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3화 (3/135)

3.

그는 이제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한국 땅의 가장 높은 이의 소유물이므로, 어른 행세를 하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됐다. 후궁으로 등록되어 입궁하기만 하면 몸 눕힐 방도 생기고 배를 채울 밥도 생기고 품위 유지비 명목의 돈도 생겼다. 무화가 되면 가족들을 떠나고 꿈을 버리고 인생을 저당 잡혀야 한다는데, 한솔에겐 가족이 없었고 꿈도 없었고 인생은 너무나 무거운 짐짝이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눈물을 콸콸 쏟으며 한솔은 감동에 차올랐다.

‘눈 좀 안 보이는 게 대수야? 이름 그까짓 거 바꾸는 게 뭐 대단해? 어차피 불러 줄 사람도 없는데! 아하하!’

그의 어깨에는 병보다 무서운 악마가 매달려 있었다. 악마의 이름은 가난이었다.

멀어 버린 그의 눈앞에 오래도록 바라왔던 삶이 펼쳐져 있었다. 돈 들어올 구석 있는 편편한 백수 생활이 무척 찬란했다.

***

대한 건아 한솔의 삶을 네 글자로 요약하면 ‘누런 장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봄날 개나리의 노랑이 아니다. 개가 오줌을 갈겨도 티 나지 않게 누런 장판이다. 까뒤집어 보면 쥐가 싸 놓은 똥이 말라비틀어져 있고, 사방으로는 검은 곰팡이, 중심부에선 하얀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독한 버섯 한 송이조차 함부로 못 자라날 더럽고 추잡한 누런 장판.

그 외에 한솔이 스스로를 소개할 말은 따로 없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는 질문 앞에서 그는 입술을 소리 없이 벙긋거렸다.

자기소개를 해 보자면 세상천지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뱅이다.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못 다닌 무식쟁이고, 가난한 탓에 군대에서도 부르지 않는 덜 큰 남자다. 십 대 시절부터 반지하 방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인간 곰팡이요, 그마저도 매달 월세를 못 내다 보니 보증금을 깎아 먹고 빚을 지기 십상이었다.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부지런하단 것인데, 낮에도 밤에도 아르바이트를 뛰는데도 희한하게 남는 돈이 없었다. 돈이 조금 모일라 치면 배달 오토바이가 빗길에 미끄러져 사고가 났고, 편의점에 도둑이 들어 제 일당으로 손실을 메꿔야 했으며, 가방을 통째로 도둑맞는 소매치기까지 당했다.

달님처럼 따라붙는 불운으로 인해 그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대한 황실의 화려한 역사는 단 한 줄도 모르지만, 실비 보험이 없다는 건 언젠가 통장에 블랙홀이 생긴다는 의미란 건 알았다.

…그렇게 비루한 말들을 줄줄 읊을 수는 없는 연유로, 한솔은 굳게 침묵했다.

“자기소개로 얹을 말이, 정말 단 한 줄도 없어요?”

사백 년 전이었더라면 상궁이라 불리었을 실장이 꺼낸 질문 앞에, 그는 두 눈만 끔벅거렸다.

“네. 없습니다.”

동공이 확장된 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의 커다란 눈동자를, 양채림은 길게 노려봤다.

양채림, 소위 ‘양 실장’으로 불리는 그녀는 황실 후궁의 전담 실장으로, 서류상 상궁이라는 명찰을 단 공무원이었다. 후궁과 관련된 모든 업무 및 교육을 도맡은 선생이자, 바깥 세계와 단절된 무화들 간의 규칙과 서열을 돌보는 교통경찰이기도 했다.

그런 양 실장에게 한솔이라는 남자는 마티즈… 아니, 구식 티코였다. 벤츠는 기본이고 아우디, 쿠페, 롤스로이스 팬텀이 서로 네가 긁었네 내가 긁혔네 클랙슨을 눌러 대는 우아한 세계에 기어 들어온 너덜너덜한 티코. 문짝은 다 짜부라졌고 깜빡이등은 작동을 안 하고 연비는 엉망진창에 시동을 걸 때마다 털털털털 경운기 소리를 내는 폐차 직전의, 티코….

그게 한솔이었다.

‘얘를 어떡해야 하나….’

멀리 거슬러 올라가 조선 시대 왕이 그랬고, 대한제국 시절 황제가 그랬듯이, 오늘날 한국의 황제도 무화를 통해 태어났다. 황실의 안주인은 언제나 무화였고, 무화여야만 했다. 무화가 아닌 자에게는 황제의 아이가 잉태되지 않아서였다.

때문에 낡은 규칙과 법도가 오늘날까지도 팔팔하게 숨 쉬었다. 열 살배기 어린아이도 알 법한 규칙이, 한솔을 양 실장 앞에 데려다 놨다. ‘무화가 된 32세 미만의 한국인은 전부 황제의 소유’라는 해묵은 규칙 말이었다.

양 실장은 제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미치겠네.’

새로운 황제를 맞이하여 후궁이라는 이름으로 입궁한 무화가 벌써 마흔이었다. 개중에는 황족혈통마저 비밀스럽게 섞여 있는 실정이다. 마흔 명의 무화에게 자리를 내어 주느라 이곳, 문정궁은 벌써 만석이었다.

