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제대로 부려 먹을 생각인 것이다. 삼봉은 울컥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난밤에는 아주 간 쓸게라도 내줄 것처럼 다정하게 사람을 꼬시더니 날 새자 안면 몰수하는 저 화상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거그도 아프구먼유.”
“응?”
“꼭 똥 싸다가 중간에 끊었는디 제대로 안 끊긴 그런 기분이구먼유. 더군다나 봐유. 꼭 도너츠모냥 퉁퉁 부었잖아유. 궁뎅이도 아프구먼유.”
“…….”
자기 손으로 자기 항문을 만지는 자세는 허리 아프다는 사람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다. 주인은 유연한 고양이처럼 제 볼기짝을 활짝 벌려 그 속을 보여주는 삼봉의 행태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물론 다소 부어 있기는 했다. 그건 이미 주인이 확인을 한 사항이었다. 저 기관이 어디 한 번이나 그 정도의 마찰열에 시달려 본 적이 있었겠는가. 붓지 않는 것이 이상한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그 정도를 가지고 징징 짜며 한껏 엄살을 부리는 코딱지가 밉게는 보이지 않았다.
“거 참. 더럽게 시끄럽네. 알았어. 더 자.”
“월급에서 깐담서유.”
“안 깔 테니까. 더 자.”
“진짜지유?”
“흥…….”
주인은 훌렁 훌렁 옷을 벗고는 샤워를 하려 했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벗어 재낀 주인을 훔쳐보던 삼봉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아자씨.”
“왜?”
“근디 지 똥구녕에 약 같은 거 발라야 하는 거 아닌감유?”
“약?”
“연고 같은 거라도. 쫌 쓰라리구먼유.”
“침 바르면 낫는다.”
“……!”
정말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대답에 삼봉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저 우람한 놈을 넘의 똥구녕에 쑤셔 넣고 날이 새도록 들락날락해 놓은 주제에 겨우 한다는 말이 ‘침 바르면 낫는다.’라니 서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울컥하고 설움이 목젖으로 치미는데 씻으러 가겠다고 폼 잡던 사람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게 아닌가.
주인이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삼봉의 다리를 잡고 활짝 벌리자 삼봉의 입에서는 다시금 죽는소리가 기어 나왔다.
“으에에엑! 악! 악! 왜 이래유. 아프다니……. 으엑!”
주인은 정말로 심술궂은 얼굴이었다. 어젯밤처럼 애가 타는 초조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원래 우주인의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가 망설이지도 않고 삼봉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으니 혼백이 놀라 달아날 지경인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따뜻하고 촉촉한 것이 따끔따끔 쓰라린 부분을 부드럽게 핥기 시작했다.
“아, 아자……. 아자씨!”
“…….”
너무 놀란 나머지 아침이라 뿌듯하게 일어서 있던 물건까지 쫄딱 수그러들 정도였다.
하지만 주인은 꼼꼼히 공들여 삼봉을 핥았다. 표정은 내내 심각하게 미간을 찡그린 얼굴인데 짜증도 내지 않고 ‘왜! 시끄러워!’ 하는 구박도 하지 않은 채 너무 상냥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따끔거리는 부위를 핥고 있는 것이다.
서러움과 원망이 지워지는 것 같았다. 사실은 이 남자 그리 난폭하지도 못되지도 않았다는 착각이 삼봉에게로 밀려들면서 음험하게 자리 잡고 있던 설움과 원망을 지워 버리고 있었다.
그게 단순해 마지않는 삼봉의 착각이라고 해도 지금 이 순간 삼봉에게 우주인은 꽤나 다정하고 쓸 만한 연인의 모습이었다.
“너. 확실히 불감증이지?”
“……?”
미끈미끈하고 흥건하게 침을 바른 주인이 심술궂게 삼봉을 채근했다. 너무 놀라서 쪼그라든 삼봉의 성기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서 마치 시비를 걸듯 그렇게 말이다.
“항문은 꽤 예민한 성감대인데 이렇게까지 반응이 없는 건 말이야. 완전 불감증이란 말 아니냐? 쳇! 이런 거랑 애인하는 게 아니었는데. 불감증인 놈이랑 어떻게 연애를 하란 말이야. 팔자 더럽네…….”
“그……!”
“쳇! 쳇! 쳇!”
하며 주인은 더 남은 미련이 없는 것처럼 삼봉을 똑바로 눕히고는 이불까지 폭 뒤집어 씌워 놓고서 욕실로 쑥 들어가 버렸다.
망연자실한 어이가 가출해서 버릇없게도 삼봉의 따귀를 후려갈기고 있었다.
