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밤의 세상이 찾아온 듯했다. 어디를 봐도 그저 어둠뿐이다. 완전한 검은색으로 사방이 뒤덮였다. 기실 사방이라 칭할 방향 감각조차 없다. 세상이 평면이 됐다. 까맣고 너부데데하기가 하늘이건 땅이건 다 똑같다. 하련솔의 눈이 완전히 먼 것이다.
그래도 그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을 찾았다. 두 눈이 완전히 멀어버리자 더는 눈에서 통증이 일지 않았다. 타는 듯 아리고 찌르는 듯 욱신거리던 감각조차 마비된 것 같았다. 특히나 빛이 끼쳐올 때마다 눈물 쏟던 일이 사라져 좋았다. 사흘간 통증이 워낙 극심했던 터라, 그에 비하자면 차라리 지금이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제는 딱 하나,
‘심심하다.’
너무 심심하단 거였다.
노는 것도 즐겨본 놈이나 잘하는 거였다. 평일과 주말의 분간은 물론이고 연휴나 휴가철을 챙겨본 적 없는 하련솔은 노는 법을 몰랐다. 할 일도 없고 하릴도 없이 그저 쉬는 게 일상이 되었는데, 마음 놓고 노는 법을 모른다는 건 꽤 골치 아픈 문제였다. 온종일 바람 잘 드는 방에서 따듯하게 몸 지지며, 맛난 음식으로 열심히 배를 채우고, 오후 내내 시트 위에 등을 문지르면서도 개운치가 않았다.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어디로든 일을 하러 가야 할 것 같았다.
열 시간씩 잠을 자도 피곤하고, 내내 쉬기만 해도 근육이 저리니 더욱 그런 듯했다.
‘몸이 너무 약해져서 그런가….’
침상에 누워 배 위에 두 손을 모아쥔 채 하련솔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했다. 하련솔의 기억 속 어머니는 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지병으로 인해 휴양 겸 요양을 오랫동안 했더랬다. 어린 시절에 그는 매일 놀고, 먹고, 자기만 하는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편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종일 하는 일이라곤 인문학이나 소설책 두어 권을 머리맡에 놓고 읽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개화병에 걸려 환자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삶도 이렇게 고단했었을까, 이제야 이해됐다.
오늘날엔 하련솔도 창가 자리 침상에 누워 책만 읽었다. 정확히는 ‘들었다’. 그의 머리맡에는 두꺼운 책들 대신 E북 리더기가 놓였는데, 배려심 깊은 초롱이 문정궁의 도서관에서 대여해온 물건이었다. 태블릿PC처럼 생긴 그 물건을 조작하는 일도 초롱의 몫이었다. 아침에 들른 그녀가 전자책 한 권을 골라 읽어주기 기능을 켜두면, 하련솔은 반나절 내내 기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들으며 이야기를 좇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하련솔에겐 모든 책이 새롭고 재밌었다.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해 책은커녕 문화생활 전반과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아온 덕이었다. 초롱이 ‘흔해서 재미없는 이야기’라며 머뭇거리며 재생시킨 책조차 하련솔에겐 처음 듣는 이야기라 색달랐다. 내도록 멀리해온 책과 뒤늦게 친해진 셈이었다.
푹신한 침상에 누워 가만히 오디오북 소리를 듣고 있자면 잠이 솔솔 쏟아졌다. 하련솔은 비몽사몽간에 소설 속 인물을 뜨문뜨문 떠올렸다. 그렇게 픽 의식이 꺼지기 직전,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그의 잠을 깨웠다.
“…헉, …헉….”
거친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희한한 발소리가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턱, 하고 발을 딛는가 싶더니 직후 지이익, 즈으윽… 흙바닥에 대고 신발을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턱, 즈으윽…, 턱, 즈으윽…. 같은 소리가 연거푸 반복됐다. 그때마다 소음은 점차 커지며 하련솔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내 ‘풀썩’ 자리에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용했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몇 초간 들리기는 했으나, 이내 전자기기가 내는 소리에 파묻혔다.
“…….”
멀어버린 눈을 끔벅거리며 하련솔은 몇 초간 생각하다, 침상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약한 빈혈을 느끼며 그는 침상 아래 바닥에 두 손을 대고, 복합문이 놓인 방향을 느릿느릿 가늠했다. 아무래도 제 방문 바로 앞, 쪽마루에 누군가 앉아 쉬는 듯했다.
가만히 귀 기울여 집중하자,
“후우….”
지친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기척은 없었다. 한참을 홀로 숨 고르는가 싶던 상대는 옷깃을 털어내는 듯 작은 소리를 들려주다가, 힘주는 숨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하련솔은 엉금엉금 방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하나, 둘… 초롱이 알려준 대로 걸음 수를 셈하며 움직이자 금세 복합문에 손이 닿았다. 문고리를 찾아 쥐고, 휙 앞으로 밀어젖혔다. 그러자 덜그럭대는 소음과 함께 누군가 문짝에 몸을 부딪쳤다.
“아, 미안!”
어둠을 향해 고개를 추켜들고 하련솔이 소리쳤다.
