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58)

“사장님은 밥 주는 사람한테 약해. 내 경우만 봐도 알잖아? 앞으로 사장님 밥 주는 사람은 삼봉이가 될 거야. 모두들 삼봉이한테 약간의 도움을 준다면 미래가 편안하지 않겠어?”

“대세는 삼봉 씨란 말이로군요. 전……. 사장님한테 한 장 걸었는데요?”

“그래서. 한 장 때문에 잘리고 싶어요. 구 비서님?”

“나도 사장님한테 걸었는데……. 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게 달린 문제였군요. 여사님은 언제나 그렇지만 현명하십니다. 존경합니다.”

악인들이 의견을 모았다. 그들은 모두 심신 건강한 정삼봉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삼봉을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데 힘을 보태겠다 다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주인은 허술한 바스 로브만을 걸쳐 입은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심각한 고민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성격과는 달리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장고도 마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꼭 시비 거는 것처럼 열렬한 고백을 해 오던 얼굴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딱히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주인은 그 감정의 여파가 걱정되는 것뿐이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한 사랑이라는 것은 대단한 정신적인 소모를 가져오는 감정이었다.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일상적이지도 기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치열할 정도로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떨어트리고 또 두들기는 극단적인 자기 학대의 표상과도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중도라는 것이 없고 약간의 여유라든지 잠시간의 휴식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마음의 너머에 다다를 때까지 쉼 없이 달려야 하고 끝없이 몰아쳐야 하는 것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감정이었다.

지금의 정삼봉은 그런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다. 아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문제는 또 어떠한가.

한번 은퇴를 선언한 이상 양 여사가 그 결정을 번복하는 확률은 매우 희박했다. 지금껏 잘 그녀의 후임자로 정삼봉을 염두에 두었다면 다른 선택의 여지란 없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정삼봉은 안 되니 조금만 더 사정을 봐 달라 요구하면 그녀는 당장에라도 도망을 가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어쨌든 주인은 삼봉이 당분간 그의 요리사로 남아 있는 것이 이롭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 주는 것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귀찮고 시끄럽고 성가시지만 사실 정삼봉 자체의 가치 또한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당장 그가 풀 먹여 준 팬티가 없으니 옷 입기도 싫어지지 않는가. 뿐만 아니다. 목욕은 또 어떤가 말이다.

주인이 삼봉과 목욕하길 원하는 이유는 그와 목욕을 하게 되면 항상 ‘때를 밀어주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주 시끄러웠다. ‘까마귀가 형님 하겠네.’라는 둥 ‘국수 가락’이라는 둥 혹은 ‘아자씨 지우개에유?’라는 둥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은 그렇게 살갗을 벗겨 내듯 아프게 밀어 대도 피부는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껍질을 홀랑 벗길 듯 호되게 밀어 댔던 그 피부가 얼마나 매끈거리는지 스스로의 살갗에 반해 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때를 밀고 삼봉의 권유대로 달짝지근한 맛에 바나나 향이 풍기는 우유를 마시는 것도 좋았다. 더불어 노곤노곤해진 몸으로 잠자리에 들면 극악스러운 수면 장애도 그 맹위를 떨치지 못했다. 삼봉은 혀를 한 자나 내뺀 채 헐떡거리더라도 그는 때를 민다는 행위 자체를 멈출 수가 없었다.

혼자 해보려고도 했지만 삼봉이 했을 때처럼 개운하지도 않고 아프기만 했을 뿐 아니라 국수 가락같이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이물질도 생기지 않았다. 구 비서에게 물었더니 모두 ‘요즘도 때를 미는 사람이 있냐’는 반응뿐이라 아주 구시대적인 혹은 도시에서는 이제 아무도 하지 않는 행위인 것 같았다.

주인은 매일 샤워를 하고 있는데 때를 밀 때마다 삼봉은 더럽다 더럽다를 연호했다. 회색의 국수 가락(?)이 자신의 몸에서 떨어지는 걸 보면 그런 것도 같았다.

