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발광해 주시던 우주인도 그제서야 삼봉의 눈물을 보았던 모양이다. 뚝! 하며 움직임 전체가 멎어 버리는 건강한 팔다리에 매달려 구 비서와 배 변호사는 식은땀을 흘렸다.
눈도 웃고 있고, 입술도 웃고 있고 얼굴 전체가 환하게 웃고 있는데 눈물만 뚝뚝 흘러내리는 삼봉의 표정은 마음이 쓰라렸다.
애가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사내끼리 붙어먹는 우주인의 성적 취향에 대해서는 꿈에서도 동조할 수 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삼봉의 저런 얼굴을 보니 얼음장 같은 마음도 녹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만큼 삼봉은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너 울다 웃다 그러면 똥구멍에 털 난다.”
“…….”
그런데 그것도 사람 봐 가면서 해야 하는 것인 듯싶었다.
발광하던 게 언제인가 싶을 만큼 얌전해진 우주인이 가만히 다가가 삼봉이 누워 있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자 구 비서와 배 변호사는 양 여사의 손에 이끌려 그 방을 나와야 했다. 좀 더 구경하고픈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지금부터는 두 사람의 시간이라는데 어쩌겠는가.
제법 사람다운 꼬라지로 가만히 삼봉의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는 우주인의 모습을 보니 저게 발광해서 애를 잡으면 안 되니까 감시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방을 빠져나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양 여사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 진하게 드는 것은 왜일까.
배 변호사의 마음속에서 이미 루시퍼의 엄마 격으로 신분 상승한 오십대 여성의 입가에 그야말로 애매한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왜 그렇게 웃고 계시는 겁니까?”
“재미있어서요.”
“취미 참 고약하십니다. 여사님도. 저는 콩알만 한 놈이 눈물 뚝뚝 흘리면서 웃는데 가슴이 쓰라리구만. 저런 멀쩡한 놈을 완전 똘아이 개초딩한테 보내는 게 아까워 죽을 지경이라구요. 앞으로 고생문이 훤하구만……. 빌어먹을 내가 암만 나쁜 놈이라도 이렇게까지는 타락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양 여사는 찜찜한 마음으로 무거운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두 남자의 등을 밀어 짐승 몰이를 하듯 그 방 앞을 떠났다.
“두 분은 그 내기에서 제가 삼봉이한테 걸었다는 사실을 잊으신 모양인데요.”
“아?”
“음…….”
“삼봉이 고생문이 훤한 건 사실이지만 그 고생문에 혼자 걸어 들어갈 거 같지는 않네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두 남자는 양 여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만만치는 않을 거라는 말이죠. 사장님 앞날도…….”
“여사님! 좀 더 설명을 해줘요. 그러고 가 버리면 진짜 악당 같다구요!”
배 변호사의 외침에 양 여사는 가만히 웃을 뿐이었다.
키스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은 몹시 부드러웠고, 상대는 삼봉이 가슴 졸이며 좋아했던-그 이유는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사람이었다.
하지만 좋아한다. 사귀자. 그런 다음 바로 육체관계로 돌입한다는 것에 관해서 그는 단 한 번도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좋아한다에서 더 뭐가 진전될 것이라는 기대도 해보지 못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삼봉이 생각한 것은 단지 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너무 좋아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대단히 피상적인 감정이 전부였던 것이다. 거기에 질척하고 끈적거리는 육체적인 교감이나 교류는 한 번도 개입된 적이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다가오는 아름다운 얼굴은 목이 타게 탐이 나지만 적어도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삼봉의 목을 닭 모가지 비틀듯 홱! 하고 비틀어 버렸다.
“……뭐냐?”
그게 너무도 과격한 반응이었기 때문에 안하무인 남 눈치 보는 일 없는 우주인이라고 해도 못 알아챌 수가 없었다.
“저기 있자녀유, 아자씨.”
“있긴 뭐가 있는데. 얼굴 원위치 못 시켜?”
“못 시켜유.”
“왜.”
“시방 뽀뽀하려는 거자녀유.”
“야!”
이번에는 주인이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바락 소리를 내질렀다.
돌이켜보면 이놈에 코딱지를 집에 들이고 나서 개운하게 풀어 버린 게 한 번도 없었다. 저놈이 집에 들어와 며칠 되지도 않아 남의 물건을 꽝꽝 얼린 팬티로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거 수습하고 남자 생각이 나서 슬슬 한가한 놈 꼬여 잡아먹을까 싶었더니 시즌이 와 감시당하는 처지가 되었고, 시즌이 끝나고 나니 뱃가죽을 찢었다 꼬매 놓아 어디 나갈 형편이 되지 못했다. 겨우 몸 추슬러 놀러 가서는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이 화상이 깽판을 제대로 쳐주시는 바람에 도로 컴백홈 한 것이 아니던가.