“그냥 가려는 것 같아서…. 그러지 말고 들어올래? 방 안이 더 시원해.”
빠르게 말하는 잠깐 사이에도 얼굴을 데우는 땡볕이 뜨거웠다. 혹여 눈에 빛이 들어 아플까 봐, 하련솔은 얼른 두 눈을 감으며 고개 숙였다. 그러나 시야는 여전히 컴컴하기만 했다. 점멸해 오는 빛이 없음에 안심하며, 그는 제 앞에서 일렁이는 기척을 느꼈다.
“혁아.”
그러고는 대답이 들려오길 기다렸다. 제 이마 위에 커다란 손바닥이 차양을 만들어 놓은 줄도 몰랐다.
제 그림자로 하련솔의 얼굴을 덮어주며 이차혁은 숨을 골랐다. 만일 하련솔이 맹인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당장이라도 도망쳤을 거였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그는 현재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감출 길 없는 피로감에 붉어진 얼굴은 물론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흠뻑 젖은 채였다. 절뚝이는 꼴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으려 인적 드문 길을 쫓아온 탓에 신발 옆면과 바짓단이 흙으로 얼룩덜룩했다. 아무 담장이며 나무를 딛느라 손바닥 살갗은 죄 까졌고, 지은 죄없이 몸이 괴로우매 성질이 났다. 제 처소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더욱 답답해 눈물이라도 쏟고 싶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쳐서 혀를 깨물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하련솔의 처소가 보였다. 개구멍. 우스꽝스러운 별칭을 지닌 조그마한 건물이 당장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낮은 담장 너머에 잠시만 몸 숨길 생각이었다. 처소의 주인이 문짝으로 제 등을 때릴 줄은, 곧바로 저를 초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떨떨한 목소리로 이차혁이 물었다.
“…나인 줄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자 하련솔이 웃는다. 눈동자엔 빛이 없고 이차혁의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는 쉽게 웃었다. 아무런 속셈 없이 자아낸 미소였다. 그가 끌고 나온 방 안의 공기가 선선했다. 부드러운 바람이 이차혁의 더위를 식혀 주었다.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하련솔은 복합문 두 짝을 마저 활짝 열어주며 몸을 비켰다. 그러곤 왔던 것처럼 느릿느릿 뒤로 움직이며 침상 옆으로 향했다.
제 침소에 비하자니 더욱 조그마하게 느껴지는 방을 살피며, 이차혁이 신을 벗었다. 흙과 풀이 묻은 바짓단도 마저 털어냈다. 그리고 쪽마루에 오른쪽 다리를 먼저 올리고, 왼쪽 다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천천히 옮겼다. 미적미적 시간을 들여 그는 하련솔의 방에 들어섰다. 등 뒤로 방문을 닫자, 어두운 방이 점차 눈에 익었다.
사방에서 하련솔의 체취가 풍기는데, 살냄새가 이상하게 좋았다. 작고 포근하고, 방 주인의 말마따나 시원했다. 우두커니 선 채 어찌할 바 모르는 이차혁을 두고, 하련솔이 더듬더듬 바닥을 손으로 훑더니 방석을 찾아 깔아 주었다. 너무 헐떡이지 않으려 노력하며 이차혁은 그 자리에 가 앉았다. 마비된 왼쪽 다리를 바닥 위에 퉁, 소리를 내며 뻗었다.
‘살 것 같다.’
그제야 살 것 같았다.
그의 곁에 나란히 앉아, 하련솔은 내심 멋쩍었다. 그의 침실에는 소파는커녕 손님을 앉힐 작은 의자 하나 없어서였다.
“네 마음대로 쉬다가 가.”
그나마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뿐이었다.
하련솔이 쑥스럽게 뱉은 말은 이차혁을 놀라게 했다. 당장 그의 머릿속을 점령한 바람이 그저 쉬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하련솔이 그에게 필요한 말을 즉각 건네준 것이었다. 제 마음을 모두 읽힌 느낌이었다.
“…네, 형. 고마워요.”
이차혁이 애써 뱉어낸 덤덤한 음성은 그러나 하련솔에게 닿지 않았다. 그는 정신 사납게 들려오는 또 다른 소음에 귀 기울이던 차였다. 어디선가 녹음된 목소리가 들려오기에, 허공을 향해 더듬더듬 팔 뻗으며 전자기기가 놓인 자리를 찾았다. 소리의 정체는 오디오북 음성이었다.
…사건 현장에 떨어져 있던 다이아몬드입니다. 재클린의 귀걸이에 매달려 있던 장식 일부분이죠. …그녀가 납치를 당했다는 의미인가요? 톰슨이 물었다. 늙은 탐정이 제 콧수염의 족제비 꼬리처럼 뻗은 부분을 매만지며….
유치하다면 유치한 상업 소설이었다. 치정, 살인, 멜로가 난무하는 추리극을 중지시키려 하련솔은 기기 위를 다섯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그러나 오디오북은 아랑곳 않고 현장에서 발견된 삼각 팬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멋쩍은 표정을 못 감추며, 하련솔이 말했다.
“저, 이것 좀… 일시 정지시켜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