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초제 안 뿌린 콩밭을 찾으면.”
참으로 버르장머리 없는 짓이지만 숟가락으로 식탁을 탕탕 치면서 제대로 투정해 주시는 우주인 역시 양 여사는 가볍게 무찔렀다.
“제초제 안 뿌린 콩밭을 찾고 계시는 거에유?”
일전에 간 밭에서 제초제 뿌린 흔적을 찾았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거듭 말해서 삼봉은 그 때 제정신이 아니었던 관계로 약 안 쓴 콩밭을 찾고 있는 양 여사의 고민에 동조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을에 메주 담을 콩 계약을 하는데 제초제 안 쓴 콩밭 찾기가 힘드네.”
“콩잎도 드시니께 약 안 쓴 콩밭을 찾아야 한다, 그 말씀이시지유?”
“잎을 먹는 거니까 약 쓰면 곤란하지. 예진 씨 다리가 저래서 움직이기도 힘들고……. 고민이네.”
음식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대화에 관심이 없었다. 구 비서, 배 변호사, 차예진 씨 모두 어찌나 식욕들이 왕성하신지 삼봉이 차려놓은 밥상에만 집중해서 그 누구보다 많이 먹으려고 다투는 꼴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번에 묵밭을 월매나 잡았는지 모르겄구먼유.”
“응?”
“즈 집에 산밭이 많은디유. 몇 년에 한 번씩 돌아가믄서 묵밭을 맹글어야 하거든유. 일 년 쉬는 밭이유. 그런 데다가는 콩을 심기는 하는디 물론, 약도 안 쓰지유. 콩만 뿌려다가 그대로 둬서 갈아엎어 비료 뿌리는 거 대신하거든유.”
“콩 농사도 짓는 거니?”
“콩 농사라고 지으면 약 없이 못 해유. 놉 안 들이는 농사라고 재껴 놓고 기르는 건데 손 안 가려면 약 뿌려야지유.”
양 여사도 농사일은 잘 모르니 삼봉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능력은 없었다.
“묵밭이라는 데는 약 안 쓴다면서.”
“걍 묵히는 밭이라서 묵밭이어유. 일 년 농사 쉬는 밭에 비료 삼아 콩만 뿌려 놓는 거지 수확 안 할 밭이니께 일껏 약 뿌릴 이유도 없구유.”
“아……. 묵히는 밭을 묵밭이라고 하는구나.”
“야.”
“너네 집 묵밭이 크면 나오는 콩도 많겠네?”
“그렇지유?”
양 여사는 대번에 핸드폰을 꺼냈다. 삼봉에게도 그것은 있지만 대체 핸드폰이 왜 필요한지도 모르는 그에게 밥 먹는 자리까지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을 것이란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집에 전화해 봐.”
“야?”
“너희 묵밭에 콩이 괜찮으면 계약하고 싶다고 보러 갈 수 있는지 좀 알아보라고.”
당장 콩잎 김치 냄새라도 맡게 해주지 않으면 내일부터 밥상 뒤집게 생긴 우주인 때문에 양 여사는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삼봉이는 느릿한 것이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삼봉아?”
“거는 어렵지 않은디……. 실은 시방 즈 짝은성이 방학이라 집에 있을지도 모르거든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야 삼봉의 입에서 가족 이야기 나온 것이 처음인지라 모두가 상당히 난감한 얼굴의 삼봉을 주목했다.
“즈 짝은성 성질 머리가 아자씨 못지않게 개차반이라서 말여유.”
“뭐? 내 성질이 어디가 어때서.”
콩잎 김치 때문에 마음 상한 주인의 날카로운 반응.
“아닌 말루다 금자가 오라버니 할 노릇이자녀유. 지가 아자씨헌티 암만 홀라당 넘어갔어도 사실은 사실이자녀유?”
“저게…….”
“근디 즈 짝은성이 지 머슴 살러 서울 온 거 모르거든유? 방학 혀서 집에 내려갔으니 인쟈 그걸 알았을 터인디……. 모르긴 해도 아주 난리 발광을 하고 있을 꺼구먼유. 지금 지가 내려가면 아예 다리 몽다리 똑 뿐질러져서 다시 못 오는 수가 생길 가능성도 아주 없다고 허진 못허겠네유.”
