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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9화 (9/135)

9.

즐거운 기색을 손수건으로 감추는 그를 쫓아, 경악한 초롱이 저 멀리서 팔짝팔짝 달려왔다.

“솔님, 이게…! 이게 무슨 일이에요?”

제 팔뚝을 쥐고 달라붙는 초롱의 가벼운 체중을 느끼며, 하련솔이 두 눈을 내리감았다. 눈을 감은 채 터벅터벅 별채를 향해 움직이며, 그가 말했다.

“다행이다. 아직 퇴근 안 했구나. 나 오디오 북 좀 틀어 주고 가.”

그러자 초롱이 더더욱 높이 팔짝 뛰었다.

“지금 오디오 북이 중요해요? 대체 왜 그러세요, 갑자기?”

“기침이 나서 나는 못 들어간대.”

“기침…? 아니, 무슨 기침이요? 그래도 들어가서, 인사라도 하셨어야 하는 건데…!”

아쉬움에 제 가슴을 퉁퉁 치는 초롱을 옆구리에 달고, 하련솔은 털레털레 제 방으로 돌아갔다. 늦여름의 밤공기가 후덥지근해 고운 한복 안은 진작 땀에 젖어 범벅이었다. 무화 보기를 사물 다루듯 하는 초롱은 그의 옷을 훌훌 벗겨 주었다. 보송보송한 잠옷을 던지듯 안겨 주기도 연속이었다.

“초롱아. 화났어?”

“화가 나긴 했는데요, 솔님한테 난 건 아니고요….”

답답하다는 듯 툴툴거리는 초롱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하련솔은 편안한 잠옷 차림으로 환복했다. 잘 다듬은 머리칼이 뒤집어지고 상의는 태그가 겉으로 드러나도록 뒤집어 입은 채, 그가 말했다.

“나 오디오 북 틀어 줘.”

“아, 진짜!”

제 가슴 위를 재차 퉁퉁 두들기며, 초롱이 한숨 쉬었다. 시종이 흘리는 열렬한 소음에 하련솔은 하하 웃었다.

***

“이러다 몸에 곰팡이 피겠어요, 솔님! 이대론 안 돼요. 오늘은 잠시라도 햇볕을 좀 쐬세요!”

초롱의 강경한 외침과 함께, 하련솔은 제 방 앞의 조그만 뜰에 내쳐졌다. ‘내가 젖은 이불인 줄 아느냐’며 반항을 시도하는 하련솔을 달래는 데엔 두 손 가득 안겨 주는 보자기 하나면 그만이었다.

“안에 약과가 들었어요. 천천히 드시면서 바깥 공기 쐬세요. 제가 청소하는 동안이라도요.”

“응. 고마워.”

저보다 네 살은 더 어린 초롱의 손길이 이끄는 대로, 하련솔은 터벅터벅 따듯한 뜰을 가로질렀다. 왼손으로는 보자기를 꼭 품에 붙였고, 오른손은 허공에 뻗어 그네 줄을 찾아냈다. 부드럽게 정리된 줄을 따라 손을 내리자 단단하고 평평한 나무 그네가 손에 잡혔다. 하련솔은 조심스럽게 그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러곤 주섬주섬, 시종이 안겨 준 통통한 보자기를 풀었다.

평소 하련솔은 한식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문정궁에 거처하게 된 첫날부터 제가 알던 제 취향은 죄 거짓이었음을 알았다. 황실 수라간에서 만들어 낸 요리는 전부 엄청나게 맛있었다. 특히나 약과는 평생 먹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맛이었다. 촉촉하게 꿀을 바른 꽃 모양 유밀과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데다, 꽃잎 모양을 따라 동그랗게 갉아 먹는 맛이 있었다. 네모나게 썰어 낸 개성약과는 한입 크기에 맛이 진해서, 볼 안에 집어넣고 우물우물 씹으면 온 입 안의 피부가 약과와 함께 뭉개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맛있다….”

