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씨…….”
멍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주인은 삼봉의 시선이 흔들리는 것을 간파할 수 있을 만큼 노련한 사내였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보지 못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울고 싶을 때 위로해 주는 건 울어 버리라는 말밖에 되지 못한다. 하지만 울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적당히 무시해 주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적어도 우주인이 살아온 삶은 위로보다 다그침이 필요했다.
그는 침대 옆 협탁에서 핸드폰을 집어 삼봉에게로 던졌다. 핸드폰은 정확히 이불 위로 떨어졌는데 삼봉은 그것을 집어 들지 않고 주인만 바라보았다.
“식구들한테 전화하고 싶으면 해.”
“…….”
“나가서 해. 시끄럽게 하지 말고.”
“못……주무셨시유?”
“나가면서 창문도 열어. 밤새 니가 방귀 껴 대는 바람에 방안에서 똥냄새가 나.”
“지 방귀 안 껴유.”
나름 자존심이 상했는지 정색을 하고 따진다. 하지만 주인은 헛소리하지 말라고 말했다.
“세상에 방귀 안 뀌는 놈이 어디 있냐. 있으면 데려와 봐라.”
“건 그렇지만서두…….”
“물론, 너처럼 잠만 들면 독가스 살포기처럼 뿡뿡대는 놈은 흔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아자씨!”
“내가 빈말해? 방에 진동하는 똥냄새 어쩔 거야. 창문이나 열어.”
삼봉은 구시렁대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냄새 한 개도 안 나는디…….”
“그건 니 코가 썩어서 그런 거야. 니 방귀 냄새를 맡으면 비비도 쓰러질 거다.”
“비비가 뭐에유?”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삼봉은 창문을 열었는데 산 밑으로 한참 들어와 있는 병원 주변의 선선하고 습한 아침 공기가 뭉글뭉글 병실 안으로 기어들어 오기 시작했다.
“……개코원숭이.”
“아! 그걸 비비라고 해유?”
“몰라.”
삼봉은 주인의 침대 옆 협탁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는 제가 자고 일어난 잠자리를 정리했다. 병실이라 이불을 털어 개지는 못했지만 주름 하나 없이 반듯하게 펴서 정돈하는 것이다. 주인은 삼봉의 방의 인정머리 없음이 싫었는데 직접 그렇게 정리하는 모양새를 보니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야.”
“야?”
“물.”
“물 마셔도 된대유? 쩌기 침대 끝에 금식이라고 적혀 있는디유?”
“쳇! 의사들이 뭘 알아서. 이 정도는 하루 이틀이면 말짱해져.”
삼봉은 웃었다. 기가 막힌 억지소리임이 분명한데 저렇게 쌩쌩해 보이는 주인의 입에서 나오니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던 것이다. 저건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인인 것이 분명했다.
“그랴도 배 째고 난 뒤에 방귀 뀌기 전에는 물도 마시면 안 되는 거에유. 큰 성 맹장 수술 하고도 그랬는디유?”
“방귀는 니가 내 대신 많이 꼈으니까 상관없어.”
“그려도 안 돼유.”
“물 달라니까.”
“지 백혈병이래유?”
이건 어디서 배운 스킬이냐.
우주인은 뜬금없이 정곡을 찔러 들어오는 삼봉의 새로운 기술에 코웃음을 쳤다. 요따위 수법은 구 비서나 배 변호사에게 하도 당해서 놀랍지도 않았다.
“내가 의사냐?”
“…….”
어젯밤 배 변호사의 대사를 그대로 읊어 주고 난 후 주인은 다시 한 번 핸드폰을 삼봉에게 내밀었다.
“전화할 거야?”
“안 할 꺼구먼유.”
“왜.”
“식구들 걱정시키기 싫구먼유. 우리 집 돈 없시유. 글케 큰 병 고칠 만큼 돈 많지 않어유. 큰 성 장가도 가야허구. 작은 성 공부 끝나려면 안적도 한참 들어갈 돈이 월맨데 지 병까정 고치지는 못 혀유.”
“잘났다.”
