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지.”
라고 말은 하지만 우주인의 얼굴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심하게 해맑아서 천하의 우주인도 두 손 들게 만든 정삼봉이었다. 그런 정삼봉이 이렇게 심각한 얼굴로 난색을 표하는 정이봉이란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궁금하지 않으면 우주인이 아니다.
“큰성이 시간을 잘 잡았다고는 혔지만 그려도 사람 일이란 게 알 수가 없잖여유? 그니까 내가 ‘아자씨 튀어유.’라고 말허면 곧장 튀는 거여유? 알겄지유?”
거짓말을 밥 먹는 것보다 잘하는 우주인이 선뜻 ‘응!’ 하고 대답했다. 너무 쉽게 나온 대답은 의심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해맑은 삼봉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런 정보를 미리 알고 있는 배 변호사나 양 여사도 앞으로 벌어질지 모르는 흥미진진한 사태에 진실을 말해 줄 의리를 내팽개쳤다.
미리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정일봉 씨는 볕에 그을어 새까만 얼굴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총각이었다.
“정말 좋네요. 삼봉이는 영 못쓸 모양새인지도 모르겠다 하더니 이렇게 좋은 콩잎은 처음인데요?”
“아이고. 뭔 그런 말씀을 하셔유. 손도 못 데고 기냥 냅두는 밭이라서 아주 형편없구먼유.”
삼봉의 큰형 정일봉 씨는 잠깐 인사를 하고 마을로 내려간 삼봉의 아버지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다. 삼봉은 외탁을 했다 하니 어머니 쪽을 닮은 모양이었다.
억세고 듬직한 얼굴선을 하고 있는 남자가 삼봉과 똑같은 말투로 수줍은 듯 손사래를 치자 양 여사의 얼굴에는 저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여기 콩잎하고 가을에 콩 여덟 말 미리 계약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식구가 많으신가 봐유. 여덟 말이면 솔찮게 많은디. 계약은 뭔 놈에 계약이유. 우리 막둥이 잘 델꼬 계셔주시는데 지가 타작해서 보내드리는 것이 당연하지유. 맘 쓰지 마셔유.”
콩 여덟 말로 메주를 담으면 그 양도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묵히는 장도 있고 새 장으로 먹어야 하는 음식도 있는데다 주인이 장에 담은 지 종류를 좋아하니 일 년에 만드는 메주 양이 그 정도는 되어야 했던 것이다. 전에는 집에 와서 밥 먹는 사람이 없었지만 요즘 들어 구 비서도 배변도 심지어 차예진 씨마저도 집에 오면 삼봉과 같이 식사를 했기 때문에 장 소비량은 훨씬 더 많아져 양 여사는 가능하다면 콩을 더 계약하고 싶었다.
“밭을 봐서는 모르겠네요. 콩이 더 나온다면 사실 더 계약하고 싶은데…….”
돈은 되었다고 말하는 일봉 씨의 말을 냉큼 잘라먹은 말이었다.
“월매나 필요허신지 모르겄구먼유. 모르긴혀두 여그서 열댓 말은 나오지 싶은디 사실 손이 안 가서 콩이 실허지는 않을 꺼구먼유.”
“아. 그래요? 그렇다면 열두 말 정도 구매할 수 있을까요? 물론, 오늘 여기서 따 가는 콩잎 가격도 쳐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뭔 소리를 그리 하시는감유. 일 없구먼유. 우리 막둥이만 잘 부탁허는구먼유. 그거면 되았시……. 윽! 음마. 야가 왜 이런댜.”
삼봉이 뾰족한 눈으로 제 큰형의 옆구리를 찌르자 키가 큰 농촌 총각이 느릿한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뭐 하는 거여. 콩 열두 말이면 못 잡아도 오십만 원 안팎이여. 돈이 쎄고 뺐서? 콩잎 값은 안 받아도 콩 값은 받아야지. 아줌니가 주신다자녀. 체면이 밥 먹여 줘?”
