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1화 (1/135)

1.

굴러온 돌

5월 5일 어린이날, 새 황제의 즉위식이 열렸다. 하필이면 두 빨간 날이 겹칠 게 뭐냐고 불만인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새 황제의 정체를 추측하기 바빴다.

해가 저물기 직전의 저녁, 많은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았다. 한국 황실의 공식 생중계 사이트는 밀려든 시청자 수를 못 이겨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인터넷 뉴스에선 새로운 기사가 분을 다투며 쓰였다. 대체로 직전의 뉴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헤드라인도 죄 비슷했다.

‘일곱 번째 황제의 즉위식 현장’

‘새 황제를 기다리는 어린이의 모습’

‘등으로 뒤덮인 경복궁의 하늘’

본래 황제의 즉위식은 가장 사랑받는 국가적 행사였으나, 이번에는 그 정도가 더했다. 일곱 번째 황제가 될 사람은 황자 시절부터 어제에 이르기까지 머리카락 한 올조차 알려진 바 없기 때문이었다. 세간에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서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누구보다도 비범한 피를 타고난 황제의 첫 등장에 온 세상이 집중했다. 이름은 물론이며 외모, 학력, 성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비밀스러운 탓에 이목이 수백 수천 배 집중됐다.

여태껏 그, 혹은 그녀를 둘러싼 소문만이 무성했다. 날 때부터 건강이 좋지 못하고 지병을 앓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이였다, 황가에서 가장 못생긴 외모를 갖고 있어 평생토록 성형을 했다더라, 끔찍한 범죄에 나쁘게 연루되어 벌써 뉴스에 얼굴이 팔린 상태라더라…. 근거 없고 미심쩍은 의혹이 벗겨지기 30분 전, 왁자지껄한 서울 한구석에는 그와는 아무짝에도 상관없는 남자가 하나 있었다.

이름, 한솔. 나이, 스물아홉. 가족 관계, 불명.

‘으으, 찌뿌듯해….’

누런 장판에 들러붙은 어깨를 왼쪽, 오른쪽 들썩여 떼어 내며 그는 제 옆구리를 박박 긁었다. 후덥지근한 여름 낮의 더위가 구덩이 같은 반지하 자취방에 유독 오래 머무르는 듯했다. 공기는 덥고 장판은 더러웠다. 벽지 구석 자리마다 곰팡이가 꼼꼼히도 스몄다.

‘파스 좀 더 사다 둘걸.’

근육통에 저린 팔다리를 나뭇가지 던지듯 사방으로 뻗대 놓고, 한솔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래 봐야 ‘학학’ 하는 여름날 개 같은 숨소리를 두 번 냈을 뿐이었다. 폐에 돌덩이가 찬 듯 무거운 감각이 영, 사라져 주질 않았다.

유별나게 힘든 저녁이었다.

“북을 울리기 시작합니다! 일곱 번째 황제께서, 국민 여러분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와아, 와아… 함성이 저 멀리서 들려오고, 뉴스 앵커의 흥분한 목소리는 옆방에서 울려 왔다.

망할 놈의 원룸 빌라…. 한솔은 콧김을 길게 내쉬었다.

얇디얇은 칸막이벽을 세워다가 불법으로 늘려 놓은, 반지하 방들은 하나같이 방음이 후졌다. 그래서 좋은 순간이 아주 드물게 있기는 했다. 바로 오늘과 같이 중대한 소식이 있고, 옆방의 건달 아저씨가 뉴스 생중계를 큰 소리로 틀어 둘 때면 그랬다.

“오색 연등 행렬이 근정전을 지나 걸어 나오는 모습입니다! 이야, 장관입니다.”

‘뭐가 어떻게 장관인데요, 아저씨. 좀 상세하게 말해 주지.’

흘러 들어오는 소리를 흥미롭게 귀에 담으며, 한솔은 가시지 않는 근육통에 신음했다. 끙끙거리며 앓는 와중에도 그는 병증의 원인을 몰랐다. 지난주에 막노동을 한 게 화근인가, 아니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 대타를 뛰어 주다가 주정뱅이들에게 맞아서 이러나…. 아플 이유야 많았다.

그렇기에 갑작스러운 열병에도 놀랍지 않았다. 머릿속이 끓는 듯하고 흉통이 꽉 조여도 그는 그러려니 했다. 죽을병은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병세를 방치했다.

“황제께서 입장하십니다!”

아나운서의 흥분한 음성을 들으며 한솔은 눈을 감았다. 마른기침이 컥컥대며 올라왔다가 가라앉는가 싶더니, 온몸이 홧홧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땀구멍, 털구멍, 숨구멍 할 것 없이 몸에 뚫린 구멍이란 구멍에는 죄 바늘이 박힌 것 같았다. 누군가 제 몸을 사정없이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

“악…. 아, 파….”

늘어난 티셔츠의 가슴께를 움켜쥐고 한솔은 좌로, 우로 몸을 비틀었다. 이리저리 어깨를 흔들던 동작은 이내 데굴데굴 구르는 식으로 격해졌다. 같은 시각, 새 황제의 얼굴이 텔레비전에 비치는지 옆방 아저씨가 중얼대는 목소리가,

“히야, 희한하게 생겼네….”

