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사람이 각서까지 썼으면 거기서 그만할 것이지 뭔 놈에 고소까정 한대유? 너무한 거 아녀유? 지가 지 손으로 각서 쓰고 나 몰라라 할 만큼 파렴치한 인간으로 보인 거래유? 선상님도 지를 그렇게 보고 계시남유? 지 그런 놈 아녀유. 책임 질 꺼구먼유. 지가 자는 아자씨를 덮친 게 맞고 설사 그딴 각서 쓰지 않았어두 지가 저지른 일은 책임을 지고 살았구먼유. 아침나절에는 기억이 잘 안나 그런 것이지 시치미 떼려고 그런 게 아니구먼유. 참말이어유. 믿어주셔유.”
“으, 응?”
삼봉은 절박했고, 배 변호사는 어리둥절했다.
“워떤 식으로든 지가 책임을 질 꺼구먼유.”
“그…….”
‘그 책임을 질 사람은 니가 아닌 거 같은데?’ 하는 의문이 나오기도 전에 삼봉은 결의에 찬 얼굴로 배 변호사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지 그렇게 막돼먹은 놈 아니구먼유. 걱정하지 마셔유. 그니께 선상님이 쥔 아자씨한테 말씀 좀 잘 전해 주셔유. 워뜨케든 지가 책임을 질 모양이니께 고소 같은 건 하지 마시라구유. 야? 선상니임---.”
“그게…….”
그 얼굴이.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이 너무도 재미난 일을 예고하고 있었기 때문에 배 변호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분명 주인은 정삼봉이 자기 취향 아니라 못을 박았다. 사실상 배 변호사가 알고 있는 바로도 아무리 주인의 취향이란 것이 아랫도리에 물건 달린 놈이면 마다하는 법이 없는 광폭이라지만 삼봉은 아니었다. 그는 너무 어리고 또 올바른 사람이었다. 더불어 지금까지 둘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삼봉은 만만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귀찮고 시끄러운 것을 질색하는 주인의 앞에서도 제 할 말은 다 하는 모습을 지금껏 보지 않았는가. 앞뒤 꽉꽉 막혀 도리며 상식을 논하는 그와 머릿속이 텅텅 빈 팔 난봉꾼 우주인이라.
그것은 배 변호사가 거절하기에는 너무도 재미난 유혹이었다.
양심이란 놈이 따끔따끔 뱃속을 찔러 대지만 배 변호사는 유혹에 약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순간이 와도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져도 이 아이만큼은 우주인의 이빨에 갈가리 찢길 일이 없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순진한 어린양이 닳을 데로 닳은 짐승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그의 열망이 조금 덜 파렴치한 것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배 변호사가 자기 합리화를 하는 동안 뭘 잘못 이해한 삼봉은 열성적으로 고소만은 말아 달라고 그건 너무 면 팔리는 일이 아니냐면서 그를 설득하고 있었다.
간신히 상황을 정리하고 나온 삼봉과 배 변호사에게는 놀라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 변호사에게는 딱히 놀랄 일도 아닌 소식이지만 삼봉은 아침에 받은 충격에 연이은 비보를 차마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침에 멀쩡한 얼굴로 나간 사람이 칼 맞아 병원에 있다는데 놀라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시비가 붙어 싸움을 하게 되고 그러다 다쳐 병원에 있다는 소식이나 차에 치이거나 어디서 떨어져 다쳤다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아닌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이 삼봉은 더 경악스러웠다.
양 여사는 명백하게 짜증을 내고 있었고, 배 변호사는 심각하게 인상을 쓰고 있지만 경찰과 병원에 동시에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떨어질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 배 변호사에게는 우주인이 칼을 맞은 것보다는 사건의 경위와 결과가 더 중요한 듯 보였다. 그 소식을 전한 차예진은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누님. 워뜨케 된 일이래유. 아 멀쩡하게 나간 사람이 왜 칼을 맞아유. 부모 때려죽인 원수라도 만났대유? 대체 워찌 된 일인 거에유!”
“나도 잘 몰라. 구 비서님이 집에 그렇게 전하라고만 했는걸. 택시 타고 병원으로 따라가시고 난 바로 온 거야.”
“그럼 월매나 다쳤는지도 모르는 거여유 시방? 음마 깝깝혀라. 사람이 다쳤다면서 워디를 월매나 상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이러고 있는 거여유 시방들? 아줌니. 선상님!”