“으따! 야가 못하는 말이 없어. 니같이 별스런 놈을 잘 데리고 있어 주시는 것만도 어딘데 뭔 콩 값을 받어야. 되았구만. 공들인 농사도 아니고 그냥 묵밭이자녀. 묵밭 콩을 워뜨케 돈 받고 팔어야.”
“콩 까는 소리하고 자빠졌구먼. 돈이 오십만 원이면 비료가 몇 푸대여. 그 돈이 작어?”
“묵고 죽을 돈이 없어도 사람이 그러는 건 아니여. 야가 설 올라가드만 왜 이런댜. 아부지가 아시면 큰 사달이 나는구먼.”
“사달이 나도 내가 날 텐께 잔말 말고 그 돈은 받어. 당장 농협 대출금 이자 낼 돈도 없잖여.”
아주 생활이 몸에 푹 배다 못해 쩌든 것처럼 삼봉은 야무지게 잇속을 챙기고 있었다. 그에 반해 큰형이라는 사람은 점잖은 소리 하는 것이 딱 우주인 훈계할 때의 삼봉이었다. 양 여사는 형제간의 작은 분쟁이 너무도 현실감 있게 느껴져 깔깔대고 웃었다.
“삼봉이 말이 맞아요. 콩 값은 받으세요. 그리고 콩잎 값도 받으시는 게 좋겠네요. 그리고 삼봉아?”
“야. 아줌니. 인심 사납다 그러지 마셔유. 설에 있을 때는 몰렀는디 시방 농협 대출금 이자도 없다는 소리에 지가 좀 맴이 그러네유.”
“그래. 네 맘이 그런 건 네 사정이고. 우리는 일단 약 쓰지 않은 콩은 한 말에 육만 원씩 주고 사 먹었어. 콩잎은 인건비까지 해서 킬로당 이만 원씩 계산해 줬고. 그러니 열두 말이면 오십만 원 안쪽이 아니라 칠십이만 원이야. 사오 킬로 정도 사가야 하니까 팔십만 원이 넘는 돈인데?”
“야?”
놀란 듯 둥그레지는 삼봉의 눈을 보니 야무지게 큰형을 구박했어도 콩 값 받는 일에 그 또한 적잖은 부담을 느낀 모양이었다.
“내가 이 뙤약볕에 콩잎을 딸 거 같니? 그러니 일꾼을 사서 콩잎을 따야 하는데 그 정도는 가격을 지불해야지. 보통 오 킬로 정도 사가는 데 십만 원 줬어.”
“소나 먹는 콩잎에 뭔 돈을 십만 원이나 써유.”
“그 이야기 사장님이 들으면 화내신다?”
“…….”
삼봉은 심각하게 미간을 찌푸린 채 양 여사를 보다 냉큼 콩밭으로 뛰어들어 콩잎을 따기 시작했다.
“요 옆에 개울에서 노시면 되유. 아줌니. 지가 콩잎을 딸 테니께 큰성한테 값을 쳐주시면 되는구먼유.”
“그러렴. 누가 따든 나야 상관없으니까. 개울가에서 고기를 좀 구워도 될까?”
“야. 성! 거서 놀지 말고 아줌니랑 변호사 선상님이랑 우리 쥔 아자씨 좀 개울가 너럭방구 있는 데로 좀 모셔다 드리고 와. 숯불 피워 바비큐 해 드신다고 하셨으니께 숯불도 좀 피워 드리고.”
“삼봉아…….”
“재게 다녀와. 사람 살 일 없잖여. 워떤 콩잎을 따야 허는지는 내가 아줌니한테 들었으니깐 와서 성도 콩잎 좀 따. 오늘 별일 없지? 돈 좀 벌어.”
“음마. 쟈가 왜 저렇게 변했댜…….”
“변하기는 뭐시 변했다고 이 야단이여. 내가 돈 안 되는 일 하는 거 봤어? 나라도 벌어야 할 거 아녀! 재게 댕겨와!”
