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3/58)

야비한 시선이 노골적으로 삼봉을 훑었다. 훌렁 벗고 있는 것은 우주인인데 삼봉은 어쩐지 자신이 벗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만져 보고 싶기는…….”

“내가 인심 썼다. 만져 봐. 애인이니까 봐 준 거야. 알아? 내 좆을 만져 보고 싶어 하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저건 매 번 나오는 말이었다.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거리지만 삼봉의 마음에 지금 교묘하게 꼬임질을 해대는 우주인의 계략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슬그머니 주인의 아래로 힐끔힐끔 눈을 돌리는 것으로 모자라 주변을 살피며 눈치 보는 도둑고양이처럼 삼봉은 호기심으로 인해 제 목을 조이고 있었다.

그러다 슬슬 제대로 눈을 돌려 보고 몸까지 따라오게 되고 손은 저절로 뜨끈뜨끈한 성기를 만져 보게 되는 것이다.

주인은 속으로야 쾌재를 불렀지만 호기심 왕성한 고양이가 제대로 덫에 걸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살곰살곰 조심스럽게 주인의 성기를 쓰다듬던 손으로 얼굴까지 슬슬 따라가고 있었다. 저한테도 있는 물건인데 어쩜 저렇게 신기할까. 아주 처음 본 물건 보듯 뚫어질 지경이었다.

주인은 상냥하게 손을 뻗어 제 몸 위로 삼봉을 냉큼 들어 올렸다.

“코딱지. 키스나 한 번 해 봐.”

“헤……. 아무도 없으니까…….”

“그럼. 춥다고 양 여사도 잘 안 나오잖아.”

“그렇지유?”

“봐도 뭐라 그럴 양반도 아닌데 뭐.”

“허긴……. 그래유. 그지유?”

“나 거지 아니라니깐!”

쪽!

재롱을 부리듯. 혹은 엉뚱한 소리는 닥치라는 듯 귀여운 입술이 주인의 입술로 와 닿았다.

그놈에 연애의 순서라는 것에 관해 주인은 대단히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제대로 순서를 밟아 오랫동안 기다린 것이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들여 손을 잡는데 익숙해지고, 입맞춤하는 것에 길을 들이면서 삼봉은 훨씬 애교스럽게 변질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은 대체로 애교가 많은 남자를 좋아했다. 여자들의 애교는 질색을 하지만 사내들이 수줍어하면서 은근슬쩍 부리는 애교는 애간장이 녹는다 생각할 만큼 즐겼다.

가볍게 시작한 입맞춤이 깊어지면서 주인은 폭 안겨 드는 작은 몸이 꽤 기분 좋다고 느꼈다.

딱히 코딱지만한 연인을 지켜 주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묵직한 마당 빗자루를 들고 달려오는 남자는 분명히 정삼봉의 둘째형이었고, 형이 아우를 어찌 해 보겠다는데 나서서 말리고 중재할 만큼 우주인이 오지랖 넓은 성품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넋 놓고 있다가 맞아서 멍만 들고 그칠 정도의 타격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주인은 팔을 들어 삼봉을 감싸 안아야 했다. 어디가 부러지면 부러지는 그 자체가 아니라 부러진 후에 벌어질 일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이래서는 ‘네 일은 네 일, 내 일은 내 일.’이라는 그들의 첫 번째 연애 수칙이 무안해질 노릇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우주인에게는 자신의 밥이 중요했다.

“이런 젠장! 아프잖아!”

라고 소리 지르면서 날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당 빗자루를 들고 뛰어와 삼봉을 두들겨 패려던 정이봉의 귀에 뭐가 들어오겠는가.

천금을 줘도 바꾸지 않을 만큼 아까운 동생이 벌거벗은 남자와 마당 한가운데서 뒹굴며 입술 박치기를 하고 있는데 그 꼴을 보고서도 냉철한 이성 어쩌고 주절대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그 사람 면상부터 갈기고 볼 판국이었다.

“짝은성……!”

“너 좀 맞자. 일단 맞고 시작하자. 응?”

“이봉 씨. 이럴 게 아니라 좀 진정을 하라고…….”

“썅! 아파 뒈질 거 같잖아. 뭐야!”

네 사람이 각기 다른 사정으로 각기 다른 말을 외치는 와중에서도 우주인은 대단히 본능적이었다. 다른 건 아무 것도 문제 될 게 없고 단지 자신이 아프다는 것. 마당 쓰는 빗자루를 팔로 막은 것이 눈물 빠지게 아프다는 것만 외쳐 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누구 하나 그런 주인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다.

