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도적술?”
“히히히…….”
뭐가 재미난 지 온몸을 배배 꼬면서 웃는 삼봉의 얼굴이 벌써 발그레 물들어 있었다.
“어른들이 술을 마시다가 말이지유.”
“응.”
“술이 떨어지면 꼭 언네들한테 술심부름을 시키거든유?”
“아…….”
“근디 깜깜한 밤에 술도가까정 댕겨올라면 월매나 무섭겄시유. 갈 때는 탈랑탈랑 빈 주전자라 무겁지나 않지유. 술도가서 술을 받아 게지고 돌아오는 길은 워찌나 무서운지 말도 못 혀유.”
“어린애한테 술심부름을 시키냐?”
미성년자에게 술 담배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언제인가 싶어 다소 불만스럽지만 시골 마을 인심은 도시와 같지 않다. 배변은 연신 뭐가 그리 즐거운지 배실 배실 웃고 있는 삼봉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술 주전자는 무겁지. 밤길은 무섭지. 목은 타지……. 그래서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다 보믄 하! 요게 슬슬 뱃속이 따끈따끈해지믄서 기분도 좋아지고 그러지 않겄시유?”
“……?”
“갈 때는 뛰어갔는데 올 때는 걸어 오지유. 한 모금 마신 것이 두 모금이 되고 두 모금이 세 모금이 되고. 술은 알딸딸하게 오르지 주전자는 가볍지. 그럼 논에 들어가서 논물을 빈 주전자에 채워 게지고 집에 가는 거여유.”
절도다. 애 얼굴이 빨갛고 비틀거리는데 틀림없이 경을 쳤을 것이라 예상한 배 변호사의 생각과는 달리 삼봉의 말은 기가 막혔다.
“근디 어른들도 알딸딸 허신디 술에 물을 탔는지 술을 탔는지 알게 뭐여유. 물 탄 술 마시고 담날 대가리 깨지겄다시면서 술도가 사장님만 진탕 욕을 얻어 자시는 거지유. 가끔은 논물을 담는다는 것이 보야지도 주전자 속에 겨 들어가 작은 성한테 빗자루로 직살하게 얻어터지는 일도 있지만서두……. 히히힛. 지가 글케 도적술을 배워 게지고 술버릇이 개차반이구먼유.”
“술버릇이 어떤데?”
저리도 귀엽게 얼굴을 붉히면서 온몸을 배배 꼬는 모습을 보니 주사도 보통 귀여운 것이 아니겠다 싶어 배 변호사는 흥미진진하게 삼봉의 대답을 기다렸다.
술자리 자체를 싫어하는 구 비서의 얼굴에도 민숭민숭한 표정으로 제 앞의 술잔만 홀짝거리는 차예진의 눈에도 그런 호기심이 생겨 있었다.
“모르지유. 걍 죄다들 너는 주사가 개차반이니 다른 데 가서는 술 마시지 말어라 그 말만 하던디유? 근디 요놈에 술이 참말로 요상허네유. 쌉싸름허기도 허고 달짝지근허기도 허고……. 으히히히히. 술은 술인디 워뜨케 요리도 맛나대유?”
“니가 술 맛을 좀 아는구나. 그렇지? 내가 이 술을 한번 마셔 보려고 그간 양 여사 앞에서 떤 재롱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마시자. 마셔.”
주당들이 뭉쳤다.
배 변호사는 주색잡기에 환장하여 마침내 도박 중독에까지 빠진 위인이었고, 은근히 바른 생활 사나이처럼 보이는 정삼봉 역시 술과 놀이에 환장하는 기질이 있었으니 모여도 이렇게 모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도수가 센 홍주는 시큰둥한 얼굴로 앉아 있던 차예진의 얼굴에도 발그스레 예쁜 물을 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간해서는 농담 쉰소리 하지 않을 것 같던 구 비서까지 마음의 경계를 늦추게 만들만큼 홍주의 위력은 대단했다.
“보야지가 올챙이 말하는 거 맞습니까?”
“야? 아. 야. 그려유. 보야지라 그럼 잘 못 알아들으시지유? 올챙이 맞아유. 근디 비서성님은 워째 보야지를 아는감유?”
“어머니가 충청도 분이십니다.”
“오메! 참말인감유? 반갑구먼유. 지는 이 집에 들어와서는 모다 지 말은 잘 못 알아들어서 엄청 갑갑했구먼유. 쥔 아자씨는 만날 질더러 반말한다고 구박하시지. 아줌니는 걍 못 알아들으시면 그렇다 말씀만 하심 될 건디 도끼눈을 하고 가만히……. 요렇게 가만히 사람을 쳐다보시는데 몸 둘 바를 모르겄지. 환장하는 줄 알았시유.”
“훗…….”
“음마? 시방 비서 성님 웃으셨시유? 지는 비서 성님 웃는 거 첨봤구먼유.”
