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58)

저쯤 되면 복장 터지는 것은 삼봉이 아니라 우주인일 확률이 컸다.

“알긴 뭘 알았다고 지랄이야. 너 자꾸 반말할래? 너랑 내가 나이 차가 얼만데…….”

“에이……. 볼장 다 본 사이에 뭔 내외를 혀. 알았으니께 고만 혀.”

“뭐? 볼장?”

유능한 통역원인 구 비서가 냉큼 끼어들어 우주인의 이해를 도왔다.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뜻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의미로 말한 거 같군요.”

“흠! 그래. 보긴 다 봤지. 똥구멍 아프다고 난리 쳐서 똥구멍도 핥아 줬잖아.”

그런 말 대놓고 하면 면구스럽지도 않을까?

하지만 우주인은 뻔뻔했다.

“그래도 나한테 왜 반말을 하는데. 공손하지 못하게 무슨 짓이야!”

“응. 알았다니께. 거 참 더럽게 말 많구먼.”

여전히 해맑게 웃으시며 날려 주시는 멘트의 센스에 배 변호사는 배를 잡고 넘어갈 지경이었다. 배 변호사 뿐만 아니라 차예진이나 양 여사 역시도 소리 내어 깔깔대지 않을 뿐, 얼굴 표정이나 몸짓만으로는 숨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어야. 외계 생명체. 참말 워디서 이런 게 떨어진 거여. 어이?”

삼봉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보낸 암살자가 틀림없었다. 심지어 표정 변화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던 구 비서마저도 고개를 모로 꼰 채 괴로워하는 동안 엉금엉금 바닥을 기어 우주인 옆으로 간 삼봉이 찰싹 소리가 날만큼 강렬하게 우주인의 두 뺨을 잡고는 쪽쪽 거리며 존재 자체가 화보인 얼굴에 침을 바르기 시작했다.

보통 정도만 되었어도 ‘술 취했으니 이만 들어가 자라.’ 내지는 ‘보는 눈도 있는데 나머지는 들어가서 하자.’ 정도 해주실 텐데 당하는 쪽은 주사 개차반 정삼봉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리가 없는 우주인이었다. 그는 냉큼 삼봉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25금 성인 게이 포르노를 연출해 주신다.

다행인 것은 나머지 네 사람이 남의 정사를 훔쳐보는 취미가 없다는 것 정도일까?

“얼굴도 잘나고 기럭지도 길죽헌 것이 좆까지 크니 대체 이렇게 완벽한 게 워디서 떨어졌댜. 등짝 좀 함 봐바. 어이? 날개 있쟈? 아자씨는 등짝에 날개가 있을 꺼구먼. 틀림없이 그럴 꺼구먼.”

“쓰읍! 반말하지 말라니까. 내가 잘난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고, 너 같이 못생기고 시끄럽고 방귀까지 잘 뀌는 놈이랑 사귀어 주는 게 고마운 줄이나 알아.”

“나 방귀 안 뀐다니깐?”

“아침마다 방에서 나는 똥내는 어쩔 꺼야. 거기다 너 코 골고 이까지 갈아.”

“그려서. 워쩌라구.”

“뻔뻔한 놈. 무려 이 내가 사귀어 주겠다는데 감사합니다 하며 절은 못할망정 시치미나 잡아떼고 말이야. 너 내일 아침에 내 손이 디졌어. 반말한 거 다 녹음해 놓을 거야.”

“혀. 혀. 누가 겁나는감? 그려도 아자씨 좆은 내 꺼여. 내가 책임진다고 혔으니께 내 것이라 이 말이여. 기여. 안기여.”

“…….”

주인은 잠시 입을 꾹 다문 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재차 삼봉이 물었다.

“아. 기여. 안기여!”

“그건…….”

“어이?”

“……기야.”

삼봉의 작은 손이 기특하다는 듯 주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자씨.”

“왜.”

“갑작스럽게 말좆이 보고 싶구먼.”

“응?”

“안본지 한참은 된 거 가터. 아자씨는 안 그려?”

“반말하지 말라니까!”

라고 외치면서 주인은 답싹 삼봉을 끌어안은 채 일어서고 있었다.

