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갑작스럽게 떨어진 명령에 양 상궁이 잠시간 침묵했다. 그러곤 곰곰이 기억을 되짚었다. 두 눈이 멀어버린 채 그녀의 사무실로 옮겨져, 자기소개서 낱장을 두세 문장으로 채우던 하련솔이 있었다. 지난해 판매된 해태 티셔츠 재고를 입고 있었고, 그날 소나기가 쏟아져 머리칼이 젖었으며 피부가 희고 깡마른 상태였다.
‘가만…. 그게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니 흙이 좀 묻었을 뿐 젖은 상태는 아니었던 것도 같다. 그리 창백한 인상도 아니었다. 당시 한솔이라는 이름으로 제 앞에 선 그는 보통의 체격을 지닌 보통의 사내였다.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 걸 보면 이목구비도 그저 그랬던 게 틀림없었다.
그러고 나니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게 됐다. 문정궁 밖으로 나가 번화가에서 하련솔을 마주한다면, 양 상궁은 그를 알아볼 자신이 없었다.
고민 끝에 양 상궁이 말했다.
“무화 하련솔은 아주 착하고…, 태도가 얌전하고…, 인상이 좋은 사람이지요.”
같은 말을 복사하여 어느 무화의 이마에 붙여도 상관없을 정도로 피상적인 소리였다. 그에 이림범은 기가 막혔다.
이림범이 아는 하련솔은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딴딴한 남자다. 태도는 게을러 보일 정도로 차분하고 침착하다. 인상으로 말하자면 ‘좋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될 만치 화려하게 예뻤다. 눈이 튀어나오고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아름다운데, 눈동자는 말갛고 이목구비는 또렷하고, 이마는 반듯하고 턱은 보기 좋게 갸름하여 남녀불문하고 가슴 설레게 할 미인이었다. 목소리는 또 어찌나 듣기 좋은지 조곤조곤한 말씨로 톡톡 뱉는 이야기는 어떤 문장이건 사람을 즐겁게 했다. 폭넓은 한복이 잘 어울리는 늘씬한 몸이 이리저리 움직일 때엔 행동거지가 나풀나풀하여 사람인지 요정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런 이를 두고 한다는 말이 ‘착하다’, ‘얌전하다’… 그리고 ‘인상이 좋다’. 그게 전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더는 대화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이림범은 의금부 전각 밖으로 뛰어나갔다. 뒤꿈치에 불이 붙은 양 움직이는 황제의 뒤를 웅 실장이 급히 따랐다.
성큼성큼 발걸음을 움직이며 이림범이 혼잣말하듯 물었다.
“하련솔의 눈이 무슨 색인지 아느냐?”
그러자 웅 실장은 목구멍 끓는 소리를 냈다. 온갖 곤혹스러운 명령에도 곧잘 대답하던 그였으나, 이번만큼은 드물게 침묵했다. 한참 고민하던 끝에 그가 가까스로 대답했다.
“검은색입니다.”
한국인의 눈동자야 검은색 아니면 고동색이 아니겠는가 싶어 어림잡아 낸 소리였다. 그에 이림범이 코웃음을 쳤다.
“갈색이다.”
보통의 묵직한 갈색조차 아니다. 개화병에 걸린 뒤로 하련솔의 눈동자엔 날로 하얀빛이 더해졌다. 그 때문에 오늘날 그의 눈동자는 몹시도 밝디밝은 갈색이었다. 빛깔이 얇디얇은 유리알 같아, 햇볕만 받아도 깨질까 봐 사람을 노심초사하게 했다. 동공의 빛깔도 하얗게 새어 나가긴 매한가지인지라 검은색이라고는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는 눈이었다.
이림범을 채운 불안이 슬금슬금 성화로 불거졌다. 오늘 밤 제가 내린 명령으로 인해 문정궁 곳곳이 소란한 터라, 오가는 말이 많고 제게 닿는 눈짓이 많으니 화는 더더욱 불거졌다. 이들 중 누구도 하련솔을 똑바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제게 소중한 그 남자를, 누구 하나 특별히 여기지 않고 크게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것에 화가 났다. 그를 그저 희미한 유령, 영혼 없는 허수아비 즈음으로 생각하고, 쉽사리 잊어버리는 이들에게 몹시 화가 났다.
