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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28화 (28/135)

28.

그러나 초롱은 명색이 이 궁의 직원이었고, 그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시종 일이 제 직성에 잘 맞는다며 진심으로 즐거워했고 10년 내로 상궁이 될 거라는 야망도 내비쳤다. 무엇보다도 초롱은 이곳 문정궁 자체를 좋아했다. 하련솔이 모르는 궁 안 곳곳의 조형이며 그 의미를 꼼꼼히 설명해 줄 때부터 알아보았었다, 그녀가 궁궐 마니아라는 것쯤은….

그런 초롱에게 제 무화에게 일어난 일을, 그것도 황제의 친척이 저지른 일을 알려 주는 건 못된 짓이라고 생각됐다. 초롱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엄한 비밀을 지키느라 초롱이 힘든 상황에 놓일까 봐 염려해서였다.

“음….”

한참을 고민한 끝에, 하련솔은 거짓말했다.

“…별건 아냐. 어제 말다툼을 좀 했거든. 내가 쫓아냈으니 그 친구 기분이 좋진 않았을 거야.”

그러자 초롱이 화들짝 놀라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퉁 솟아오르는 점프를 시작으로 쉴 틈 없는 잔소리가 시작됐다.

“아니! 이왕 와 주신 분인데 왜…! 왜 그러셨어요! 잘 좀 지내지 그러셨어요! 으휴! 으휴!”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잘 지내, 잘 지내기를?”

“얻어먹을 게 왜 없어요? 그분 다녀가시면 솔 님도 좋잖아요! 좋아했잖아요? 그런데 왜 다퉈요, 다투기를? 5학년 어린애들이에요? 그리…, 아! 그 불량 개구리 좀 버려요!”

팔짝팔짝 자리에서 뛰며 말을 늘어놓자니, 황제의 품에 안겨야 할 무화가 소중하게 품은 개구리 인형이 여간 꼴 보기 싫은 게 아니었다. 참다못해 초롱이 꽥 지른 소리에 하연솔은 낡은 인형을 보란 듯 더욱 과장되게 껴안았다. 그리고 웃었다.

“초롱아, 지금 네가 더 개구리 같아.”

“아휴! 정말! 속 터져!”

이내 초롱이 두 손으로 제 눈가를 폭 덮었다. 답답해 죽겠다는 듯 몸을 틀어 대면서도 그녀는 하련솔의 어깨 한번 건드리질 않았다. 당장이라도 폭주하고픈 감정을 꾹꾹 눌러 투덜투덜 말을 뱉을 뿐이었다.

“그러잖아도 폐하께서 일주일 동안 궁을 떠나신대서 다들 난리란 말이에요!”

“이게 폐하랑 무슨 상관인데?”

난데없는 말에 하련솔이 어리둥절하니 되물었다. 그러자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은 자세 그대로 초롱이 동작을 멈췄다. 몇 초의 뜸을 두고 그녀는 중얼중얼, 변명하듯 작게 말했다.

“…아니, 제 말은…. 그러니까… 그만큼 뭐, 분위기가 안 좋다는… 그런 말이죠.”

검지와 중지를 슬그머니 벌려 초롱은 하련솔을 살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둔감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무화께서는 별다른 의심 없이 제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러곤 서까래를 올려다보며 ‘하나둘’ 그 개수를 셈했다.

답답한 마음에 초롱이 재차 무릎을 꿇고 앉아 물었다.

“앞이 겨우 보이게 되셨는데, 가고 싶은 곳은 없으세요? 오늘은 바람이 살살 불어서 날씨도 좋아요. 호수 보러 가실래요? 아니면… 다들 저녁 즈음에 폐하 배웅을 간다던데, 그 정도는 따라 가 보셔도….”

“에이, 됐어.”

“무슨 배웅인지 묻지도 않으세요?”

“무슨 배웅인데?”

“외교차 해외 순방을 다녀오신대요…. 일주일이나 걸리신대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계속해서 폐하를 보러 가자 유혹해 봐야, 하련솔은 귓등으로도 듣질 않았다. 입궁하고서 황제와는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다고 믿는 그였다. 그러니 일주일이라는 공백기가 길지도 짧지도 않게 생각됐다. 그저 ‘그렇구나’ 하고는 누운 자세를 꼼지락 고칠 뿐이었다.

초롱으로선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배웅이라는 명분으로나마 황제를 따라 걷겠다는 무화들이 많았다. 오늘 출근하자마자 그녀 앞에 놓인 풍경이, 제가 모시는 무화께서 입을 옷을 다림질하는 동료의 모습이었다. 화려한 색이 든 예쁜 한복을 입고 배웅하면, 폐하의 뇌리에 그 모습이 향수병과 함께 아른거리지 않겠냐는 개소리는 덤이었다.

‘참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 미국 프롬 킹인 사람이 향수병은 무슨….’

폐하 없이 보내는 일주일이면 저는 시들어 버린다는 망언을 지껄이는 무화며, 그런 무화를 따라 청승을 떨어 대는 시종의 모습이 참 꼴같잖았다. 바삐 오가는 기 싸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아침, 초롱은 내심 우쭐했더랬다. 너희가 모시는 잘난 무화들이 이러쿵저러쿵 설정 놀이를 해 봐야, 정작 폐하께서 비 내리는 저녁 남몰래 찾아드는 침소는 우리 솔 님의 작은 방이라고 말이었다.