척! 하니 모자를 쓰고 콩잎을 따는 폼이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양 여사는 조금의 미련도 없이 정일봉 씨를 재촉하여 그에게 자신들을 개울가로 인도하게 하였다.
“가면서 이야기 좀 하시죠. 변호사님. 사장님. 일봉 씨가 안내를 한다네요.”
“코딱지는.”
“삼봉이는 콩잎 딴대.”
“사람 쓰면 되잖아.”
“돈 들여 사람 쓸 일 있냐는데? 가요. 사장님 배고프면 성질부리잖아. 이런 데까지 와서 사장님 성질 받아 줄 생각 없어.”
일봉 씨는 콩잎 따기에 여념이 없는 막둥이와 암만 봐도 관계를 짐작하기 어려운 그 일행들에게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했지만 거듭되는 삼봉의 재촉에 하는 수 없이 그들을 개울가로 안내했다.
물가에서 맛있는 음식 먹으며 놀기도 괜찮을 것이란 소리는 들었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물론, 우주인의 집도 상식적으로 따져 놀기 곤란한 곳에 위치해 있지는 않았다.
우주인의 집은 남한 땅을 통틀어 최고의 양택이라 평가받고 있는 만큼 볕도 잘 들고 풍광도 아름다웠다. 집에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국립공원인 북한산의 계곡물이 흐르고 그 아래쪽으로는 위락 시설이나 식당들이 즐비해 있는 것이다. 그 가장 안쪽에 있는 것이 우주인의 집인데 사람 드나드는 것을 싫어해 100미터 가량의 거리는 도로포장도 해 놓지 않아 아예 차는 멀찌감치 대야 했다. 그런 집에서 사는 사람이니 어지간한 풍광에 홀딱 넘어가 좋네 마네 할 사람들은 아니지만 삼봉의 고향집 계곡물은 또 그 나름은 따뜻한 경치가 있었다.
작은 개울은 나른하게 흐르고 두어 사람이 들어가 멱을 감을 수 있을 정도의 웅덩이와 열사람 정도가 앉아 자리 펴고 놀 수 있을 정도의 너른 바위. 평화스럽고 따뜻한 정취는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숯불을 피우고 어쩌고 하는 북새통에 우주인은 소리도 없이 깊은 숲을 헤치고 온 길을 돌아 나갔다. 왁자지껄하게 노는 분위기보다는 제법 구미를 당기는 주변의 지세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가끔 땅을 사게 될 때가 있는데 우주인이 구입하면 그 땅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별다른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구매를 해도 꼭 값이 오를 이유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별다른 땅 욕심이 없었는데 이곳에 와서 느끼는 것이 이 주변 땅을 좀 사놔야겠다는 욕구뿐이었다.
대안은 언제든지 있다. 농사짓는 땅을 사서 놀릴 생각은 없다. 소작료를 받지 않는 것으로 하고 지역민에게 농사를 짓게 하면 앞으로 활용 방안이 생길 때까지 마음 편하게 놀려 둘 수가 있는 것이다. 딱히 지금 이 지역 이곳에 뭔가 하고픈 것이 없어도 이렇게 마음에 드는 땅이라면 구입해 놓을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땅을 더 보고 싶었고, 밥 때가 되면 언제든 일행이 있는 곳으로 찾아갈 자신이 있었다.
한참을 숲으로 오솔길로 헤매며 주변을 둘러보던 주인은 길 아래쪽에서 씩씩대고 올라오는 사람을 보고는 딱 걸음을 멈추었다.
뭐 달리 설명하고 추론할 이유조차 없었다.
정일봉 씨가 코딱지의 큰형이란 것은 듣고서도 믿을 수 없었지만 저 남자가 코딱지의 작은형이라는 사실은 그냥 봐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봉의 피부색에 흰색을 좀 더 섞고 팔다리 기럭지를 좀 늘려 놓아 호리호리하고 늘씬하게 만들면 딱 저 모양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인은 갈등했다.