젊은 황제에게 하련솔과 같은 무화는 두 번 다신 없었다. 무화 마흔이 아니라 사백을 가져다 놓더라도 하련솔을 대체할 사람은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투명 인간….’
하련솔은 투명 인간 같았다.
‘내가 귀신에 홀린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그를 더욱이 성질나게 하는 것은 그 자신조차 하련솔을 망각하기 시작했단 거였다. 그 사실조차 알아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망각의 순간을 떠올려 보면 당시 제가 느낀 ‘하련솔’ 역시, 남들이 묘사하는 흐릿한 투명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림범의 사정은 남들과는 달랐다. 이림범은 하련솔을 잊어서는 안 됐다. 쉽사리 잊어버리고도 그저 평온하게 제 일상을 살아갈 수 없었다. 당장 오늘만 보아도 그랬다. 하련솔의 존재를 잊어버리자 그가 들여다볼 것은 제 상처밖엔 남지 않았다. 그러자니 누군가 저를 저주한다는 막연한 공포, 무언가 저를 망가뜨리고 부술 거란 피해망상에 빠졌다. 불안감에 휩싸여 그는 손날에 먼지를 묻히고 가슴팍엔 주먹으로 친 멍울을 새겼다. 모든 전각을 수색하게 해, 어둡고 고요하던 문정궁을 벌겋게 밝혔다.
차라리 처음부터 하련솔을 모르고 지냈더라면 괜찮았을까? 답은 ‘아니오’였다. 이림범은 자기 자신을 잘 알았다. 그는 조금도 괜찮지 못한 사람이었다. 다만 하련솔을 몰랐더라면, 그는 자신이 죽도록 우울하고 미치기 직전으로 불안한 상태라는 것 또한 모르고 살아갔을 터였다. 악몽을 일상으로 알고, 이곳 문정궁을 항시 지옥이라 여기며, 세상만사 모든 것을 증오하면서….
하련솔을 잊으면, 이림범의 세상에는 빛이 들지 않는다. 웃을 일이 없고 즐길 때가 없다.
크고 작은 소란이 불거진 문정궁을 가로질러 그는 가장 구석진 데 위치한 처소를 찾았다. 아직 수색대의 발이 닿지 않아 사방이 고요했다. 손님을 기다리느라 켜둔 희미한 야외 등 주변을 흰 나방이 빙빙 돌고 있었다. 복합문 앞에 서자 후끈할 만큼 데워놓은 방의 온기가 느껴졌다.
이림범은 지난날 제 손으로 뜯어놓아 너덜너덜해진 문고리를 바라봤다. 그것을 쥐고 천천히 당기자 조그마한 침실이 드러났다. 그 즉시 그는 꽉 조였던 숨통에 구멍에 뚫리는 해방감을 느꼈다. 하련솔이 보였다.
잘 차려진 반상 앞에서 하련솔은 잠들어 있었다. 앉은뱅이 의자에 양 무릎을 세우고 앉아, 제 무릎에 뺨을 댄 얼굴이 뽀얗고 귀여웠다. 반상 위에 차려진 식사는 벌써 1인분을 먹어 치워 반만 남은 상태였다.
배부르고 따듯한 채 잠든 하련솔을 보자니 이림범은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 그는 서글펐다. 그는 두 번 다시, 하련솔을 모르던 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빌어먹게 끔찍한 망각의 순간은 더는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제 뇌에 하련솔의 이름 세 글자를 문신으로 새기고 싶었다.
“형.”
아주 작고 낮은 소리로 이림범이 속삭였다.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그 곁으로 다가가, 무릎에 눌려 볼록하게 튀어나온 볼살을 톡 건드렸다. 그러자 하련솔이 눈꺼풀을 파르르 떠는가 싶더니 느릿느릿 눈을 떴다.
말간 갈색 눈, 또렷한 이목구비, 반듯한 이마와 갸름한 턱을 이림범은 홀린 듯 바라봤다. 흐린 눈으로 이림범을 마주 바라보기를 수 초, 하련솔이 웃었다. 눈이 폭 가늘어지고 뺨이 동그래지도록 보시시 웃으며 그가 입을 열었다.
