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58)

울먹울먹하는 음성도 짜증이 났다. 우주인은 그랬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살 꺼거든? 지금은 좀 휘청했는데 니 피 빨아 먹고 더 쌩쌩하게 잘 살 거다. 그러니 도망칠 생각 말고 피나 뽑고 와!”

“사람이 왜 그래유! 대체 어디까지 배배 틀려 있는 거에유. 진심으로 아자씨가 걱정돼서 하는 말도 꼬아 들으면 기분 좋아유? 세상천지에 아자씨 걱정해 주는 사람이 암도 없는 게 그렇게도 좋아유? 꼭 그렇게 살아야겄시유?”

“지금까지도 잘 살았거든? 앞으로도 잘 살 거고.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거든?”

“그려도 지는 걱정을 해야겄시유!”

울다가 화를 내고 화를 내다 다시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구 비서는 끼어들기도 난감한 두 남자의 말다툼을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 관망하는 중이었다.

“하든 말든 그건 니 맘대로 하고 제발 조용히 해라. 응? 아까 의사 말 못 들었냐? 안정이 필요 하다잖아. 너 때문에 안정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입 닥치고 가서 피나 뽑고 와!”

“…….”

암팡지게 입을 다문 채 노려보는 삼봉의 시선이 주인은 우울했다. 금자만 한 놈이 펑펑 울지를 않나 꽥꽥 소리치지를 않나 그로서는 대체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지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금자라면 요구하는 것이 정확했다. 쓰다듬어 달라거나 내 눈앞에서 꺼지라는 의사 표현이 확실했고, 주인은 거기에 맞춰 행동해 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 시끄러운 생물체는 대체 자신에게 뭘 바라는 것인지 어떻게 해 달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삼봉이 큰 숨을 들이켰다.

“알았시유. 지가 너무 떠들었지유? 일단 야그는 낭중에 해유.”

“할 말 없어.”

“알았시유. 지는 가서 피 뽑고 올 테니께 여그 꼼짝 말고 계셔유. 뭐 필요한 거 없어유?”

“니가 사라지는 거.”

“…….”

삼봉은 마음이 상한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란 것을 할 줄 몰랐다.

“주무셔유. 안색이 참말 못 봐 주겄구먼유. 큰 수술 받았으니께 기운도 없으실 꺼구먼유. 일단 좀 주무셔유. 비서 성님. 지 잠깐 갔다 올 모양이니께 어디 가지 마시구 여기 계셔야 혀유. 아시겄지유?”

비장하거나 슬프거나. 평상심과 다른 그 어떤 것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은 삼봉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구 비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여상하게 말했다.

“가고 싶어도 못 갑니다. 할 일이 많아서…….”

“야. 부탁 좀 드리겄시유.”

기운이 쭉 빠진 모습을 한 채 삼봉이 나가고 나서야 우주인은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대체 쟤 왜 저래.’라고 구 비서에게 물었는데 구 비서는 삼봉에게 한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병실 밖이 소란스러운데 좀 나가보란 얼굴로 구 비서를 보았더니 그는 전화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정신없이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 어르신들의 소식통이란 국정원의 정보망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그들은 모두 우주인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어 했고, 그 어느 것도 소홀하게 대할 수 없는 분들의 직통 전화였다. 구 비서는 지금 몸을 열두 개로 쪼개고 싶은 심정일 테니 옆에서 벼락이 떨어진다 해도 그의 주의를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주인은 하는 수 없이 끙끙대며 몸을 일으켜야 했다.

몹쓸 놈에 호기심이 이대로 밖의 소음을 무시한 채 잠을 청할 수 없게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병실 문을 열었을 때 주인은 자신의 호기심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아 왜 안 된다는 거에유? 지는 건강하다니께유?”

“검사 결과가 그렇게 나왔어요. 지금……. 정삼봉 씨는 헌혈을 하는 게 아니라 수혈을 받아야 하는 상태거든요?”

“지가 왜유. 지는 멀쩡한대유?”

“검사 결과가 거짓말하겠어요?”

“잘못되았겠지유. 다시 해 봐유. 야? 지는 일케 멀쩡한데 워디가 워떻다는 거에유. 암치도 않다니께유?”

우주인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쟤는 어딜 가도 시끄럽다. 누구한테나 잔소리를 늘어놓고 절대로 기죽는 법이 없다. 어찌 보면 지금 이 순간 저 코딱지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간호사가 불쌍하게 보일 정도였다.

“지는 병 없대니께유!”

“정말…….”

삼봉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지치지도 않는 우김에 간호사의 이성도 끊어졌다.

“정삼봉 씨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 지금 백혈병이 아닌가 의심……. 아!”

“백……. 뭐유?”