경악에 빠진 듯. 그리고 다소 슬픈 듯한 얼굴이 되어 버린 삼봉은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우주인 한 사람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젊은 치기에 처음으로 빠진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현실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달콤한 환상 속에서 허우적대던 젊은이의 연애 놀음에 난데없이 들이닥친 현실이란 놈은 그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고, 그를 슬프게 만들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성…….”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눈으로 본 게 그게 뭐야. 정삼봉. 똑바로 대답해. 제대로 대답 못하면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성……. 그러니까 이게 말이여. 음…….”

자신도 모르는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막막한 심정에 그저 말만 더듬고 있는 삼봉과 달리 주인은 아직도 마당 빗자루를 들고 있는 이봉의 팔목을 거칠게 낚아챘다.

“남의 집 마당에서 폭력은 삼가자고 응?”

“이……!”

너무도 얄밉고 파렴치한 모습이었다. 가뜩이나 간댕간댕 뚜껑 열릴 찬스만 기다리고 있던 정이봉의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성질난 김에 앞뒤 가릴 것 없다고 눈앞에서 알짱대는 이 못된 놈부터 손 봐 주자는 마음이 든 정이봉은 남자의 손에 붙들린 손을 빼내려고 했다. 검도 삼배단이라고 그는 긴 막대를 들고 있는 상태에서 겁날 것이 그리 많지 않은 남자였다. 하지만 주인의 손에 붙들린 오른손은 바위틈에 끼어 버린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요령껏 잡힌 손을 잡아 빼는 방법이야 몇 개든 말할 수도 행동으로 보여줄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정이봉의 손목을 잡고 있는 사내는 별반 심각할 것도 없는 얼굴에 짜증 날 만큼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정이봉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정이봉의 숨겨진 투사 기질은 눈앞의 남자가 그리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아니, 자신으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남자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힘에 의한 차이일 뿐이다. 인간은 누굴 때려잡고 힘으로 우세하여 이기는 것 말고도 다른 경우의 수를 많이 가진 사회적인 동물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정이봉은 체력적, 혹은 전투 기술적 우세함만을 제외한다면 자신이 이 남자에게 허리를 굽혀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는 아직 우주인이란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

“…….”

“너도 나한테 반했냐?”

“……!”

정이봉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주인은 심드렁할 뿐이었다. 쥐어박고 싶어지게 얄미운 주둥이가 자발 맞은 사고를 크게 벌려 놓고 있었다.

“아무리 나 좋다는 사람 크게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도 형제가 모두 날 좋다고 하면 곤란한데…….”

“당신!”

너무도 기가 막힌 나머지 화낼 정신도 없어진 정이봉의 손목을 놓아주며-정확히 말해서 밀어내며- 주인은 시니컬한 미소를 지었다.

“그 문제는 당신 형제들이 알아서 해결해.”

“무슨……. 아니, 그전에 당신……!”

“참고로 나는 이기는 사람 편이야. 이 정도면 승자를 위한 멋진 트로피지?”

라고 말하고는 지가 무슨 먼치킨 하렘 물에 남자 주인공인 것처럼 의기양양한 시선으로 정이봉과 정삼봉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홀딱 벗고 서서 일말의 양심에 가책도 없는지 아주 뻔뻔해서 죽여 버리고 싶은 모습이었다.

배 변호사는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정이봉의 곁으로 달려가 그를 붙들어야 했다. 나이 들어 힘 싸움이나 완력 다툼 같은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날씬한 외모와 달리 정이봉은 꽤 힘이 좋은 남자였다. 간신히 날뛰기 직전인 그를 붙드는데 방정맞은 주둥이로 끝까지 사고를 치는 우주인이 또 정이봉을 제대로 약 올려놓고 집 안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기는 편 우리 편.”

“야아!-------.”

저 개초딩을 어쩌면 좋은가.

하지만 배 변호사는 먼저 정이봉을 말려야 했다.

“일단 진정해. 이봉 씨. 지금 이렇게 날뛰어서 될 일이 아니잖아. 자넨 사장님을 상대하기에는 너무 어려.”

“진정이요? 진정이라고 하셨습니까?”

“물론……. 진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것은 알아.”

