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6화 (6/135)

6.

시종의 업무량부터가 무화의 인기도순으로 많았다. 만일 황제께서 무화를 찾기라도 하면, 그날 밤 담당 시종은 야근을 해야 한다. 무화를 찾아온 방문객이 있으면 손님맞이용 다과를 내주며 객의 신원을 확인하고, 명부를 작성해야 한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무화를 대신해 백화점을 오가며 쇼핑을 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무화가 시킨 택배라도 오는 날에는 문정궁 외곽의 주차장까지 쫓아나가 상자를 받아 와야 했다.

마흔한 번째 무화, 하련솔은 그 모든 일에 해당 사항이 없었다. 어린 무화들은 황제가 오가는 길목에서 나자빠지는 자해 공갈이라도 하겠다고 안달인데, 하련솔은 황제에 대해 궁금해하지조차 않았다. 태도만 보아서는 별도로 마음에 둔 애인이나 믿을 구석이 있는 듯한데,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나흘째 방문객이 없음은 물론이고 그에겐 누구에게 연락할 휴대폰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탓에 궁에서 지급되는 기본 옷만 입으니 별도의 쇼핑 심부름도 시키지 않았고, 찾아올 택배 상자 역시 없었다.

하다못해 조그마한 독채 밖으로 발 한 발짝 내딛지 않았다. 간단한 산책 길동무조차 해 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초롱이 보기에 제 무화, 하련솔은 히키코모리, 순우리말로 ‘폐쇄은둔족’이었다.

초롱이 원칙상 일정을 전하고 참석 여부를 물을 때마다, 하련솔은 거절하기 십상이었다.

“남자 무화들끼리 모여서 축구를 할 거라는데, 안 나가실 거죠?”

“응. 다리 몽둥이 부러졌다고 해 주세요.”

왼 발가락으로 오른 다리 정강이를 북북 긁으며, 하련솔이 말했다.

“매주 금요일은 영화의 날인데, 상영관에 들르시겠어요?”

“머리가 아파서 꼼짝도 못 하겠는데요.”

침대 위에 납작 엎드린 채 즉답이었다. 저러다 매트리스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무화 두 분이서 스트리밍 사이트 정기 구독할 파티 멤버를 구한다는데, 관심 없으시죠?”

“…….”

여상스럽게 건넨 질문에 하련솔은 움직임이 없었다. 김밥 속 재료처럼 이불 속에 돌돌 말린 그의 표정이 심각했다. 덩달아 진지해져, 초롱은 시종 단체 채팅 방이 켜진 휴대폰을 든 손에 땀을 쥐었다.

“…그럼 한 달에 얼마예요?”

침묵 끝에 하련솔이 물었고,

“1년 치를 한 번에 입금 받아서, 육만….”

“안 해요.”

초롱의 대답은 끝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김이 빠진 듯 돌아눕는 하련솔을 바라보자니, 초롱까지도 어째선지 시무룩해졌다.

뒤이어, 초롱은 제 게으른 무화에게 어려운 제안을 건네야만 했다. 아마도 그로서는 가장 듣기 싫어할 외출 소식을 알려 주고자, 그녀는 몇 차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은… 의료원에 다녀오셔야 해요. 문정궁 동쪽에 위치한 건물인데, 작은 병원이거든요. 무화를 담당하는 의사가 두 분 계세요.”

바싹 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훑으며, 초롱은 하련솔의 표정을 연신 살폈다. 정원조차 밟지 않는 비사회적인 남자가 제 말을 들어줄까 걱정스러웠다.

“개화병 증세를 살피고 기록해야 해서요…. 제가 같이 동행해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하련솔은 가뿐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키지 않아도 혼자 일어나 침대 밖으로 기어 나오기까지 했다. 초롱은 플라스틱 컵에 처박혀 있던 바다 게를 조개껍데기로 유인해 낸 듯한 성취감을 느꼈다.

시종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는 무화는 거의 없었다. 대다수 젊다면 젊고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병을 얻어 강제로 궁에 들어온 이들인지라, 아랫사람을 다룰 때 심술궂은 면이 있었다. 오늘처럼 무얼 억지로 시키려 하면 싫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왜 명령질이냐며 기분 상해 하기 일쑤였다.

“저… 그런데 신발이 어디 있죠?”

“아! 제가, 제가 신겨 드릴게요!”

초롱은 하련솔에 대한 평가를 내심 고쳐 놓았다. 시종의 머릿속 하련솔은 이제 비사회적인 폐쇄은둔족에서, 착하고 비사회적인 폐쇄은둔족이 되었다.

초롱이 신겨 준 새 신에 두 발을 잘 끼워 넣고, 하련솔은 그녀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오른손을 초롱의 팔뚝 위에 얹은 채 한 발 두 발, 아주 천천히 걷는 식이었다.

정오의 문정궁은 퍽 아름다웠다. 마침 하늘이 맑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다.

초롱은 주변 경관이며 나무의 모양을 열심히 설명하며 걸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궁 안에서 살면서, 여름의 경관을 눈에 담지 못하다니 가여운 일이었다. 요즈음 그의 하는 양을 보면 가을의 경관도, 겨울의 경관도 눈에 담지 못할 게 뻔했다.

“여기서 왼쪽으로 들어가시면 수라간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황제 폐하께서 머무르시는 침전 처마가 보여요.”