우주인은 혀를 차며 자신의 팔에 꽂힌 바늘을 잡아 뜯었다. 사실 배에 칼 박힌 것이 처음도 아니고, 최고의 의료진이 수술까지 잘해 놓았으니 그 어떤 부상보다도 호사를 누린 것이었다. 예전에는 오늘 사용된 칼보다 세 배는 클 것 같은 놈을 배에 박아 넣고도 밀림을 뛰고 날았던 자신이었다. 수액 팩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짐과 동시에 주인은 미끄러지듯 달려갔고 다행히 충격 받은 코딱지가 널브러지기 전에 받아 안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주인공이란 것들은 흔하지도 않은 질병을 감기처럼 달고 사는 것일까.

참으로 식상한 이야기였다.

“그건 능력 없는 작가가 고갈된 소재를 극복하지 못해 식상한 레퍼토리로 관객의 눈물을 쥐어짜려는 약은 수 아닐까요?”

어째서 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빠지지 않고 ‘백혈병’이라는 병이 등장하는가에 관한 배 변호사의 답변이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이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방금 개복 수술을 마치고 나온 환자가 수액 팩을 잡아 뜯고 달렸다. 너스 스테이션 앞에서 간호사와 대거리를 하던 환자 보호자는 충격을 받은 채 쓰러졌고 그걸 환자가 달려가 받아 안았다. 그 덕에 꼼꼼하게 잘 누벼 놓은 수술 부위는 터지지 않은 채 멈췄던 출혈만 다시 시작되었다. 의사들은 꿈에도 생각하기 싫었던 비 마취 수술을 다시 감행해야 했고, 환자 보호자는 동의서에 사인은커녕 의식을 회복하지도 못했다. 결국 두 번째 수술에 동의서 또한 환자의 비서라는 사람이 사인을 해야 했다.

병원을 발칵 뒤집어엎은 우주인이 수술실을 나와 가장 먼저 한 말에 담당 경찰과 정감 있는 대화를 나누고 왔기 때문에 핼쑥한 얼굴이 된 배 변호사가 한 답변이 저것이었다.

“그럼 저게 백혈병이라는 말은?”

“그건…….”

“오진이죠.”

고개를 갸웃하는 배 변호사 대신 구 비서가 대신 대답했다. 그는 확신에 차 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그들 모두 동감했다.

의료계 종사자가 아닌 이상 그들이 아는 백혈병의 증상은 매체를 통한 학습뿐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그들이 보아 온 정삼봉과 백혈병은 결코 어울리는 조합이라 할 수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세상에서 가장 활기찬 코딱지를 꼽으라면 주인은 정삼봉 말고 다른 누구도 말할 수 없었다.

“오진이겠죠. 예.”

“혹은 일시적인 증상이거나.”

“아니면 검사 시료가 오염되었거나.”

“검사 결과가 바뀔 수도 있잖습니까.”

배 변호사와 구 비서는 번갈아 가며 오진의 확신을 더했다.

“여기 좋은 병원 맞아?”

“제가 아는 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설비와 의료진을 갖추고 있는 병원입니다.”

“그런데 오진 같은 거나 하는 게 말이 돼? 내 배도 두 번이나 수술했잖아. 마취도 못 해 생살 째고……. 마음에 안 들어. 원장이 누구야.”

“아까 만나 보셨습니다.”

주인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그리고 완전히 심사가 뒤틀린 주인의 비위를 잘 맞추면서 배 변호사와 구 비서는 제 할 일을 했다.

삼봉을 자빠트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간호사는 윗선에서 차례로 내려오는 압박에 울음을 터트렸고, 삼봉의 혈액 검사 결과에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던 의료진은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그의 팔에서 다시 혈액 샘플을 채취해 가야 했다.

원장이 다시 내려와 수술실에서 나온 주인을 보러 왔을 때 주인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별 지랄을 다 떨어 주셨다. 일단은 자신의 배를 두 번이나 째야 했던 것이 무조건 의료진이 잘못한 것이라 가볍게 발광을 한 다음에 왜 저 코딱지가 백혈병이냐고 아무 죄도 없는 원장에게 따지며 몰아붙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어지간한 진상은 명함도 못 내밀 진상을 떨어 주시면서 특실 환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소란을 피웠다.

“아……. 그리고 사장님. 혹시 나중에 뭐라고 하실까 생각돼서 미리 말씀드리는 건데 말입니다.”

“나중에 뭐라고 할 거 지금 말하면 안 할 거 같아? 그리고 말 까라니까 불편하게 왜 자꾸 높여!”

단단히 심기가 틀어지신 주인은 흉흉하게 이빨을 들이대며 배 변호사를 협박했다.

이 정도의 발광에는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는 배 변호사가 콧잔등을 씰룩거리면서 가볍게 말을 놓았다.

“아침에 삼봉이한테 내민 각서 법적으로 아무 효력이 없는 거 알지?”

“없어?”

“있겠냐? 뭘 어떻게 언제까지 왜 한다는 말도 없이 그저 ‘책임진다.’ 딱 한 구절 있는 게 법률적으로 무슨 효력이 있겠습니까. 예?”

주인은 전문가의 의견에 수긍했다. 자신은 벌써 그 각서에 대해서 받을 만큼 받아 챙겼다 생각하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벌써 땡 쳤는데?”