우물우물 과자를 먹어 치우며, 하련솔은 그네에 보다 편하게 몸을 붙였다. 튼튼한 그네 줄에 관자놀이를 기대고, 발을 움직여 앞뒤로 살살 몸을 흔들자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그네 위로 소나무 가지가 우거진 듯했다. 제대로 위를 올려다볼 수는 없었지만, 피부를 덮은 그늘을 느낄 순 있었다. 덕분에 피부 위는 따끈한데 바람은 선선하니, 그 느낌이 참 좋았다.

흥얼흥얼… 청소에 매진하는 초롱에겐 들리지 않게끔, 하련솔은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면서도 입이 빌 때마다 새 약과를 하나 집어 베어 물기도 잊지 않았다. 그는 오늘 다과를 촉촉하게 녹아내린 꿀에 손금이 젖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즐길 예정이었다.

그런 하련솔의 코앞에, 검은 사내가 제 얼굴을 들이밀고 머물렀다.

“…흠, 흐음….”

제 발치에 바짝 붙어 선 타인의 존재를 꿈에도 모르는 채, 하련솔은 가볍게 발을 굴렀다. 그를 태운 그네가 뒤로 물러서자 그와 사내 간의 거리가 벌어졌다가, 반동을 받아 앞으로 돌아오는 순간에는 코와 코가 부딪치기 직전으로 가까워지길 반복했다.

두 눈을 크게 뜬 채, 기척 없는 남자는 고개를 천천히 모로 기울였다. 한 팔을 높게 들고서 그는 하련솔의 얼굴 앞에 제 손바닥을 들이댔다. 그러곤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작은 손바람에 덥수룩한 머리칼이 날리자 하련솔이 두 눈을 꿈질거렸다. 그러나 고개를 가볍게 털어 속눈썹을 찌르는 앞머리를 넘겨 버릴 뿐, 콧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재차, 하련솔의 입 안으로 네모난 개성약과가 들어갔다. 조청 묻은 입술 새로 붉은 혀끝이 내밀렸다가, 달콤한 맛을 훔치며 숨어들었다.

흑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선, 검은 사내는 그 얼굴을 아주 가까이에 바짝 붙어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하련솔의 흐트러진 고동빛 머리칼에 닿았고, 둥근 이마와 선한 인상의 눈썹을 훑었다. 무엇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멍한 눈동자를 지나 값나가는 인형처럼 조각된 코끝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흠, 흐음….”

작은 콧노래가 목 울리는 흥얼거림으로 변했다. 고개 숙여, 사내는 제 그림자로 뒤덮인 하련솔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하얀 반팔 티셔츠의 소매 끝에는 무화를 상징하는 로고가 박혀 있었고, 베이지색 한복 바지는 제대로 된 행전을 신지 않아 둘레가 벌어진 채였다. 고개를 아주 기울이며 바라보자 빛깔이 발긋한 복숭아뼈가 들여다보였다. 발목이 아주 가늘고 발등은 새하얬다. 가벼운 슬리퍼에 담긴 발마저도 깡말랐다.

하련솔이 새 약과를 집어 제 입가에 댄 순간,

“너는 누구지?”

“악!”

귀한 과자가 그대로 흙바닥에 떨어졌다. 하련솔의 몸도 깜짝 놀라 뒤로 넘어갔다. 그의 손이 그네 줄을 움켜쥐려 움직였으나 허공을 가로지를 뿐이었다. 이내 흙바닥이 거친 마찰에 쓸리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흙 알갱이를 거칠게 쓸어 낸 것은 하련솔의 몸이 아니었다. 커다란 사이즈의 가죽 구두 밑창이 긴 금을 남기며 바닥을 긁어 놓았을 따름이었다. 하련솔의 몸은 타인의 팔에 붙들려, 허공에 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네가 그의 엉덩이 밑으로 미끄러져 허벅다리를 받쳤고, 고꾸라진 몸뚱이는 낯선 사내가 안아 들다시피 했다.