그건 삼봉의 작은형 이봉이 삼봉과 우주인의 관계에 대해 아예 알지 못하는 경우 생기는 사태였다. 만일 이봉이 삼봉과 주인이 이제 막 사귀기로 결심한 사이라는 것을 알면……. 그건 상상하기도 싫은 호러 무비가 될 가능성이 컸다.
좋아한다는 감정에 휩쓸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아무 것도 생각해 놓은 것이 없는 삼봉에게는 코앞에 떨어진 이 상황이 그저 암담하고 당혹스러울 따름이지만 다른 이들은 뭔가 기대하는 시선으로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명색이 개초딩이고 제대로 실성하신 짐승님 아니시던가.
제 애인 다리를 똑 분질러 버릴 누군가의 등장에 대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되었던 것이다. 특히나 제 밥 먹인 무엇도 밖에 나가 구박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우주인이었다.
“뭐.”
“아니 뭐…….”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주인에게 배 변호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삼봉이 형님이 삼봉이 다리를 부러트릴 거라는데 설마 죽이진 않겠지?’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반면 양 여사는 콩잎과 콩에만 집중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연락은 할 거니 말 거니?”
“지가 안 가도 된다믄야 큰성헌티 연락해서 물어봐 드릴 수는 있시유.”
“니가 안 가는 건 우습지. 너 아주 산골 깡촌에서 왔다면서. 내비게이션에 나오지도 않는 데면 찾아갈 수도 없잖아. 차라리 작은형이 없을 때 살짝 다녀오는 건 어때.”
“한번 물어봐는 볼께유. 일단 암만 혀도 콩잎이 급하신 거 같으니깐…….”
작은형보다는 큰형이 훨씬 쉽다.
삼봉은 느릿느릿 양 여사의 핸드폰을 받아 큰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학이 되어 고향으로 내려온 작은형 이봉은 마을 아이들의 공부를 봐 주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하며 큰형 일봉은 삼봉이 잘 지내고 있는지 몸이 아픈 곳은 없는지 걱정이 늘어졌다. 매정하게 잘라 일 년을 채우기 전까지는 집에 연락할 생각도 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으신 아버지였지만 그렇다고 전화 한 통이 없냐며 아버지 또한 날마다 걱정으로 입맛도 없으시다는 소식도 함께 일봉의 입에서 건네졌다.
서울로 오기 전에 아버지와 한바탕 크게 싸우고 집을 나선 삼봉은 그 말에 한껏 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왜 넘의 집 머슴살이를 하필 내가 가야 하냐고 대들기는 했었다. 그러면서도 사실 마음속으로는 농사일을 하는 큰형이 집을 비울 때 그만큼의 일을 제가 알아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다고 고시 공부하는 이봉이 형더러 남의 집 머슴 살러 가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했던 삼봉이었다. 그래도 막내아들더러 넘의 집 머슴 살러 가라는 아버지한테 역심이 돌아 막 쏘아붙이고 집을 나온 것인데 그런 못된 놈도 아들이라고 걱정이 늘어지는 아버지 소식에 명치가 찌릿했다.
콩 문제를 이야기 했을 때 삼봉의 큰형 일봉은 막내가 신세 지는 집에서 콩이 필요하다는데 그게 무슨 문제 되겠느냐며 다행히 올해는 묵밭을 크게 잡아 콩도 넉넉하니 아무 때나 내려오라는 말을 전했다. 제초제는커녕 거기 올라가 보지도 않아 콩이 못 쓸 지경일지도 모르겠다는 걱정과 함께 말이다.
사실 콩이란 작물은 그리 손을 많이 타는 작물이 아니다. 수확량을 늘리려면 비료도 주고 밭 가장자리 풀도 뽑아 주고 해야 하지만 묵밭에 거름으로 쓰려 뿌려 놓은 콩 씨는 일 년 동안 거들떠도 보지 않는 예가 허다했다. 수확하는 것은 못나고 볼품없는 것을 확률이 크지만 그저 집에서 먹을 양만큼만 거두고 나머지는 모두 흙으로 돌려보낼 콩이 못나면 어떻고 볼품없으면 또 어떤가.