대단히 감동적인 말이었지만 주인은 콧방귀를 꼈다. 이런 레퍼토리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쉰내가 나도록 보고 들었다. 새삼 그게 현실로 옮겨졌다고 울컥하며 삼봉을 끌어안고 눈물 바람이나 하란 말인가? 애시당초 상대가 글러 먹은 상황이었다.
“잘나서 그런 게 아니구먼유.”
그리고 삼봉 역시 불치병에 걸린 연약한 주인공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자씨는 돈이 많아서 그게 월매나 무서운 놈인지 모르자녀유. 지는 잘 아는구먼유. 돈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도 척을 지고 형제지간도 으르렁대는 게 시상이어유. 등 따시고 배부르게 묵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지만 등 따시고 배부르게 먹을 돈도 없는 사람들이 더 많구먼유. 우리 집도 그렇구유. 식구 중에 돈 끌어다 쓰는 병 있는 놈 하나 있으면 그 집안 풍비박산 나는 거 시간 문제구먼유. 어차피 집 팔고 땅 팔고 소 팔아도 해결 안 되는 그런 병 아예 모른 척하는 것이 남은 사람 살리는 길이구먼유. 그런 결정은 지가 잘나서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게 지 팔자라서 그리 밖에 못하는 거구먼유. 그런 지 심정 아자씨가 아남유?”
“모르는데?”
“…….”
기가 막힌다. 이러니 백주 대낮에 칼 맞았대도 한솥밥 먹는 사람 중 누구 하나 걱정하는 이가 없는 거다. 하지만 삼봉은 당면한 자신의 문제 말고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백혈병 무서운 것이야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한 것이고, 지금 당장은 근본부터 비뚤어진 이 남자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삼봉은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니 이제부터 책임질 질 생각인 것이다.
“누가 이랬시유.”
“알면 찾아가서 때려 주게?”
“사정을 들어보고 엄한 사람한테 못된 짓 한 놈이면 그냥 둘 수 없지유.”
“아서라. 경찰이 잡아갔으니까.”
“워째든. 누가 이랬시유.”
주인은 매력적인 웃음을 웃었다. 다그치듯 따져 묻는 삼봉의 주의를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이 즐겁게 느껴졌던 탓이다. 아무도 주인이 지랄 발광을 했을 때 그 이유는 묻지 않았다. 우주인이 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사고의 뒷수습만을 생각했지 사고의 원인을 캐묻는 이는 없었던 것이다.
“돼지 새끼.”
“요새는 돼지도 칼 들고 설치남유?”
“그러더라고.”
“그 돼지가 왜 아자씨를 칼로 쑤셨남유?”
“내가 그 돼지가 가진 돈을 몽땅 휴지조각으로 만들었거든. 그러니 기를 쓰고 올라탄 신분 상승의 엘리베이터도 개박살이 난거지. 나 같아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거야. 하지만 그 돼지 새끼는 지가 한 짓을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야. 웃기지 않아?”
“안적 이야기를 다 못 들어서 안 웃기는구먼유?”
상황이 점점 재미있어졌다.
정삼봉은 우주인의 말을 어디까지 수긍할 수 있을까. 그가 살아온 세상과 우주인이 살고 있는 세상은 아주 완전히 다른 곳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주인이 느끼는 사소한 짜증을 납득할 방법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다 듣고 싶어?”
“해 보셔유.”
“어떤 남자와 여자가 있었어.”
“야.”
남자와 여자는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남자에게는 야망이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야망을 돕기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했다. 천재일우의 행운처럼 남자에게 기회가 다가왔을 때 남자는 망설임 없이 저 높은 곳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올라탔다. 남겨진 여자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의식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남자는 자신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지 못하게 매달리는 여자를 미련 없이 밀쳐 내 버렸다. 그의 인생에 방해가 되지 못하도록 모질고 독하게 여자를 내동댕이쳤다.
너무 흔해서 식상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사람들은 이용당하기만 한 여자를 바보라고 욕하기도 한다. 시골 깡촌에서 인간의 도리며 상식 운운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란 정삼봉은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아자씨가 슈퍼맨이어유? 아니면 홍길동인감유?”
“둘 다 아닌데?”
“오지랖도 넓네유. 뭣 하러 넘의 일에 껴들어서 칼침을 맞는대유? 할 일이 글케도 없시유?”
