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41화 (41/135)

41.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

초롱의 직업만족도는 최고점이 10이면 10, 100이면 100, 그야말로 만점이었다. 그녀와 함께 시종 일을 시작한 동기들은 이른 새벽 궁에 들어서 소지품 검사를 받을 때부터 울상인데, 초롱은 환복도 가장 빨리 해냈고 언제나 싱글벙글했다. 아침부터 슬픈 그들과 기쁜 초롱에게 차이가 있다면 모시는 무화의 성질이었다.

슬픈 시종들은 자신이 모시는 무화를 동물에 빗대어 말했다.

멍멍이 또 지랄이야...

나를 피 말려 죽이려고 해...

야. 앵무새 2절 3절 시작했음.

나는 귀에서 피남.

업무 시간 내내 시종들의 단체 채팅방은 이런저런 불만으로 가득했다. 유달리 말 없는 시종을 둘 꼽자면 하나는 윤슬찬을 모시는 시종이었는데, 윤슬찬은 손발을 못 쓰는 데다 성격이 악독한 무화였다. 오죽하면 화장실에서 뒤 닦는 일까지 시종에게 시킨다는 소문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하련솔을 모시는 초롱이었는데, 그녀가 침묵하는 이유는 완전히 반대였다. 우는 소리 가득한 채팅방에 굳이 제 자랑을 하고 싶진 않아서였다.

‘다른 무화들에 비하자면 우리 솔 님은 천사지, 천사. 반찬 투정 안 해, 옷에 불만 없어, 심부름 안 시키지, 욕 안 하지, 폭력적이지도 않고!’

그런 하련솔을 모시다 보니 초롱은 즐거웠다. 그와 친해지고 그를 좋아하게 될수록 업무의 보람은 당연히 커져만 갔다. 오죽하면 실수로 ‘솔 님이 제 넷째 오빠 같다’는 말을 해버렸다가 얼른 사과한 일까지 있었다. 하련솔은 그마저도 기분 좋게 받아들이며 ‘나도 초롱이 같은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 주었다.

덕분에 오늘도 초롱은 기분 좋게 출근했다. 이른 아침부터 하련솔의 처소 앞으로 황제의 호위 실장이 찾아와, 기쁜 소식을 하나 알려주기까지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초롱은 얼른 작은 처소로 뛰어 들어갔다. 쪽마루에 앉아 하품하는 하련솔에게 인사하고, 곧바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솔 님, 솔 님! 황제 폐하께서 오늘 오찬 자리에서 뵙자고 말을 전해 오셨어요.”

남몰래 황제와 여러 번 만남을 갖고, 어젯밤엔 공식적인 부름을 받아 침전에 다녀온 하련솔이었다. 황제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자랑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초롱도 자세한 관계가 어떤지는 잘 몰랐다. 그래도 지난날 두 차례 훔쳐본 바에 의하면 황제 폐하께서 하련솔을 보는 눈빛에서 꿀이 흐르는 듯했다. 황제와 무화의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또 최우선시되는 건 황제의 마음이니, 이제 그들 사이는 깊어질 일만 남았다.

한데 뜻밖에, 하련솔은 두 발을 쪽마루 밑으로 툭 떨어뜨려 놓고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뻐하며 당장 준비하겠다고 나서야 할 판국에 그는 그저 멍했다. 하룻밤 사이에 개화병이 많이 나아, 어제는 종일 두 눈을 반짝반짝 별처럼 뜨고 다니던 그였다. 그런데 오늘 기쁜 소식 앞에선 왜 동태 눈깔을 비추는 건지 의문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아, 초롱이 재차 질문했다.

“솔 님. 왜 그러세요?”

그러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그… 오찬이라는 거.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는 거야?”

“네?”

초롱은 몹시 당황하며 뒤를 살폈다. 처소 밖에 우뚝 선 호위 실장도 그 소리를 들은 듯, 어깨를 흠칫 떨더니 이쪽을 돌아봤다. 소리 없이 입을 쩍 벌린 얼굴에 ‘경악’ 두 글자가 쓰여있었다.