이번 황제에게는 후궁이 많으니 복도 그만큼 많으리라는 이야기도 절로 나왔다. 벌써부터 황태자를 기대하는 소리가 담을 넘을 정도였다. 마흔이면 확실히 많은 수였다. 국민 평균 수명이 70을 못 넘기던 시절에는 황제의 나이가 마흔이 될 때까지 무화 한 명 못 얻은 시절도 있었다.

양 실장의 손을 거친 무화들의 인적 사항 서류도 사십이었다. 그러나 개중 어떤 서류도, ‘한솔’이라는 남자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삐뚤빼뚤 눌러 적은 서류만큼 초라하지 않았다.

긴 한숨을 삼키며 양 실장은 한솔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모친은 사망한 지 오래고 부친은 오래전에 연락이 끊겼고, 자가 없고 소유 재산 없고 학력은 중졸, 경력직으로 일한 경험 없고 비상시 연락망에 적힌 전화번호 하나 없었다.

이런 남자를 무화들 사이에 집어넣어도 되는 것일까? 양 실장은 마음 깊이 갈등했다. 이 세대 첫 무화는 6년 전 발병했고, 그를 기점으로 하나둘 그 수가 늘어갔다. 답답한 궁에 갇혀 황제만을 기다려온 시간이 최대 6년이란 의미였다. 드디어 즉위식을 마치고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황제의 눈에 한 번이라도 들어 보겠다며 혈안인 무화가 많았다. 진작 저들끼리 언니 누나 오빠 형님 서열 정리까지 마쳐 놓은 실상이었다. 그런데 마흔한 번째라며 새로운 인물을 그 소굴에 집어넣어야 한다니, 여러모로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가난한 무연고자이건 재벌 집안 외동아들이든 간에 무화는 황제의 후궁이요, 후궁은 이곳 문정궁에서 살아야 했다. 게다가 한솔의 개화병은 그 수준이 심상찮았다. 황제께서 오며 가며 우연찮게 눈길을 주고, 만에 하나라도 운이 좋아 한여름 밤의 은총이라도 내리신다면 빛이 빠져 버린 두 눈도 쓸 만해질 것이었다.

그 정도의 무운이야 충분히 빌어 볼 만했다. 어쩌면, 기존의 무화들도 이 남자를 크게 미워하지 않을 성싶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각자 앓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하나같이 황제가 품어 주어야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래요, 그럼….”

느릿느릿 입을 떼며 양 실장은 한솔이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새 서류를 꺼내 들고 두어 줄의 인적 사항만 옮겨 적되, 이름은 빼놓았다.

“오늘부로 문정궁의 무화로 자리하게 되실 겁니다. 지금까지의 삶도 세상 밖의 이름도 잊으세요. 원하는 이름도 따로 없다 하시니 ‘하련솔’이라 하겠습니다. 소나무처럼 한 자리를 지키며 굳세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앞으로 스스로를 소개할 땐 하련솔이라 하세요.”

“네? 하염…?”

“…하련, 솔이요. 하련이 성이고 솔이 이름입니다. 황가 사람은 우리말 성과 이름을, 각각 두 글자, 외자로 짓습니다.”

“아…, 네, 네.”

“문제는 입궁하실 처소인데…. 문정궁의 큰 처소들은 이미 주인이 있는지라, 솔님께서는 별도로 지어진 작은 별채로 들어가시게 될 겁니다. 다른 처소들과 떨어져 있을 뿐 문정궁 내부에 있긴 하니 큰 문제는 없을 거고요. 자세한 건 여기, 규칙 책자를….”

준비된 말을 줄줄 읊으며 양 실장은 <바른 생활-문정궁> 책자를 들었다. 그러곤 움찔 손을 굳혔다.

‘아…. 미쳐, 내가.’

소리 없이,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이마를 찡그렸다. 깜빡 잊어버린 것이었다. 제 앞에 마주 앉아, 지난해 황궁 개방 기념일에 판매했던 해태 티셔츠 재고를 입은 남자가 시력을 잃었다는 걸.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양 실장은 재차 감정 죽인 목소리를 냈다.

“글씨는 어느 정도 보이십니까?”

민망해하는 양 실장의 표정을 꿈에도 모르는 채 한솔은 해맑았다. 그는 이가 보이도록 미소 지으며 두 팔을 곧게 뻗었다. 멀어 버린 두 눈동자는 야속하게도 크고 맑았다.

“네네! 엄청 가까이 대면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책 주시면 제가 가져가서 읽을게요!”

양 실장은 그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녀가 아닌 경호 직원을 향해 힘차게 뻗은 손 위로, 안내 책자가 먼 길을 돌아 내려앉았다.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와 달리 눈동자는 여전히 탁하기만 했다. 양 실장은 물론이고 경호 직원 역시 그가 책자를 한 줄이라도 읽으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책자 첫 페이지에는 매국노 윤 씨가 저지른 만행부터 시작해, 그 일가의 재산이며 일제에 팔아넘긴 땅을 죄 몰수한 과정이 실렸다. 그 재밌는 이야기를 못 보다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과거 조선식산은행이 위치했던 송현동 땅이 오늘날 황실 소유가 된 이야기를 모두가 좋아하는데 말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