“…헉, 헉….”

놀란 탓에 하련솔은 두 눈을 바로 뜨지조차 못했다. 오만상을 찡그리며 그는 숨을 헐떡거렸다. 반쯤 그네에 매달린 채, 반쯤은 낯선 이의 품 안에 번쩍 들린 채 오그라 붙은 사내 무화를, 남자는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누…, 누구세요?”

더듬더듬, 놀란 손을 허공에 뻗으며 하련솔이 물었다. 삽시간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엔 흥분이 들어찼고, 불안한 듯 움직인 손은 사내의 어깨에 닿았다. 울퉁불퉁 황금색 자수가 놓인 자리 위로 하련솔은 구김을 남겼다.

“…누구….”

재차 소극적인 목소리를 흘려도 상대는 답을 돌려주질 않았다. 그는 그네 줄이 공중에서 휘어지도록 하련솔을 단단히 안아 들었다. 두 발이 완전히 허공에 들리고 허리가 뒤로 젖혀지자, 하련솔은 신음 같은 비명을 아주 작게 흘렸다.

너무 놀란 바람에 몸이 아팠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는 손가락이 죄 오그라든 주먹을 제 가슴 앞에 댔다.

…콜록. 작은 기침이 갑갑한 목구멍 위로 새어 나갔다.

“너는 누구야?”

그러자 그를 덥석 안아 든, 낯선 남자가 말했다.

“응?”

심장이 광포하게 퍽퍽 뛰는 와중에 그런 질문을 듣고 있자니 하련솔은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저를 안아 든 낯선 남자의 팔뚝을 주먹으로 세게 두들겼다. 눈이 보이지 않으매 이토록 답답하긴 또 처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뭐 하는 작자가, 대뜸 약과 먹는 방구석 무화를 찾아다가 안아 드나 싶었다.

“저 여…, 여기 사는 사람이거든요?”

쿵쿵 뛰는 심장을 애써 억누르며, 하련솔이 대꾸했다.

“개구멍에도 사람이 사나?”

콧소리 섞인 낮은 음성은 미묘하게 즐거운 듯 들렸다. 어째선지 소름이 끼쳐, 하련솔은 어깨를 꽉 웅크렸다. 그리고 구시렁거렸다.

“그럼 제가 사람이 아니면 뭐. 구미호라도 되어 보입니까?”

“흠….”

“저 진짜 여기 사는… 사람이거든요? 입신출세, 아니, 입신출산의 꿈이 없는 백수인데요. 그러는 당신은 누구세요? 대체 누구신데 남의 집 뜰까지 침입하는 건데요.”

그러자 남자가 하련솔을 안은 팔에 힘을 풀었다. 쑥, 커다란 사내의 품 안에서 하련솔의 상체라 아래로 미끄러졌다. 말라빠진 하련솔의 몸을 받치는 것이라곤 허벅다리 밑의 팔 한 짝과 등줄기에 바짝 붙은 손바닥이 전부였다.

이대로 그가 저를 집어던질까 봐, 막무가내라 느껴질 만치 강한 힘이 두려워 하련솔은 희게 질렸다.

“‘남의 집’?”

사내가 되물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읽어 낼 수 있는 공기라는 게 있었다. 하련솔은 그에게서 커다란 존재감과 위압감을 보았다.

“…저, 선생님. 제가 함부로 말씀드려서 참 죄송합니다. 부탁이니까 저 좀 내려 주지 않으시겠어요?”

부쩍 정중한 목소리로 하련솔이 말했다. 그러자 사내가 ‘허’ 하고는 작게 실소했다. 손바닥을 모아 싹싹 빌어야 하나 불안하던 차, 하련솔의 몸이 아주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처음과 같이 하련솔을 그네에 앉혀 주었다.

엉덩이에 단단한 그네가 닿고, 두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하련솔은 마음이 변했다.

“자, 이제 나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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