놀라고 걱정되어 팔팔 뛰는 것은 정삼봉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우주인과 살면서 그에게 익숙해지고, 또 정을 붙인 사람들은 누구도 주인을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염려와 불안은 순수한 사람만의 몫인 듯 그들은 모두 지나칠 정도로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혼자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삼봉이 성가셨는지 양 여사는 고개를 흔들며 차예진을 불렀다.
“예진 씨.”
“예. 여사님.”
“예진 씨가 얘를 병원에 데려다 주겠어? 여기 두면 배 변호사님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겠네. 너도 그렇게 궁금하고 걱정되면 병원에 가.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야?”
“니가 책임진다고 각서까지 썼으니 사장님은 니가 책임져야지. 그래. 그렇게 하는 게 순리에 맞는구나. 어차피 사장님 가족도 뭐도 아무 것도 없어서 수술 같은 거 하게 되면 동의서 쓸 사람도 없어. 예진 씨 얘 빨리 병원에 데려다 주고 얼마나 입원해 있어야 하는지 상황 봐서 연락 줘. 그걸 알아야 필요한 물건을 챙길 수 있을 테니까.”
“아, 아줌니…….”
“정신없게 하지 말고 가. 시끄러워 죽겠어. 예진 씨 빨리 얘 데리고 나가.”
삼봉은 그렇게 집에서 쫓겨났다.
“다들 너무한 거 아녀유? 집에서 먹이는 개가 밖에 나가 맞고 들어와도 눈이 뒤집히는 게 사람 인정이에유. 하물며 쥔 아자씨가 다들 월급 주잖아유. 사람이 암만 억지 잘 쓰고 요상해도 이러는 건 아니자너유.”
“…….”
예진의 손에 질질 끌려 나오다시피 차에 탄 삼봉은 억울하고 분하다는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였다.
“누님! 지가 이상한 거에유? 지가 호들갑 떠는 거에유? 사람이 다쳤다잖아유. 칼을 맞았다잖아유. 그런데 워뜨케 저만치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는 건감유? 워디 부러진 것도 아니고 칼을 맞았다잖아유. 야?”
“…….”
하지만 차예진도 삼봉의 채근하는 듯한 물음에 답할 수가 없었다.
의례적인 답을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삼봉이 묻고 있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누구나 뒤집어쓰고 있는 일상적인 가면이 아니었다. 속이 따갑고 아파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 그런 질문에는 가면 따위가 통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예진은 묵묵히 입을 다문 채 앞만 보고 차를 몰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많이 다치신 것은 아닐 거야.”
“…….”
“구 비서님 얼굴이 그리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어.”
“하아…….”
차예진은 우주인을 걱정하고 있을까? 그는 그녀를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심드렁한 친절에 대해 마음으로 가질 수 있는 보답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에게 우주인은 코웃음 치며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무서운 존재일 뿐이었다. 아직 그녀는 그것 이상의 어떤 감정도 우주인에게서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가 심하게 다치거나 죽는 일 같은 것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잔혹한 우주인을 알지 못했다면 그녀 역시 지금의 삼봉처럼 걱정하고 애달아하면서 발을 굴렀을까?
그녀는 단호하게 긍정하지 못했다.
환자는 마취가 되지 않았다. 이미 출혈이 너무 심한 상태였고, 위험부담을 안고서 마취 량을 늘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의료진들은 난색을 표했지만 상태에 비해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환자는 그대로 진행할 것을 종용했다.
찢어진 복부 정맥을 봉합하는 일은 드물지 않은 일이지만 그러한 수술을 하면서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의료진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출혈이 심했고, 미약한 마취 상태로 강행한 수술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출혈은 잡혔고, 환자는 아직 살아 있다. 단지 살아 있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생생한 것이 약간의 문제가 되었다.
“정말 생각 없어?”
“……환자분.”
젊은 레지던트는 완전히 질린 얼굴로 뻔뻔하기 짝이 없는 환자를 노려보았다.
“너 딱 내 취향이거든. 몸도 잘 빠졌고 키도 크고 말이야. 운동 부족으로 군살이 좀 있기는 하지만 그거야 잘 놀고 나면 쏙 빠질 거야. 어때. 응?”
“…….”
젊은 레지던트는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이 담당 환자로 떨어졌을까 하늘을 원망했다. 사실 이 남자에게 혹해서 담당을 바꿔 달라고 말한 여자 동기가 얼마 전 당직을 바꿔 달라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만 않았다면 이 불행을 피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세상 다 뒈져 버려라.’라고 외치면서도 젊은 레지던트는 상냥하게 웃어야 했다. 이 환자가 내원했을 당시 병원장이 가운도 걸치지 않은 셔츠 바람으로 미친 듯이 달려 내려오지만 않았다면 그는 애진작에 이 생물의 멱살을 붙잡고 주먹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량한 월급쟁이 신세 윗사람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생존 본능이다. 고로 그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던 얼굴로는 웃어야 했다.