하련솔이 황제의 침전에 다녀온 게 어제 일이었다. 하루도 건너지 않고 오늘, 곧바로 다시 불러내시는 걸 보면 황제는 하련솔이 무척 마음에 든 듯한데, 정작 하련솔은 크게 기뻐 보이지 않았다.

‘왜? 왜지? 시력이 나빠서 그런가…?’

초롱이 생각하기로 ‘그’ 황제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는 오직 그뿐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무화 뿐만 아니라 시종들의 마음도 죄 훔쳐, 별명이 대도둑인 젊은 황제를 어찌 마다하겠는가.

그 이유가 어찌 되었건, 무화는 황제를 거절해선 안 됐다. 고민 끝에 초롱이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친히 함께 식사하자고 말씀해 오신 건데요…. 정말 좋은 기회인데, 솔 님께서는 정 원치 않으세요? 막 거절을 해 버리시면, 폐하께서, 아마도 화를… 내실까요?”

설득해 보려 시작한 말이 질문으로 끝났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라, 초롱도 황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련솔은 그 애매한 질문에 안색을 밝혔다.

“그럼 안 갈래.”

두 눈을 질끈 감고 초롱은 한 달 전의 그녀 자신을 원망했다. 폐쇄은둔족 무화를 모시니 참 편하다고 좋아하고, 종일 개구멍의 거미집 떼는 일이나 하며 게으름을 피우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하련솔을 처소 밖으로 끄집어내어 그 습관을 고쳐놓을 거였다.

눈물을 삼키며 초롱은 호위 실장에게 한 발 두 발 다가갔다. 그리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실장님. 죄송하지만 솔 님께서 오늘 오찬은 참석하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폐하와 정말 함께하고 싶으시고, 이렇게 불러주시니 몹시 감사드립니다만, 오늘은 일정이 안 맞는다고도 하십니다.”

바로 열 걸음 너머에서 ‘그럼 안 갈래’로 일축한 말을 뻔히 들었건만, 초롱은 거짓말했다. 뻔뻔하고 조그만 시종을 내려다보며 웅 실장이 물었다.

“그럼 어찌합니까?”

“네?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어떡해요….”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일단 폐하께 말씀드려 주세요. 저, 최대한… 상냥하게, 진짜 진짜로 아쉬워하셨다고 말씀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입 안으로 중얼중얼, 초롱에게 들은 말을 외우며 웅 실장은 침전으로 돌아갔다. 오찬 자리에 출석할 준비를 모두 마친 이림범은 묵직한 재킷에 화려한 장식을 매달고 서 있었다. 태황 제복을 변형시킨 검은 재킷이 그의 몸을 더욱 크고 단단해 보이게 포장하고 있어, 함부로 말을 건네기도 어려운 인상을 풍겼다.

“폐하….”

어렵사리 웅 실장이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황제가 뒤를 돌아보며 미소 짓는 듯하더니, 응당 그 뒤에 붙어있어야 할 무화가 보이지 않자 곧바로 얼굴을 굳혔다.

“하련솔은? 오는 길에 잃어버렸느냐?”

딱딱하게 표정을 굳힌 황제에게, 웅 실장은 하련솔의 거절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련솔이 참 눈치 없고 가여운 무화라 생각했다. 어찌어찌 황제의 눈에 띈 것 같기는 한데, 제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한들 감히 거절을 전했으니 이젠 얼굴 볼 일도 없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림범은 얼굴을 매섭게 굳혔다. 그리고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이유는 뭐라 그러더냐?”

“어…, 정말 나오고 싶긴 했고, 불러 주셔서 몹시 감사하단 말씀 전하라고….”

“그런 개풀 뜯어 먹는 소리 말고.”

이림범이 흥 코웃음을 쳤다.

“먹을 거 좋아하는 사람이 밥 먹으러 안 나온다고 할 땐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오늘 오찬은 다른 행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고 편안했다. 초대받은 기자도 없고, 구태여 신경을 써야 할 큰 손님도 없이 친분을 다지며 요리를 먹으면 그만이었다. 많은 눈이 모여앉은 자리에서 제 곁의 하련솔을 처음 보이기에 이보다 무난하고 적절한 날이 없었다.