뭐 어쨌건. 주인은 그래서 삼봉과 목욕하는 일이 좋았고, 그 일로 인해 삼봉이 피곤해진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정삼봉의 가치는 더 많아질 것 같았다. 아무런 근거 없는 느낌뿐이지만 주인은 그것을 확신했다.

정삼봉을 놓아 버릴 수 없는데 정삼봉에게는 하자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긴 고민은 그의 머리만을 아프게 했을 뿐이었다. 아무 것도 결론을 낼 수 없었고, 어떤 것도 명확해지지 않았다.

주인은 벌떡 일어나 방안을 서성거리다 마침내 이런 경우는 연장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주인이 길을 찾지 못할 때 언제나 시의 적절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더군다나 다른 것도 아닌 정삼봉의 문제라면 그녀만큼 진실에 닿아 있는 사람이 없는 것도 분명했다.

“역시 양 여사를 보낼 수는 없어. 난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애일 뿐인걸?”

소가 웃을 일이다.

“양 여사! 지혜를 좀 빌려줘.”

“……?”

헐벗은 옷차림을 한 채 맨발로 버티고 선 주인을 보자 거실에 있던 네 사람은 공통적으로 갑갑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저런 인간의 아가리 속으로 삼봉이처럼 귀여운 아이를 내몰 생각을 하니 스스로가 혐오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남의 목숨보다는 자기 목숨이 더 중요하다.

“구 비서는 조금만 기다려. 이 문제 먼저 처리하고. 배변. 양 여사랑 같이 내 방으로 좀 와.”

“나도?”

“응. 배변도.”

“오케이.”

자신이 후순위로 밀려났다는 것이 불만스러운 구 비서였지만 당장 사람도 뜯어먹게 생긴 우주인의 기세에 눌려 별다른 항의를 할 수는 없었다.

배 변호사와 양 여사는 사방으로 팬티가 떨어져 있는 주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전화로 대충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확하게 말해 봐. 그 의사 양반은 뭐래. 오겠대?”

배 변호사는 단숨에 본론으로 들어가는 주인의 말을 들으며 양 여사를 잠시 돌아보았지만 일부러 그녀와 자신을 함께 부른 것은 주인이니 더 이상 꺼릴 것도 없었다.

“그쪽에서는 언제나 오케이라고 하더군. 대단히 희귀한 질병인데 사장님이 어떻게 그것을 단번에 짚어 냈는지 그게 더 신기하다는 말도 하면서.”

“병이라니?”

양 여사는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코딱지는 병에 걸렸어. 아니. 병을 갖고 있어. 전염되는 질환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아주 엿 같아서 문제지.”

“삼봉이가 아프다는 말이야?”

“예. 여사님. 폭스 마이어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희귀 질환이라고 합니다. 면역 체계에 이상이 생기는 건데……. 병이 생기면 치료를 하게 되죠. 어느 나라든 체계화된 의료 처방이든 구전된 민간 처방이든 하게 되는 겁니다. 이 경우 체계화된 의료 처방. 즉, 바이러스 감염에 항생제를 쓴다든지 해열제 진통제 등의 의료 처방을 하게 될 경우 면역 체계가 완전히 망가져 걷잡을 수 없게 되는 질병이라고 합니다. 대체로 의학이 발달되지 않는 나라에서는 이런 환자들이 있다고 해도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아무 탈 없이 장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방 세계에서는 발견하기도 힘들고 발견한다고 해도 의학적으로는 치료를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정확하게는 하지 않아야 하는 질병이라고 하더군요. 그것 때문에 미국에 다녀온 겁니다.”

“뭐 그런 병이 다 있어?”

배 변호사는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희귀 질환이겠죠. 현재 폭스 마이어 연구소에서 관리하는 환자가 서른여섯 명뿐입니다.”

“그러니까 삼봉이가 그 폭스 어쩌고 하는 병에 걸린 거라고?”