구 비서가 피식 웃자 삼봉은 활짝 웃었다. 웃음 헤픈 성격에 만날 인상 쓰고 있는 구 비서 앞에서 어지간히도 답답했던지 반색도 저런 반색이 없었다.
“비서 성님도 잘난 얼굴인디 워뜨케 그간 한 번도 웃지를 않으셔유? 가만 보니 다들 잘나셨네유. 셋방 누님도 그렇구 변호사 선상님도 그렇구……. 우리 쥔 아자씨는 말할 것두 없고 말여유. 아줌니도 젊어서는 미인 소리 꽤나 들으셨을 거 같구유. 가만 봉께 이 집서 젤루다 못난 것이 지가 아닌가 싶네유.”
정삼봉이 그리 잘난 얼굴은 아니다. 못나지도 않았지만 예쁘장하다거나 잘생겼다 말하기도 평범한 얼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배 변호사도 구 비서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평범을 가장하고 있지만 간이 배 밖으로 가출해 어이를 상실하게 만드는 저 씩씩함이나 활발함 그리고 수다스러움이 이제 가히 존경의 경지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그 누가 있어 정삼봉만큼 태연하게 우주인의 부아를 긁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활발하고 상냥하고 부지런한데다 음식도 잘한다. 그가 이 집에 들어오게 된 계기의 가엾음과 호감 갈 수밖에 없는 밝은 성격. 그들은 이 작은 사내아이를 꽤나 예뻐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즌 중인 우주인에게 덤비다 혹시 다치지 않을까, 죽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만큼 말이다.
그런데 그 시즌 중인 우주인께서는 지금 몹시 심기가 불편했다.
뭐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기분이 나빴다. 심심하니 술이나 마시자고 제안한 것은 자신인데 이 화기애애한 술자리의 분위기가 그를 짜증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때때로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아무도 알지 못하게 사라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기척을 죽이고 존재감을 지운 뒤 그저 조용히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 버리면 되는 간단한 방식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일은 매우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사냥하는 맹수처럼 조용히 벽에 등을 붙인 채 서 있던 그는 마침내 더 이상 이곳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고, 그리고 그는 이런 짜증을 견디는 것보다는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그 기묘한 재주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이목이 완전히 자신에게서 떠나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이 온전히 그들만의 대화에 몰입한 순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거실을 떠나는 것으로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어쩌면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부족했던 지난밤의 잠을 보충하는 것이 훨씬 이로운 행동일지 모른다.
술상을 차리기 전에 삼봉이 자신의 침실 세팅을 끝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익숙하고 안락한 침대로 향하면서 피곤한 듯 목 뒤를 주물렀다.
우주인의 수면 장애는 그의 생존 본능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깊게 잠드는 법이 없었고, 작은 소리나 진동에도 거짓말처럼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 대가로 그는 많은 것을 잃어야 했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잠을 깨운 생명체는 그러한 생존 본능이란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곤한 잠에서 억지로 깨어나야 했던 주인은 화가 났지만 작은 생물체는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뭐야.”
“에헤헤헤헤헤…….”
“뭐냐고.”
짜증이 솟구치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재차 물어보는 주인의 인내심에도 불구하고 달짝지근한 홍주 향을 물씬 풍기는 어린 녀석은 대답 대신 웃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야!”
“가만 있어봐유.”
겁도 없이 냉큼 침대 위로 뛰어올라 오는 삼봉을 보며 주인의 얼굴은 점점 더 흉악하게 변해 갔지만 생존 본능 따위 처음부터 키우지 않는 정씨 집 셋째 아들이다. 그는 가타부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덥석 주인의 파자마 허리춤을 붙들었다.
“뭐 하는 짓이야.”
“아 가만 있어보라니깐유.”
“……?”
그리고는 끌어내린다. 반듯하게 누워 있는 남자 바지를 벗기는 일은 꽤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누워 있는 쪽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바지를 완전히 내리는 일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자씨.”
“뭐냐고!”
“궁뎅이 쫌 들어봐유.”
“야!”
“에헤헤헤헤헤. 궁뎅이 쫌 들어봐유. 지가 확인할 것이 있어 그런다니께유?”
잘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운 것으로 모자라 바지 벗겨 확인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지만 어쨌든 지금 주인의 눈앞에 있는 존재가 주인을 해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했다. 팽팽하게 긴장해 있던 살의를 억지로 누그러트리며 주인은 그저 고개만 갸웃거렸다.
“워따. 이 아자씨 참말로 말을 안 들어 처먹는 구먼유. 관둬유. 아자씨가 협조 안 한다고 내가 하고 잡은 일을 못할 일은 없구먼유.”
“……너 뭐하냐?”
주인은 통이 넓은 파자마 바지의 허리끈을 쭉 잡아당기는 삼봉을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잠잘 때나 입는 것이라서 얇기도 하고 편하기도 한 파자마의 허리춤이 풀어지자 삼봉은 허리춤을 쑥 내리는 것이 아닌가.
“음마. 잘 있었는가?”
“……?”