“짜증나잖아.”
“짜증나서 한 사람 인생을 말아먹어유? 그 사람 입장에서는 아자씨가 월매나 짜증 나겄시유.”
“짜증나면 내면 되잖아. 이기지도 못할 거 덤비기는 왜 덤벼. 덤볐으니 박살난 거고 덤비는데 그냥 찔려 뒈지는 건 옳은 짓이냐?”
“아자씨.”
주인은 놀랐다. 끝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듣겠다 말하는 삼봉은 충분히 그에게 낯선 경험을 안겨 주었지만 그보다는 불현듯 삼봉이 그의 손을 잡았기 때문에 놀랐다.
생각보다 작고 따뜻한 손이 위로하듯 가만히 주인의 손을 토닥거렸다.
“혼자 사는 시상 아니구먼유. 때로는 남의 입장도 생각을 해 봐야 허는 거에유. 시방 지는 아자씨가 잘했다 잘못했다 말할 수가 없네유. 워찌 생각하면 그런 개망나니 쫄딱 망해서 깜빵이나 들어가는 게 맞는 일인 거 같기도 허고, 또 워찌 생각하면 그런 일에 왜 오지랖 넓게 끼어들어 이 사달이 나는가 참 아자씨도 할 일 없는 사람이다 싶기도 허구유. 근디 아자씨.”
“…….”
“암만 잘나도 혼자 사는 사람은 없시유. 잔소리다 귀찮다 생각 허지 마시고 들어유. 시상은 혼자 사는 기 아니구먼유.”
“흥!”
주인은 당황했지만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말이다.
“백 년을 옆에서 떠들어 봐라. 내가 변하나. 세상은 혼자야. 결국 나 혼자밖에 남지 않는 거라고.”
“지가 백 년이나 아자씨 옆에 있을 수 있을랑가 모르겄네유.”
“…….”
삼봉의 목소리가 너무 차분해서 주인은 되려 짜증이 났다. 꼭 죽을 날 받아 놓고 유언 남기는 사람 같다며 낄낄대고 웃어 주고픈 기분이었다.
“근디. 지가 말여유. 앞으로 월매나 더 살지는 모르겄지만 이거 하나는 꼭 해 놓고 가야 겄시유. 아자씨 사람 맹글어 놓는 거 말여유.”
“어이…….”
차분한 목소리와 달리 삼봉의 얼굴은 결의에 차 있었다.
“지가 책임진다고 했자녀유.”
“응?”
“책임질 꺼구먼유. 지가 아자씨를 책임질 꺼구먼유?”
우주인의 시즌이 유례없이 빨리 끝나 버렸다.
피에 굶주린 것처럼 헐떡대며 먹잇감을 찾아 신경을 곤두세우는 하릴없는 긴장이 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아주 조금 진지해 보이기도 하고 또 약간은 우울해 보이기도 하는 과거로의 회귀가 끝장나 버린 뒤 남겨진 안하무인 무식 발랄한 우주인만이 망연자실 삼봉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지금 얘가 뭐라는 거야? 하는 얼굴을 한 채 말이다.
한참 전부터 깨어 두 사람의 기묘한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구 비서는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하는지 이대로 숨죽인 채 있어야 하는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삼봉이 집에 전화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그 이유를 들을 때는 아무리 인정머리 없는 구 비서라고 해도 가슴 한켠이 뜨끔해졌다. 우주인의 배에 칼을 박아 넣은 괴한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사기 치지 마!’라고 외치고도 싶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책임을 진다느니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느니 하는 신파조의 이야기에서는 대체 어떤 표정을 한 채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양껏 비웃어 주고 싶기도 했고, 제법 심각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주인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책임 따위 안 져도 되거든?’이라든지 ‘책임은 무슨 책임!’이라며 발광을 해대자 구 비서는 더 난감해졌다.
다행히 소리 없이 열린 병실 문틈으로 손 하나가 쑥 튀어나와 구 비서의 팔을 잡았다. 그것은 강한 힘으로 구 비서를 잡아당겼는데 이 방안에 있는 것이 가시 방석이었던 구 비서는 순순히 그 손에 끌려 병실을 빠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