정이봉은 화가 났지만 또 오늘의 배달 일이 자신에게 그리고 동생에게 꼭 필요한 행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갈면서도 참았다.
모든 것은 아버지 탓이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내기만 하지 않았으면 삼봉이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할 이유가 없었다. 지난번 처음 만났을 때 삼봉의 고용주에게 성질을 낸 것은 엄밀히 말하면 부당한 화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정당한 대가를-솔직히 좀 과하다 싶을 만큼 후하기도 한- 지불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지난번 일에 대해 사과를 해야 했다.
겨우 고등학교만 졸업한 삼봉이에게 그만큼의 월급을 주고 고용할 사람은 없었다. 하는 일도 늘상 집에서 하던 일이라 힘든 것도 없다는 삼봉의 말을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이봉의 생각으로도 삼봉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별 능력도 없는 아이를 토실토실 살까지 찌워 데리고 있으니 원망은커녕 감사를 해야 할 노릇이 아닌가. 집에 있을 때는 집안일에 밭일에 동네 놉까지 맡아서 해야 했던 동생이었다. 그리고 하루 일당 얼마 되지도 않는 것을 받아서는 꼬박꼬박 저금을 해 집에 큰일이 있거나 하면 생각지도 않게 통장을 내놓던 야무진 녀석이었다.
차라리 서울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하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은가.
아우성을 치며 그 주인댁에 직접 찾아가 인사를 하고 와야 한다는 형과 아버지의 말에 순순히 따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 일 년 기한이 끝나고 삼봉이 집에 내려가면 다시 그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었다. 나름 여유 시간도 있는 것 같고, 삼봉이 원하기만 한다면 공부하는 것도 반대할 생각이 없다는 말은 더 반가웠다.
요즘 같은 세상에 겨우 고등학교. 그것도 시골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장만 갖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야간대학이나 방통대라도 다닐 수 있는 여건만 되면 다니는 것이 낫고 그게 삼봉을 위하는 길이었다.
정이봉은 그렇게 산더덕이 들어 있는 보퉁이를 모질게 움켜잡은 채 계곡을 따라 식당들이 무수히 들어차 있는 도로가를 걸었다.
- 빵! -난데없는 경적 소리에 이봉은 좀 더 길가에 붙어 걸었다. 하지만 경적 소리는 연이어 들렸다.
“……?”
“혹시 정이봉 씨?”
“아…….”
차에 앉아 있는 것은 삼봉이가 사는 집의 변호사 배상중이었다.
“맞네. 역시 내가 사람은 잘 알아본다니까. 타요. 가는 곳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혹시……. 삼봉이한테 가는 길?”
“예. 맞습니다.”
반가움에 놀라움 그리고 다소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 날 정이봉이 더 난리를 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 배상중 변호사 때문이었다.
그는 이봉의 학교 선배이기도 했고, 이봉이 가장 닮고 싶은 법조인이기도 했다. 최연소 사시 합격. 사법연수원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까지. 변호사로 전업한 후 단 한 번도 재판에서 지지 않은 무적의 전력을 갖고 있는 남자였다.
그에게 배우고 싶었고, 그와 겨뤄 이겨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봉은 심각하게 인상을 쓴 채 배 변호사의 차에 올라탔다.
“여기 꽤 멀어요. 걸어가기는 무린데?”
“버스가 저 밑까지밖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요.”
“그렇죠. 삼봉이한테 연락 안 했습니까?”
“연락처를 모릅니다.”
“응? 삼봉이 핸드폰 있을 텐데? 일하는 데 필요하다고 집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개통해 준 것으로 아는데요? 연락했으면 데리러 나왔을 텐데. 사장님이 삼봉이 쓰라고 차도 한 대 내줬거든요.”
“…….”
들어도 들어도 경악스러울 만큼 놀라운 혜택을 가진 동생의 직장에 이봉이 침묵하는 동안 배 변호사는 그 침묵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물론, 제가 삼봉이 삼봉이 하는 것이 듣기 거북하시겠죠. 사실 정삼봉 씨라고 해야 하는데 한사코 나이 차가 얼만데 편하게 삼봉이라고 부르라는 바람에……. 언짢으시다면 조심하겠습니다.”
“아뇨. 그런 것 때문이 아닙니다.”
“예?”
이봉은 겸연쩍게 웃었다.
“저한테도 학교 선배님이신데요. 저 역시도 그냥 이봉이라고 부르십시오. 대 선배님이고 또……. 제가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이십니다.”
“아……. 제가요?”
집에서 만날 도박 중독자라고 놀림 당하니 실제로 배 변호사는 이렇듯 우상을 보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봉이 당혹스러웠다. 원래 사람은 적응력의 생물이라 법원에서 뜨르르하게 떠받쳐 주는 자신이라고 해도 더 자주 부딪히는 사람들의 놀림이 익숙한 것이다.
