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58)

“우리들 중에 포함될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걸 결정하는 건 사장님이에요. 구 비서가 아니라.”

“그래서 가뜩이나 난폭해진 짐승의 이빨이 어린애 목을 무는 것에 방관만 하시는 겁니까?”

양 여사는 싸늘하게 웃었다.

“꽤 상식적인 사람인 양 말을 하네요?”

“상식 이전의 문제 아닙니까. 정삼봉 씨는 일 년이라는 기한을 갖고 이 집에 온 사람입니다. 우리들처럼 사장님과 함께 한다는 의지나 판단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설마 잊으셨습니까? 정삼봉 씨는 아버지의 내깃돈에 깔머슴 살러 온 것이지 여기 사장님의 집에서 사장님의 사람이 되어 일하는 것을 선택한 적도 없고, 그런 선택의 기회를 가져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요?”

양 여사의 태도가 너무 냉소적이라 구 비서는 조금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도박 중독자답게 나태하기 이를 데 없는 배 변호사는 아직 꿈나라를 헤매는 중이어서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우리들 중에 사장님을 만류할 수 있는 사람은 여사님뿐이지 않습니까.”

“나는 이해할 수 없는데요? 사장님이 잠자리 상대로 누굴 선택하든 그건 사장님의 사생활이고, 내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구 비서가 나서서 이렇게 새벽같이 사람을 들들 볶아대는 이유가 더 납득이 안 가요.”

“……아직 어린애잖습니까.”

“그래서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낀다는 말인가요?”

물론, 그것은 구 비서 자신에게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는 했다. 그리고 이 일은 굳이 양심의 가책이라는 거창한 말로 표현하기에 그저 다소간의 껄끄러움이 있을 뿐이기도 했고 말이다. 구 비서는 나지막한 양 여사의 웃음소리에 조롱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 방조, 사체 유기, 증거 은닉, 경찰 매수. 그런 범법 행위들보다는 어린 아이가 남색 하는 젊은 남자의 애첩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관하는 일이 더 양심에 꺼려진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내가 제대로 납득한 게 맞나요? 아……. 삼봉이는 어린아이라고 하기도 어중간한 나이지만 말이에요.”

“그것 말고도 수없이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양 여사의 모순된 예측이 묘하게 정곡을 찌르고 있지만 구 비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화제의 맥락을 잡으려 했다.

“글쎄요. 뭐가 있을까요?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삼봉이가 이 집에 만연한 범죄의 증거들을 검찰에 가져갈지도 모른다는 거?”

“…….”

“경찰을 매수했듯이 검찰 또한 매수하면 될 것이고 기소된다 해도 배 변호사 월급을 공짜로 지불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이 모든 일련의 문제들은 또 구 비서가 가장 좋아하는 골치 아픈 일거리가 될 거고 말이에요. 구 비서의 선에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사장님이 처리하겠죠.”

“지금…….”

우주인은 그럴 것이다. 골치 아파지는 문젯거리들을 구 비서가 처리하지 못할 때 거리낌 없이 정삼봉의 목을 따 버릴 수 있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게 가장 안전하고 깔끔한 일 처리 방식이기도 했다. 이 집에 묻혀 있고 수장돼 있고 그리고 조각나 있는 증거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구 비서만 알고 있는 문제이지만 그것이 공론화될 때 체포될 사람은 구 비서 뿐만이 아니었다.

양 여사는 악당처럼 웃었다.

“그리고 차예진 씨처럼 그 애가 우리들 중에 일원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일 테고 말이에요.”

“……!”

구 비서가 미처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하는 동안 요란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구르듯 주방으로 들어온 삼봉이 요란하게 호들갑을 떨어 댔다.

“아이고. 아줌니. 죄송하구먼유. 지가 쥔 아자씨 때매 잠을 설쳐서 늦잠을 자 버렸구먼유. 참말로 죄송해유.”

“죄송할 거 없어. 넌 손님들 식사만 차질 없이 준비하면 되니까.”

“그려도 새벽같이 아줌니 일하시는데 지는 퍼질러 잠만 잤잖어유. 뵐 낯이 없구먼유.”

쌀쌀맞게 말하는 것이야 그녀의 스타일이었고,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거듭되는 사과를 그만둘 삼봉도 아니었다. 그녀는 깔끔하게 번잡스러운 상황을 정리했다.