삼봉은 자신의 작은형을 보면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달아나라고 했는데 이렇게 딱 마주쳤으니 달아나도 소용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왜 달아나야 하는가? 그럴 이유가 없었다.
“……?”
“…….”
정이봉이라는 사람이 우주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의아한 표정을 지우지는 않았지만 그의 성격이 개차반이라고 설명한 삼봉의 묘사를 납득하게 할 만한 어떤 단서도 없었다.
“길을 잃어버리셨습니까?”
“……?”
어라? 사투리도 쓰지 않는다. 너무 자연스러운 표준어에 주인이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등산객은 아니신 거 같은데……. 자칫 잘못하시면 큰 봉변당하십니다. 따라오시죠. 길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긴 짐승 길이라 여차 하는 순간에 사고 납니다.”
삼봉보다 키가 좀 더 크고 좀 더 희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인의 주의를 끈 것은 자신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담대함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주인을 실제로 보면 놀란다. 큰 키나 잘빠진 체격은 둘째 치더라도 배 변호사가 늘상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생이 화보라고. 그러니 모델 잡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사람을 눈앞에 두고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까지 주인은 그런 사람을 딱 두 사람 보았는데 첫 번째가 첫 대면에 실성했냐고 묻던 코딱지였고, 두 번째가 정이봉이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은 산짐승이나 다니는 짐승길이라는 것을 모르는 주인이 아니다. 사람 다니는 길이든 짐승이 다니는 길이든 사람도 짐승도 아니 다니는 길이든 주인에게는 거칠 것이 없지만 정이봉은 그런 내력을 알 리 없으니 친절을 베푸는 것이리라.
그런 친절은 필요 없다고 말할까?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 자신이 깊은 밀림에서도 별문제 없이 뛰어다닐 수 있을 만큼의 경험을 익혔다는 것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뜨거운 여름날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성장한 아프리카의 정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쾌적한 날이니 일사병 열사병은 근접도 못한다는 것 또한 설명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이 귀찮아진 주인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든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지역이 없으니 구 비서에게 이 근처로 땅을 구입하라는 지시만 하면 된다. 사실 슬슬 배가 고파지기도 하였다.
정이봉은 삼봉에게 있는 붙임성은 갖고 있지 않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성큼성큼 앞장서 가는 그는 더 이상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주인은 그게 편했다.
그들은 금방 삼봉이 콩잎 따고 있는 콩밭에 도착했다. 원래 목적한 바가 그곳인 듯 정이봉은 숲 그늘에서 빠져나오기 전 손가락을 들어 정일봉의 안내로 올라온 콩밭 가장자리의 길을 가리켰다.
“저기 길 보이시죠? 저쪽으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저는 이만…….”
“…….”
주인은 그 순간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정이봉의 관심사는 정신없이 콩잎을 따고 있는 코딱지인 듯 보였고, 그의 목적이 삼봉이라면 시침 뚝 떼고 이 자리를 떠날 수도 없는 게 아닌가.
“정삼봉!”
“으엑!”
“너 오늘이 제삿날인 줄로만 알아라.”
“음마……. 짝은성……. 워쩐 일이랴?”
“긴말 필요 없고. 먼저 맞자. 맞고 이야기하자. 응?”
“짜, 짝은성! 짝은성! 이성을 챙겨. 아 정신 좀 차리라……. 음마? 아자씨. 거서 뭐 하는 거래유?”
“아자씨?”
주인은 저 입방정 삼봉의 외침과 동시에 도끼눈을 하고 자신을 노려보는 정이봉의 시선을 온몸으로 맞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우리 삼봉이 데리고 있는 분이십니까?”
“……그런데?”
“그렇다면 그쪽하고도 할 말이 있으니 내려가지 마시고 잠시 기다리시죠.”
“그러지 뭐.”
주인이 태연하게 대답하자 정이봉은 근처에 있던 굵은 나뭇가지를 주워 들더니 옷소매를 동동 걷어붙였다. 딱 봐서도 매타작을 할 모양인데 암팡지게 입을 다문 채 제 형을 노려보는 삼봉의 기세도 만만치는 않았다.