어찌 보면 삼봉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희한한 모습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성질 나쁜 짐승이 철없는 어린애를 홀려 제 취향에 맞게 길들여 놓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대략 어리둥절해진 네 사람을 남겨둔 채 주인은 제 침실로 쌩하니 사라져 버렸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 넌 디졌어.”

라고 호기 있게 외치는 것을 잊지 않는 거 보면 우주인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참을 미친 듯이 웃던 양 여사가 간신히 허리를 펴고 앉았다.

“아……. 너무 웃었더니 배가 당겨.”

“그러게요. 그런데 내일 아침에 우리가 삼봉이를 볼 수 있을까요?”

웃음기 가득한 차예진의 혀도 살짝 꼬여 있었다. 술을 많이 마시기는 했다.

“아마 멀쩡할걸? 저래 보여도 사장님이 삼봉이 많이 좋아하거든.”

“말도 안 돼. 여사님 취하셨소?”

불콰하게 술이 올라 붉어진 얼굴로 배 변호사가 시비 걸듯 말했다.

“말이 왜 안 될까?”

“사장님 저러는 거 밥 때문이잖습니까. 여사님이 그만두신다니까 내년부터 자기 밥해 줄 사람은 삼봉이밖에 없으니 살살 꼬셔서 저러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은 좀 그래요. 사장님 물론 겉으로는 삼봉이한테 잘하시는데 그게 진심이 아니란 생각을 하면 가끔 좀 무서울 정도죠.”

“대놓고 내 밥이라고 할 때도 있는데요 뭐.”

배 변호사와 차예진 그리고 구 비서까지 대놓고 주인을 성토하자 양 여사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내일 내가 그만두지 않을 테니 삼봉이 자르겠냐고 물어보면 사장님이 뭐라고 할까?”

“예?”

“진심이십니까?”

“그럼 삼봉이만 너무 불쌍해지잖아요.”

이미 배 변호사로부터 루시퍼의 어머니 정도로 승화된 양 여사의 얼굴에 감도는 암울한 오오라에 배 변호사는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대체 저 여자는 어디까지 알고 또 어디까지 희롱하려는 것일까. 배 변호사가 생각하기로는 이 집에서 두 번째로 나쁜 사람이 양 여사였다. 물론, 최고는 우주인이지만 말이다.

“내기할까?”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내가 내일 그렇게 말하고 사장님이 어떤 대답을 하실지 내기를 해보자는 거야.”

“그런다고 일을 그만두겠다는 결정이 번복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번복해야 한다면. 꼭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

“여사님!”

침실 문이 덜 닫혔는지 깔깔대는 삼봉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방음 시설만큼은 어느 방이나 다를 것 없이 완벽한 집이었다. 이대로 거실에 있다가는 제대로 된 25금 게이 포르노를 오디오로만 듣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모두 서둘러 일어섰다.

“사장님은 삼봉이를 절대로 내보내지 않을 거야. 왜냐면 모두가 의심해도 사장님 마음은 진심이거든.”

“말도 안 돼.”

그렇게 애를 구박하고 괴롭히고 약 올리면서 진심이면 초등학교 다니는 못된 꼬마들이 코웃음 칠 노릇이다. 진짜 초딩들도 그렇게 윽박지르며 상대를 기죽이지는 않는다.

“그런다고 사장님이 친절한 애인이 돼 주지는 못하겠지만 말이야. 적어도 지금 저 마음은 진심이야. 내기해도 좋아. 하지만 우리 서둘러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

술김에 그리고 무식한 외계 생명체는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그들은 다시금 내기 돈을 걸었다.

적절하게 패가 갈린 지난번 내기와 달랐지만 그 결과가 어찌 되든 실제로 그들이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뭐가 어찌 되어도 우주인은 우주인이고 정삼봉은 정삼봉이니까 말이다.

그들은 끝까지 우주인이 성질 더러운 짐승이고 에일리언이고 다른 별에서 온 못된 외계 생명체라는 것을 믿었다.

양 여사는 은퇴 자금을 꽤 넉넉하게 모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숙취로 멍하니 앉아 있는 고용인들에게로 온 우주인은 이제부터 삼봉의 밥까지 양 여사가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놓고 방으로 돌아가 온 집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방귀 좀 그만 뀌어 대라고 지랄하기는 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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