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구급차는 아주 늦어서야 도착했다. 황제의 즉위식이 끝나자마자 쏟아진 폭우 탓이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무대 행사와 불꽃놀이 축제가 모두 취소되는 바람에, 마음은 들떴으나 갈 곳 잃은 행인들이 사고를 쳐 댔기 때문이랬다.
“오는 길은 또 얼마나 막히는지, 요 앞 큰길까지 하수구 물이 죄 넘쳐흘러서는….”
미안한 마음에 구급 요원은 변명과 사과를 반복했다. 두서없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한솔은 두 눈을 이리저리 빠르게 굴렸다. 온 세상이 어두컴컴했다. 아주 밝은 빛만이 희미한 얼룩으로 번져 보일 수준이었다.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 의사를 만난 뒤에도 한솔의 이상은 고쳐지질 않았다. 의사는 두어 번 한솔의 눈을 살피는가 싶더니, 다른 의사를 불러오겠다며 사라졌다. 한솔은 그를 제대로 붙잡을 수조차 없었다. 의사가 어디에 있는지, 제 상태는 어떤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눈동자 위에 불투명한 막이라도 씌워진 것 같았다.
이대로 실명하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잠긴 한솔은 맨발이었다. 그의 몸에 붙어 온 흙 알갱이와 구정물이 응급실 시트를 적셨다. ‘어디서 똥 냄새가 나냐’는 옆자리 할아버지의 핀잔에 간호사가 커튼을 치는 소리도 들렸다.
주먹 쥔 손으로 두 눈을 벅벅 문지르며 한솔은 이리저리 고개를 저어 댔다. 진정하시라며 그를 달래는 간호사의 손에 수건 서너 장이 들렸다. 그래도 한솔의 두려움은 가라앉질 않았다. 정말로 눈이 멀어 버린다면 큰일이었다. 그에게는 저 자신밖엔 가진 게 없기 때문이었다.
한솔은 맨발이었고 맨손이었고 맨몸이었다. 가족도 없었고 친척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다. 비범한 능력도 갖지 못했고 대단히 강하지도 못했다. 저축한 돈은커녕 반지하 방의 월세도 두 달째 밀린 데다, 학력도 중졸에 그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몸을 쓰는 것뿐이었다. 이대로 눈이 멀어 버린다면 그 앞에 놓인 건 개죽음뿐이었다.
‘수술을 해야 하면… 그럼 어떡하지? 응급실 진료비도 비쌀 텐데. 구급차 타고 온 것도 차비를 내야 되나?’
금전적인 걱정이 밀려들자 한솔을 채웠던 막연한 공포가 한풀 가셨다. 대신에 그는 심각해졌다. 정신없이 구급차에 실려 오느라 지갑은커녕 휴대폰도 못 챙겼다.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하나 있긴 하지만 연락할 순 없었고, 도와 달라고 부를 지인도 없었다.
벌써부터 퇴원 수속을 걱정하는 한솔을, 간호사가 부축하며 일으켰다. 제가 뒤집어쓴 하수구 냄새가 간호사에게 묻을까 봐 한솔은 안절부절못했다. 그의 몸짓을 질겁한 것으로 오해했는지, 간호사는 도리어 한솔을 더욱 단단히 붙들고 이끌어 주었다. 경황없는 와중에도 한솔은 그 친절을 신기하게 여겼다. 대단히 운 없고 인복도 없는지라, 한솔에겐 사소한 친절과 다정조차 희귀한 것이었다.
이어지는 검사들은 그 수가 대단해서, 진료비에 대한 걱정마저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삑삑거리는 기계음을 종류별로 듣고, 저에게 매달린 장비며 오가는 의사의 손길이 늘어 갈 때마다 한솔은 허탈하게 웃음 지었다.
‘망했네.’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팔뚝의 피를 뽑고, 남자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소변까지 제출했다. 화장실 세면대를 더듬거리며 얼굴을 씻고, 병원에 구비된 파란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한솔은 낯선 진료실로 이동했다.
“따로 부르실 보호자는 없으세요?”