그런데 굳이 양 여사가 제초제도 비료도 쓰지 않은 콩을 원하니 말은 꺼냈어도 그 콩 꼬라지가 어떨지 뻔히 아는 삼봉은 좀 암담한 심정이었다.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전화를 끊은 삼봉은 진지한 표정으로 양 여사에게 콩이 비록 손 안타는 작물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손이 안 가면 형편 무인지경의 꼬라지가 나온다고 말했다. 벌레도 먹고 콩알도 작고 모질다고.
하지만 양 여사는 그런 콩이 맛있는 법이라며 아예 삼봉의 고향 마을로 가는 날짜를 잡자며 서둘렀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한 것이 당연했다. 기실 지금 급한 것은 콩이 아니라 콩잎이었으니 약 쓰지 않고 묵혀 둔 콩밭에 콩잎이라는 것이 심하게 구미 당기는 일도 어쩔 수가 없었다.
어차피 억센 콩잎 쓸 것도 아니고 새순으로만 담그는 김치니 잎이 거칠고 질긴 것은 염두에 둘 필요가 없는 문제이다. 한차례 장마철이 지나고 막 해가 난 지 며칠 되지 않으니 새순이 잔뜩 올라와 있을 콩밭 풍경을 생각하면 하루가 급할 노릇이었다.
이례적으로 서두르는 그녀의 태도에 계획은 재빨리 세워지고 있었다.
차예진이 운전을 할 수 없으니 당분간 재판이 없는 배 변호사가 기사 역을 맡았다. 삼봉은 내비게이션 대신이었고, 양 여사는 콩밭을 확인해야 했다. 거기에 주인이 따라나서겠다는 말을 했다.
어차피 가서도 일손을 써서 콩잎을 딸 것이니까 피서 삼아 모두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삼봉의 얼굴은 굳어졌지만 차예진은 대번에 자신도 데려가라 애원했다.
깔끔하게 할 일이 많아 못 간다고 잘라 말한 구 비서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삼봉의 고향 마을 나들이에 동참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것도 내일 당장.
주인은 저 코딱지가 왜 저렇게 죽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물어봐도 되는 것이었다.
내비게이션으로 동네를 지정하기는 하였지만 그들은 모두 삼봉이 동행하지 않았다면 상당히 곤란했을 것이란 생각을 하였다.
삼봉의 고향 마을은 으레 생각하는 시골 산촌과 또 다른 모양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동네라기보다는……. 흩뿌려진 시골집의 풍경 같았다.
집이 하나 보이고 한참을 차로 가다 보면 다시 한 개의 집이 보인다. 이장 집이라고 삼봉이 가리킨 집은 겨우 세 개의 집이 모여 있는 곳일 뿐이었는데 거기가 이 마을의 유일한 점방이 있는 곳이란다. 그야말로 진짜 점방이었다. 이장 집의 문간방에 몇 개의 생필품을 가져다 놓은 원래 점방 모습 그대로인 곳.
삼봉의 고향 마을은 마치 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8,90년대의 시골 풍경이 뒤섞여 있는 곳이었다.
좁고 긴 비포장도로, 낡은 슬레이트 지붕, 낮은 싸리담 너머로 집안 모습이 훤히 보이는 개방적인 사람들의 모습.
우주인은 그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듯 벤의 유리창에 철썩 달라붙은 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거 뭐야?”
“외양간이유.”
“소냐?”
“그럼 저게 소지 돼지겄시유?”
“저건 그럼 개냐?”
“야.”
대단히 심기 불편한 얼굴로 앉아 창밖의 풍경에 흠칫흠칫 놀라는 삼봉의 대답이 뾰족하다. 그것이 주인에게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삼봉 자신은 불안해 죽을 거 같은 심정이었다. 어제 큰형과의 통화를 통해 집에 내려온 작은형이 아버지와 큰형을 쥐 잡듯이 잡은 뒤 당장 삼봉이 데려오라고 난리 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탓이었다.