“정삼봉. 너 암만 아부지가 머슴살이 하러 보냈다고는 해도 그간 전화 한 통을 안 하는 게 그게 사람이냐?”
“…….”
“그리고 머슴 살러 가랬다고 가는 너는 뭐냐. 응? 정신이 있어 없어! 이눔 자식 아부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 형한테라도 연락을 했어야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라는 폭신폭신한 말을 하면서 정이봉은 나뭇가지를 치켜든 채 삼봉에게로 뛰어갔다.
원래 사람 팰 때는 문답 무용으로 두들겨야 정석인데 하는 양이 참으로 요상하다.
“한 대만 패 봐. 나도 시방 부아가 단단히 났으니께 워디 한 번 맘대로 혀 봐.”
“뭐야? 이 자식이 형한테…….”
“내가 뭘 잘못혔어. 암만 내기 빚이래두 빚은 빚이자녀. 아부지가 빚을 졌으니 자석이라도 그걸 갚아야지. 그게 사람 도리 아녀? 거기 앞뒤 꽉꽉 틀어 막힌 짝은성 생각을 들어 뭣 하러 분란을 만들겄어. 그럼 큰성을 보내? 큰성이 머슴 살러 가면 우리 집 농사는 누가 지어? 짝은성이 머슴 살러 갈 텨? 짝은성 사시만 붙으면 우리 집 형편 다 펴는 중 알고 있는 아부지 실망은 워쩌고? 시방 성이 나헌티 잘했다 잘못혔다 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생각혀?”
“너 이 자식…….”
나름 둘째형은 걱정을 심하게 해서 화내는 거 같은데 오지랖 넓게 남의 마음 모두 헤아리고 배려하는 코딱지 주제에 왜 저러는 걸까 주인은 좀 당혹스러웠다.
“방학이라고 집에 왔으면 밭이라도 매! 시방 큰성하고 아부지 고생하는 건 눈에 뵈지도 않는 거여? 동네 아그들 공부 봐 줄 시간은 있고 집안일 헐 시간은 없는 거여? 아까 잠깐 봤더니 집안 꼴이 아주 말도 못하겠더구먼. 내가 없으니께 집안일 허는 사람 없어 집 망가지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혀도. 짝은성 집에 온 지 일주일이 넘었잖여. 군내 나는 빨래하고 마룻장 한번 닦을 시간도 없는 겨? 짝은성 손은 금칠혔고, 큰성 손은 똥칠 한 겨? 시방부터 벌써 이런데 짝은성 사시 붙으면 가관도 아니겄구먼. 응? 높으신 판검사 양반이 이 촌구석에 들어오기라도 허겄어? 응? 입이 있으면 말을 혀 봐. 시방 내가 성질이 나겄어. 안 나겄어!”
정이봉의 손에서 굵은 나뭇가지가 뚝 떨어졌다.
그리고 거기까지 제 형을 쏘아붙인 삼봉은 다시 콩잎을 따기 시작했다. 별다른 반박도 못 하고 삼봉을 노려보는 제 형에게 더 따끔한 말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콩잎 좀 따. 이거 일 키로에 이만 원 쳐 주신대니께 성도 돈 좀 벌어.”
“…….”
“맨 위에 새로 난 이파리로 이렇게 세 장을 따면 되는구먼. 한 장씩 딸 필요 없이 세 장 붙여서 요렇게. 알겄지? 시방부터 따.”
“정삼봉!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간만 배 밖으로 나간 중 아러? 쓸개 콩팥에 염통까지 다 집에 놔두고 왔구먼. 시방 내 눈에 뵈는 거 하나도 없으니께 짝은성도 독사한테 물리기 싫으면 알아서 혀. 그만 봤으면 짝은성 성질 드러운 거만큼 내 성질도 만만찮은 건 알고 있겄지? 잔소리 하덜 말고 콩잎이나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