푹신한 스툴에 그를 앉히며 간호사가 물었다. 한솔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몇 초간 뜸을 들인 끝에, 의사가 말했다.
“개화병입니다.”
터무니없는 진단에 한솔은 두 눈을 느리게 끔벅였다. 제대로 된 설명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그는 침묵했다. 그러나 들려오는 말이 없었다.
콧잔등을 찡그리며 한솔이 되물었다.
“…저, 선생님. 무슨 병이라고요?”
“개화병입니다….”
의사가 다시 한번 말했다. 한솔은 제 귀를 의심하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개화병’이 무언지 몰라서는 아니었다. ‘꽃이 피어날 적에 앓는 병’이라 징그럽게 예쁜 이름을 가진 개화병은, 인생에 재수 옴이 붙은 가난뱅이 한솔에게는 붙을 이유가 없었다.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개화병’은 한국인에게만 발병하는 희귀병이었다. 증세는 각기 달랐다. 어떤 환자는 혀가 굳어 말을 하지 못하게 되고, 또 누구는 손가락이 굽어 버렸다. 심한 경우 하반신에 마비가 온다고도 했다. 평생 불치의 장애를 아무런 이유 없이 앓게 되는 것이었다.
개화병을 완전히 낫게 할 순 없지만, 증상을 호전시킬 순 있었다. 방법은 딱 하나였다. …황제에게 안기는 것.
“‘무화’가 되셔야 합니다.”
의사가 말했다. 한솔은 구부정하게 앉은 자세 그대로 몸을 굳혔다. 떡하니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무화’. 초등학생 시절, 교과서를 통해 보았던 단어였다. 개화병은 열병과 함께 오기에, 그 환자를 옛말로 활활 타는 불덩어리, 무화武火라 불렀다.
동화책을 통해 보았던 사랑 이야기도 있었다. 동그란 꼬리를 가진 토끼가 무화가 되어, 호랑이 황제의 곁에 머무르며 그에게 안겨 병을 고친다. 그러곤 호랑이 황제의 자식을 열한 마리 낳아 주었다. 이때 토끼 무화의 성별이 수컷이었다. 이처럼 한번 무화가 되면, 그의 성별은 의미가 없어진다. 여자이건 남자이건 황제의 씨를 품을 수 있게 되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다.
동화 속 토끼 무화는 호랑이들과 행복하게 살다 늙어 죽었다. 그가 묻힌 자리에서 나무 열매가 열렸다. 겉보기엔 꽃이 없어도 속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였다.
당시에는 동성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동화가 없었기에 그 동화책은 파격적인 이목을 끌었다. 그 바람에 ‘무화’의 어원이 사내 무화에서 따와 무화無花라는 오해도 숱했다.
어찌 되었건 요즈음 ‘무화’가 뜻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황제의 후궁을 지칭하는 것이다.
“허….”
한솔이 실소했다.
“무화… 요? 아니, 제가 무슨…, 그럴 리 없는데요?”
“저… 환자분. 진정하시고 설명을….”
“아니, 저 진정한 상태 맞고요. 선생님, 지금 제 진단서 보고 계시는 건 맞죠? 환자명 ‘한솔’ 맞아요? 제가 뭔 무화가 되고 후궁이 됩니까. 말이 되는 소릴 하셔야지….”
확신 없는 목소리로 한솔이 외쳤다. 기웃기웃, 의사의 책상 위로 목을 뻗기까지 했다. 그런들 탁한 시선이 제 정보가 실린 모니터며 서류 위에 닿는 일은 없었다.
“…저 스물아홉 살이에요, 선생님. 개화병은 어린애들이 걸리는 거잖아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이렇게 늦게 개화하는 경우도…, 음…. 드물기는 해도 아주 가끔 있습니다.”
“진짜… 확실해요? 진짜 개화병이에요? 진짜 무화가 되는 거라고요?”
“예. 황실에 연락해 두었습니다. 그쪽에서 사람을 보내올 테니, 여기서 잠시간 기다리세요.”