“헤헤헤헤. 내가 가만 생각을 해보니깐 말이여. 한동안 너를 못 봤지 않겄어? 이 아자씨가 널 호 해 주라고 할 때는 싫다 귀찮다 허기만 혔는데. 막상 며칠 못 봤다고 심하게 보고 싶네. 어이. 이봐. 잘 있었는가? 자네는 나 안 보고 싶었는가?”
훌떡 벗고 돌아다니면서도 낯부끄러운 것은 모르는 이가 우주인이다. 하지만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자는 사람을 깨워 샅을 까는 놈은 난감한 것이다. 더군다나 잠결에 예민해진 성기에 얼굴을 마주 대고는 헤헤 웃고 말 걸면서 농지거리를 하는 정삼봉은 난감해도 보통 난감한 것이 아니다.
“너……. 취했냐?”
“아 시끄럽구먼유. 지가 시방 아자씨 말좆이랑 이야기 나누는 거 안 보이시는감유? 아자씨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하고 재미지게 말하는데 누가 자꾸 옆에서 말 시키면 기분 좋겄시유?”
“시끄…….”
거기다 앙탈까지.
그 순간 우주인은 어느 노친네가 낄낄대며 농담 삼아 하던 말이 생각나 버렸다.
‘병풍 뒤에 누워 향냄새 맡고 싶은가 보다.’ 지금 삼봉이 보여주는 작태가 딱 그것이 아닌가. 사람이 죽으면 거적으로 둘둘 말아 구덩이에 갖다 버리는 것밖에 알지 못하는 주인에게는 한국의 장례 관습이 무척 로맨틱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 말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의 허리춤에 얼굴을 갖다 대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삼봉은 로맨틱하게 장사 지내 줄 생각이 아예 들지 않았다.
삼 년 만에 만난 절친한 친구라도 되는지 삼봉은 아주 사랑을 담뿍 담아 주인의 중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주인은 한참만에야 이 발칙하고 귀찮고 시끄러운데다 자신의 취향이지도 않은 꼬맹이를 어떻게 혼내 줘야 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제 놈 입으로 술버릇이 개차반이라고 했으니 내일 이러네 저러네 불평하지는 못할 것이다.
술 먹은 개라는 말을 그대로 돌려 주겠다 마음먹고 나니 그다음은 거칠 것이 없다.
주인은 느릿한 미소를 지으며 삼봉에게 비아냥거렸다.
“그게 그렇게 좋냐?”
“존 건 잘 모르겄고 만날 보다 안 보니 보고는 싶더만유. 야도 그런 거 같은디 아자씨 생각은 워때유?”
“니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너도 잘 모르지?”
“으헤헤헤헤. 지금은 알지유. 간만에 아자씨 좆에 호 해주고 있잖여유.”
“너 아직 호 안 했거든?”
“해줘유?”
“하고 싶으면 해.”
“호----. 아가 안적도 아프냐? 아프지 말어라. 니가 붙어 있는 몸뚱이 주인께서 무식혀서 그놈에 빤쭈를 걍 입어 그런 겨. 인자는 안 그러쟈? 내 부지런히 빤쭈에 풀 먹여 줄 테니께 올 여름 잘 지낼 수 있을 거여. 땀도 안 차고 좋챠? 그쟈? 호--- 호---.”
가뜩이나 데이트하러 나가지를 못해 욕구불만에 시달리고 있는 주인의 성기는 야릇한 입김에 뿌득뿌득 커지기 시작했다.
“음마? 아자씨. 야가 일어서는디유?”
“니가 세웠잖아.”
“근가? 근디 서도 너무 서는디유?”
“니가 세웠으니까 책임져.”
“책임이유?”
술 취한 애 붙들고 잘하는 짓이다. 하지만 우주인은 자신이 지금 얼마나 유치하고 치사하게 놀고 있는지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인간인데 잠자다 깨서 빈정까지 상해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니가 세웠으니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냐.”
“아. 그런가유? 질께유. 지면 될 거 아닌감유?”
“좋아.”
주인이 벌떡 일어서자 삼봉의 오랜 벗(?)도 냉큼 주인을 따라 멀어진다. 삼봉은 전란에 손 놓친 아우를 찾듯 주인의 말좆을 불렀다.
“음마. 아가. 너 어딜 가는 겨. 인노 와. 나랑 야그를 좀 더 해야지 워들 가는 겨. 응?”
“기다려.”
“아자씨. 지는 갸랑 할 야그가 안적 남았다니깐유? 언능 이리 와유!”
주인이 가져온 것은 종이 한 장과 펜이었다.
“각서 써.”
“야?”
밖은 어둡고 사방은 고요했지만 주인은 갸웃갸웃 고개를 흔들면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삼봉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숨이 가쁜 듯 깊은숨을 내쉴 때마다 홍주 냄새가 진동을 한다.
“책임진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각서 쓰라고.”
“아. 그랬지유. 맞어유. 뭐라고 쓰면 되유?”
“책임진다고 써.”
“야. 쓰지유. 거 뭐 어렵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