“환자분 저는 물론 개인의 성적 취향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성애자가 아닙니다.”
젊은 레지던트는 가장 무난한 단어를 생각해 내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안하무인의 축생은 그가 ‘빌어먹을 게이 새끼 닥쳐!’라고 말했어도 별반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니가 사내 맛을 제대로 못 봐서 그래.”
“그……!”
“딱 한 번만 하고 나면 다시는 평범한 섹스를 할 수 없는 몸이 될 걸?”
젊은 레지던트는 지금 이 순간 이 축생이 왜 여의도 증권사 VIP 라운지에서 칼을 맞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환자분은 지금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수혈을 받아야 하는 상태입니다. 마음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의 혈류량으로는 발기조차 불가능하실 겁니다.”
한 마디로 물건도 못 세우면서 들이대지 말라는 말이었다. 간신히 조금은 속이 시원해진 느낌으로 젊은 레지던트는 못 말리는 축생을 살폈다. 그의 말은 대부분 사실이었고, 인상을 쓴 채 자신의 아랫도리를 노려보던 축생 역시 마침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취향에 딱 맞는 놈을 찾았는데 아깝게…….”
“…….”
젊은 레지던트는 자신이 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혈이라는 게……. 남의 피 주사로 넣는 거 그거? 좋아! 당장 수혈하자고. 수혈하고 나면 할 수 있는 거지? 하겠다고 했어. 나중에 다른 소리 하지 말라고.”
“……?”
“뭐해. 수혈하라니까?”
젊은 레지던트의 얼굴이 납빛으로 변했다. 그는 하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흘러가는 분위기로 봐서는 수혈이 끝나고 나서 당장이라도 자신을 덮칠 거 같은 이 축생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가 응급실로 실려 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수술실과 이곳 병실까지 곁을 지키고 있던 젊은 레지던트는 이 남자가 한번 말하면 그것이 당장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누가 마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로 개복 수술을 감행할 수 있겠는가. 남자는 수술하는 동안 내내 잠깐씩 얼굴을 찡그리기는 했으되 아프다는 비명은 지르지도 않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쇼크사 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농담을 던지고 자신에게 추파를 보냈던 것이다.
“비서 형님 너무한 거 아녀유? 아픈 사람을 혼자 내삐 두면 워뜨켜유. 수술까정 했담서유. 흐미! 많이 아플 것인디 혼자서 월매나 서럽겠시유. 다들 넘한 거 아녀유? 진짜 내가……. 음마? 의사 선상님이 계셨구먼유.”
대단히 요란한 소란을 떨며 키가 작은 청년이 병실로 들어섰을 때 젊은 레지던트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세상에서 오직 유일하게 그만이 수렁으로 끌려들어 가는 젊은 레지던트의 삶을 구원해 줄 수 있다는 사실 따위 알 리가 없었다. 가뜩이나 심란하고 황당했던 의사는 죄 없는 정삼봉을 향해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안정이 필요한 환잡니다. 뭡니까!”
“오메! 선상님!”
라며 덥석 자신의 손을 잡아오는 상황 따위 한 번도 원한 적이 없었다. 엉겁결에 손목을 잡힌 의사는 이 환자의 주변 인물들 중에 오직 이 젊은 남자만이 일반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아자씨는 괜찮은감유? 수술을 했담서유. 수술은 잘 되았시유? 오메! 대체 워쩌다가 칼을 맞고 그려유. 환장하겄네. 선상님. 우리 아자씨 안 죽겄지유? 괜찮지유? 그렇다고 말씀을 해 주서유.”
“저기…….”
한쪽은 황당해서 기가 막히고 또 다른 한쪽은 너무도 소란스러워 할 말이 없었다.
저기 멀쩡하게 누워 빈둥대고 있는 축생이 이 남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환자 보호자 되십니까?”
“야?”
“환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젊은 의사는 환자를 데리고 온 사람이 강하게 부정한 환자의 보호자를 만나고 싶었다. 가족도 없고, 아내도 자식도 없다는 환자를 이처럼 걱정하는 것을 보니 젊은 남자가 환자의 보호자인 듯싶었던 것이다. 사실 젊은 남자라고 표현하기에는 어린 구석이 있지만 누구든 환자의 보호자이기만 하다면 자신은 이 병실에서 달아날 수가 있었다.