적절한 날이야 다시 만들면 그만이니 아쉬울 것 없었다. 이림범은 다만 제 부름을 거절한 하련솔의 생각이 궁금했다. 개화병 증세가 사라진 것이야 그보다도 제가 더 잘 알고, 달리 바쁜 일이 없을 것도 뻔했다.

‘하루 사이에 마음이 변한 건 아니겠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림범은 불안했다. 그는 불안하면 곧바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성격이 더러워진다. 때문에 웅 실장을 타박하며 당장 이유를 알아 오라고 명령했다.

그에, 웅 실장은 다시금 개구멍까지 달려갔다가 빠르게 돌아왔다. 어째선지 그의 안색은 전보다 어두워진 채였다. 오찬 장소로 이동하는 황제의 뒤를 쫓으며, 그는 하련솔의 불참 사유를 전했다.

“선약이 있어 안 된답니다.”

“선약?”

“그… 점심은 시종과 처소에서 먹고 싶다고….”

“…….”

걷는 법도 잊고 이림범은 제자리에 멈춰 침묵했다. 그 뒤를 따르던 하수인들이 급하게 멈추었다가 서로 머리를 부딪치는 소리가 콩콩 울렸다.

“폐하?”

당황한 시종이 부르는 소리에 이림범은 고개를 내저었다. 가던 길을 마저 향하면서, 그는 제 안의 쓸모없는 불안을 바삐 쫓아냈다. 당장 이런저런 추측을 함부로 품어봐야 의미 없는 짓이었다.

‘그래, 내가 형이랑 황제와 무화로서 만난 사이는 아니잖아?’

무화가 아닌 하련솔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황제가 아닌 친한 동생으로서, 당장 오늘 점심 식사를 같이 먹자고 불러냈다고 가정하자면, 천 번 양보하고 만 번 굽혀서 싫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됐다. 그런 것이어야만 했다.

마련된 오찬 자리에 앉아 이림범은 제 시종을 불렀다.

“오늘 밤, 극장에 갈 테니 미리 준비해 두라 일러라. 영화를 봐야겠어.”

까만 두 눈을 가라앉힌 채 그는 무척이나 시간 들여, 곰곰이 고민했다. 또 뭘 하자고 해야 형이 좋아할까….

“아. 오늘 저녁 식사는 내 침전에서 먹을 테니 그리 전해두고.”

“네, 폐하.”

똘똘한 시종이 얼른 물러났다. 자진하여 출석한 무화 여럿과 손님들이 제자리를 채우기 시작해, 오찬 시작이 금방이었다. 이림범은 마지막으로 웅 실장을 불렀다. 그리고 낮게 속삭였다.

“들었지? 가서 전해.”

누구에게 전할지 그 상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웅 실장이 바삐 고개를 끄덕이며 퇴장했다.

그러고 나니 이림범은 기분이 좋아졌다. 막장 드라마도 재밌게 보던 하련솔이니, 극장을 대관해 영화를 보여주면 더 즐거워할 게 뻔했다. 마침 개화병이 나았으니 시각적으로 미장셴이 훌륭한 영화를 골라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심 이게 재밌을까 저게 재밌을까 생각하다 보니 시간이 줄줄 흘렀다.

그러나 밋밋한 오찬을 마치고 침전으로 돌아온 이림범에게, 웅 실장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폐하. 무화 하련솔은 저녁에도 선약이 있어 안 된답니다.”

“…….”

이림범의 잘생긴 얼굴이 와그작 구겨졌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는 갑갑한 재킷의 높은 칼라를 당겼다. 시종들이 얼른 달려와 그의 재킷을 벗겨 내기 시작했다. 매단 장식이 많고 벨트의 형태가 복잡해, 탈의에 한참이 걸렸다.

화려한 옷을 입은 커다란 황제에 비해 키 작은 시종들은 난쟁이처럼 보였다. 그들 가운데에 우뚝 선 채, 이림범이 물었다.

“왜. 또 시종이랑 놀겠다더냐?”

“이유는 비밀이시랍니다.”

“이게 미쳤나….”

딸깍! 굵은 벨트의 빳빳한 이음매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