“아직은 모릅니다. 정확하게는 혈액 샘플만 전달되었고, 배양 결과 가능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좀 더 정확한 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사장님이 절 폭스 마이어 연구소에 보낸 것은 그쪽 의료진 중 하나가 한국으로 와서 삼봉이를 검사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쪽 의료진이 한국에 와서 삼봉이를 검사하는 것도 그 검사 결과도 삼봉이는 몰라야 합니다. 그 병에 가장 위험한 것이 스트레스라더군요. 환자가 본인의 병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대체로 예후가 좋다고 합니다.”

치료할 수도 없고, 치료를 시도해서도 안 되는 병.

이 시점에서 양 여사와 배 변호사는 우주인을 돌아보았다. 그는 대체 어떻게 존재조차 세간에 알려져 있지 않는 이 병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삼봉이 그러한 병을 의심할 수 있을 징후가 있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알 수 있었던 것일까.

“폭스 마이어라는 갑부가 있었는데 그 병으로 죽었어. 내가 그 폭스 마이어랑 잠시 동안 알고 지냈고.”

굉장히 복잡할 거 같은 의문이었는데 주인은 의외로 단순하게 그들의 물음에 답했다.

“아 뭐! 돈은 남아돌고 자긴 그 병으로 죽는데 유산 남겨 줄 사람도 없으니까 자기 병 연구하는 재단을 만든 거야.”

“그건 그렇다고 해도 그쪽 의료진 말대로 그 어떤 특별한 징후가 없는 질환을 어떻게 짚어 낸 거냐고. 나도 그건 궁금해 미칠 지경이거든?”

“변호사님 심정과 같아. 나 역시도.”

“왜! 나는 그런 거 알면 안 돼?”

“사장님은 좀 무식하잖아.”

“씨……. 양 여사까지 이럴 거야?”

“아무리 내가 사장님 편이라도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걸?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주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그것은 두 사람의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대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자 주인은 발칵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른다고!”

“그게 말이 돼?”

“왜 안 돼. 배변은 그런 때 없어? 양 여사는 그런 경우 없어? 아무 근거도 이유도 없는데 그냥 이럴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 더군다나 그 날은 내가……. 당신들 말하는 대로라면 시즌이었잖아. 그냥 그런 느낌이 왔을 뿐이라고. 그 병이 원래 성인이 되면서 증상이 나타나. 성인이 될 때까지는 잔병치레 하나 없이 건강하다고. 그래서 병원도 잘 안가고 약도 안 먹지. 그러다 사소한 진통제 한 알, 항생제 주사 한 방으로 맛이 가는 거야. 붐---! 폭스 마이어도 헤르페스 연고 바른 것 때문에 자긴 치료를 하면 더 위험해지는 병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수면제 딱 한 알 먹고 자살했어.”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양 여사는 시즌 중이었기 때문에 삼봉의 병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주인의 말에 공감했다. 시즌 중이라면 저 인간이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보다 나으면 나을까 못하지 않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자기 병을 알고 있는 사람이 수면제를 왜……. 별다른 징후도 없고, 메디컬 케어만 없으면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살 수 있다고 하던데.”

“배변 거기서 뭐 듣고 왔어. 폭스 마이어 증후군에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문제야. 빌어먹게도 그 바보 자식이 사랑이란 걸 했거든. 세상에 있는 모든 감정 중에서 사랑만큼 골 때리는 감정. 괴롭고 힘들고 자기 파괴적인 감정이 또 있어?”

“아…….”

그제야 배 변호사까지도 모든 사실을 수긍했다.

“그럼 문제네? 삼봉이 말이야.”

“그래서 양 여사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잖아. 저 자식 어쩔 거야. 대체 어째야 하냐고. 아주 골 아파 뒈지겠어.”

“글쎄…….”

배 변호사는 꼭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하게 되는 것 같았다. 어디 가서 눈치 없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 없고, 아둔하다는 말은 더더욱 들어본 적 없었던 그였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대단히 선문답 식이다.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난 어쨌든 연말까지만 일할 거야. 내년에 난 여기 없어.”

“내가 양 여사 성격 몰라?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하냐고.”

“……?”

양 여사가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자 주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구 비서 왜 온 줄 알아? 지금 공사 중인 실버타운 때문에 온 거야. 연말까지 완공하라고 했거든.”