“범아.”
왜 늦었느냐는 질문도 기다렸다는 핀잔도 없었다. 보슬보슬한 잠기운이 감도는 그의 얼굴을, 이림범이 두 손으로 감쌌다. 아주 조심스레 붙들어 쥐고는 손끝 마디로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마의 윤곽과 눈썹, 뺨과 턱의 윤곽을 감각으로 읽어내리는, 그야말로 도리어 눈먼 사람 같았다.
하련솔의 존재를 확신하려는 사람처럼 살피고 또 살피길 한참, 이림범이 말했다.
“형은… 알고 있지? 다들 형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
생생한 확신을 섞어 건넨 물음이었다.
제 처소에 세 명이 다녀간 것도 ‘말도 안 되게 많은 관심’이라던 하련솔이었다. 이림범과 이차혁을 제외하면, 누구도 저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그랬더랬다.
‘특별히 기억하지도 않고… 알아보지도 않아.’
이림범은 하련솔이 흘린 아주 사소한 한숨 조각까지 또렷하게 외우고 있었다. 여태껏 그것이 제가 싫어서 에둘러 지어낸, 거절의 말인 줄로 착각했을 뿐.
‘범아. 그런데 네가 이렇게 자주 나를 찾고, 좋아하고, 이런 것들이….’
미처 내뱉지 못한 뒷말이 무언지 이림범은 알았다. 이제야 알았다. 제 관심이야말로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의미였다. 이 호의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차마 믿지 못하겠단 뜻이었다. 심장을 불에 볶아 먹듯 애정을 쏟아내는 제 앞에서, 정작 하련솔은 언제 외면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던 것이었다.
이림범의 큰 손이 만든 꽃받침에 얼굴을 덩그러니 얹어놓고, 하련솔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시시한 말을 했다.
“원래 그래….”
그에 이림범이 이마를 퍽 구겨도, 눈살을 찌푸리고 아랫입술을 짓씹어도 하련솔은 눈치채지 못했다.
“다들 그래, 범아. 너랑 혁이가 특이했던 거지.”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이제 들켰구나’ 하는 자조가 섞여 있었다.
그에 이림범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원래 그런 사람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모두가 잊어버려도 좋은 사람 같은 게 세상에 존재할 리 없었다. 누구나 다 그를 잊고, 누구도 그를 찾아내질 못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人間’이라는 말 자체가 ‘사람 사이’라는 뜻이었다. 사람 ‘인人’부터가 두 존재가 서로 기대어야 완성되지 않던가. 한 획 죽 그어져서 혼자 있어 봐야, 하나 ‘일一’밖엔 되지 못했다. 그런 건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야 오로지 외톨이일 뿐,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럼… 누가 형을 기억해? 누가 형을 보고, 알고, 찾아?”
이림범의 목덜미에 핏대가 불거졌다. 성난 사람처럼 가슴이 뜨거워져 어쩔 줄을 몰라 그렇게 물었다.
“아무도 그러지 않아.”
반면 하련솔의 대답은 평온했다. 그 바람에 이림범은 화가 식어 버렸다. 대신에 그는 슬펐다. 제가 몰랐던, 저를 모르던 시절의 ‘한솔’이 그를 슬프게 했다.
여태껏 북적이는 주변 사람들에 둘러싸인 한솔만을 상상해온 이림범이었다. 가족이나 친구는커녕 지인조차 없이 혼자 살아온 ‘한솔’의 일생일랑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의 외톨이 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형더러 투명 인간이래.”
너무 속상하면 물리적인 통증마저 느껴진다는 것을 이림범은 처음 알았다.
“내가 지금 유령과 대화하고 있는 건가? 내가 지금,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거야?”
그러면서 그는 제 두 눈을 의심했다. 저는 속이 상해 죽겠는데, 하련솔은 덤덤하다 못해 작은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이 정말로 유령 같아, 이림범은 속이 탔다. 차라리 울거든 달래주면 될 일인데, 웃는 이에겐 무얼 해줘야 할지 모르게 되니 참 야속했다. 그 얼굴마저 보기 좋게 어여쁘고 심장 떨리게 아름다워서, 야속하다 못해 미웠다.