“지는 아자씨 머슴인디유?”
“예?”
“맞다. 야. 코딱지! 너 삐형이랬지?”
“야?”
젊은 남자의 등장에 잠시 입을 다물고 계셔 주시던 환자가 다시 공포스러운 주둥이를 열자 의사는 이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봐. 쟤 삐형이야. 나랑 같은 혈액형이라고. 그러니까 쟤 피 뽑아서 수혈해. 그럼 되는 거지?”
“허…….”
“아자씨 수혈까정 해야 하는 거에유? 으미……. 당췌 어딜 얼마나 다친 거에유! 수술도 했담서유. 갠찬남유?”
“니가 피를 뽑아 주면 아주 괜찮아질 예정이다. 그걸로 땡 치기로 하고 피 내놔. 당장.”
“그려유. 의사 선상님. 지는 병도 없구유. 건강하구먼유. 지 피를 뽑아유. 지는 일케 쌩쌩하니께 피 뽑아도 되유.”
그다지 튼튼해 보이지 않는 팔뚝을 내밀며 당장 피를 뽑자는 청년이나, 그 피를 수혈 받아 멀쩡한 의사 인생 조지려는 환자나…….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보면서 멀뚱멀뚱 딴청만 피우고 있는 환자의 비서까지도 모두 젊은 의사의 눈에는 괴물처럼 보였다.
진심을 담아 심각하게 환자를 정신과로 트랜스 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하면서 당장 자신부터 정신과에 가고 싶었던 의사는 때마침 울린 호출을 구세주처럼 생각했다.
보호자(?)로 짐작되는 사람이 왔고, 응급실에서 급한 호출이 울려 주셨으니 그는 무사히 병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VIP 환자를 홀대했다는 타박은 듣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건 담당을 바꾸자고 제안했던 여자 동기를 찾아야 했다.
뒤늦게 담당 간호사가 들어와 삼봉의 혈액을 채취할 때까지 주인은 고문과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삼봉은 걱정이 돼서 늘어놓는 잔소리이지만 여태껏 살면서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들어 본 일이 없는 주인에게 삼봉의 진심은 시끄럽고 귀찮을 뿐이다. 대체 왜 저리도 호들갑을 떠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우주인은 멀쩡한 애 피를 뽑아 수혈하는데 무슨 검사가 필요하냐고 소리 지르다 다시 삼봉에게 구박을 받아야 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해도 뱃가죽을 꿰매 놓았으니 저걸 한대 확 쥐어박으려 움직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얌전히 듣고 있기에 코딱지의 잔소리는 너무도 괴로웠다.
빨리 수혈을 받아서 간만에 낚은 대어를 맛볼 생각에 들떠 있던 주인이 마침내 꽥! 하고 소리를 질렀을 때 삼봉은 울상을 하고 있었다.
“걱정했잖어유. 멀쩡하게 나간 사람이 칼 맞았다니 그게 말이 돼유? 누구에유! 대체 왜 그랬대유. 세상이 암만 흉흉하다 그래도 부모 때려죽인 원수도 아닌데 사람을 왜 상하게 한대유. 대체 어디서 뭘 어쩌고 다니는 거에유! 왜 암도 아자씨 칼 맞아 쓰러졌다는데 걱정을 안 해유. 워뜨케 살은 거여유! 으흑!”
“……!”
둑이 터지는 것처럼 삼봉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주인은 대체 얘가 왜 우는지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자신이 무엇 때문에 얌전히 누워 이 잔소리를 다 듣고 있어야 하는지도 납득 불가였다. 하지만 막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뭐야…….”
“사람이 왜 그러구 살어유. 세상천지에 아자씨 걱정해 주는 사람 암도 없이 왜 그러구 살아유. 왜……. 왜 그러구…….”
“……넌.”
부담스러운 진심이었지만 뼛속까지 이기적인 우주인을 감동시키지는 못한다. 주인은 삐딱한 미소를 입에 걸며 비아냥거렸다.
“넌 왜 울고 지랄이야. 초상났냐? 아아……. 확 뒈져 버리면 좋았을 텐데 내가 멀쩡해서 열 받아 그러냐? 미안해서 어쩌냐? 난 욕심이 목구멍까지 찬 돼지 새끼한테 죽어 줄 생각이 요만큼도 없거든.”
“……사람 일껏 걱정해서……. 대체 왜 그런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