“실버타운?”

“양 여사 실버타운 들어간다면서!”

“날 위해서?”

“뭐든 최고로 만들어 줄게. 그동안 내 밥해 준 사람인데 이상한 실버타운 아무 데나 들어가는 꼴은 내가 못 봐.”

“흐음……. 간만에 마음에 드는 말이네? 역시 잘 키웠나 봐.”

“양 여사 만나기 전부터 난 다 커 있었거든?”

양 여사는 빙그레 웃었다. 날 위해서 그런 일까지 해 주다니 감격했다는 말을 할 그녀는 아니었다. 설사 그녀가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칭찬받기를 기다렸다는 듯 아양 떨 우주인도 아니니 그들은 무심하고 건조하게 서로를 향한 배려를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내 밥 좀 어떻게 해 봐. 응? 지금 양 여사가 코딱지한테 음식 다 가르치고 있는데 이제 와서 저 자식이 지 병에 제일 위험한 길로 부득부득 가고 있잖아. 대체 어째야 하는 거냐고!”

“단지 밥 때문이야?”

“…….”

“지금 사장님이 이 안달을 하면서 변호사님을 미국까지 보내고 돈이 꽤 들 텐데 검사하고 하는 거 다 비밀에 붙이는 거 단지 밥 때문이야?”

“그럼 뭐가 있겠어.”

잠시간의 침묵이 마음에 걸렸지만 배 변호사는 자신이 이 대화에 끼어들지 않아도 그들은 문제없이 결론을 도출해 낼 것이라 믿었다.

“정말?”

“뭐……. 팬티 때문이기도 하고. 목욕도 시켜 주잖아. 지금으로서는 그게 중요하지만 내년부터는 그 녀석이 내 밥을 할 거라고!”

“그래……. 밥 문제라면 사장님한테 대단히 중요한 거지.”

“그럼! 밥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나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거고, 저렇게 사장님이 좋다고 큰 소리로 외치는 삼봉이라면 나처럼 일 년 터울 두고 인수인계 하지도 않을 테고……. 사장님한테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네.”

“……!”

주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배 변호사는 그 광경을 보면서 대체 저 인간은 어째서 먹는 음식이 저렇게까지 중요할 수 있을까 싶었다. 보통 밥 해주는 사람이 달라진다고 안색까지 변하지는 않는다. 마치 누가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것처럼 당황해 하는 반응은 여러모로 신기한 우주인의 행동이라고 해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으로서는 삼봉이한테 종신 계약서 쓰게 한 것도 아니니 언제든 삼봉이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가면 그만인 상황이고 그렇지?”

“양 여사.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내가 왜 사장님을 협박해. 그런다고 얻는 게 뭐 있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말하는 거잖아. 사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해결책을 모색해 보든가 하지. 안 그래?”

“방법을 가르쳐 줘…….”

우주인은 순한 아기 강아지와 같은 얼굴을 한 채 양 여사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침대 모퉁이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주인은 그런 그녀의 발치에 앉아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는 것이 아닌가. 배 변호사에게는 기가 막힌 광경이었지만 그것은 그만큼 그가 지금 이 상황을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단지 밥 주는 사람이 위태롭다는 사실이 우주인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곤혹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곧 정삼봉이라는 인물이 배 변호사나 구 비서 그리고 차예진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인물로 변할 수 있는가를 증명하고 있기도 했다. 정삼봉에게 밉보이면 지금 주인이 보여주는 당혹감이 분노로 변해 압력 전달의 법칙에 따라 차츰차츰 퍼져 갈 것이다.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 지는 느낌을 받으며 배 변호사는 자신이 삼봉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가 돌이켜 보았다.

“삼봉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 같은 걸 하면 안 되는 병에 걸려 있고.”

“…….”

“그 첫사랑은 사장님이다 이거지?”

“코딱지 주제에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그런데 사장님은 삼봉이가 아파서 죽어 버리거나 이 집에서 나가 버리면 정말 곤란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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