“저도 재학 중 사시 패스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훗…….”
하지만 삼봉이 그러하듯 이봉 역시 진심을 다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저 형제들은 맘에 없는 소리로 사람을 현혹하는 짓 따위 절대로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배 변호사는 편하게 말했다.
“군대는?”
“합격한 뒤에 다녀 오려구요.”
“아……. 그게 낫겠지. 이봉이라고까지는 못 부르겠고 적당히 편하게 말하지. 괜찮아?”
“물론입니다. 선배님 편하신 데로 불러 주십시오.”
“그건 뭐야?”
배 변호사는 구불구불하고 좁은 개천가 도로를 따라 유연하게 운전하고 있었다.
“형님이 산더덕을 좀 캤다고 삼봉이한테 좀 가져다주라고…….”
“산더덕? 그 귀한걸?”
“뭐 별 거 아닙니다.”
삼봉이보다는 피부가 흰 이봉이 낯빛을 붉히는 것과 달리 배변은 아주 반색을 하며 즐거워했다.
“그 보따리 안에 다 산더덕인 거야? 진짜?”
“예. 캐려고 마음만 먹으면 뒷산에 꽤 있어서 다른 거 드릴 것은 없다고 형님이 하루 시간을 내신 모양입니다.”
“캬! 아니다. 내가 이럴 게 아니지. 이봉 씨 잠깐만.”
걸어서는 언제 이 길 끝까지 가는가 싶었는데 차로는 금방이었다. 국산 중형차 한 대와 소형차 한 대가 서 있는 공터에 차를 세운 배 변호사는 어딘가로 급하게 전화를 건 뒤에야 차에서 내렸다.
“우리 사장님 성질 머리가 더러워서 여기까지만 차를 타고 올 수 있어. 좀 걸어야 해.”
“아…….”
확실히 차로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 비포장도로였다. 비포장이라기보다는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마!’라고 외치는 듯 험하기 이를 데 없는 작은 길이다.
“가만 보면 삼봉이와 많이 닮았네. 이봉 씨는.”
“예. 저하고 동생은 외탁을 했습니다.”
“피부색은 완전히 다른데…….”
“훗…….”
삼봉이 얼마나 깨 벗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녔는지를 안다면 저런 소리를 못하지 싶어 이봉은 맥없이 웃었다. 원래 삼봉은 어머니를 닮아 살성이 흰 아이였다. 그런데 막 걸음마 하면서부터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허리에 줄을 묶어 밭 가장자리 나무에 매 놓아야 했고, 이봉이나 일봉이 암만 일손을 거들어도 어린 동생까지 수발을 들 수는 없었다. 어려서는 나무에 묶여 살았고, 좀 머리가 트이면서는 제멋대로 방목하는 염소 새끼처럼 뛰어다니고 기어 다니던 녀석이니 지금처럼 새까맣게 타 버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볕에 타서 그렇습니다. 원래는 둘 다 어머니 닮아 피부가 흰 편이었죠. 아기 적에는 동네 분들이 모두 백인 애 아니냐고 했을 정도입니다.”
“정말? 지금 봐서는 절대로 아닌데…….”
“어지간히 싸돌아 다녀야지요. 잠시도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라서 사고도 무진장 치고……. 하여튼 못 말리는 애였죠.”
“오! 그건 이해 간다. 삼봉이 성격은 또 장난이 아니지. 난 우리 사장님 성질 머리가 제일 개차반인 줄 알고 살았는데 그런 사장님도 삼봉이한테 절반쯤 지고 들어가는 거 보면 삼봉이 성격도 보통은 넘어.”
“그래서 폐나 끼치는 게 아닌지 형님이랑 아버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배 변호사는 끔찍하다는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무슨 소리야. 그런 말은 하지도 말아. 그나마 삼봉이가 있으니 우리들이 숨통 트고 사는 거야. 이비! 삼봉이 없는 걸 생각하면 아주 끔찍해.”
끔찍하지. 당연히 끔찍할 노릇이다. 저 보퉁이에 산더덕이 잔뜩 들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정삼봉이 없다면 배 변호사는 집에 가서 컵라면에 소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할 것이니까 말이다. 삼봉이 있으니 그는 오늘 더덕구이를 만들어 모두에게 대접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짜증을 있는 대로 부리는 구 비서도 잘 구슬려 집으로 오게 당부해 놓았지 않는가.
“그런 이유로 계약 연장을 하자고 설득하는 중인데 영 답을 안 주네. 이봉 씨가 좀 도와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