고로 이 부글거리는 욕구불만의 원흉은 눈앞에 요 꼬맹이가 분명했다.
더군다나 주인은 귀엽게도 ‘뽀뽀’만 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사귀기로 했으니 지긋지긋한 욕구불만에서 해소시켜 주는 것도 애인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던가. 꿈도 크지 지금 단지 ‘뽀뽀’만 할 것이라는 엄청난 착각은 저 머리통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귄다니까? 내가 너랑 사귀어 준다니까? 그럼 당연히 뽀뽀도 하고 키스도 하고 섹스도 하는 거지!”
“말 잘하셨시유. 그게 다 순서가 있는 거자녀유.”
“순서어?”
“그려유. 순서. 사귀면 다 그걸 하는 건감유?”
“그러면!”
기가 막혀 삼봉에게서 조금 떨어져 앉은 주인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삼봉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앙큼 발칙한 꼬맹이는 척 하니 손바닥을 주인의 코앞으로 내밀며 하나하나 순서를 매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일 번 좋아한다. 이 번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삼 번 사귀기로 한다. 사 번 손잡는다. 오 번 뽀뽀한다. 육 번…….”
“야! 너 장난해?”
“야?”
아주 날을 새겠다. 지극히 본능에 충실한 삶을 영위해 온 주인으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계산법이었다. 눈 맞으면 배 맞추는 것이고 배 맞춰 봤는데 마음에 들면 계속 맞추는 것이지 뭐가 그렇게 복잡한가 말이다. 흉흉하게 미간을 찡그린 우주인이 한껏 노려보는데도 앙큼한 꼬맹이는 기죽는 법이 없었다. 원래 이 코딱지가 간뎅이 심하게 부어 있는 관계로 주인이 아무리 공갈 협박을 해 봤자 콧방귀도 뀌지 않는 화상이었다.
“섹스는 언제 하는데!”
“아, 기다려 봐유. 육 번 키스한다. 칠 번 껴안는다. 팔 번 슬쩍 옷 안에도 만져 본다. 여그서 옷 안이라 함은 윗옷이구먼유. 구 번 목에다가 키스…….”
“디질래?”
“순서자너유 순서! 순서는 지켜야지유. 아자씨는 뭐 용가리 통뼈여유? 남들 다 하는 순서를 왜 안 지킨다고 이 난리여유?”
삼봉도 남자였다. 좋아한다는 마음이 들면서 이 남자의 체취. 이 남자의 체온 그리고 이 남자의 모든 것에 대해 왜 욕심을 내지 않겠는가. 하지만 급하게 먹은 밥은 체한다고 맛있는 것은 천천히 아껴 두고 아주 조금씩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심하게 잘난 이 남자와 마지막 선까지 넘으면 금세 그의 마음이 돌아서 ‘너랑 자 봤으니 이제 다른 놈하고 자 봐야겠다.’며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 버릴 나쁜 놈 같았던 것이다.
“그래 좋아. 좋다고. 그러니까 섹스는 대체 몇 번까지 가야 하는 건데.”
“한…….”
“한?”
“삼십 번쯤?”
저도 욕구를 가진 사내라 길게는 가지 못하고 애매한 숫자로 눙치듯 말하자 주인의 얼굴이 좀 더 찡그려졌다.
하지만 그는 삼봉이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했다.
“삼십 번이라……. 하루에 하나씩 하면 한 달이군?”
“……?”
“좋아.”
“야?”
삼봉은 주인이 이렇듯 쉽사리 자신이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삼십 번쯤이라고 말하면 무슨 떼를 쓰고 억지를 부려서 당장 뭘 어찌하고도 남을 사람 아니던가. 그런데 순순히 아예 계획까지 잡아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제 눈앞에 사람이 자신이 아는 우주인이 아닌 것만 같았다.
“웬일이래유?”
“뭐가.”
“아자씨가 웬일로 넘의 말을 일케 잘 듣는 거래유? 아자씨 취미 생활이 억지소리 하는 거자녀유. 근디 왜 안 그런데유?”
“아프리카 스타일이야.”
“야?”
주인은 벌떡 일어나 삼봉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삼봉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멍하니 그 손을 보고만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살았어. 어렸을 때는.”