“구 비서님 벌써 일어났으니까 서둘러야겠구나.”

“야. 비서 행님도 인나셨시유? 시장하시지유? 지가 언능 아침밥 챙겨 드릴께유.”

“……천천히 하세요.”

구 비서는 함지를 들고 지하실로 쌩하니 내려가는 삼봉의 뒷모습에 대고서야 활기찬 아침 인사의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양 여사는 다소 얼이 빠진 것처럼 보이는 구 비서의 곁을 지나며 내던지듯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었을 때 저 애는 나보다 더 무서운 상대가 되어 있을껄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양 여사의 입에서 나오면 어쩐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망할 코딱지!”

주인은 송장 같은 몰골로 식탁 의자에 앉았다. 으득으득 이를 갈아붙이는 폼이 여간 사나워 보이지 않는데 얼떨결에 아침상을 받고 있는 구 비서는 소름이 돋는 팔을 문질렀다. 하지만 구 비서의 아침상을 봐 주는 삼봉은 콧방귀도 안 뀐다.

“야!”

“아 왜유. 잘 자고 인나서 또 왜 성질을 부리신대유?”

“잘자? 누가.”

“누구긴 누구겄시유. 아자씨지. 지는 어제 아자씨 땜시 더워서 한숨도 못 잤구먼유. 뭔 사람이 글케 뜨겁대유?”

“하!”

시즌이 오면 식사량이 대폭 줄어드는 주인의 앞에는 묽게 쑤어진 깨죽 사발이 올라와 있었다. 그것 말고는 없다. 주인도 군말 없이 수저는 들고 있지만 아직 뭘 먹을 정신은 없는 모양이었다.

“한숨도 못 자? 그럼 밤새 코골고 이갈고 방귀 뀐 건 누구냐.”

“지가 코를 골았다구유? 지는 한 번도 그런 소리 들어본 적이 없구먼유? 다들 언네처럼 잘만 잔다고 그러던데 코는 무신…….”

“……?”

일단 죽사발에 수저를 담가 놓기는 했는데 주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흉흉해지자 구 비서는 위장 속으로 들어간 몇 안 되는 밥 알갱이들이 고스란히 곤두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지금 당장 저 숟가락으로 정삼봉의 목을 따는데 전 재산을 걸라 해도 걸 수 있을 정도의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딱히 살인을 하는데 이유가 없는 우주인에다 시즌 중에는 더 난폭해지는 인간을 눈치 없는 어린애는 왜 자꾸 긁어 대는 것일까.

“누구야.”

“야?”

“누구냐고. 네가 어린애처럼 잘 잔다고 말한 놈이.”

구 비서의 고개가 천천히 기울어졌다. 팽팽하게 당겨져 날이 선 공기는 여전하지만 지금 저렇게 주인이 흥분한 원인은 분석하기 힘들었다. 사실 뭐 그런 원인 따위 분석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경우가 태반이었지만.

“알아 뭐하게유. 가서 따질라구유? 거 억지소리 고만하고 밥이나 들어유. 아줌니가 깨죽이라서 식으면 맛없다고 따실 때 자시게 하라 그러셨구먼유.”

“누구냐고. 너랑 잔 놈이!”

“아 왜 신새벽부터 소리를 지르고 그런대유?”

잘하면 다시 밥상을 뒤집게 생겨서 삼봉은 냉큼 식탁 상판부터 붙들었다. 사실 저 덩치로 이 식탁 뒤집어엎으면 삼봉의 힘으로 말릴 수 없겠지만 그런 생각보다 먼저 손이 나갔던 것이다.

“말해. 누구야.”

아주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는 우주인과 암팡지게 식탁 상판을 붙들고 있는 정삼봉.

그 가운데서 별로 내키지도 않는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 구 비서는 미쳐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삼박사일 철야를 하는 게 낫지 이런 고문은 사양이다.

“누구긴 누구겄시유. 성들이랑 아부지지유.”

“……?”

“거참 참말로 요상한 아자씨라니께유. 왜 또 아침부터 억지를 쓰고 그런대유.”

“왜 같이 자는데. 니가 식구들 이불도 죄 세탁기에 집어넣었냐?”

“어우!”

삼봉은 포효하는 짐승처럼 한숨 쉰 뒤 대답했다. 어떻게 어린애도 아닌데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면 되지도 않는 억지를 쓰며 사람 복장을 터트리는 것인지 참으로 연구 대상이었다.