배 변호사도 보았기 때문에 미쳐 날뛰는 삼봉의 형을 설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눈앞에서 동생이 남자랑 놀아나는 꼴을 보았는데 어떤 사람이 진정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인정상 으레 그리할 것이라는 것으로 이 사태를 방관할 수만은 없는 것이 또 배 변호사의 입장이었다.

“정삼봉. 너 똑바로 말해. 여기서 그딴 짓거리……. 하아! 그딴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거냐?”

“…….”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게 당연했다. 이봉은 침묵으로 대답하는 동생의 표정에 울컥했지만 이번에는 문답무용 후두려 팰 생각보다는 차가운 이성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그런 짓까지 당하면서 머슴살이할 필요는 없다. 가자.”

“…….”

“고소를 하든 뭘 하든 일단 형이랑 같이 나가자. 이딴 집구석에 일분일초도 널 두고 싶지 않다. 뭐해. 따라나서.”

“짝은성…….”

한참만에야 삼봉의 입이 터지기는 했는데 그 대답이란 것이 정이봉의 성에 차지는 않았다.

“머슴이니 뭐니 하지만 너한테 반드시 이 집에서 일 년을 채워야 한다는 의무는 없어. 여름에 봤을 때도 그냥 아르바이트한다, 생각했으니까 넘어간 거다. 하지만……. 더는 여기 널 둘 수가 없다.”

“짝은성 그게…….”

당장에라도 삼봉의 팔을 움켜쥐고 집을 나서려는 이봉에 비해 삼봉의 기세는 턱없이 모자랐다. 무서운 것 모르고 어려운 것은 더 모르는 모습으로 따박따박 우주인에게 대들던 정삼봉은 하늘로 날아갔는지 땅으로 파고들어 갔는지 찾아볼 길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배 변호사는 이대로 정삼봉을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그는 이기적인 현대인이라서 당장 코앞의 이익을 위해 영혼조차도 가차 없이 악마에게 팔아 버릴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봉 씨. 삼봉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고 행동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선배님!”

“삼봉이는 이미 성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권리는 오로지 삼봉이만 가지고 있는 거야. 거기에 이봉 씨의 생각이나 의견은 참고 사항이 될지언정 강제적인 권한은 전혀 없어. 만약에…….”

“선배님이 지금 제 입장이라면 그렇게 냉정하실 수 있겠습니까?”

갈데없는 신경질이 배 변호사에게로 쏟아졌지만 그런 것쯤은 우습지도 않게 넘길 수 있어야 변호사라는 직업을 유지해 나갈 수가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정을 유지할 수 없다면 나처럼 되는 것은 포기해야 할 거야. 설사 그것이 동생 아니라 아들의 일이라도 상황 파악부터 해보는 게 어때.”

“……이런 분이셨습니까. 선배님은?”

“당연하지. 돈이 되면 살인자라도 변호하는 게 변호사거든.”

“…….”

정이봉은 침묵했다. 참담한 배신감이 치명적일 만큼 아프게 그의 심장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동생의 어이없는 행동을 본 것보다도 더 큰 상실감이 그를 휘몰아쳐 파고들었다. 진심으로 닮고 싶었던 사람의 너무도 인간적인 부분은 냉철한 이성보다 더 가혹했다.

“성. 나는 안가. 그리고 성……. 내가 아자씨를 좋아하는 거구먼. 아자씨는 내가 아자씨가 좋다니께 그저 나한테 장단을 맞춰 준 것뿐이여. 그니까 아자씨 욕하지 말어. 내가 아자씨를 좋아해서 사귀게 되았고, 성들이나 아부지 생각까정은 하지 못한 것은 내가 모자라서 그런 거여. 내가 모자라서 나 좋은 마음 그거까정밖에 생각을 못혔어. 그거슨 미안혀. 허지만 지금 나한테 무신 말을 혀도 내 귀에는 안 들려. 미안혀. 참말로 미안혀.”

둑이 터진 듯 삼봉의 말들이 쏟아져 나오자 정이봉은 더 기가 막혀 이제 화를 낼 기력도 없어져 버렸다.

믿었던 우상으로부터의 배신감.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동생의 발언.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또 쓰라렸다.

“넌……. 미쳤어.”