“……?”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는 섹스는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해 줘야 하는 거라고 배웠다. 교감하지 않으면 강간과 다를 바 없다고. 그게 아프리카 스타일이야.”
삼봉이 아는 아프리카는 미개하고 위험하고 전쟁과 살육 그리고 그에 따르는 부수적인 수많은 범죄들이 행해지는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주인의 말에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만 깜빡였다.
“뭐해.”
“야?”
“잡아. 손.”
“……?”
“손잡는 것부터 시작하자면서.”
우주인에게는 백서른한 가지 나쁜 점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칭찬받는 한 가지 장점이 있었다. 하룻밤이라도 그와 잠자리를 함께한 사내들은 그가 대단히 풍부한 감수성을 가지고 상대를 배려해 주는 좋은 섹스 스타일을 갖고 있다고 칭찬했던 것이다. 대게 섹스 감수성에 있어서는 세계 최하위권이라 평가받는 한국 남자들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는 남자가 바로 우주인이었던 것이다. 삼봉이야 그런 저간의 사정을 알 리 없었다.
그는 쭈뼛거리며 손을 내밀어 주인의 손안에 제 손을 넣었는데 커다란 손이 꾹 하고 힘을 주어 삼봉의 손을 잡는 느낌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따뜻했다.
정말로 사귀는 것이로구나. 이 사람이 내게 거짓말하거나 장난친 게 아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던 것이다.
주인은 힘을 주어 삼봉을 당겨 일으켜 세웠고 욕실에서 쓰러져 방으로 옮겨진 그가 옷을 차려입을 때까지 삐딱하게 선 채 기다려 주었다.
그는 옷을 다 차려입은 삼봉의 손을 다시 잡고는 그 방을 나섰다. 그에게는 그저 삼봉이 바라는 순서대로 섹스를 향해 달리는 노선일 뿐이었지만 삼봉은 커다란 손에 붙들린 안도감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게 부풀어 엄습하는 행복이었다.
사귀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밥만큼은 양보하는 우주인이 아니었다. 따라서 오래간만에 모인 사람들의 식사는 삼봉이 차려야 했다. 양 여사는 여전히 우주인과 자신 몫의 음식을 준비했다.
이 무슨 능률 낭비냐고 따지고 싶겠지만 이 집에 와서는 처음부터 그리했기 때문에 삼봉은 별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다 큰 어른이 반찬 투정이다.
“콩잎 김치…….”
“제초제 뿌린 콩잎으로 김치 만들까?”
어이없는 반찬 투정에도 양 여사는 굳세고 강했다.
“콩잎으로 김치도 맹그남유?”
“물김치처럼 담아 먹기도 하고, 절였다 양념장을 발라 먹기도 해.”
삼봉으로서는 처음 들어본 음식 이야기였다.
“콩잎을 사람이 먹어유? 콩잎은 소나 먹지 사람이 콩잎을 먹는단 말여유?”
“내가 소냐?”
콩잎 김치 없다고 반찬 투정을 하던 우주인이 흉흉한 눈을 들어 삼봉을 노려보았는데 극적으로 의견을 규합하여 사귀는 것으로 합의 본 연인의 얼굴은 결코 아니었다.
“아자씨가 소란 말이 아니구유. 울 고향에서는 콩잎 그거 죄 버리고 소 먹이지 사람 먹는 음석이라고는 생각도 못 혀봐서 그려유. 억시고 풋내나고……. 그걸 워뜨케 먹는대유?”
이런 반응은 콩잎을 먹지 않는 지방 사람들에게서 당연스레 나오는 것이기에 양 여사는 가만히 웃기만 했다. 저 먹는 음식을 폄훼하는 삼봉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붉으락푸르락 낯빛을 바꾸는 것은 우주인뿐이었다.
“사장님은 깻잎보다 콩잎을 더 좋아하셔. 참……. 넌 음식에 들기름 쓰더라. 사장님은 들기름 질색해. 깻잎도 냄새 난다고 안 먹는 양반이거든.”
“오메? 그 맛난 걸 왜 안 드신대유?”
약간의 지방색이지만 양 여사는 자신이 길들여 놓은 우주인의 입맛 중 어느 부분만큼은 삼봉의 충청도식 양념에 결코 부합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
“너 콩잎 김치 먹어봤어?”
“야?”
“먹어보고 이야기해.”
불퉁 입이 튀어나온 주인의 기분이 제법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삼봉은 냉큼 입을 닫아 버렸다. 꼭 어린애 같은 사람이라서 저런 때 건드리면 신세 편치 못할 일이 곧잘 벌어지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콩잎 김치 언제 만들어 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