벽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아주 짧은 순간 한솔은 졸도했다. 입술 밖으로 거품이 흐르고 갈색 눈동자가 휙 위로 뒤집혔다. 그리고 떨어지는 물소리가 그의 귀를 채웠다. 그의 전신을 적시던 것이 땀방울이었다가, 허리 위로 차오른 계곡물이 됐다.

열에 달아올라 한솔은 비몽사몽했다. 그의 정신은 바위를 타고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에 휩쓸렸다.

“악…!”

소리를 지르며 한솔은 두 다리를 바동거렸다. 손에 쥔 재산 하나 없이 맨몸으로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 청년의 사지가 삽시간에 변했다. 불안을 꽉 움켜쥐었던 손은 조그마해졌고, 자잘한 상처로 뒤덮인 다리는 고생일랑 해 본 적 없이 뽀얗게 어려졌다. 참방거리는 계곡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발 또한 희고 보드라웠다.

꿈을 꾸는 사람은 자신이 꿈꾸는 중임을 모른다. 한솔도 마찬가지였다.

멍하니, 그는 두 눈을 끔벅거렸다. 꿈결 안에 환한 하늘과 밝게 쬐는 볕이 있었다. 태양 빛이 어찌나 쨍한지 눈을 바로 뜨기 힘들 정도였다. 허리까지 오는 계곡물을 두 팔로 휘저으면서, 그는 저 멀리 둥둥 떠내려가는 빨간 자두를 바라봤다.

‘야, 야! 자두 다 놓쳤잖아!’

어린 소년들이 외치는 소리가 한솔을 휘어잡았다. ‘자두’라는 단어에 그는 퍼뜩 반응했다.

‘아, 자두…, 자두 건져야지.’

제철이라 그보다 더 달달할 수 없는 말랑한 자두. 김 씨 아저씨네 과수원에서 운 좋게 얻어 온 예쁜 자두. 자두 알을 쫓아 한솔은 첨벙첨벙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물길 가르며 걷던 끝에, 계곡물이 발등에 닿도록 확 얕아졌다. 고개를 들면 아름드리나무가 남색으로 거대했고, 검은 그늘을 파고드는 햇볕은 별처럼 반짝댔다. 그리고 몹시 예쁜 정원을 지닌 작은 별장이 보이고, 계곡 물가에 선 소년 하나가 있었다. 하얀 티셔츠를 마른 배 위로 말아 올린 채, 그는 제 티셔츠 옷자락을 그물 삼아 자두 서너 알을 건져 들고 있었다.

‘어어?’

어린 날의 한솔이 바락 외쳤다. 낯설고 예쁜 소년의 입에 귀한 자두 하나가 물려 있는 것이었다.

‘그거 내 거야, 왜 네가 먹어. 내 건데….’

허둥지둥하며 그는 소년에게로 가까이 다가섰다. 내 건데, 그거 네 거 아니고, 내 건데… 같은 말만 반복한 이유는 바보 같았다. 도시 분위기를 풍기는 낯선 소년이 너무 예뻐서, 그 바람에 설렌 제 마음이 당황스러워서였다.

‘그럼, 나 줘.’

소년이 말했다.

‘네가 날 주면 이거 내 거지? 네 거, 나 줘.’

얼굴 반절이 그늘에 감춰진 소년이 볕을 향해 다가오는 순간,

“허억!”

한솔은 눈을 떴다.

꿈을 꾸건 잠에서 깨건 간에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콸콸 밀려든 황토색 물이 그를 둘러쌌다. 잠깐 사이 귀와 입까지 흘러 들어온 더러운 물을 뱉어 내면서, 한솔은 누운 자리에서 허우적거렸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넘쳐흐른 지하수가 그의 반지하 창을 타고 쏟아지고 있었다.

구정물 한가운데에서 한솔은 헛기침을 컥컥 뱉었다. 역겨운 냄새가 콧구멍을 쑤시는 듯했고, 파직 전기 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추켜들고 한솔은 젖은 바닥 위를 더듬거렸다. 엉금엉금 기듯이 움직이며 그는 행인들의 발치에 난 작은 창을 찾으려 애썼다.

넘쳐흐른 지하수를 퍼내느라 바가지를 든 주민들 중 두어 명이 한솔을 발견했다. 작은 창문 앞에 쪼그려 앉아, 그들은 한솔에게 바삐 손짓했다. 빨리 밖으로 나오라고 내지르는 말을 들으며 한솔은 더러워진 얼굴을 두 손으로 벅벅 문질렀다.

그는 불안한 예지에 사로잡혔다. 절로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코를 찌르는 역겨운 냄새와 불결하고 더운 공기, 윽박지르는 듯 들려오는 낯선 이들의 외침과 쏟아지는 빗소리…. 오늘을 채운 모든 사소한 것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불, 불 좀 켜 주세요.”

멀쩡하던 두 눈이 멀어 버린 순간이었다.

“아…, 앞이 안 보여요….”

빛 한 줌을 찾아 작은 창을 향해 목 뻗으며, 그는 불안한 한편 가뿐했다. 몸을 짓누르던 열병이 가시고 없었다. 팔다리에 맴돌던 저릿한 통증도 심장을 옥죄던 흉부의 부담감도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시력을 앗아가는 게 목표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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