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아직 겨울 되려면 멀었구만, 벌써 붕어빵 파는 가게가 있어?”
그러곤 보약을 받은 때보다 천 배쯤 더 신난 기세로 보따리를 풀었다. 서툰 솜씨로 포장지를 잡고 빵을 꺼내려다, 딸려 나온 붕어빵을 바닥에 흘리기까지 했다. 툭 떨어진 붕어빵 한 마리를 집어 들며 나찰사가 투덜거렸다.
“떨어진 거 형이 먹어.”
그러곤 기름을 머금은 종이 포장지를 쭉 찢어 쟁반 삼고, 따끈따끈 온기를 품은 붕어빵들을 좌식 탁자 위에 얹었다. 하련솔이 풀 죽은 얼굴로 손을 내밀기에, 깨끗한 붕어빵을 올려 주기도 했다.
기껏 말짱한 것으로 전해 주어도 하련솔은 제 손에 들린 빵을 주물럭거리며 망쳐 놓았다.
“더럽게 뭐 하는 거야.”
하여간 엉뚱한 구석이 있는 무화를 향해 나찰사가 핀잔을 놨다. 오히려 하련솔은 쯧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있어 봐. 어디가 입이고 어디가 꼬리인지 알아야지.”
“그게 왜 중요한데?”
“왜냐니. 원래 붕어빵은 입부터 먹는 거야. 위쪽에 팥이 더 많이 들었으니까, 위에서부터 먹으면서 한입에 들어오는 앙금이랑 빵의 비율을 조절해야 한다고. 너는 황족 도련님이라서 이런 거 모르지?”
그 떳떳한 태도며 요상한 이야기에 나찰사는 황당했다. 픽 실소하면서도 그는 하련솔의 손에 들린 붕어빵을 잡아다가 입이 위로 오게끔 돌려 주었다. 그러자 하련솔이 만족한 듯 끄덕거렸다. 앙금과 빵의 양을 조절한다던 미식가는 어디로 갔는지, 덥석 베어 문 한 입 만에 붕어빵은 꼬리만 남게 되었다.
“눈은.”
나찰사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영 시원스럽게 잘 보이질 않나 봐?”
그러자 하련솔이 또 한 번 혀를 차 댔다. 좀 전엔 여든 살 할아버지 취급이냐며 투덜거리더니, 막상 노인네처럼 행동하는 건 다시 하련솔이었다.
“쯧쯧…. 이게 뭐 그렇게 쉽게 낫는 병이면, 누가 이 궁에 들어와 살겠냐?”
“왜. 황제가 좋아서 들어와 살 수도 있지.”
나찰사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하련솔이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대로 그는 우물우물 턱을 움직이며 무얼 생각하는 듯하다, 뜻밖에 수긍했다.
“하긴, 난 그러겠다.”
“뭐? 왜. 황제가 좋아서?”
“아니. 놀고먹고 잘 수 있어서.”
“아아….”
감탄사를 영혼 없이 흘리며, 나찰사는 제 관자놀이를 긁적거렸다. 상대의 표정을 모르는 하련솔은 진지하게 제 선택의 이유를 설명했다.
“날아오는 고지서 없지, 숨 막히는 월세 날 없지, 할 일이 좀 없긴 한데 그래서 무서울 것도 없고…. 가끔 이렇게 붕어빵 가져다주는 손님도 있고.”
그러곤 쥐고 있던 붕어빵 꼬리를 제 입에 쏙 넣었다. 잘 구워진 빵의 겉면이 바삭바삭 씹히는 소리가 ‘으음’ 하는 감탄사에 섞였다.
하련솔이 먹는 모습을 보니 붕어빵이 무척 맛난 음식 같았다. 나찰사는 물끄러미 제가 사 온 것들을 흘겨보다, 구겨진 붕어빵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한 입 베어 물었다. 한 입마다 색다른 감탄을 섞는 하련솔과 달리, 나찰사가 맛본 붕어빵은 무척 평범했다. 그저 단순하고 서민적인 음식에 불과했다.