두 손을 들어 한솔은 제 눈꺼풀을 더듬더듬 만졌다. 결대로 누운 눈썹을 거꾸로 쓸기도 했고, 식은땀 묻은 이마를 문질렀으며, 이내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그러면서 그의 몸은 점점 더 웅크리며 덩치를 줄였다. 이내 제 무릎에 얼굴을 대고, 그는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쏟으며 어깨를 들썩이는 한솔을, 의사는 가엾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간호사 역시 뒷짐을 지고 선 채 입술을 좌로 비틀었다. 빼빼 마른 몸에 수척한 목덜미, 구정물이 묻은 티셔츠며 이 자리에 함께할 보호자 하나 없는 모습이 퍽 가여워 보였다. 병원 화장실에서 어찌어찌 얼굴을 씻기는 하였으나 목덜미에는 아직도 마른 흙을 묻힌 처지였다. 그런 상태로 무화가 되어 버리다니 그 사정이 참 딱했다.
동화나 드라마에서는 개화병을 로맨틱하게 다루었지만, 실상 무화는 그리 즐겁지 못한 자들의 이름이었다. 오래된 법에 따라 무화는 황실의 소유물이었다. 정확히는 황제의 소유물이었다. 더는 자유 의지를 지닌 사회인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무화가 된 자는 이름부터 버려야 했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을 모두 등져야 했고, 직업도 유지할 수 없을 확률이 높으며 삶의 터전도 황궁으로 옮겨야 했다.
옛말에 이르길 무화는 황제를 위해 태어난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의 믿음도 그와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30년에서 50년의 공백을 두고 황제의 대가 바뀔 때마다 환자가 발생하는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황제의 총애가 그들을 치료해내는 기현상도 마찬가지였다. 고서에 쓰이기로 ‘반역자의 집안에서 발병한 환자가 입궁하지 못하자 한 해에 걸쳐 말라 죽었다’고도 했다.
무화의 수가 많을수록 황제는 태평성대를 이룬다는데, 이번 세대에는 그 수가 유독 많아 기대가 컸다. 황제를 위해 궁에 자리한 무화가 벌써 마흔 명이었다. 하물며 그들 모두 절세미인이랬다. 개중 가장 어린 무화는 갓 스무 살이 된 아이돌 연습생이라고도 했다. 세간에 떠도는 소문이 그러했다.
마흔하고도 한 번째 무화가 된 한솔은 잊히기 쉬운 얼굴의 소유자였다. 네 달 동안 일한 편의점의 점주조차 돌아서면 한솔의 얼굴을 잊어버렸다. 몇십 번씩 일자리를 소개받으며 친해진 인력 사무소 직원도 길에서 마주친 한솔을 못 알아보고 휙 지났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한솔의 안면 앞에서만 까막눈이 되는 듯했다. 그토록 희미한 존재감으로, 평범하다 못해 불행한 삶을 살아온 스물아홉 살의 한솔이 행복한 무화가 되긴 어려울 성싶었다.
제 처지를 비관하는 듯,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서 엉엉 우는 한솔의 등을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토닥거렸다. 그가 아닌 누구라도 ‘개화병입니다. 무화가 되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억울하고 싫어서 엉엉 울게 마련이었다. ‘왜 하필 나냐’며 소란을 피우거나, ‘존엄을 잃느니 죽겠다’며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혹여 발생할지 모를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고자, 진료실 복도에는 아직도 구급 요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실 소속 직원들이 진료실 문을 열었다. 검은 정장 차림새에 가슴 위에 황실 소속을 알리는 뱃지를 단 이들은 총 네 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대비하는 비상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두 뺨에 눈물로 줄을 그어 놓은 한솔을 이송하기란 물 먹은 택배 상자 옮기기보다 쉬웠다. 꼬질꼬질하고 더러운 몰골로 훌쩍훌쩍 우는 그는 퍽 가엾고 안 되어 보였다.
그가 우는 이유는 그러나 보통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무화들과는 사뭇 달랐다.
한솔은 너무 좋아서 울었다.
‘내가 황실에 들어가다니, 후궁이 되다니…!’
개화병에 걸린 것은 한솔의 인생에 들이닥친 시련 중 가장 순한 맛이었다. 도리어 축복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