“뭐?”

“아까 피 내놓고 땡 치자 그랬어. 물론 수혈은 못 받았지만 어쨌든 하려고 했으니까 이미 끝난 이야기지.”

“책임……. 지라는 게.”

“나중에 딴소리 할까 봐 받아 놓은 각서지 뭘 시킬 요량이었으면 고딴 식으로 받았겠어? 내가 그동안 배변한테 각서 요령도 안 배웠을까 봐?”

“어…….”

배 변호사는 당황했다. 우주인의 행실로 미루어 보건대 그딴 각서로 창창한 어린애 인생을 말아먹으려는 수작인가 보다 확신했었다. 삼봉의 말도 그렇고 주인의 지난밤 증언도 들었지만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배 변호사의 생각으로 지난밤 누군가가 누군가를 덮쳤다면 그래서 그들이 성적 행위를 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교감을 나누었다면 그것을 실행에 옮긴 몹쓸 인간은 우주인 말고는 없다고 생각하였던 거다. 두 사람 모두 그것이 삼봉의 짓이라고 말했음에도 순순히 진실을 믿어 줄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명백한 증거라 할 수 있는 주인의 가벼운 말을 듣고 있음에도 배 변호사는 차마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불편한 진실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정말로 삼봉이가……. 삼봉이가 그러니까 사장님을…….”

“덮쳤지.”

“진짜로?”

“그럼 거짓말로 덮쳤겠어? 자는데 들어와서는 바지를 벗기더라니까?”

“하!”

“그러고는 내 물건에다 대고 잘 있었냐. 보고 싶었다. 며칠 안보니 보고 싶더라. 이러는데 그걸 그냥 둬?”

“보고……. 설마 삼봉이가 미치지 않고서야.”

“내가 거짓말해?”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든다는 말은 얼굴 표정으로만 표현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쟤가 저렇게 순진한데 사장님하고 그걸……. 그러니까 그걸 하고 멀쩡할 리가 없잖아.”

“매일 일하는 애를 더군다나 술에 떡이 된 애를 데리고 뭘 해. 가볍게 Intercrural로 때웠지.”

“가볍게 때워서 사타구니랑 불알이 다 까지냐?”

“피부가 약하더라고. 보기와 다르게.”

뻔뻔하기도 하셔라.

배 변호사는 이제 입이 있어도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두 손을 번쩍 치켜 올렸다.

“졌습니다. 예. 잘하셨어요. 너----무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쟤 왜 안 일어나.”

“내가 의사냐?”

“쳇!”

사건 사고가 많았던 하루가 저물고 있었지만 구 비서는 여전히 걸려 오는 전화를 받느라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배 변호사는 잠시 경찰서에 다녀온 것으로 일과를 마쳤고 삼봉은 아직 깨어나지 못하는 중이었다.

아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구 비서는 새벽까지 이어진 전화를 받으며 행복한 얼굴을 한 채 선잠이 들었고, 밤이 깊어지기 전 배 변호사는 여자들만 집에 남아 있는 것이 걱정된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주인은 예리하게 벼려진 칼처럼 날이 서 있는 감각들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 없으면 다른 신경들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밤으로 뒤덮인 병원의 소리들과 냄새. 비정기적으로 앰뷸런스가 들어오는 소리 멀리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

많은 단서들이 무의미하게 주인의 감각을 일깨우고는 사라졌다.

평화로운 도심의 밤은 그처럼 무신경하게 넘겨 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깊은 잠이 든 사람들을 깨울 필요가 없는 많은 것들이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그 가운데 혼자 깨어 있는 주인은 이 순간이 몹시 고독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잠시 웃었다.

한가한 감상이다.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기분이 아니던가.

죽거나 혹은 살아남거나. 그 두 가지만을 생각한다면 나름 치열했던 시간을 겪어 낸 뒤 이렇게 한껏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찾아온 감정이 평화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구질구질한 감상뿐이라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점점 소란스러워지는 문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병실을 돌고 있는 간호사의 카트 소리가 들린다. 더 신경을 곤두세우면 억지로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 환자들의 불평 소리도 들렸다. 간호사의 기척에 놀란 누군가가 뭔가를 엎질렀는지 깡! 하는 큰 소리와 함께 깡깡깡……. 하면서 규칙적으로 타일 바닥에 깡통이 튀는 소리가 났다. 요란한 소음을 중심으로 파랑이 번지듯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그 소리에 하루를 온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코딱지가 깨어난 모양이었다.

‘흐응…….’ 하면서 몸을 뒤챈 삼봉이 천천히 눈을 뜨는 모습을 주인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소리와 빛과 냄새의 세상으로 주인은 귀환하여야 했다.

주인의 병실에 급하게 가져다 놓은 침대 위에서 삼봉은 악몽에 쫓기던 아이처럼 벌떡 일어나 앉았다. 잠시 그는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시선이 마침내 주인에게로 향했다.

“……?”

“잘 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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