이 시절에 머슴은 뭔 놈에 머슴이냐고 바락바락 악을 쓴 뒤 그놈에 영감탱이를 고소하네 어쩌네로 모자라 지금 삼봉을 데리고 있는 새끼가 어떤 새낀지는 몰라도 잡히면 당장 죽을 줄 알라는 소리까지 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우주인은 세다. 천하의 정삼봉도 가끔 복장이 뒤집어질 만큼 뻔뻔한데다 막강한 초딩의 우기기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삼봉의 생각으로는 작은형만 못하지 싶었다. 지금까지 삼봉이 본 우주인은 어디 가서 얻어터지고 들어와 턱에 시퍼런 멍이나 달고 있는 우주인이었고, 엄한 놈한테 칼침 맞아 수술까지 하는 우주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주인이 어떻게 검도 유단자 작은형을 이길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자신이 집에 왔다는 것을 작은형이 알면 서울로 돌아갈 길이 요원했다. 말 그대로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작은형은 삼봉을 집에 들여앉힐 성격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슴을 졸이도록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기로 한 지 하루 만에 집에 돌아오고픈 생각이 삼봉에게는 없었다. 절대로 그것은 바라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진하게 선팅이 되어 있는 벤에 앉아서도 혹시나 작은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창밖으로 사람 그림자만 비치면 흠칫흠칫 놀랄 수밖에.
“저건 뭐냐?”
“리어카 첨 봐유?”
“리어카?”
“저그 쇠막대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끌면 되는 거여유. 짐 실어 나를 때 솔찮게 편하지유. 근데 아자씨.”
“응?”
길 따라 산비탈을 쭉 올라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이 자신의 집이라 이야기 해 두었으니 삼봉은 더 이상 운전하는 배변에게 도움 줄 것이 없었다.
“혹시나 혀서 하는 말인디유.”
“응.”
“우리 짝은성을 만나면 말이지유.”
“응?”
“…….”
흩어진 집들의 모습이 끝나고 다시 울창한 숲길로 이어지자 주인은 고개를 돌려 삼봉을 보았다.
“니 작은형을 만나면 뭐.”
“우리 짝은성을 만나면 말이지유. 아자씨 암 생각도 할 거 없구유.”
“응?”
“그냥 냅다 토껴유.”
“뭐?”
“걍 토끼라구유.”
“내가 왜 토끼야. 이 새끼가……. 나 진짜 잘하거든? 나중에 죽네사네 울고불고 해 봤자 소용없어. 내가 얼마나 잘하는데……. 허허. 진짜 열 받네. 뭐라? 토끼라고? 내가 왜 토끼야!”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배 변호사와 양 여사에게서 숨죽인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어따. 이 아자씨 참말로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먼. 그 토끼가 아니구유.”
“나 진짜 토끼 아니거든?”
으득으득 이를 갈아붙이는 주인의 눈빛은 지금 당장에라도 자신의 성적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의가 빛나고 있었다.
“도망치라구유.”
“엉?”
“도망이유. 산에 사는 토끼가 아니라. 세가 빠지게 달아나란 말이어유. 알겄시유?”
“도망? 왜?”
배 변호사와 양 여사는 삼봉에게 어지간히도 무서운 둘째형이 있는가 싶었다. 하지만 정이봉이란 사람이 아무리 무서운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눈치를 보며 달아날 우주인이 아니다. 저렇게 순진하고 걱정 가득한 얼굴로 토끼라고 말하는 삼봉이 우스워 견딜 수 없는 심정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지금 염려해야 하는 것은 정이봉 씨지 우주인이 아닌 것이다.
“사실 말은 안 혔지만 말여유. 지 설 올라간 것을 우리 짝은성이 알면 난리가 나는 거였시유. 어차피 방학 돼서 내려오면 알게 될 것이지만 그려도 그 때는 지가 집에 없을 거라서 이왕 뒤집어진 판 우짜겠냐고 그리 한 거여유. 며칠 전에 짝은성이 집에 내려와서는 지 없는 거슬 알고 아주 난리 지랄 발광을 했다자녀유. 큰성을 족치고 아부지한테 아주 패악을 부렸던 모냥이구먼유. 근디 이 판국에 지가 떡 하니 집에 가믄 모르긴 혀도 가만 안 있을거구먼유. 그뿐만이 아녀유.”
“흐응?”
“인쟈 아자씨를 보면 요즘 시상이 워떤 시상인디 머슴을 부려 먹느냐고 조목조목 따지고 대들면서 아주 발광을 할 꺼구먼유. 아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으니께 걍 도망치는 게 남는 거구먼유. 아자씨 달음박질 잘허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