초롱이 재잘재잘 전하는 말끝마다 하련솔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 주었다. 그 바람에 초롱은 더욱 신이 났다.

“나중에 여기 단청을 보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용 기둥도 정말 멋지게 세웠거든요? 어떤 무늬가 있냐면….”

“초롱 씨.”

대뜸, 초롱의 빠른 목소리가 뚝 끊겼다. 시종들을 관리하는 소장이 불쑥 그녀 뒤로 다가온 것이었다.

“잠시만 이것 좀 봐 줄래?”

“네?”

급한 일인가 싶어 초롱이 걸음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하련솔이 고개를 들고 허공을 응시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의미로 초롱은 제 무화의 팔뚝을 두드리고, 서너 발짝 옆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제 앞으로 내밀린 장부를 살폈다.

이내 초롱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간단한 확인 서명이 필요할 뿐, 소장이 건넨 서류는 조금도 급한 용무가 아니었다.

“아니…. 소장님.”

하련솔에게 들리지 않게끔 목소리를 죽여, 초롱이 구시렁거렸다.

“이런 건 나중에 했어도 괜찮잖아요. 저 무화님이랑 같이 있는데 왜 굳이, 지금…. 우리 무화님 차별하시는 거예요?”

“어? 무화님이 어디 계셨는데?”

“팔짱 끼고 걷고 있었구만, 그걸 못 보셨다고요? 말이 되는 소릴 하셔야지.”

인기 없는 무화를 모시매 한가해서 좋다고는 생각했어도, 하련솔은 초롱의 담당 무화였다. 제 무화님을 남이 무시하거나 깔보길 바라는 시종은 없는 법이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초롱은 고개를 홱 돌려 하련솔을 찾으려 했다. 이 김에 소장님께 제 무화의 얼굴을 확인시키고, 평범한 인상이라 하여 무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련솔이 보이지 않았다.

“…어?”

초롱은 서너 발짝 의미 없이 걸음을 움직였다. 돌바닥을 밟으며 좌로 두어 걸음, 다시 대각선으로 두어 걸음 움직이는 그녀의 고개가 휙휙 빠르게 돌아갔다. 아주 잠깐, 30초 즈음 눈을 뗐을 뿐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하련솔이 초롱을 두고 멀리 가진 못했을 터였다.

“솔님?”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일이 초롱에게 닥쳤다. 하필 황제의 침전을 코앞에 둔 길인지라, 근방에는 무화들이 많았다. 백색 두루마기를 걸친 이들이 한 눈에만 서너 명이었다. 초롱은 그들 가운데 누가 하련솔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디로 가셨지?’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며 그녀는 제가 머리를 빗기고, 옷을 입히고, 신을 신겨 데려 나온 무화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일순 하련솔의 얼굴이 기억나질 않았다. 이목구비뿐만이 아니라 키가 컸는지 작았는지, 어깨는 넓었는지 다리는 말랐는지 아주 기본적인 형상조차 모르게 되었다.

“하…, 하하…. 이게 뭐지?”

황당한 마음에 초롱은 실소했다. 무화를 잃어버렸기로서니 그의 얼굴도 잊을 만치 당황해 버린 스스로가 이상하게 생각됐다. 오른손을 들어 이마를 짚으며, 초롱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굳어 버렸다.

어리바리하며 얼어붙은 초롱이 낯선 감각에 휩싸인 순간, 정작 그녀의 무화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을 걷고 있었다. 제 오른손을 동행인의 팔뚝에 얹고, 한 발 두 발 느릿느릿 이동하며 부축을 받던 차였다. 그러면서 하련솔은 저를 끌고 가는 이가 초롱인 줄 착각했다. 침전의 단청이며 수문장의 모자에 붙은 새 깃털을 설명해 주는 게 듣기 좋았는데, 왜 더는 말이 없을까 궁금해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 스무 걸음 즈음 걸었을까, 그를 부축하던 이가 대뜸 하련솔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작고 어린 초롱이라 생각하기엔 그 손의 크기가 지나치게 컸고, 악력이 강했다.

깜짝 놀라 하련솔은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단숨에 몸이 굳고 목덜미가 뻐근해졌다. 너무 놀란 바람에 충격이 척추를 타고 통증으로 올라온 듯했다.

“윽….”

인상을 찌푸리며 하련솔은 어깨를 바짝 굳혔다. 감전된 듯 몸을 구긴 그의 어깨를, 낯선 손이 도리어 더욱 세게 붙들어 쥐었다. 찌르르 등을 타고 흐르는 긴장감을 느끼며 하련솔이 바삐 말했다.

“누, 누구세요?”

그러면서 그는 무진 당혹스러웠다. 분명 누군가 초롱을 불러 세웠고, 저도 멈추어 섰었다. 제 손이 그녀에게서 떨어진 시간은 5초 정도밖엔 되지 않았다. 금세 누군가 제 손을 가져가 팔뚝 위에 얹기에 초롱인 줄로만 알고 따라 움직였는데, 지금 그를 붙든 이는 초롱이 아니었다. 한 팔을 둘러 하련솔을 바짝 끌어안고도 품이 남는, 장정의 남자였다.

혼란에 잠겨 하련솔은 그를 뿌리치려 했다. 그가 주춤거리며 아무렇게나 발을 뻗으려 하자, 낯선 손길은 그를 더욱 제 품 가까이 안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계단.”

“…….”

강직이 온 사람처럼 바짝 얼어붙은 채, 하련솔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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