“방이 하나밖에 없는데 같이 자지 왜 같이 자겄시유.”

“방이 왜 하나밖에 없어. 군대냐?”

“……식사 안 하실 꺼면 치울까유?”

더 이상 저 요상한 남자의 질문에 대답했다가는 아무 일도 못하겠다 싶어 삼봉이 최후의 선언을 하자 주인은 냉큼 죽사발을 붙들었다.

“건드리지 마! 먹을 거야.”

“야. 자셔유. 많이 자셔유.”

삼봉은 그제서야 구 비서의 옆에 제 몫의 국과 밥을 들고 와 한 수저 뜰 수 있었다. 뭐라고 꿍시렁거리는 우주인은 여전히 뭔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그것은 가뿐하게 무시할 작정이었다.

“뭐해. 차예진 씨?”

차예진의 시선은 새로 파헤친 흙더미 위에 어설프게 잔디를 덮어놓은 곳을 향해 있었다. 거기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배 변호사는 그것을 모른 척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아……. 식사 안 하세요? 삼봉이가 밥 먹으라고 하던데.”

“예진 씨랑 같이 먹으려고.”

“전…….”

심란한 것만 쳐다보고 있다가는 절대로 밥 같은 게 목구멍으로 넘어갈 리 없다. 배 변호사는 억지를 쓰듯 졸라댔다.

“같이 먹자. 난 원래 아침 안 먹는단 말이야. 그런데 삼봉이가 아침밥을 안 먹으면 점심때도 굶어야 할 거라고 협박하잖아. 같이 먹자 응?”

“시즌이 뭐에요?”

차예진의 접촉 기피증이 얼마나 극단적인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배 변호사는 그녀의 팔을 잡아끄는 대신 불쑥불쑥 그녀의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면서 칭얼댔다. 그러다 깜짝 놀란 얼굴로 차예진을 응시했지만 실제로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는 듣게 될 질문이라고 생각했고 다만 그 시기가 조금 빠른 것뿐이었다. 여자들은 심각한 충격 상황에 대해 남자들보다 적응이 빠르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배 변호사였다.

“사장님이 난폭해지는 시기.”

“솔직히…….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그게 더 골 때리는 거지.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사람을 죽이거든. 죽이는 건 차라리 나아 조용히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백주 대낮 공공시설에서 사람이 피떡으로 보이도록 두들겨 패면 정말 방법 없어. 그 성질 뻔히 아니까 지금 우리 모두 여기서 합숙하며 사장님 감시하는 거고.”

“…….”

목격자가 많고 증거까지 있으면 빼도 박도 못한다. 그 개 같은 성질 머리 때문에 물어준 합의금만 모아도 강남에 23층짜리 빌딩을 사고 남았을 것이다. 배 변호사가 우주인의 밑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꽤 심각한 상황도 몇 번 있었다 들었다. 최악의 경우는 결국 몇몇을 지하 세계 구경시켜 주고 마무리했다지만 말이다.

“일반인은 아니었어요.”

“일반인? 하! 맨손으로 사람 목 따는 건 절대로 일반인 아니지.”

“그런데 왜 제가 보디가드로 필요한 거죠?”

“그게…….”

빌어먹을 화보 인생. 저 망할 개초딩이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가 필요하다고 외쳤을 때 구 비서와 배변은 필사적으로 말렸다. 어느 인생을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냐고 따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폼 나잖아.’ 하는 데는 할 말이 없었다.

“폼 난대.”

“예?”

“차예진 씨 면접 보기 전까지도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 말렸는데 하는 대답이 딱 하나야. ‘폼 나잖아.’ 왜 만나는 어르신들 전부 개인 경호원 데리고 다니잖아. 그게 부러웠던 모양이야. 걸어 다니는 살인 병기 주제에 샘낼 걸 샘내야지…….”

“훗…….”

정말로 여자들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하다.

배 변호사는 비록 그리 해맑지 않은 웃음이지만 소리 내어 웃는 차예진을 존경하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고, 그 사람을 죽인 사람이 그전에도 사람을 죽인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살고 있는 집 여기저기에 사람이 묻혀 있다는 것도 인지한 상황에서 그녀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을 한 채 서 있는 것이다.

“사장님이…….”

“응?”

“사람 안 죽인지는 좀 되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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