“그려. 나도 내가 미친 거 같구먼. 헌디 워쩌겠어. 이렇게 미쳤어도 정삼봉이는 정삼봉이여. 시방 나는 아자씨 생각밖에 몬 하겄구먼. 그기 나가 워쩔 수 있는 것이 아녀. 내가 돌았구먼. 내가 실성을 해 버린 거여.”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안되면 또 우쩌겠어. 그게 사실인디 워쩔 것이여. 냅둬. 이 마음 때문에 내가 절벽으로 쫓아가도 냅둬.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들어도 냅둬. 뭔 짓을 혀도 시방 내 귀에는 짝은성 말 같 은거 안 들어오니께 일없는 짓 하지 말고 걍 포기혀. 뻔뻔한 말이겄지만 나는 성이 뭔 짓을 혀도 이 집서 안 나갈 것이고, 그니께 성이 포기혀. 내 고집 알쟈? 내가 한번 떼 부리면 누가 와도 몬 말리는 거 알쟈? 워쩌겠어. 나가 첨부텀 그렇게 생겨 묵은 거슬 말이여. 미안혀. 이 맴은 진심이구먼. 참말로 성한테는 미안혀…….”

“넌…….”

삼봉의 말이 맞았다. 나무 그늘에서 허리춤을 묶인 채 흙 파먹으며 자란 정삼봉은 대부분의 경우 착한 아이였지만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알고, 세상이 모두 입을 모아 그건 똥이라고 말해도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일찍 철이 들어 크게 형이나 아버지 마음 쓰도록 하는 사고는 친 적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번 돌아 버리면 아무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순한 소가 발광하면 백정도 두 손 든다는 말처럼 정삼봉은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이봉이 잘 알았다.

고등학교 때 학교 양아치들에게 찍혀 따돌림을 당할 때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시비를 걸면 싸우고 악착같이 달려들어 제 편을 만들었다.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얼굴도 못 알아보게 얻어터져 교무실에 불려 가도 계단에서 넘어졌다고만 말했다. 정이봉이 학교로 불려 간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은형에게조차 끝까지 계단에서 넘어졌을 뿐 싸움 같은 것은 없었다, 라고 우기던 삼봉이 사실을 이야기한 것은 싸우고 싸우다 지쳐 버린 양아치들이 항복을 선언한 후였다.

세상에 저렇게 독한 놈은 처음 봤다면서 결국 친해진 양아치들까지 개근상을 받게 만드는 인간이 정삼봉이었다.

가족들 중 누구보다 이봉은 그런 삼봉을 잘 알았다.

패도 구슬려도 달래도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봉이 가장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봉은 단 한 번도 저런 삼봉을 이겨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몇 대 쥐어박고 윽박질러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큰형과는 달리 이봉이 삼봉과 가장 많이 싸운 형제이기 때문이었다.

“선배님.”

“응?”

“여기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 겨! 나랑 혀. 아자씨는 아무 죄 없다니께?”

“너하고 말이 통해? 말이 통하는 사람하고 해야겠다. 그것도 안 되냐? 말릴 수 있으면 말려 봐.”

배 변호사는 정이봉의 말에 애매하게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정이봉의 노선 변경은 놀라울 만큼 빨랐지만 설득할 상대를 우주인으로 잡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판단 미스 같았던 것이다. 물론, 삼봉의 성격 역시 만만치 않음은 배 변호사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인간님의 말을 할 줄 아는 것은 정삼봉이지 우주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이봉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겠지만 배 변호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그가 우주인과 대면하기 전에 정이봉을 살해하면 삼봉에게 밥 얻어먹는 일은 물 건너가는 것이란 협박을 해 둬야 하는 것일까?

배 변호사는 심란해졌다. 아주 많이.

주인이 구 비서를 호출했을 때 그는 집으로 가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대답했다. 충격과 실의에 빠진 삼봉은 차예진과 양 여사가 맡기로 하였고, 서재 방에서는 주인과 배 변호사 그리고 정이봉의 삼자대면이 이루어졌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행동하려는 정이봉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이봉의 질문에 따박따박 속 뒤집어지는 대답을 해대는 우주인으로 인해 분위기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까지 넘어가고 있었다.

몇 번이나 배 변호사가 나서 중재를 해야 했지만 그가 나선다고 살기등등한 분위기가 화기애매해질 이유는 없었다. 배 변호사는 다만 짜증 난 우주인이 정이봉을 해치지만 못하게 하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는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내 동생한테서 떨어져.’와 ‘내가 왜.’가 반복되고.

‘양심도 없냐?’와 ‘코딱지가 먼저 사귀자고 했거든?’이 되풀이되던 지루한 말다툼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은 서두른 기색이 역력한 구 비서의 등장부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