐 말이 있지 그게 뭐에유. 말이 되유?”
“왜 안 돼.”
“음마 깝깝시러븐 거. 아자씨.”
“왜.”
그 순간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다. 거실은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고, 공기청정기며 텔레비전 오디오 같은 전자 제품에 전원이 들어오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리고 우주인은 코웃음 치고 있는 삼봉의 얼굴을 아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사람 시체가 슈퍼에서 파는 물건인 중 아남유? 아니 다른 거 다 제껴두고라도 자기 먹을 밥에 재 뿌리고 자기 마실 물에 침 뱉는 게 바보짓 아니면 뭐래유? 뭣하러 앞산 뒷산 다 놔두고 우물에다 사람 시체를 던진대유? 그것부터가 웃기잖어유.”
“…….”
“우리가 원효대사여유? 해골에 물 떠 마시고 도가 터서 절로 들어갈 일 있시유? 말이 안 되잖아유.”
우주인은 슬슬 역심을 돋우는 코딱지 때문에 오기가 생겼다.
우울증 걸린 에일리언의 무기력한 정서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마음가짐이었지만 절로 그리되는 것을 막을 생각도 없었다.
“니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고. 이걸 우물물로 끓였다는 걸 알자마자 찻잔 내려놓는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할 건데.”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유.”
“그리고. 사람 시체를 왜 슈퍼 가서 사. 아무나 붙잡아서 목을 따면 되지.”
“하이고. 그러셔유? 사람 목은 아무나 따는 중 아는갑지유?”
주인은 점점 열의에 찬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개초딩보다는 우울증 걸린 에일리언이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아는 나머지 세 사람은 우울증 걸린 에일리언보다 우울증 에일리언이 열 받은 모습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말이다.
“난 아홉 살 때부터 사람 목 따는 일을 했거든?”
“그러셨시유? 지는 일곱 살 때부터 닭 모가지 비틀었구먼유.”
아무도 듣지 못했던 우주인의 과거였다. 배 변호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굳어졌고, 구 비서는 눈을 내리깔며 숨을 죽였다. 거죽으로는 별스럽지 않은 듯 태연해 보이지만 양 여사의 마음에도 혼란스러운 안타까움이 가시를 세웠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그런 게 있시유. 신경 끄시고 차나 드서유.”
모두의 염려와 달리 우주인은 정삼봉의 목을 꺾어 버리지도 않았고 그의 머리통을 부숴 버리지도 않았다.그들이 앉아 있는 거실에는 우주인의 손에 들어가 훌륭한 살상 무기로 변모할 물건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있었고, 우주인은 맨손으로도 외눈 하나 끔뻑하지 않은 채 삼봉이 정도는 비명도 없이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다만 흉흉하게 인상을 쓰고 있는 우주인과 콧방귀를 핑핑 껴 대면서 옴삭옴삭 맛있게 깨강정을 자셔 주시는 삼봉이 있을 뿐이었다.
우주인의 우울증이 도지는 시즌마다 그가 저지르는 만행을 수습하기 위해 잔뜩 긴장한 채 눈치를 살펴 오던 세 사람은 어이가 없어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건드려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험악한 시절이 지금처럼 우주인의 우울증이 도진 시기였던 것이다.
삼봉이야 몰라서 용감하다지만 저 되바라진 말대꾸를 꼬박꼬박 받아 주는 우주인은 뭐란 말인가.
세 사람은 친절한 금자 씨의 행동 변화로 시작되는 시즌이 어이없을 만큼 빨리 끝나 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고 보기에 아직 우금자는 우주인에게 덤벼들지 않고 있다.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에유?”
“그러니까 말이야.”
금자의 행동 패턴이 원상 복귀되지 않는 한 위험 요소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삼봉에게 주의를 줄 필요가 있었고, 총대를 멘 것은 배 변호사였다. 늘상 가시 세운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구 비서는 열외자이고, 양 여사는 암만해도 말로 먹고 사는 변호사가 거짓말을 해도 훨씬 잘하지 않겠냐며 은근하게 책임을 회피했다.
“니가 사장님더러 왜 매 번 실성한 양반. 실성한 양반 이러잖아. 그렇지?”
“그래서유?”
“그러니까 우리 사장님이 주기적으로 우울증이라는 정신 질환이 제대로 찾아오거든. 그런 때는 좀……. 뭐랄까 좀 위험해지지.”
“……?”
삼봉은 자신의 방까지 따라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대는 변호사 선생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 평소에도 그리 정상은 아니지만 우울증이 도지면 살짝 맛이 가서 말이야. 제대로 실성을 해준다 이 말이지. 내 말은.”
“아까 보니께 말짱하던디유?”
“그게 보이기는 멀쩡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진짜 좀……. 뭐랄까 좀 위험하거든? 그러니까 어지간하면 사장님 비위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이 말이야.”
“…….”
사실 삼봉은 지금 배 변호사가 하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니뭐니해도 우주인이 그들의 고용주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배 변호사는 우주인보다 나이도 많고 그래서 말도 놓으라고 하고 그러지만 그렇다고 해도 월급 주는 사장이 아닌가. 그런데 사장을 실성했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배 변호사가 살짝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저는 아주 대놓고 우주인에게 실성했냐 따지고 덤비는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삼봉이었다.
“이런 때 함부로 자극하면 사람도 막 때리고 그러거든. 너도 봤잖아. 오늘 금자가 사장님한테 얌전하게 안겨 있는 거. 너도 봤지?”
“흠…….”