“난 불만 없어.”
대뜸 하련솔이 말했다. 나찰사가 투정하듯 뱉었던 말을 그는 머릿속에 남긴 모양이었다. 하련솔은 제게 남은 생각은 즉시 털어 내는 성미의, 붕어빵보다 더 단순한 남자였다.
“…내 눈 말이야. 이 정도면 만족한다고. 요새는 아침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있고, 풀이랑 하늘 색깔도 잘 보이고….”
그러곤 창가로 가, 창문을 밀어 열었다. 활짝 열린 창문을 따라 창틀 너머로 상체가 벗어나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여 나찰사가 얼른 팔을 뻗었다. 그리고 하련솔의 상의를 덥석 움켜쥐었다.
나찰사의 오른손에 대롱대롱 매달리다시피 한 채, 하련솔은 땅과 하늘을 번갈아 살폈다. 그리고 말했다.
“쟤네도 빵 던져 주면 먹을까?”
느닷없는 질문에 나찰사도 창밖으로 고개를 힐끔 내밀었다. 저를 알아볼 행인이 있을까 조심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러나 문정궁의 끝, 개구멍 앞을 지나는 괴짜는 어디에도 없었다.
“‘쟤네’? 누구?”
“저기…, 조그만 새들이 쪼르르 앉아 있잖아. 저거 뱁새 아니야?”
하련솔의 손끝을 따라 나찰사가 시선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손끝이 가리킨 처마 자리엔 뱁새는커녕 참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틀어 가며 나찰사는 처마 위를 꼼꼼히 살폈다. 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계절의 서로 다른 자세를 한 해태 장식이 조그맣게 얹혀 있기는 했다.
‘저걸 뱁새라고 착각한 건가?’
어쩐지 측은한 착각이었다. 생명력 없는 돌 장식을 웃으며 올려다보는 얼굴을 보자면 누구라도 그리 느낄 터였다.
나찰사의 마음을 조금도 모르고서, 하련솔이 중얼중얼 수다를 이어 나갔다.
“쟤네 맨날 저기 앉아 있거든. 땅에 뭐 좀 뿌려 주면 내려오려나….”
돌로 만든 장식이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키는 것이야 당연지사였다. 미동조차 없는 작은 해태를 노려보기도 잠시, 나찰사는 들으라는 양 코웃음을 크게 쳤다.
“저것들 곡물 얻어먹을 데가 없을까 봐? 이 궁에 사는 고양이들이 얼마나 뚱뚱한지나 알아? 후문의 비둘기도 형보다 더 잘 챙겨 먹을걸.”
그에 하련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토록 풍족한 궁궐에 사는 동물이라면, 조그마한 새들도 곶감으로 배를 채우고 대추로 부리를 헹굴 거라 생각됐다.
나찰사는 일부러 말 몇 마디를 덧붙였다.
“괜히 음식 뿌려 주지 마. 땅으로 내려왔다가 고양이한테 물려 가면 안 되니까.”
오지도 않을 새를 기다리는 하련솔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기에 뱉은 경고였다. 그에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하련솔은 세 번째 붕어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오…. 이건 크림 들었네.”
소소한 발견에 기뻐하며 열심히 턱을 움직이기에, 나찰사가 소리 없이 웃었다. 미소를 띤 얼굴로 그는 하련솔을 한참 바라보았다. 제 주먹에 턱을 괴고 타인의 얼굴을 하염없이 구경하던 차,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나찰사는 단번에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자 벌어진 문틈 새에 선 작은 체구의 여자가 보였다. 중단발 길이의 머리를 하나로 땋아 내린 모습이 꽤 단정했다. 상의로는 하늘색 저고리를, 하의로는 바지 정장을 입고 선, 무화의 침소 시종이었다. 두 팔 위에 쟁반을 받쳐 들었고 입은 땅에 떨어지겠다 싶을 만치 크게 벌린 채였다. 눈동자는 나찰사를 똑바로 직시했다.