그런데 그 솔 님이 전해 온 소식이 청천벽력이다. 꿀 발린 말을 하고 어깨를 주무르며 아양을 떨어도 모자랄 판국에, 황제더러 제 방에서 나가라고 축객령을 내렸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서야 어느 세월에 그 마음을 사로잡는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황제 폐하께서 하련솔에게 관심을 품게 된 계기가 무언지, 초롱은 그조차도 알 수 없었다.

‘나도 우리 솔 님을 좋아하긴 하지만….’

침상에 드러누운 이를 원망의 눈길로 바라보기도 잠시, 초롱은 금세 착잡하고, 우울하고, 슬퍼졌다. 그러곤 가여운 마음이 더럭 들었다.

‘우리 불쌍한 솔 님! 어쩌면 좋아?’

일주일 뒤면 말라 죽겠다던 모델 출신 사내 무화는 하련솔에 비하자면 씨름 선수였다. 얼굴은 백지장 같고 목은 갓 태어난 사슴 같고 기운은 개똥을 만들래도 없는 이 무화에 비하자면 문정궁의 누구나가 건강했다. 그가 오늘, 그나마 산 사람처럼 보이는 연유는 바로 그 황제의 방문에 있었다. 일주일 뒤 그의 몰골이 어찌 변할지 초롱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휴우우우우….”

푹 내쉬는 한숨을 못 들은 척하며, 하련솔은 황제가 아닌 다른 이를 생각했다.

‘나찰사가 다시 오면…, 잘 이야기해 봐야지.’

결론 없는 고민을 잇기는 그만두기로 했다. 필시 제가 오해한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되니, 대화를 하고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머뭇머뭇, ‘형’ 하고 절 부르던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를 맴돌았다. 언제고 하련솔은 형이라는 호칭에 약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부르면서 제게 매달리는 아이가 있으면, 어떤 소원을 빌건 모두 들어주고만 싶어졌다. 한때는 그도 어린 동생들에게 있어 히어로였다. 이제는 다 옛날 일이었다. 마치 지난 생의 일처럼 아득하게만 생각됐다.

‘나보다도 걔가 더 답답할 텐데, 금방 오겠지.’

긍정적인 전망을 품고 하련솔은 종일 나찰사를 기다렸다. 활짝 갠 날씨처럼 눈이 맑아졌으니 희미하게나마 그의 얼굴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얼굴을 머릿속에 새기면, 그를 더 잘 알게 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하루, 그리고 이틀이 지나도 개구멍을 찾는 이는 없었다. 궐 안에 새로 들어온 과일이나 간식들을 한 아름 든 초롱만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 따름이었다. 저녁 창가에 앉아 다가오는 발소리가 없나 귀 기울여도 나찰사는 오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드릴까요?”

그렇게 초롱이 질문해도 하련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차혁에게 들은 조언이 있어, 그는 제 눈이 회복되었단 사실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고자 했다. 혹시 개구멍 근방을 오가는 직원이 있을까 싶어, 건강해진 몸을 더욱 꽁꽁 감췄다.

그조차도 며칠 못 가 불필요한 일이 됐다. 서까래를 볼 수 있게 된 지 3일 만에 하련솔의 눈은 다시 멀어 버렸다. 두 손으로 제 눈을 벅벅 문지르고, 눈동자를 애써 이리저리 굴려 보아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눈알을 태워 놓는 듯한 빛 번짐이 돌아왔다. 창호지를 뚫고 들어온 빛조차 하련솔을 고통스럽게 했다.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그는 바닥을 기어 다녔다. 초롱이 진작 달아 준 커튼을 꼼꼼히 치고, 완전한 암막 속에 소리 없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게 이렇게…, 이렇게까지 아프고 답답했었나?’

한참 바닥을 기어 다닌 탓에 방향 감각이 사라져, 침상으로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보록에 팔을 부딪치고 협탁 위의 물잔을 떨어뜨려 가며 그는 가까스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잠옷 주머니에 숨겨 두었던 안약이었다.

작은 병의 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제 두 눈에 짜 넣었다. 그러나 시력이 돌아오기는커녕 시큰한 기운조차 가시질 않았다. 귀한 안약이 거의 다 떨어져 가기에, 조금이라도 아껴 보겠다고 의료원에서 받아 온 인공 눈물을 넣은 탓인지도 몰랐다. 제 딴에는 희석을 시켜 오래 쓰려 한 짓인데, 효능을 잃어버리고야 만 듯했다.

“아아….”

답답한 통증에 침상에 풀썩 몸을 눕히자, 작은 충격에 갈비뼈가 아렸다. 끙끙 신음하며 하련솔은 식은땀을 흘렸다. 이불 안으로 기어 들어가자니 열이 올라 덥고, 이불 밖에 몸을 내놓자니 땀이 식어 추웠다. 결국 손발을 덜덜 떨며 진땀을 흘려야 했다.

새 빨래와 간식을 들고 초롱이 돌아올 때까지, 그는 박탈감 속을 나뒹굴었다. 무엇보다 하련솔을 지치게 하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일이 있어 그런 것이겠거니… 긍정적으로 머리를 굴리면서도, 그는 어쩌면 나찰사가 영영 저를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 스스로 상처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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