“오죽했으면 사장님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금자까지 꼬리 말고 얌전히 굴겠냐. 응? 그러니까 너도 당분간 좀 조심을 해줬으면 해.”
“그렇긴 허네유. 우짠 일로 금자 갸가 쥔 아자씨한테 안 댐비고 얌전히 있나 싶긴 했시유. 그게 지금 쥔 아자씨가 살짝 맛이 가서 그런 거란 말이지유?”
“그렇지! 그거거든. 오케이? 이제 이해가 가?”
“그래서 지를 더러 우짜라는 말씀이신데유?”
“응?”
여태 사정하고 설명했는데 뭘 더하란 말인가. 배 변호사는 문득 어이가 없어져서 멍하니 키 작은 꼬마를 쳐다보기만 했다.
“우울증 그거 참말 무서운 병이잖어유. 지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마서유. 쥔 아자씨가 성질 머리 참 요상하기는 혀도 일 없이 쌈박질하고 그럴 사람은 아니잖어유. 아까참에도 어딜 가서 맞고 들어왔던데 패기는 누굴 팬다고 이 야단이서유……. 음마. 내 정신 좀 봐라. 계란 하나 가져다 드린다는 게 깜빡혔네. 낼 아침이면 틀림없이 시퍼렇게 멍이 들 것인디. 아이고. 선상님이 문답무용 사람을 질질 끌고 와 혼을 빼놓는 바람에 지가 그걸 깜빡혔잖여유. 우째쓴댜. 시방 가도 주무시겄지유?”
“어……. 그, 그렇겠지?”
무식하면 용감하고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법을 모른다.
배 변호사의 눈에 정삼봉은 딱 하룻강아지였다. 앙알앙알 찧고 까부는 상대가 맨손으로 곰도 때려잡을 살벌한 위인인 것을 꿈에도 모르는 것이다.
들이대는 하룻강아지나 그걸 내도록 그냥 두고 보기만 하는 짐승이나 갑갑할 것은 없다.
그저 지켜보는 사람들이 속 타고 불안해 죽을 지경인 거다.
배 변호사의 말을 내색하지 않지만 삼봉을 혼란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예를 들면 말이다.
“실성한 거처럼 보이는 거이 아니고 참말 실성을 한 거여?”
라든지.
“음마. 금 시방 내가 큰 실수를 한 거 아니여? 실성한 놈더러 실성했다 그랬으니 참말 큰일 아닌가벼?”
또는.
“그랴도 하는 짓이 딱 실성한 놈인디 실성한 놈더러 실성했다 그러지 뭐라 그려. 안 그려?”
밤이고 낮이고 맘껏 빨래를 말릴 수 있게 된 건조장에서 보송보송하게 마른 빨래를 한 아름 안고 서서 혼자 하는 말이다. 모양새로는 우주인이 아니라 정삼봉이 딱 실성한 것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근디 실성을 했다는 겨. 안했다는 겨……. 아아악! 참말로 대가리가 깨지겄구먼. 참말로 요상한 아자씨여. 그 냥반이 말여.”
“누구?”
“누구긴 누구겄시유. 쥔 아저……. 음마? 여는 또 언제 왔시유?”
간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삼봉인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앙큼한 그 얼굴을 보면서도 잔뜩 찌푸린 주인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디질래?”
“야?”
삼봉은 앙큼하게도 시치미를 뚝 떼고서 되물었다. 우울증이네 난폭하네 경고는 들었지만 그는 주인에 관해 그다지 조심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억지소리를 하지 않으니 차라리 우울증이 도져 있는 상태가 훨씬 인간답지 않은가 싶기도 했고 삼봉 자신에게 대하는 주인의 태도는 평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없는 소리를 하기는 하지만 복장 터지는 억지보다는 낫지 않은가.
가만 생각해 보니 어제부터 호- 해 달라는 타령을 안 하니 왠지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
“가만 보니 하도 귀여워서 주먹이 근질근질 하네. 응? 까불다 맞으면 안 아플 거 같지?”
“지가 뭘 까불었다고 그러시는 거여유? 지는 암말도 안 했구먼유.”
“내가 다 들었거든?”
“…….”
속이 뜨끔하지만 그러거나 말았거나 삼봉은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것이 좋겠다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 있냐?”
“없는 데서는 나랏님도 욕한다잖여유. 사람 쫀쫀하게 뭐 그런 걸 갖고 이 야단이래유?”
주인은 방긋 웃었다. 그의 실체를 아는 사람이라면 소름이 돋을 만큼 화사한 미소였지만 삼봉은 내처 그를 제대로 실성한 사람? 혹은 저 주둥이로 사람 복장 터지게 만드는 데는 도가 튼 사람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실성했다는 말뜻이 뭔지 찾아봤거든?”
“것두 몰렀시유?”
“어쨌든. 누구 마음대로 사람을 미친놈 취급하는 거냐? 응? 코딱지.”
“코……!”
“그리고 없는 데서는 나랏님도 욕한다는 니 말. 그거 오류가 많거든?”
“야?”
주인은 친절하게 손을 들어 손가락을 하나 펴 보였다.
“첫째. 나는 나랏님보다 높은 주인님이다.”
“허……!”
삼봉의 기가 차다 못해 넘칠 지경이거나 말았거나 우주인은 알 바가 아니다. 그는 당당하게 손가락 하나를 다시 펴 보였다.
“둘째. 없는 데서 욕하랬지 뻔히 듣는 데서 욕하면 매만 버는 거지. 안 그러냐? 코딱지. 매 맞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