“…….”
“…….”
저 시종에 대해서라면 하련솔이 지나가듯 언급한 적 있었다. 행동이 단호하고 똑 부러지는 아이라 그랬던가, 이름은 청사라 그랬던가 초롱이라 그랬던가….
무화의 침소에 찾아든 손님을 알아본 듯, 그녀는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품에 안아 든 쟁반을 서서히 바닥에 내리며 두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또박또박 인사하기 직전이었다. 어영부영 반쯤 엎드린 시종을 향해 나찰사가 말했다.
“거기 놓고 가거라.”
그러자 초롱이 흠칫 어깨를 떨며 동작을 멈추었다. 당황한 탓에 이마가 새빨개지고, 목소리는 덜덜 떨리며 새어나갔다.
“귀하신 시간을 방해…, 방해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놓고 가래도.”
재차 나찰사가 차가운 목소리를 냈다. 상대의 입술을 마르게 하고, 목구멍을 단숨에 틀어막는 목소리였다. 그 바람에 초롱은 울상이 됐다. 무릎 꿇어 인사를 올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곧게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선 그녀의 자세는 극한 난이도의 플랭크와 다르지 않았다.
그때, 오가는 말소리를 듣고만 있던 하련솔이 대뜸 팔을 휘둘렀다.
“야!”
이번에 그의 주먹은 나찰사의 팔뚝에 정확히 와 꽂혔다. 가볍게 팡 소리가 났다.
“네가 뭔데 초롱이한테 짜증을 내? 멋대로 온 게 누군데, 먹을 거 가져다주는 사람한테 성질이야.”
그러곤 향긋한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활짝 미소 짓는 것이었다.
“초롱아, 이리 들어와. 뭐 가져온 거야? 냄새 좋다.”
초롱의 얼굴에 경악, 당황, 충격, 공포, 곤혹스러움이 가지각색으로 섞였다. 질문을 한 건 하련솔인데 그녀가 눈치 살피는 이는 나찰사였다. 절박하게 보낸 눈짓 신호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초롱은 방 안으로 발을 뻗었다.
“제, 제주 녹차가 들어왔대서 바, 받아 왔는데…. 꿀을 좀 타 봤어요…. 요즘 손발이 부어서 고생하시는데, 꿀녹차를 마시면 부기가 좀 가라앉을까 하고….”
그렇게 말하며 초롱은 대번에 방 한가운데에 도착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뻗었다. 그대로 그녀의 손에 들려 온 묵직한 쟁반은 나찰사에게 넘겨졌다. 그 뻔뻔하고 태연한 모습이 공양을 받아먹는 산 호랑이처럼 보였다.
그와 눈이 마주친 아주 잠깐의 순간을 초롱은 영겁처럼 느꼈다. 범 눈깔을 단 남자가 검지를 곧추세우고 제 입술 중앙을 가로막아 보이고, 그만 가 보라는 양 손을 가볍게 흔들고, 더는 남은 용건이 없다는 듯 시선마저 주지 않을 때까지가… 초롱에겐 영겁이고 멈추어 선 수천 장의 사진이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무렵 초롱은 그야말로 기절 직전이었다. 낯선 손님의 떡 벌어진 어깨며 거대하다는 느낌이 드는 풍채, 무섭게 잘생긴 얼굴에서 풍기는 비인간적인 인상이 그녀를 겁먹게 했다. 초롱은 초를 다투듯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시선을 움직여 제 무화님을 살펴보았는데, 구깃구깃한 잠옷 차림새에 빗질조차 되어 있질 않은 까치집 머리를 보자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마저도 옷가지엔 빵가루를 흘렸고 정수리 위의 삐친 머리는 고갯짓을 따라 자꾸만 까딱거렸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초롱은 침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